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909
909화 태자에게 얻은 물건
낚싯배를 타고 섬을 빠져나온 진양은 섬에서 멀어지자마자 곧바로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순간, 무엇이 바뀌었는지 알 수 있었다.
몸에 변화가 생긴 것이다.
진양은 지난 세 달 동안 해가 뜨면 움직이고, 해가 지면 휴식을 취하는 규칙적인 삶을 살았다.
그 덕분일까?
지금껏 큰 변화 없던 신해가 무려 몇 배나 확장이 된 것이다.
게다가 충분한 휴식 덕분인지 이성도 훨씬 더 단단해진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사자결의 변화가 가장 컸다.
아무 생각도 없이 지내는 사이 몇 단계나 강력해진 것이다.
요지부동이던 백옥 신문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개방 진도가 근 백 년은 깨달아야 도달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른 것이다.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던 사이 벌어진 일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섬에서 보냈던 시간을 돌이켜보니, 가장 먼저 공 노인이 떠올랐다.
생각해 보니 마음이 복잡해질 때마다 공 노인과 만나서 대화를 나누었던 것이었다.
마음이 편해진 탓인지 태자를 성불시키고 나온 것들에도 크게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고개를 돌린 순간 새까맣게 잊고 있을 정도로 말이다.
비로소 깨달았다.
자신이 진정한 고수와 만났다는 사실을.
마음 같아선 다시 섬으로 돌아가 제대로 감사 인사를 올리고 싶었으나 이내 체념했다.
대신 섬 쪽으로 큰절을 올리는 것으로 대신했다.
진양은 곧바로 동도로 향했다.
동도에 도착하기 무섭게 쌓여있던 소식이 밀려들었다.
이도의 상황은 매우 순조로웠다.
황씨 가문은 약속대로 최대한 힘을 써주고 있었다.
이 외에도 한 가지 소식이 더 있었다.
한 장의 편지였는데, 장정의로부터 온 구조 요청 편지였다.
진양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졌다.
그동안 장정의가 사고를 치고 다닌 건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다만, 어디선가 죽어도 다시 부활해서 살아 돌아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여태껏 그가 마음껏 사고를 치고 돌아다니도록 놔두었던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구조 요청을 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진양은 몇 번이고 편지를 살폈다.
습득도 해 보았고, 내용도 여러 번 확인했다.
분명 진양과 장정의 두 사람만 알고 있는 개량된 암호로 작성된 편지였다.
그렇다면 이 편지는 진짜가 확실했다.
잠시 고민하던 진양은 수정으로 만들어진 상자를 하나 꺼냈다.
그곳에는 장정의의 머리가 들어있었다.
이제 막 잘려나온 것처럼 두 눈을 질끈 감고 있었는데, 일말의 생기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혹시나 모를 상황을 대비하여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현재 장정의는 자신의 경지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많은 양의 수명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 온갖 자결 공법까지 더한다면 마음만 먹으면 언제 어디서든 완벽하게 죽는 게 가능하다.
이 세상에서 장정의를 죽일 수 있는 사람은 수도 없이 많다.
하지만 장정의의 죽음을 막아낼 수 있는 건 손에 꼽을 정도로 극소수에 불과하다.
이들은 전부 이름이 널리 알려진 강자들이고, 특수한 능력을 지닌 이들이다.
이들 중 가장 큰 예로 영제를 들 수 있다.
어쨌든 말도 안 되는 강자를 만난 것만 아니라면 곧바로 공법을 사용하여 죽어버리면 그만이다.
굳이 구조 요청 같은 걸 할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진양은 녀석을 그냥 내버려 두기로 했다.
어차피 죽어서 다시 살아 돌아오면 그만이었으니까.
하루 뒤.
또다시 새로운 편지가 날아왔다.
장정의가 보낸 것이었다.
내용은 이랬다.
새로운 비경을 찾았는데, 진법 금제 외에도 장정의의 능력으로 풀 수 없는 것들이 존재하는 비경이었다.
오래전 상고 시대부터 이어진 이 비경은 거의 손상된 곳이 없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완벽하게 보존이 되어있다고 한다.
이대로 놓치기엔 아까우니 함께 살펴보고, 수익은 삼 대 칠로 나누자는 내용이었다.
물론 장정의가 삼 쪽이었다.
상당히 다급하게 휘갈겨 쓴 내용이었다.
