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902
902화 뭐가 나랑 같다는 거야?
나를 파괴할 수 없는 힘은 오히려 나를 강하게 만든다.
이런 양질의 힘을 어디서 쉽게 얻을 수나 있단 말인가.
좋은 기회를 그냥 놓칠 진양이 아니었다.
진양은 흑자색의 번개 속에서 목욕을 하며 온전히 육신과 진원의 힘만으로 버텨냈다.
장해수수전의 위력에 번개의 힘이 어떤 변화를 일으킬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일단 최대한 모두 받아냈다.
상처를 입으면 용혈보술을 운용하여 강제로 회복을 시켰고,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강한 힘이 느껴지면 곧바로 해안으로 흘려보냈다.
해안 안으로 강력한 힘이 마구 쏟아져 들어왔다.
그러나 닭과 검둥이는 태연하게 계속해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진양이 예고도 없이 정체불명의 힘을 해안으로 들이붓는 건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다.
때문에, 이미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것이다.
한편, 장해수수전으로 번개의 힘을 소화해나가던 진양의 육신엔 마침내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은은한 빛무리가 체내에서부터 피어올랐다.
무려 일곱 척이나 되는 거대한 빛의 고리가 진양을 감쌌다.
이어서 물결처럼 퍼져나가며 고리는 점점 더 거대해져 갔다.
번개의 힘은 마치 무형의 힘에 의해 끌어당겨지는 것처럼 빛의 고리를 따라 빙빙 돌기 시작했다.
점점 더 많은 빛의 고리가 형성되었다.
진양은 눈을 감은 채 고리 중간에서 온몸으로 번개의 힘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어서 난폭하게 날뛰던 번개는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기 시작했고, 진양의 혈맥, 경맥, 그리고 기맥을 따라 천천히 흐르며 해안으로 흘러 들어갔다.
한참 뒤.
진양이 서 있는 곳을 중심으로 더 이상 번개가 지면으로 떨어지지 않았다.
대신 구체의 형상을 갖추기 시작했다.
허공에 뜬 채 천천히 제자리를 돌던 무려 백 리에 이르는 거대한 번개 구체는 조금씩 작아지기 시작했다.
번개의 중심에 서 있던 진양이 눈을 떴다.
진양은 자신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빛의 고리와 머리 위에 떠 있는 빛의 고리를 바라보았다.
다소 의외였다.
지금까지 까맣게 잊고 지냈던 원자신광이었던 것이다.
과거 오금납서묘법을 통해 만들어낸 신통력을 완전히 연화시킨 후 법보로 만들었다.
이렇게 듣고 보면 상당히 대단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제 막 익힌 공법이나 신통력은 대부분 쓰레기나 다름없다.
진정한 위력을 뿜으려면 극한의 수준까지 수련을 통해 끌어올려야 하는 법이다.
이 신통력은 검술 수도사들에겐 쥐약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그동안 제대로 된 검술 수도사를 만날 기회가 없었다.
대부분 가볍게 한 대 툭 치면 골로 가버릴 정도로 허약한 녀석들 뿐이었고, 심지어 진양보다 검법이 어설픈 녀석들도 있었다.
때문에, 신통력은 점점 더 진양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 나갔다.
진양은 윤제의 번개의 힘을 이용하여 스스로를 변화시켰다.
새로운 체질이 만들어진 건 아니다.
대신 본래 가지고 있던 금령지체에 변화하며 원자신광도 변화가 일어났고, 눈앞에 보이는 것과 같이 빛의 고리가 형성된 것이다.
진양은 번개의 정체가 무엇인지 드디어 깨달았다.
이것은 번개에 의해 뜨겁게 달궈진 힘이 아니다.
숨겨진 진짜 본질은 예리함이었던 것이었다.
번개 속으로 휩쓸린 것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가루가 되어 사라져버린다.
그리고 번개 역시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다.
현재 진양은 빛의 고리를 완전히 제어할 수 있게 되었다.
원한다면 힘을 멀리 날려 보내는 것까지도 가능했다.
아직 힘을 제어할 수 있다는 걸 확인하고 나니 다소 대담한 생각이 하나 떠올랐다.
진양이 차지한 건 영제가 옥새로 박살 낸 수많은 번개 조각 중 한 조각일 뿐.
비축해둔다면 분명 긴히 쓸 데가 있을 것이다.
