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962
962화 대화로 풀자
백리칠은 세 명의 해족 강자의 보호를 받으며 동쪽으로 떠났다.
진양은 향계에 있던 가장 큰 보물을 백리칠이 가져가 버렸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향계는 단조로운 구름의 바다로 이루어진 곳이 아니다.
심지어 구름의 바다 역시 단순히 구름으로 이루어진 바다가 아니다.
향사는 그곳에 자신의 전승을 남겨두었다.
전승은 대놓고 모든 이들의 눈앞에 드러나 있었다.
다만, 향 속에 숨겨져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향계로 들어갔던 사람들 중 이러한 사실을 눈치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향을 느낄 수 있는 재능을 가진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향사의 전승 중 알려진 것은 일부에 불과하다.
핵심 전승이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고 실전된 건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인간 강자들은 웬만큼 심사가 뒤틀어진 자가 아니고선 대부분 자신의 전승을 남기기 마련이다.
향사 역시 마찬가지다.
자신이 가지고 있던 전승을 그대로 남겼다.
다만, 이것을 찾기 위해선 특별한 재능이 필요하고 어설픈 재능이 아닌 어느 정도 수준이 있는 재능을 가지고 있어야만 찾을 수 있을 뿐이다.
현재 진양은 향계에 있던 열두 개의 대전을 전부 챙겨서 자신의 폐허 도궁에 넣어버렸다.
설령 엄청난 재능을 가진 사람이 향계에 들어온다고 하더라도 더 이상은 아무것도 느낄 수 없게 되어버렸다.
진양은 냄새를 맡는 재능을 가진 사람이 아니다.
때문에, 이러한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대신 함께 따라왔던 백리칠이 뜻밖의 기연을 얻게 되었다.
* * *
백리칠을 보내고 난 진양은 곧바로 검둥이를 불렀다.
그리고 둔세전에서 얻은 둔세향을 꺼냈다.
이건 향사가 직접 만든 둔세향 중 유일하게 지금까지 이어지는 둔세향이다.
둔세는 곧 베틀 북이 드나들 듯이 빈번하게 세계를 왕래한다는 뜻이다.
검둥이의 말에 따르면 진양의 해안은 이미 독립된 하나의 세계로 보기에 충분했다.
향사가 직접 만든 둔세향만 있으면 해안 마석에 의해 해안에 발목이 잡혀있는 검둥이조차도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만들어줄 수 있을지 모른다.
“자,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둔세향이야. 지금의 모습대로 살지, 아니면 다시 환생을 할지는 정했겠지? 물론 불멸의 이성을 가지고 있으니 환생을 해도 크게 위험할 일은 없을 거야. 실패한다고 해도 다시 시도하면 그만이니까.
물론 환생 대신 원래의 몸을 되찾는다고 해도 말리진 않을게. 다만, 오랜 세월이 지난 만큼 온전하게 되찾는 건 어려울 거야. 얼마 전에 봤다시피 혈해까지도 잘려서 조각조각 흩어진 상태였으니 말이야.”
“그럼 그냥 환생할래. 원래의 육신도 온전히 다 찾을 수 있을 리는 없을 테니까. 찾을 수 있는 만큼만 찾고 만족해야지.”
검둥이는 한숨을 푹 쉬었다.
과거엔 그저 난도질에 의해 육신이 토막 난 게 전부였다.
그러나 얼마 전에 혈해의 일부까지 잘려져 나온 걸 보니 철저히 포기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아마 지금쯤이면 토막난 육신도 누군가에 의해 자원으로 소모되어버렸을 수도 있다.
“사람으로 환생할 거야?”
“아니, 인간은 너무 약해. 이왕 환생하는 거 강력한 존재로 환생해야지. 일단 무지막지한 방어력을 가지고 있었으면 좋겠어. 그래야 과거처럼 토막이 나는 상황은 피할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오행을 모두 갖추고 있어야 과거의 공법을 다시 배울 수 있겠지. 이 외에도…….”
검둥이는 이런저런 조건들을 한참 동안 떠들어댔고, 진양은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받아적었다.
받아적은 조건을 살펴보며 생각을 해 보니 곧바로 적잡한 종족이 떠올랐다.
게다가 그 종족은 동해에 있고, 마침 동해는 유령호의 세력 범위 내에 있었으니 찾아내는 것도 크게 어려울 건 없었다.