이 외에 비경의 위치라던지, 혹여나 오는 동안 마주할 수도 있는 문제 등이 적혀있었다.
혹여나 하는 마음에 편지를 여러 번 살펴보았으나, 마찬가지로 아무 이상이 없었다.
필적 역시 누가 봐도 장정의의 것이었다.
도무지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수하의 말에 따르면 지난번에 확인한 구조 요청 편지는 두 달 전 유령호로 전달된 것이라고 했다.
진양이 동해에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어디에 있는지는 몰랐기 때문에, 편지는 계속해서 유령호에 보관되어있다가 진양에게 전달된 것.
그런데, 구조 편지를 보내고 두 달이 지나자 갑자기 함께 비경을 살펴보자며 편지를 보내다니.
‘또 무슨 쓸데없는 잔머리를 굴리고 있는 거지?’
원래대로라면 녀석을 그냥 내버려 둘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제 보니 편지에 적힌 위치는 몇 달 전 쌍둥이 자매에게 얻은 수낭부의 위치와 꽤 일치하는 듯했다.
진양은 당시 얻었던 수낭부의 위치와 편지에 적힌 위치를 나란히 두고 살폈다.
확실히 거의 일치한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마침 시간도 있고, 무엇보다 수낭부는 언젠간 들를 예정이었으니 일단 찾아가 보기로 했다.
진양은 이동하는 동안에도 계속해서 밀린 정보들을 확인했다.
가장 먼저 유령 경매와 관련된 소식이었다.
딱히 눈여겨볼 만한 내용은 없었다.
무시무시한 묵양 때문인지 비경에서 소란을 피우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고 한다.
경매물도 특별한 건 없었다.
유일하게 치열한 경쟁이 펼쳐졌던 건 만법지서뿐이었다.
대영 신조에서만 몇 개의 세력이 달라붙어 경쟁을 펼쳤다고 한다.
이들 중에는 당연히 정천사도 포함되어있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그것을 손에 넣은 것은 대연 신조의 사람들이었다.
꽤 엄청난 희생을 감수하고 그것을 가져간 것이다.
만법지서를 여는 방법은 알려진 바가 없으며, 그로 인해 오랜 시간 열리지 않았다는 사실도 경매 시작 전에 미리 고지되었었다.
그런데도 상당히 치열한 경쟁이 벌어졌던 것이었다.
최종 낙찰가는 무려 팔품 영석 서른여덟 개였다.
대연 신조 전체를 통틀어 황실 이외에 이만한 금액을 선뜻 지불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설령 영석이 아닌 동등한 가치를 가진 보물을 내놓는다고 해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물론 정말 대연 황실이 그것을 가져간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애초에 만법지서를 경매에 넘긴 것 자체가 전조 녀석들의 주의를 끌기 위해서였으니까.
진양은 정보지를 한쪽으로 밀어버리며 누웠다.
비주는 스스로 움직이도록 하고, 자신은 눈을 감으며 생각에 잠겼다.
이제야 태자에게 얻은 물건을 살펴볼 여유가 생긴 것이다.
먼저 보천선전의 잔본부터 살펴보았다.
이것은 진양이 이 세계에서 처음으로 발견한 ‘선(仙)’이라는 글자가 포함된 공법이었다.
겨우 잔본에 불과한데도 보라색 기능서인 것으로 보아 상당히 대단한 물건인 듯했다.
이 세계에서 ‘선’이라는 글씨가 포함된 물건이면 무엇이든 최고봉을 뜻한다.
선인, 선초 등등…….
선인에 대해선 구체적인 기록이 없다.
그러나 선초는 있다.
선초는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보물이었는데, 전설에 따르면 죽어서 백골이 된 사람조차도 다시 부활시킬 수 있는 보물이라고 한다.
선초에 관한 기록이라면 예전에 일념의 바다에서 본 적이 있다.
상고 시대의 인족 십이사 중 한 사람이 선초를 먹고 무려 아홉 경지를 뛰어넘었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지금의 세계에서는 단 한 번도 이런 기록을 본 적이 없다.
물론 일념의 바다에서 본 기록이 사실인지 확인할 방법은 없었지만, 어쨌든 ‘선’이라는 글자가 들어간 것은 반드시 최고봉을 의미한다.
보천선전의 내용은 상당히 놀라웠다.
비록 잔본뿐이었지만 포용성 하나는 상당한 수준이었다.
