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tball is money RAW novel - Chapter 151
아버지가 와인 농장을 한다고 했지?
“꽤나 기쁜 표정을 짓고 있잖아?”
독일 티비 뉴스에서 내가 빅이어를 드는 모습이 나왔다.
사방에서 꽃가루가 터지고 나는 세상의 왕이 된 듯 활짝 웃었다.
어젯밤 일인데 마치 합성사진처럼 현실감이 없었다.
그럴 때는 돈을 생각하면 좋다.
바르사는 챔스 우승으로 상금 200억 원 이상을 확보했고 나는 대회 MVP로 상금 3억 원을 챙겼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챔스 우승을 통해 FC바르셀로나 클럽의 가치가 올라갔다는 거다.
그 가치에 비하면 200억 원은 껌값이다.
“어딜 틀어도 내 이야기뿐이군.”
독일 방송답게 내가 분데스리가 출신이라는 걸 계속 강조했다.
한 축구 평론가는 역대 최고 이적료를 주고서라도 나를 분데스리가로 데려와야 한다고 떠들었다.
“저 친구 고맙네. 덕분에 내 몸값이 알아서 뛰겠어.”
하지만 나는 분데스리가에서 뛸 생각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세리에A에 관심이 생겼다.
한국과는 워낙 악연이라 이탈리아 근처도 갈 생각이 없었는데 유벤투스, AC밀란과 대결하고 나서 강한 인상을 받았다.
세리에A 구단에서 주축을 구성하는 이탈리아 선수들에 대한 호기심이다.
이탈리아 선수들은 독일, 스페인, 잉글랜드 선수들과 달랐다.
좀 회사원 같다고나 할까?
감독이 어떤 포지션에 기용해도 묵묵히 자기 할 일을 해냈다.
팀을 위해 악역을 맡는 것도 기꺼이 했다.
어제 가투조가 그랬다.
패스, 드리블, 슛 모든 면에서 우수한 육각형 미드필더였는데도 감독이 내 마크맨을 지시하자 자존심 다 버리고 나를 쫓아다니며 경기 내내 괴롭혔다.
“나중에 감독이 되면 수비 쪽에는 이탈리아 선수들을 기용해야겠어. 미들진은 볼 소유와 패스가 좋은 스페인 선수들이 좋겠지…”
나는 혼자 머릿속으로 FM 놀이를 즐겼다.
유럽과 전 세계를 지배하는 불멸의 축구팀.
크로이프의 드림팀, 퍼기슨의 맨유, 펨 과르디올리의 바르사, 레알의 은하수 군단, 아르센 벵커의 아스널, 위르켄 클롬의 도르트문트…
팀이 사라지고 20년 후 30년 후에도 계속 이야기될 그런 환상적인 팀.
그런 팀을 만들려면 단순히 좋은 선수들을 모아놓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확고한 철학을 가지고 바닥부터 꼭대기까지 모두가 그 철학을 공유하며 함께 구단을 만들어가야 한다.
“생각만 해도 짜릿하군.”
내가 그런 팀의 감독이 된다면.
동양인 최초로 유럽 축구팀 감독이 되어 리그 우승, 컵대회 우승, 챔스 우승 트레블을 달성한다면.
“정말 신나겠지?”
침대에서 혼자 즐거운 상상을 하고 있으니 우승 후에 허탈했던 마음이 점점 채워졌다.
“김건 선수… 검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담당 의사와 간호사, 바르사 구단 직원이 병실로 들어왔다.
그들의 표정이 어두웠다.
‘설마…’
나도 모르게 등을 만져보았다.
겨우 그 정도 충격으로 내 선수 생명이 끊기지는.
“척추뼈에 실금이 갔습니다. 당분간 안정을 취하셔야 합니다.”
“혹시. 제 선수 생명에 문제가 생겼나요?”
의사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한 달 정도 안정을 취하면 완치될 겁니다.”
“휴우~~”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반면 바르사 구단 직원은 표정이 굳어졌다.
아직 리그 경기가 3게임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
그날 저녁 바르셀로나로 돌아왔다.
허리에 보조기를 차고 있었는데 코르셋을 한 것처럼 불편했다.
그러나 나를 더 불편하게 만든 건 취재진이었다.
우리 집을 둘러싸고 있는 취재진 때문에 들어갈 때까지 한참이 걸렸다.
“미쳐버리겠군.”
나는 챔스 우승의 쾌감을 벌써 잊어버렸는데 다른 사람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다들 진드기처럼 나에게 들러붙어 한 마디라도 따내려고 애썼다.
