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 the Mus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244)
> 음악천재를 위하여 – 244화 >
-뜻깊은 소식입니다. 한국인 역사상 최초로 빌보드 싱글 차트에 진입한 음악인이 탄생했습니다. 바로 바이올리니스트 강현 씨입니다. 강현 씨는 일전 할리우드의 짐 필머 감독의 차기작 ‘호러’의 음악 감독을 맡아 화제가 되었는데요. 이번에는 빌보드 차트 30위권에 진입해 더욱 큰 놀라움을 선사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한국가수협회 회장 김흥구 씨의 의견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브라운관 속에서는 앵커와 콧수염을 기른 김흥구가 나와서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일전 강현의 할리우드행을 알렸던 앵커이니만큼 목소리에는 흥분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가장 흥분한 것은 다름 아닌 한국가수협회 회장 김흥구였다.
-으아, 정말 좋은 소식입니다! 강현 씨가 할리우드에서 음악 감독이 된 것보다 어떻게 보면 더 놀라운 일이죠. 빌보드 역사상 차트에 이름을 올렸던 한국인은 전부 재미교포나 재일교포밖에 없었어요. 사실상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부정한 사람들도 많았고요. 더 재미있는 건 강현 씨가 빌보드 클래식 차트가 아니라 싱글 차트에 진입했다는 겁니다!
-클래식 차트와 싱글 차트가 많은 차이가 있는 겁니까?
-당연히 두말하면 서럽습니다. 클래식 차트는 자기들만의 리그라는 점이 강한 반면 싱글 차트는 대중적인 상업성이 완성되어야 합니다. 음반 판매량뿐만 아니라 미 전역에서 라디오 등 매스컴에서 얼마나 재생되었는지도 중요하죠. 더군다나 요즘 미국에서 유행한다는 팝이나 힙합도 아니고 클래식이에요.
김흥구 특유의 흥분한 제스쳐와 목소리 때문일까, 뉴스를 시청하고 있던 유현자 여사의 손아귀에도 가득 힘이 들어갔다.
설마하니 살다 살다 해외에 나가 있는 아들의 소식을 아홉 시 뉴스로 접하게 될 줄 그 누가 알았을까.
유현자 여사는 요즘 쏟아지는 전화 세례에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다.
“여보, 요즘에도 전화 많이 와?”
“말도 마요. 예전에 현이 콩쿠르 우승했을 때보다 더 많이 와요. 출판사에서는 영재 교습법을 집필해 볼 생각이 없냐고 묻더라고요. 저번처럼 거절은 했죠. 근데 워낙 집요해요. 전화만 오면 다행이게요? 장을 보러 시장에 나갔다가 출판사 직원하고 얼굴이 마주쳤는데 그 사람 때문에 어찌나 얼굴이 화끈하던지…….”
“왜? 뭐라고 했길래?”
“다른 사람들 다 보는 앞에서 이 시대의 천재를 키워낸 신사임당으로서 영재 교습법을 집필하는 게 대한민국 학부모들을 위하는 길이라나 뭐라나, 얼굴이 너무 화끈해서 시장에서 도망치듯 빠져나왔다니까요.”
아들이 너무 유명해져도 탈은 탈이었다.
물론 요즘만큼 자식 농사를 잘 지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은 없었다. 스포츠 스타인 박찬호와 박세리의 부모님이 이러한 심정이었을까 싶었다.
출판사는 물론이고 방송국과 신문사에서도 끊임없이 인터뷰 요청이 쇄도하지 않았던가.
만약 제일그룹 임혜라 대표가 막아주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이촌동 저택 앞은 기자들로 진을 치고 있었을 게 분명했다.
앞으로 더 유명해지면 어떨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그래도 자식이 잘된다는데 싫어하는 부모가 어디 있을까.
-강현 씨의 빌보드 차트 30위권 진입은 이미 미국 내에서도 큰 진동을 일으키고 있다고 합니다. 솔직히 한국에 있는 자국민 여러분들께서는 크게 체감이 안 될 테지만 이는 실로 놀라운 일입니다.
-그걸 말이라고 합니까, 여태까지 클래식으로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이렇게 가파르게 성장한 사람이 없다니까요? 더군다나 강현 씨의 인기를 보세요. 저 훌륭한 연주 실력과 훤칠한 외모 때문에 미국에서도 인기를 몰고 있다고 하니까 이건 막말로 서태지도 못한 일이라니까요!
-김흥구 씨, 한국가수협회 회장으로서 보기에 클래식 연주로서 빌보드 싱글 차트를 진입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입니까?
유현자 여사는 브라운관 속에서 보이는 아들의 모습에 숨길 수 없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때 한국가수협회 회장 김흥구가 쐐기를 박아 넣듯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클래식, 이건 모차르트가 와도 장담을 못 하는 일이라니까요!