상당히 강력한 힘이지만 그 누구 하나 제어하는 사람이 없었다.
이와 같은 힘을 손에 넣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진양은 곧바로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빛의 고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물결처럼 빛의 고리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이어서 진양을 뒤덮고 있는 뇌구(雷球)에서도 모여들었던 힘이 방출되었다.
흘러나간 힘은 수십 리 밖으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가장 먼저 또 다른 번개와 마주했다.
한편, 지면에선 여전히 번개의 파도를 막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공중으로 날아오르고 있었다.
그들은 조금씩 힘을 발휘하여 번개를 이도 밖으로 밀어내고 있었다.
힘겹게 번개를 모아 밖으로 밀어내려고 하는 순간.
멀리서 빛의 고리가 흘러왔다.
빛의 고리는 다른 이들이 힘겹게 뭉쳐둔 번개 덩어리를 다시 번개의 파도로 만들어버렸다.
번개의 파도가 진양을 향해 몰려오기 시작했다.
밀려온 번개들은 중심부의 흑자색 뇌구와 하나로 합쳐졌다.
일 다경도 채 지나지 않아 빛의 고리의 영향 범위 안으로 끌어 당겨진 번개의 파도는 완전히 모습을 감춰버렸다.
그와 동시에 빛의 고리는 점점 더 덩치를 불려 나갔다.
빛의 고리에 의해 번개의 파도가 사라지기 시작하니 번개를 막기에 급급해졌던 고수들도 마침내 여유를 되찾기 시작했다.
“놀랍군. 원자신광과 뇌자신환(雷磁神環)을 이 정도 수준으로까지 다루면서도 그 기세가 전혀 꺾이지 않다니. 도대체 누구지?”
한참 번개를 한 곳으로 몰아 거대한 구체로 만들던 고수는 놀란 눈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비록 갑자기 나타나 자신의 일거리를 뺏긴 했으나 전혀 문제가 될 건 없었다.
“모르겠네. 너무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이라서 말일세. 뭐, 크게 상관은 없지. 아마 우리가 모르는 이름 모를 고수가 호의적으로 도와준 게 분명하네.”
시간이 흐르며 빛의 고리는 점점 더 커져 갔고, 이에 영향을 받는 번개의 고리도 점점 더 많아졌다.
모든 이들의 시선이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집중되었다.
모두들 상당한 실력을 가진 이가 안정적으로 기운을 운용하여 번개의 위력을 약화시키고 있다고 생각했을 뿐.
빛의 고리의 중심에서 진양이 이 모든 힘을 미친 듯이 해안으로 밀어 넣고 있다는 사실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한창 바쁘게 움직이던 위흥조도 우뚝 멈춰 서며 멀리 빛의 고리를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엔 의문이 가득했다.
기꺼이 나서서 번개의 힘을 막아냈던 사람은 사실 많지 않다.
대부분의 수도사들이 고수들이 막아주고 있는 틈에 재빨리 이도를 벗어난 것이다.
그런데, 누가 이런 일을 했단 말인가?
문득 위흥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잠깐, 저곳은 분명 진양이 솟구쳐올랐던 곳인데.’
그렇다면 진양은 여전히 살아있는 게 분명했다.
‘놀랍군. 이토록 놀라운 수준으로 힘을 다스리다니.’
위흥조는 곧바로 그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그러나 진상을 확인한 그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어쩐지. 진양 그 녀석이 아무 이유 없이 목숨을 내던질 리는 없지.’
진양은 아마 이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전멸한다고 하더라도 끈질기게 마지막까지 살아남을 것이다.
어쨌든 진양이 또다시 공을 세운 건 사실이다.
만약 조금이라도 빈틈이 생겨 번개가 이도로 떨어졌다면 막심한 인명 피해를 낳았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대영 신조의 체면은 심각하게 구겨지게 될 게 뻔했다.
영제가 직접 나설 것도 없이 신하가 직접 나서서 상황을 처리했다.
이로써 대영 신조의 체면을 단단히 챙긴 셈이었다.
하지만 진양이 싫은 건 어쩔 수 없었다.
얼굴을 보기만 해도 헛구역질이 나오는 건 여전했다.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했으나 위흥조는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대신 외후들을 불러 치안을 다스리도록 했다.
그때, 이도로 돌아온 영제가 위흥조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는 허공에 떠 있는 거대한 빛의 고리를 바라보았다.
