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tball is money RAW novel - Chapter 116
멘탈이 좋은 게 아니라 멘탈이 없는 거 아니야?
“14번 김건. 포지션 레프트백.”
우리의 판힐 감독은 끝까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다들 귀를 의심했다.
나는 공격수도 아니고 미드필더도 아닌 풀백과 사이드백을 오가는 수비수로 바르사 데뷔를 하게 되었다.
“왜? 뭘 그렇게 놀라? 훈련 때 다 해봤던 거잖아. 나는 내가 짤 수 있는 최선의 포메이션을 짠 거야. 내가 원하지도 않았던 선수들을 써서…”
판힐이 말끝을 흐렸다.
그의 말이 틀린 건 아니다.
나와 리칼메를 데려온 건 가스파르 회장이었으니까.
그도 나름 바르사 보드진에 불만을 표출한 거다.
“맡겨두세요. 감독님.”
나는 축구화를 고쳐 신으며 웃었다.
밖에 폭우가 심해져서 스터드가 더 깊은 걸로 갈아신어야 했다.
올 시즌 바르사의 약점은 레프트백이었다.
판힐이 감독으로 다시 온다는 소식을 듣고 주전 레프트백이 서둘러 팀을 떠나버린 덕분에 포지션에 구멍이 났다.
판힐은 이 자리에 네덜란드 애제자들을 번갈아 기용했지만 결과가 신통치 않았다.
“건. 괜찮겠어?”
주장 엔리켈이 자기 일처럼 걱정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주장. 설마 감독님이 자기 경력이 걸린 엘 클라시코에서 자폭을 하겠어요?”
“그렇겠지?”
“감독님은 그 자리를 가장 잘 소화할 수 있는 선수가 나라고 판단한 거에요. 난 월드컵 결승전에서 센터백도 해 봤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내가 오히려 주장을 안심시켰다.
허나 드레싱룸에 있는 다른 선수들은 나의 이상한 기용을 끝까지 납득하지 못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마냥 좋았다.
다시 경기에 뛸 수 있다는 게 너무 기뻤다.
쿵- ! 쿵- ! 쿵- ! 쿵- !
벽과 천장이 무너질 듯 흔들렸다.
10만 팬들의 함성이 우리의 뱃속을 찌르르 울렸다.
“바로 이거지.”
분데스리가에서도 느껴보지 못한 흥분이 나의 핏속으로 스며들었다.
그 흥분이 벌써 나의 피를 뜨겁게 데웠다.
“가자! 마드리드 놈들을 무찌르러!!”
우리는 드레싱룸을 박차고 전쟁터로 나아갔다.
나의 역사적인 라리가 데뷔전이 시작됐다.
[올 시즌 첫 번째 엘 클라시코가 벌어지는 이곳은 바르셀로나의 심장 캄 노우입니다. 쏟아지는 겨울 빗속에서도 10만 명의 팬들이 경기장을 가득 메우고 있습니다. 이번 엘 클라시코에는 두 남자의 운명이 걸려 있습니다. 첫째는 바르사의 감독 루이 판힐 감독입니다. 기대와는 달리 저조한 경기력에 벌써부터 경질설이 나오고 있는데요. 오늘 경기 결과에 따라 그의 운명이 결정될 것입니다. 두 번째는 바르사의 블라우그라나 유니폼을 벗어 던지고 순백의 유니폼을 입고 돌아온 ‘유다’ 루이지 피규입니다. 바르셀로나 시민들은 그가 오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고 하는데요. 배신자에게 끔찍한 복수를 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과연 오늘 피규가 어떤 경기력을 보여줄까 기대와 우려를 하고 있습니다.] [말씀드리는 순간. 양 팀의 선수들이 피치로 나옵니다. 아. 라리가의 유일한 동양인 선수 김건이 오늘 처음으로 출전하네요. 포지션은… 음… 수비수인데요?] [수비수라구요? 착각 아닌가요? 김건 선수는 분명히 공격수로 활동을.] [수비수 맞습니다. 오늘 바르사 공격진은 사비올란, 리칼메 아르헨티나 콤비와 클루이베르가 맡고 있습니다.] [포지션이 레프트백이면… 주로 오른쪽에서 뛰는 피규와 매치업되겠네요.] [김건과 피규의 승부. 흥미로운 대결이 예상됩니다.]“와… 장난 아니네.”
피치 가운데 서서 한 바퀴 둘러보았다.
절벽처럼 급경사로 올라간 3층 관중석은 위압적이었다.
차가운 겨울비 속에서도 10만 명의 팬들은 벌써부터 달아올랐다.