이전까지는 이곳 고급 주택 단지 안으로 취재진이 들어오지 못했다.
가끔 파파라치가 침투했지만 보안 요원에게 잡혀 끌려나갔다.
하지만 이렇게 수백 명이 인해전술로 밀고 들어오자 경찰도 어떻게 손을 쓰지 못했다.
“미안해. 케이코.”
“그런 말씀 마세요. 오빠는 내가 지킬 거에요.”
케이코는 두꺼운 커튼을 치고 혹시라도 취재진이 집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문단속을 단단히 했다.
“우리가 꼭 무슨 잘못한 거 같잖아. 젠장.”
“맞아요. 꼭 인질범들 같아요.”
“인질범? 하하하. 그러네.”
나와 케이코는 침실에 빛이 들어오지 않게 커튼을 단단히 치고 겨우 잠을 청했다.
취재진과 광팬들은 나의 저택을 포위하고 밤을 지새웠다.
“나온다! 빨리 카메라 돌려!”
다음 날 아침.
허리 보조기 위에 슈트를 입고 케이코와 밖으로 나왔다.
이런 상황에서 케이코를 집에 혼자 두는 건 위험했다.
우리 집 위치는 무책임한 언론에 의해 전 세계에 까발려졌다.
만약 강도라도 찾아오면 누가 책임질 건가?
장담할 수 있는 건 언론은 절대 책임지지 않을 거라는 거다.
찰칵- 찰칵- 찰칵- 찰칵-
“김건 선수! 부상은 괜찮은 건가요!?”
“잔여 경기에 뛰지 못한다는 소문이 있던데요!”
구단에서 보낸 차를 타고 겨우 취재진을 빠져나왔다.
우리가 출발하자 사람들도 차를 몰고 뒤쫓아왔다.
목적지는 바르사 클럽하우스였다.
“김건! 김건! 김건!”
주차장에는 내가 타야 하는 우승 퍼레이드 버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팬들은 이미 몰려와 행진 준비를 끝냈다.
나와 바르사 동료들은 개선장군처럼 버스 위로 올라갔다.
이어서 빅이어가 등장하자 사방에서 환호성이 터졌다.
거대한 은빛 엉덩이가 바르셀로나의 태양에 반사되어 빛났다.
“우와아아아아~!!”
다들 흥분할 만도 했다.
1992년 첫 우승 이후 역대 두 번째 챔피언스리그 우승이니까.
10년 후 리오네 메쉬를 앞세워 유럽을 지배하며 트로피를 수집하던 FC바르셀로나를 생각하면 안 된다.
2003년의 바르사는 자부심은 강하지만 유럽 대항전에서는 별 힘을 못 쓰던 팀이었다.
그런 팀을 내가 멱살을 잡고 우승을 시켰으니 얼마나 기분이 좋았겠는가.
“우승 퍼레이드를 시작합니다!”
캄 노우를 출발한 우승 버스는 바르셀로나 시내의 명소를 돌아다녔다.
시민들과 관광객 모두가 뛰어나와 환호했다.
마인츠 때와는 규모에서 비교가 되지 않았다.
이곳은 세계적인 관광도시니까.
“우리는 바르셀로나의 왕이다!!”
누군가 이렇게 외쳤다.
누구도 토를 달거나 비웃지 않았다.
오늘만큼은 정말로 그랬으니까.
우리는 카탈루냐 광장에 잠시 내려서 바르셀로나 시장과 함께 시민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고 밤이 되어서야 클럽 하우스로 돌아왔다.
“졸라 힘드네. 차라리 결승전을 한 번 더 뛰는 게 낫겠어.”
“하하하! 맞아.”
다들 지친 얼굴로 농담을 주고받았다.
“그래도 정말 멋진 날이었어. 이런 날은 다시 오지 않을 거야.”
엔리켈 주장이 활짝 웃었다.
우습게도 그 말은 예언이 되었다.
***
바르사는 내가 부상으로 빠진 리그 마지막 3경기에서 3연패를 당했다.
리그 최종 순위는 5위.
02-03 라리가 우승은 결국 레알 마드리드가 차지했다.
“챔스 우승했으니까 리그는 양보할 수 있잖아?”
순진한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바르셀로나 사람들의 생각은 달랐다.
[얀티치의 명백한 실책. 날아간 더블.] [챔스 우승 후 선수단 관리에 실패한 얀티치 감독. 책임론 부각.]챔피언스리그 우승하고 신처럼 떠받들더니 한 달 만에 안면을 바꾸고 일제히 비판을 쏟아냈다.