“이도에 이런 은둔 고수가 숨어있었을 줄은 몰랐군. 이런 고수가 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는데…….”
“아마 진양일 겁니다.”
마음에 들지 않긴 했지만 그래도 솔직하게 대답했다.
“진양이라고?”
영제는 놀란 얼굴로 다시 그곳을 응시했다.
그리곤 큰소리로 웃으며 어디론가로 사라져버렸다.
제군법신의 몸으로 옥새와 천자검까지 다루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때문에, 자신이 가진 모든 힘을 끌어모으고, 또 신조의 힘을 최대치까지 모아야만 간신히 위력을 뿜어낼 수 있다.
간신히 위력을 뿜어낼 수 있다고밖에 할 수 없는 건 그가 윤제를 완전히 죽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저 윤제의 법신의 생기를 끊은 것이 전부였다.
윤제 정도 되는 강자는 단순히 생기를 끊는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난 게 아니다.
하지만 이 정도로도 충분하다.
본존은 이미 죽었고, 법신의 생기까지 끊었으니.
더 이상 반란은 꿈도 꾸지 못할 것이다.
이제 앞으로 족히 수십 년 동안은 평화로운 날들이 이어질 것이다.
때가 되어 일념의 바다가 다시 열리면 본체와도 연락이 닿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고 본존이 다시 돌아온다면 윤제는 더 이상 반란 따위는 시도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영제가 일말의 망설임 없이 온 힘을 끌어모아 그를 공격했던 건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영제는 요양을 위해 궁성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이도 상공에는 여전히 거대한 빛의 고리가 남아 아직 미처 처리되지 않은 번개의 힘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함께 달려들어 힘을 빨아들이고 싶은 사람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다만, 빛의 고리를 시전한 누군가 힘겹게 만들어놓은 판을 깰 엄두가 나질 않았다.
괜히 질서를 흐트러트리기라도 했다간 힘겹게 막은 번개의 힘이 다시 쏟아져 내릴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나흘 뒤.
줄어들 대로 줄어든 거대한 빛의 고리는 완전히 사라졌다.
그리고 마침내 중심에 뇌구만 남게 되었다.
진양의 육신은 비록 아직 검은 번개로 인한 많은 변화가 일어나진 않았지만, 장해수수전 덕분에 번개의 힘에는 상당히 익숙해졌다.
육신을 매개물로 삼아 번개의 힘을 계속해서 해안 안으로 흘려보낼 수 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 강제로 육신을 회복시킬 필요도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뇌구가 완전히 잦아들고 진양이 허공에 모습을 드러냈다.
주변을 맴돌던 뇌자신환도 손바닥만 한 크기로 줄어들며 진양의 머리 위로 날아갔다.
퍼석-
빛의 고리는 작은 빛을 남긴 채 완전히 사라졌다.
그리고 진양은 천천히 눈을 떴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있는 위흥조였다.
“따라오시오.”
그는 한마디를 남긴 채 매정하게 돌아서 버렸다.
진양은 주먹을 쥐어보았다.
정신은 훨씬 더 맑아졌고, 육신에서도 강력한 힘이 느껴졌다.
그리고 금령지체가 한 단계 진화한 것도 느껴졌다.
이제 흑옥 신문 개방까지 한 걸음 더 다가간 것이다.
다시 정천사로 돌아온 진양은 대문을 열고 안으로 향했다.
앞장서서 걷던 위흥조가 돌연 듯 고개를 돌리며 진양을 바라보았다.
그는 어딘가 불만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도에서 함부로 날아다닐 수 없다는 건 아마 잘 알고 있을 것이오. 비행을 허가받은 사람이 극소수라는 것도 잘 알고 있을 테고.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폐하께선 진 대인의 공을 인정하시는바, 특별히 비행 허가라는 특권을 허락하셨소.
이 외에 앞으로 입궁할 때마다 사전에 준비를 할 필요 없이 곧장 폐하를 알현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셨소.”
그러나 진양은 크게 기뻐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오히려 실망스럽다는 듯 위흥조를 위아래로 훑으며 말했다.
“그럼 결국 위 대인이랑 똑같다는 거잖아요?”
“…….”
위흥조의 이마에 새파랗게 힘줄이 섰다.
당장이라도 진양의 얼굴에 정권을 날리고 싶었다.
‘뭐? 이런 개자식이! 뭐가 나랑 같다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