* * *
이틀 뒤.
진양의 눈앞에는 주먹만 한 알이 하나 놓여있었다.
알껍데기에서는 오색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태생적으로 오행을 모두 갖추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대부분의 바닷속 생물이 수행의 성질만 잔뜩 가지고 있는 것과는 반대되는 모습이었다.
진양은 검둥이를 불러낸 뒤 알을 가리켰다.
“자, 네가 말했던 조건을 모두 가진 종족의 알이야. 방어력도 무지막지하게 강하고, 오행의 성질도 모두 갖추고 있고, 또 수명도 상당한 종족이지. 게다가 구할 수 있는 알 중에 가장 좋은 걸로 구해왔지. 마침 아직 이성이 형성되기 전이니 네게도 딱 맞을 거고.
다만, 태생적으로 수련 속도가 상당히 느린 편이긴 한데. 어차피 넌 다시 배우는 입장이니까 그건 큰 문제는 안 될 거야. 어때? 이 정도면 만족하겠어?”
“왜 하필 알에서 태어나는 종족인 거야?”
검둥이는 다소 불만이 있는 듯했다.
“왜긴. 네가 말한 조건에 적합한 건 인간뿐이라고. 근데 인간은 싫다며? 인간을 제외하고 네 조건에 모두 맞는 종족은 이 알에서 태어나는 종족뿐이야.”
검둥이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힘을 뿜어 알을 뒤덮었다.
그리고 알에서 흘러나오는 힘을 자세히 느껴보았다.
느낄수록 만족스러웠다.
확실히 자신이 말했던 모든 조건과 맞아떨어졌다.
수련 속도가 늦는 것쯤이야 크게 문제가 될 것도 없다.
원래의 몸을 다시 찾아 흡수하면 그만이니까!
“좋아. 이걸로 할게.”
진양은 고개를 끄덕이며 향사의 둔세향을 녀석에게 건네주었다.
검둥이는 곧바로 둔세향을 피웠다.
잠시 뒤.
해안마석 아래 깔려있던 마수에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연기에 휩싸인 마수는 조금씩 해안마석을 빠져나왔고, 이내 완전히 해안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하얀 연기는 탁자 위에 올려진 오색빛깔의 알 속으로 들어갔다.
강력한 생명의 기운이 뿜어져 나오며 알 속에 이성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오색빛깔을 뿜어내던 알 한쪽 구석에서 검은색이 피어올랐다.
그리고 검은색은 완전히 알을 뒤덮었다.
쩌적-
작은 소리와 함께 알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뒤.
손바닥만 한 거북이 한 마리가 힘겹게 알껍데기를 깨고 밖으로 기어 나왔다.
검은 바탕에 오색빛깔을 뿜어내는 거북이였다.
진양은 씨익 웃으며 거북이를 발밑에 내려놓았다.
그리곤 녀석을 잘근잘근 짓밟기 시작했다.
“망할 녀석. 이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지, 진유덕! 이게 무슨 짓이냐!”
갑작스러운 매타작에 검둥이는 완전히 넋이 나가버렸다.
예전에 육신이 없을 때는 전혀 느껴보지 못하던 고통이 물밀듯 덮쳐왔다.
“이게 무슨 짓이냐고? 애초에 유령호에 있지도 않던 백리칠이 우리가 돌아오기 무섭게 갑자기 다시 나타났더라. 너, 설마 유령호가 누구 건지 잊은 거냐? 파리 새끼 한 마리라도 유령호에 들어오는 순간 이 몸의 눈을 속일 수가 없는데, 백리칠이 갑자기 나타난 것도 모를 줄 알았냐?
게다가 수낭 동굴에서 뜬금없이 튀어나와 내게 길을 알려줬던 것도 수상하고 말이야.
누굴 바본 줄 아나! 네 녀석 때문에 백리칠이 온통 물들어버렸잖아! 게다가 쓸데없는 이상한 공법을 가르쳐준 것도 그렇고. 이제야 네 녀석에게 빚을 갚아줄 때가 됐어.”
진양의 발길질은 점점 더 거세졌다.
“자, 잠깐…….”
검둥이는 등껍질에 숨은 채 뭐라고 변명을 하려고 했으나 진양은 기회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닥쳐! 설마 아무것도 모른다고 할 건 아니겠지?”