* * *
“첼로, 조금만 더 신경을 써주세요.”
뉴욕 필하모닉의 단원들은 한껏 긴장된 모습이었다. 악장 안토니오 또한 마찬가지였다.
안토니오는 단원들을 매의 눈으로 지켜보는 강현을 보며 정말 사람이 맞는가 의문이 들 정도였다.
것도 그럴 것이 강현은 한 치의 실수도 용납지 않았다. 마치 자로 잰 것처럼 음정이 약간이라도 흐트러진다면 귀신같이 찾아내곤 했다.
“세르게이, 건반을 누르는 왼손 검지와 약지의 힘을 평소보다 풀어!”
안토니오는 러시아 출신의 피아니스트인 세르게이를 바라봤다.
모스크바 음악원 출신으로 쇼팽 콩쿠르에서도 이름을 날린 피아니스트가 아닌가.
콧대 높기로 유명한 그가 강현의 혹독한 지도 앞에서는 피아노를 처음 배우는 학생이 된 것마냥 바짝 긴장해 있었다.
“템포에 신경을 써, 세르게이 너무 독단적으로 달려가지 마. 포르테라고 다 똑같은 포르테가 아니야. 손가락에 힘이 너무 들어가 있어!”
물론 처음부터 세르게이가 이토록 고분고분했던 것은 아니다. 다른 단원들도 마찬가지였다.
강현의 혹독한 지휘는 다른 마에스트로들과는 궤를 달리했다. 많은 마에스트로들이 악장과 수석의 입장을 생각해 간단한 지시사항만을 그들에게 전달하는 반면 강현은 세세한 부분 하나하나까지 지도했다.
물론 교향곡 녹음까지 남은 시간이 얼마 되지 않는 것도 이유에 포함되기는 하겠지만.
-난 이렇게는 못 해 먹겠습니다!
세르게이는 처음에는 저토록 불같이 화를 내며 피아노 의자 위에서 벌떡 일어났었다.
-세르게이, 당신의 연주가 그렇게 만족스럽습니까?
-모난 점은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만약 이렇게 강압적인 독재자 밑에서 협연을 하는 거였다면 난 이 자리에 오지 않았을 거라고. 뉴욕 필하모닉의 명성을 믿고 왔는데 저렇게 어린 지휘자한테 휘둘릴 정도라니 도대체 다들 어떻게 된 겁니까? 다들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닙니까!
-세르게이, 방금 전 그 발언은 취소하세요.
누가 다혈질인 러시아인 아니랄까 봐 금방이라도 강현에게 달려들 것 같았던 세르게이였다.
하지만 다른 단원들은 그의 마음을 십분 이해했다. 자신들 또한 처음 강현의 지휘와 지도를 받았을 때는 반발하는 이들이 있지 않았던가. 하지만.
-제가 직접 보여드리겠습니다.
강현은 세르게이가 박차고 일어난 피아노 의자 위에 앉아 그대로 자신이 요구했던 연주를 선보였다.
평생을 피아노에 몸 바쳐 왔던 세르게이의 눈이 번뜩일 정도로 대단한 연주와 감정이었다.
마치 베테랑 연기자들이 카메라가 점등되자마자 메소드 연기를 펼치는 것처럼 좌중을 압도하지 않았던가.
몇 번이고 그러한 일이 반복되다 보니 세르게이 또한 그 자존심을 꺾을 수밖에 없었다. 이미 음악적으로 강현을 인정해 버린 것이다.
“여기서는 보다 부드럽고 강렬하게―!”
역설적인 표현이었지만 세르게이는 반박할 수가 없었다. 악보가 원하는 악상의 흐름과 일맥상통하였기 때문이다.
스파르타와 같은 리허설이 끝난 뒤에도 단원들을 비롯한 피아니스트 세르게이는 자리에서 바로 일어설 수가 없었다.
깊은 여운과 함께 등줄기에는 어느덧 굵은 땀방울이 가득했다.
이 모든 게 힘들지 않냐고? 세르게이는 확언할 수 있었다. 자신이 여태껏 협연했던 그 어떤 연주보다도 지금이 가장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준다고 말이다. 전혀 새로운 음악의 세계로 빠져드는 기분이 아닌가.
“그럼, 삼십 분 휴식하고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강현은 짧은 휴식시간을 선언하고는 그대로 뒤돌아서 무대 위를 내려갔다.
이제는 오로지 악장과 수석, 그리고 단원들의 시간이었다. 그들끼리 모여 다시 논의를 거쳐야 하는 과정이 틀림없이 필요했다.
“지휘자님 너무 멋있지 않아?”