“피규! 이 유다 새끼야! 죽어버려!!”
바르사를 응원하는 응원가보다 피규를 욕하는 목소리가 더 컸다.
그러거나 말거나 레알의 에이스 루이지 피규는 동료들과 몸을 풀며 착실히 게임을 준비했다.
오늘 로나우도와 지던이 컨디션 난조로 벤치에 앉았기 때문에 피규가 레알 공격의 선봉장이었다.
“저런 멘탈은 배워야겠어…”
나도 나름 뻔뻔한 놈이지만 이런 분위기는 못 참을 거 같았다.
어쨌든.
지금 피규의 기분을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비에 흠뻑 젖은 흙과 잔디에 맞게 나의 볼 터치 감각을 수정해야 했다.
하지만.
삐이이이익- !!
우와아아아아- !!
주심의 휘슬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경기가 시작되자 10만 명이 동시에 함성을 질러댔다.
그 엄청난 소리가 비에 흠뻑 젖은 초록의 피치를 진동시켰다.
“좋아! 기분 최고야!”
나는 이미 흠뻑 젖은 몸으로 왼쪽 수비 진영에 자리를 잡았다.
그동안 팀 훈련에서도 대부분 왼쪽에서 뛰었다.
허나 이렇게 아래까지 내려와서 플레이하는 건 처음이다.
“여기서 보니까. 피치가 또 달라 보이네.”
내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축구의 각도였다.
나는 벤치의 판힐을 흘끔 보았다.
저 인간이 나를 배려했을 리는 절대 없고.
이건 그와 나의 사정이 극적으로 결합한 결과물이었다.
그에게는 왼쪽 구멍을 메워줄 선수가 필요했고 나는 출전 기회가 필요했으니까.
“온다! 들어오지 못하게 지연시켜!”
루이지 피규가 초반부터 역습해 들어왔다.
그는 쏟아지는 야유가 응원가라도 되는 양 기세 좋게 밀고 들어왔다.
‘이럴 줄 알았으면 미리 송정국한테 전화해서 막는 법 좀 배워둘걸.’
때는 늦었다.
피규는 특유의 부드러운 드리블로 왼쪽 공간을 가르며 다가왔다.
나는 자리를 지키며 그를 중앙으로 몰았다.
“뚫는다! 속지 마!!”
우리 수비수가 외쳤다.
하지만.
피규는 어느새 방향을 틀어 사이드로 돌파해 들어갔다.
로나우도의 폭발적인 드리블과도 달랐고 딩요의 천재적인 드리블과도 달랐다.
부드럽고 교묘한 드리블 기술로 피규가 나를 가볍게 제쳤다.
“젠장!”
포기하지 않고 놈을 뒤쫓았다.
속도가 빠르지 않아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었다.
“한국 선수에게 트라우마 걸리게 해주마!!”
나는 젖은 잔디에 미끄러지며 슬라이딩 태클을 걸었다.
분명 정확한 타이밍이었다.
하지만 피규는 태클을 슬쩍 피하더니 그대로 페널티 박스 안으로 돌입해 슛을 때렸다.
우리 골키퍼의 선방으로 겨우 노골이 됐지만 나의 완벽한 패배였다.
시작부터 왼쪽에 구멍이 나버렸다.
“우우우우~!! 죽어라! 유다! 피규! 이 돼지 새끼야!”
피규는 쏟아지는 빗속에서 욕을 먹으며 묵묵히 코너킥을 찼다.
주변 관중들이 그에게 동전과 술병 등을 마구 던져댔다.
앞에서 그를 막고 있는 나까지 동전을 맞았다.
“아앗! 아프잖아! 이게 뭐야!?”
모난 놈 옆에 있으면 정 맞는다더니 피규 옆에 있다가 병 맞게 생겼다.
피규는 그런 와중에도 정확한 코너킥을 찼다.
“저 인간. 멘탈이 좋은 게 아니라 멘탈이 없는 거 아니야?”
이 정도 평정심이면 인간적인 호기심이 들 정도였다.
레알은 초반부터 바르사를 강하게 몰아붙였다.
나를 포함한 바르사 수비진은 스리백 포백 변환은커녕 밀려오는 레알 공격진을 겨우 막아내는데 급급했다.
구티, 라율이 번갈아가며 공격을 퍼부었는데 그들을 이끄는 선수가 피규였다.
피규는 좌우, 중앙을 오가며 전방으로 볼을 공급했다.
바르사 골키퍼 보라노의 선방으로 겨우 막아 내고 있었는데 여기서 한 골만 먹히면 와르르 무너져 대량 실점할 분위기였다.