라리가 우승을 레알 마드리드가 아닌 다른 팀이 했다면 그나마 분위기가 나았을 텐데.
얀티치 감독으로서는 불운이었다.
뭐 그 양반은 그러거나 말거나 썩소를 날리며 술이나 마시겠지만.
바르셀로나 언론은 벌써부터 내년 시즌 구상을 자기들 멋대로 하며 감독 교체를 기정사실처럼 떠벌였다.
“이제는 마음껏 운동하셔도 됩니다.”
우습게도 나의 척추 부상은 라리가 종료와 함께 완치되었다.
그리고 바르사 가스파르 회장이 불신임 투표에 의해 해임되었다.
일주일 후 새 회장을 뽑는 선거가 진행되는데 주앙 라포타가 당선될 확률은 100프로였다.
바르사의 성주가 바뀌는 거다.
나는 한국행 비행기를 예약했다.
곧 여름 이적시장이 열리면 어떻게 될지 나도 모른다.
라포타가 나와 얀티치 감독을 그냥 놔두지는 않을 거다.
워낙 영리한 인간이니까 대놓고 짤라서 비난받을 짓은 하지 않을 거다.
정치력이 뛰어난 인간들은 원래 스리쿠션을 좋아한다.
라포타가 날린 독화살은 쿠션을 먹고 돌고 돌아 누군가의 등에 꽂힐 거다.
뭐 당해줄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여름 휴가기간 동안 한국에서 재태크도 해야 하고 하와이에서 결혼식도 해야 하고 런던에서 이적 회의도 해야 하고 바빴다.
“오빠. 앙드레가 좀 바꿔 달라는데요.”
“뭐야. 그 녀석. 왜 맨날 내가 아니라 너한테 연락을 하는 거야?”
“그냥… 제가 선생님이니까.”
한국으로 돌아갈 짐을 싸고 있는데 이니에타에게 전화가 왔다.
“효~용. 몸은 좀 어때요?”
“이제 괜찮아. 무슨 일이야?”
“저 오늘 고향으로 돌아가거든요.”
“그래?”
“혹시… 같이 가실래요?”
“오늘!? 지금!?”
“예. 제가 좀 갑작스럽게 전화했죠? 하하하.”
참으로 황당한 녀석이다.
“우리도 한국으로 돌아가야 해서 정리해야 할 게 많아. 미리 얘기 좀 하지.”
“아… 역시 그렇겠군요. 제가 생각이 짧았어요.”
“니 생각이야 항상 짧지. 잘 돌아가고 나중에 기회가 되면 그때…”
“알겠어요.”
전화를 끊으려는데 순간 정신이 번쩍 났다.
이니에타의 고향은 바로.
“잠깐! 전화 끊지 마! 앙드레. 전에 너희 고향이 어디라고 했지?”
“알바세테 푸엔테알비야요.”
“아버지가 와인 농장을 한다고 했지?”
“맞아요. 그래서 꼭 한번 구경시켜 드리고 싶었거든요. 지금 포도가 제일 맛있을 때에요.”
“너 지금 어디야?”
“왜요?”
“같이 가자. 당장.”
이렇게 해서 나는 충동적으로 스페인 와이너리 투어를 떠났다.
이니에타 가문의 와이너리 [보데가 이니에타]는 뜨거운 태양이 작열하는 스페인 남동부 만추엘라 지방에 있었다.
“와아…”
차를 몰고 포도밭 사이를 지나는데 감탄이 절로 나왔다.
바르셀로나와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탁 트인 대지에 끝도 없는 포도밭이 펼쳐지고 반고흐 그림 같은 뭉게구름이 피어올랐다.
“너무 아름다워요…”
케이코가 살며시 머리를 기대어왔다.
정말 그랬다.
“그러게… 이걸 못 보고 스페인을 떠날 뻔했네.”
이니에타 가문의 와이너리에 차를 세웠다.
스페인 특유의 벽돌로 지은 소박한 건물이었다.
아직은 작은 업체에 불과했지만 앙드레의 선수경력과 함께 앞으로 엄청나게 성장할 거다.
“어서 와요! 나의 판타지스타!”
앙드레의 아버지 안토니오는 쾌활한 남자였다.
그는 부인과 함께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알고 보니 안토니오는 나의 팬이었다.
그는 올 시즌 나의 활약을 칭찬하며 와이너리를 구경시켜 주었다.
와이너리 구석구석 장인 정신이 깃들어 있는 게 느껴졌다.
간단하게 견학을 마치고 드디어 기다리던 와인 시음 시간이 찾아왔다.
“와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