어느 여단원의 말에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단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세르게이 또한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미국에서 클래식 연주자로서는 이례적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음은 물론이고 빌보드 차트에까지 진입했다.
단순히 동양인치고는 훤칠하고 매력적인 외모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의 음악적 재능은 뉴욕 필하모닉의 그 누구도 재단할 수 없을 정도로 깊고 광활했다.
하물며 강현은 마치 음악가이면서 건축가와 같은 느낌이었다. 고고하면서 아름다운 관현악기의 선율로 자신만의 세계를 건축하는 음악가 말이다.
*
“후우―!”
강현은 참았던 숨을 몰아 내쉬며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훔쳐냈다.
가히 스파르타식 훈련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혹독한 리허설이지 않았던가.
평소처럼 긴 시간이 주어졌다면 이렇게까지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에 있을 시간은 한정적이었고 작곡가이자 지휘자인 자신이 이렇게 나서야만 기간 내에 교향곡을 소화할 수 있었다. 그나저나.
“언제까지 이렇게 연락이 오려나?”
요즘은 어떻게 번호를 알았는지 강현에게 개인적인 연락을 해오는 이들도 상당수 늘었다.
방송국 관계자를 비롯해서 기업의 CF 제안은 물론이고 미국 연예계에서 꽤나 인기몰이를 한다는 여가수와 배우도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당황스러웠던 것은 미국 유명 남배우의 대시였으니. 남녀를 불문하고 인기를 끌어버리니 이런 불상사가 생기는가 싶었다.
“현, 오늘이 엘넌쇼의 첫 방영이라고 했죠?”
그때 지휘실로 들어온 악장 안토니아가 넌지시 강현에게 물었다. 어느새 날짜가 그렇게 된 것이다.
녹화가 끝나고 아직 한 달이 채 흐르지도 않았건만 ABA 방송국 측에서는 계획보다 빨리 프로그램의 첫 방영일을 결정했다. 그만큼 녹화물이 만족스러웠다는 뜻이었다.
“어때요, 방송은 괜찮게 나올 것 같아요?”
“글쎄요. 사실 미국인들 입장에서는 제가 나와서 토크쇼를 하는 게 재미있을까 싶기도 하고…….”
“모르는 소리 하지 말아요. 현이 지금 미국에서 얼마나 인기인데요. 난 살다 살다 우리 사촌 조카가 클래식 앨범을 사는 걸 처음 봤다니까요? 삼촌이 뉴욕 필의 악장인데도 여태껏 클래식에 관심이 하나도 없던 아이가 현의 연주를 듣고는 그날 바로 앨범을 사러 갔다 왔어요.”
강현은 사실 엘넌쇼의 재미가 어떨지는 자신하지 못했다.
지난 삶 엘넌쇼를 매번 빠지지 않고 시청했었지만 방송에 직접 출연하는 건 처음이니 분위기가 어떻게 흘러갈지 확신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하물며 녹화의 결과물이 어떨지는 편집의 힘도 어느 정도 관여하고 말이다.
“현, 그러지 말고 조금 더 시간을 내서 뉴욕에 남아있는 건 어때요? 마에스트로도 현의 지휘를 좀 더 보고 싶어 하는 눈치던데 말이에요. 이렇게 영화 삽입곡 녹음만 하기엔 너무 아깝지 않을까요. 실제로 연주회를 여는 건 어떨까요?”
“연주회요?”
“제 독단적인 생각이 아니라, 단원들하고 마에스트로 또한 동의한 내용이에요. 사실 현한테 물어보고 싶었지만 요즘 너무 바빠서 여유가 없었잖아요.”
“좋은 방향으로 한번 고민해 볼게요.”
한편으론 당장 수락하고 싶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왕립음악학교의 방학이 끝나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물며 뉴욕에서 얼마나 파파라치 때문에 곤욕을 치렀던가. 만약 유하와 뉴욕 필하모닉만 아니었다면 애진즉에 뉴욕을 떴을 강현이었다.
“삼십 분 다됐네요, 그만 일어나야겠습니다.”
“벌써요? 현, 그런데 이제 곧 엘넌쇼도 시작하지 않아요?”
“안토니오, 그건 나중에 재방송으로 보면 되잖아요. 지금은 리허설이 먼저에요.”
안토니오의 얼굴에는 아쉬움이 가득했다. 하지만 강현은 지금 당장 한 번이라도 연습을 더 하는 것이 중요했다.
하물며 엘넌쇼가 방영된다고 할지라도 앞으로 더 이상 달라지는 게 있을까 싶었다.
허나 강현은 미처 몰랐다. 엘넌쇼가 처음 방영되고 자신의 이름이 더욱 유명해지리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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