“좋아! 어떻게 해야 할지 알겠어.”
왼쪽 아래서 상황을 지켜보던 나는 결론을 내리자마자 바로 움직였다.
[김건! 갑자기 포지션을 이탈합니다! 뭐죠!? 판힐 감독! 자리에서 벌떡 일어납니다!]나는 왼쪽 아래서 중앙으로 돌진했다.
사선으로 창을 찌르는 듯한 움직임.
지금까지의 내 판단이 맞다면 지금 이 타이밍에.
파아아앗- !!
[김건! 패스를 차단합니다! 인터셉트!!]피규는 내가 예상한 타이밍에 정확히 전진 패스를 찔러넣었다.
나는 볼을 빼앗아 중앙으로 내달렸다.
전방에 사비올란, 클루이베르, 리칼메가 보였다.
놀란 레알 미드필더진이 앞을 막아섰다.
파밧-! 파밧- !!
[김건! 그대로 돌파를 시도합니다!]그 얼마나 꿈꿔오던 순간인가.
팬텀 드리블을 치는 내 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지난 반년 동안 몸을 만들고 새로운 기술을 연마하며 이날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비가 이렇게 쏟아질 줄은 몰랐지.
[김건! 터치가 길어요! 볼을 빼앗깁니다! 아! 아!]라리가 무대에서 처음 시도한 나의 팬텀 드리블은 젖은 잔디에 살짝 미끄러지고 말았다.
정말 살짝 어긋났을 뿐이지만 상대는 라리가의 왕이었다.
왕의 병사들이 순식간에 나를 둘러싸고 볼을 빼앗았다.
“내놔! 이놈들아!!”
하지만 나에게는 반년간 업그레이드한 몸이 있었다.
내가 몸의 밸런스를 이용해 바로 볼을 되찾아오자 놀란 레알 선수들은 다시 나를 둘러쌌다.
촤아아악- 척!
나는 왼발로 볼을 끌어당기며 180도 회전했다.
이번에 새로 개발한 나의 신기술 [스쿱 턴]이었다.
좁은 공간에서 볼을 지키며 방향을 급전환할 수 있는 기술이다.
나는 스쿱 턴의 각도를 60도, 90도, 120도, 180도, 270도까지 자유롭게 조정할 수 있게 훈련했다.
순식간에 공간을 만들어낸 나는 오른발로 볼의 밑을 차올렸다.
[어떻게 된 거죠!? 김건! 볼을 다시 빼앗아 로빙패스!!]오른쪽 전방에 있던 리칼메가 나의 패스를 받았다.
그는 레프트백 카를루스가 덤벼들자 우아하게 피하며 클루이베르에게 스루패스를 찔렀다.
클루이베르는 중앙에서 센터백 둘을 등지며 버텼다.
“여기! 여기! 여기 줘!!”
내가 올라오며 소리치자 그가 볼을 밀었다.
[김건! 뒤에서 달려듭니다!! 슈우우웃-!!]흠뻑 젖은 잔디를 가르며 볼이 굴러왔다.
어찌나 눈앞이 맑고 시야가 또렷한지 축구공에 찍힌 마크가 선명하게 보였다.
이렇게 비가 내리는 날은 딱 한 가지뿐이다.
[드라이브 슛]나는 굴러오는 볼의 상단 1/3 지점을 정확히 콕 찍어 찼다.
전방 스핀을 먹은 볼이 전설의 레알 센터백 듀오 히에로와 엘가라 사이를 통과했다.
카시아즈 골키퍼 앞에서 뚝 떨어진 볼이 갑자기 고무공처럼 튀어 올랐다.
물기를 머금은 볼이 골키퍼 손을 튕기며 들어갔다.
처어얼- 썩-
[바르셀로나 1 대 0 레알 마드리드]페널티 박스 밖에 있었지만 축구공이 골망을 흔드는 장면이 선명하게 보였다.
그만큼 나의 컨디션은 최고였다.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검은 비가 쏟아지는 하늘 위로.
“고오오오오올~!! 골입니다! 한국인 김건! 엘 클라시코에서 첫 골을 기록합니다!”
원래 역사에서 이 경기가 어떻게 끝났는지는 나도 모른다.
어떻게 끝났던 이젠 상관없었다.
“내가 역사를 바꾸었으니까.”
“건!! 건!!”
동료 선수들이 달려와 나를 끌어안았다.
빗속을 뚫고 10만 명의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우리는 블라우그라나의 용사들~~ 우리의 출신이 어딘지는 중요하지 않아~~ 우리 모두 형제가 되어 바르셀로나의 깃발 아래 뭉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