지금까지 배운 경전 중에선 자소도경만이 유일하게 비등하게 비길 수 있는 수준이었다.
내용만 본다면 아무런 결점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유일한 결점이라면 자소도경처럼 내용이 잘려있어 온전하지 못하다는 점.
보천선전의 내용은 진양이 예상한 것과 같았다.
신비로운 능력을 통해 선천적인 단점을 극복하는 것이었다.
다만, 잔본인 만큼 완본에 비해 효과가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태자는 선천적으로 치명적인 단점을 안고 있었다.
설령 대영 신조의 넘쳐나는 자원들로 그 단점을 극복하려 했으나, 선천적으로 완벽한 사람에 비하면 당연히 뒤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이유로 수많은 자원을 소모했음에도 불구하고 경지는 영제의 발끝에 못 미쳤던 것이었다.
대략적으로 살펴보았으나 내용이 상당히 난해했다.
절반 이상은 깨닫는 게 불가능했다.
아무래도 입문하는 것조차도 상당히 힘들 듯했다.
‘이건 나중에 시간이 되면 천천히 익혀야겠다.’
백옥 신문의 개방 난이도가 올라간다고 하더라도, 둘 다 열지 못하는 것보다는 낫다.
흑옥 신문이 너무 강해 개방을 할 수 없는 것이 하나의 결점으로 판정된다면, 보천선전을 익혀 그 단점을 극복하고 흑옥 신문 개방 난이도를 크게 낮출 수 있을 것이다.
흑옥 신문은 순수한 힘으로만 개방할 수 있고, 백옥 신문은 깨달음으로만 개방할 수 있다.
백옥 신문은 시간이 지나면 천천히 개방할 수 있게 되겠지만, 흑옥 신문은 결코 그렇지 않다.
이러한 점을 생각해 보면 익히는 것도 나쁘진 않을 듯했다.
이어서 붉은 뱀을 살폈다.
녀석은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와 같았다.
연화시키긴 했으나 마치 스스로 이성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길들이는 건 결코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건 생명체는 절대 아니다.
법보에 살고 있는 원령 같은 것도 아니다.
녀석을 호리병에 가두어놓았으나, 여전히 똬리를 튼 채 매서운 눈빛으로 진양을 노려보며 혀를 날름거렸다.
도망을 가진 않았으나 그렇다고 경계를 푸는 것도 아니었다.
잠깐의 고민 끝에 진양은 손가락을 뻗어 녀석을 살짝 건드렸다.
그때, 뱀은 붉은빛으로 변하며 진양의 팔로 날아들었고, 뱀 문양의 징표가 되었다.
그리고 순간 방대한 양의 정보다 진양의 머릿속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한참이 지나고 난 뒤.
진양의 눈에 초점이 다시 돌아왔다.
진양은 놀란 얼굴로 팔뚝에 새겨진 징표를 바라보았다.
붉은 뱀 자체가 하나의 공법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이것의 이름은 주천도(蛀天道).
천도(天道) 삼천 층 중, 주천도를 통해 한 층씩 뚫고 지나갈 수 있으며, 삼천 층을 뚫는 순간 곧바로 득도하여 신선이 된다고 한다.
강력한 이빨로 마치 좀먹듯 조금씩 파 내려가는 것이다.
게다가 이 공법은 세상에 단 하나뿐인 공법이다.
오직 붉은 뱀을 완전히 지배한 사람만이 공법의 전부를 익힐 수 있다.
만약 붉은 뱀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면 공법도 함께 넘어가게 되는데, 이를 넘겨준 사람은 다시는 공법을 익힐 수 없게 된다고 한다.
대략적으로 상황이 이해가 됐다.
대국공과 그 일당은 붉은 뱀을 완전히 지배하지 못한 듯했다.
그들이 손에 넣은 것은 공법의 일부분뿐.
그래서 단순히 신비로운 좀벌레 정도로밖에 사용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그들은 이것을 태자의 몸에 숨겼다.
그리고 이것은 대영 신조의 기운을 조금씩 갉아먹었다.
만약 이것이 대영 황실 묘지로 들어갔다면, 대영 신조의 국운은 밑도 끝도 없이 파먹히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는 힘으로 전조의 힘을 다시 회복하고, 그렇게 되면 윤제는 다시 부활하게 되었을 것이다.
물론 이건 전조 일당의 유일한 계획은 아닐 것이다.
분명 다른 계획도 존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