“알고 있긴 알고 있었지. 다만…….”
“이럴 줄 알았어! 전부 다 네 녀석이 꾸민 짓이었지!”
검둥이는 진양이 순순히 그를 밖으로 꺼내준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흠씬 두들겨주기 위해서였던 것이었다!
해안 속에 갇혀있었을 때는 비록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이긴 했지만, 마찬가지로 진양 역시 그에게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아무런 고통도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껏해야 욕을 하거나 협박을 하는 게 전부였다.
하지만 해안을 벗어나게 된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비록 해안이라는 족쇄를 벗어버리게 되었지만 동시에 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을 벗어난 게 된다.
뒤늦게 후회가 몰려왔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안 나오는 건데!’
차라리 진양의 화가 어느 정도 가라앉고 나왔다면 지금 같은 꼴을 당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한참 동안 말도 못 하고 등껍질 속에 처박힌 채 밟히던 검둥이는 문득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다.
한참을 맞았음에도 몸이 멀쩡했던 것이었다.
순간 억제할 수 없는 기쁜 감정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설령 검둥이의 이성과 힘이 더해진 존재라곤 해도 결국은 오색빛깔의 껍질을 가진 거북이에 불과하다.
하지만 꽤 오랫동안 얻어맞은 것 같은데도 그는 멀쩡했다.
이는 곧 진양이 제대로 된 녀석을 골라왔다는 뜻이었다.
확실히 모든 것이 그가 요구했던 것과 모두 들어맞았다.
일단 선천적으로 말도 안 될 정도로 강한 방어력을 가지고 있었다.
껍데기뿐만 아니라 육체조차도 평범한 생명체들에 비하면 한참은 월등한 수준이었다.
게다가 오행의 기운도 평행을 이루고 있었고, 말도 안 될 정도로 긴 수명도 가지고 있었다.
설령 평생 수련을 하지 않고 영기만 흡수하여 성장을 한다고 하더라도 만 년은 거뜬히 살아갈 수 있을 듯했다.
유일한 단점이라면 성장 속도가 매우 느리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요괴는 인간 수도사에 비해 성장 속도가 몇 배는 느린 게 정상인데, 지금 이 거북이는 일반적인 요괴보다 족히 수십 배는 더 느렸다.
이러한 이유로 오색빛깔의 껍질을 가진 거북이에 대해 알려진 정보는 극소수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진양은 비록 겉으로는 어떻게든 검둥이를 잡아먹을 듯한 행동을 보이고 있었지만, 그래도 꽤 믿을 만한 녀석인 건 사실이었다.
‘뭐, 이 정도면 조금 맞아줘도 괜찮겠지.’
이제 막 태어난 거북이에 불과한 검둥이를 설마 진양이 때려죽일 리는 없다.
게다가 어차피 그에겐 불멸의 이성이 있다.
설령 맞아 죽는다고 하더라도 다시 해안으로 돌아가면 그만이다.
그렇게 한다고 해도 진양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을 테니까.
이쯤 되니 검둥이는 점점 마음이 놓이기 시작했다.
그저 진양에게 알아서 화풀이를 하도록 방치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진양이 의미심장한 한마디를 던졌다.
“검둥아, 설마 내가 널 못 죽일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잘 들어. 난 가끔 내 스스로도 자신을 주체할 수 없다고 느낄 때가 있거든? 수틀리면 네 녀석 따위는 그냥 탕으로 만들어버리는 수가 있다 이 말이지. 지금까지는 절대 죽을 일이 없었겠지만, 다시 환생한 지금은 언제든 죽을 수 있는 상태라고.
이게 무슨 뜻인지 잘 알지?”
진양의 말에 검둥이는 화들짝 놀라며 머리를 내밀었다.
“지, 진유덕! 대화로 풀자. 우리 사이에 이럴 것까진 없잖아.”
순간 진양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들은 것이다.
환생을 했으니 환생을 한 몸은 언제든 죽을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설령 불멸의 이성이 있다고 해도 죽음이라는 상태에 빠질 수 있다는 뜻이었다.
사망 상태로 진양의 손에 붙잡히게 되면 어떤 꼴이 될지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아무리 불멸의 이성을 가졌다고 해도 진양의 ‘성불 능력’을 이겨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