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8
7화 서열전(1)
“그래서 헌신적으로 싸웠군요.”
“당연하죠. 싸우다 죽든 끝까지 살아남든 서열전이 종료되면 다시 지옥에 돌아가는 건 매한가지죠. 그러니 어떻게든 공적을 세워 휴식을 받고 싶은 거예요.”
왜들 그렇게 적극적이고 협조적이었는지 비로소 알게 된 이신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얻을 수 있는 게 겨우 잠깐의 휴식이라니.
“그들은 영원히 지옥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까?”
“없지는 않아요.”
그레모리가 설명했다.
“이신 님께서 전장에서 인간을 소환할 때 특별히 원하는 사람을 지명할 수도 있어요. 그래서 다들 이신 님께 눈도장 찍고 싶어 어필했을 거예요. 눈에 들면 앞으로도 계속 지명 소환될 수 있으니까요.”
그랬다.
다들 어떻게든 자신의 가치와 충성을 보여주려 했다.
“그렇게 자주 전장에 소환돼 일정 수준 이상의 공적을 쌓으면 지옥에서 해방돼 마계 주민으로 승격되죠.”
“그렇군요.”
“하지만 그들은 지옥에 떨어질 만한 죄를 지었던 자들임 명심하세요.”
“물론 알고 있습니다. 단지 경험 있고 요령도 좋았던 자들이 보여서, 그런 사람들은 기억해 두었다가 두고두고 쓰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건 좋은 생각이에요. 하지만 설마 앞으로도 계속 휴먼만 고르실 생각인가요?”
“네.”
“휴먼이 얼마나 약한 종족인지는 헬하운드들과 싸워 보고 충분히 아셨을 텐데요?”
“궁병 여럿이 헬하운드 하나를 죽이는 데 애먹더군요.”
“그래요. 같은 인간이라고 공감이나 동정을 갖지 말고 강한 종족을 고르세요.”
“같은 인간이라서가 아닙니다. 저는 휴먼이라는 종족의 강점을 발견했습니다.”
“휴먼의 강점이요?”
“네.”
“원하신다면 허풍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겠습니다. 모의전 상대가 계속 되어주시겠습니까?”
“좋아요. 휴먼이 얼마나 약한지 직접 체험시켜 드리죠.”
그렇게 두 사람의 모의전은 계속되었다.
이신은 수차례 모의전을 계속하며 승리와 패배를 반복했다.
하지만 휴먼의 모든 유닛과 건물을 파악하자 더 이상 패배를 하지 않았다.
연거푸 패배한 하게 된 그레모리의 얼굴은 서서히 당혹으로 물들었다.
이신은 휴먼뿐만이 아니라 오크, 엘프, 드워프, 마물 등도 플레이해 보면서 다양한 각도로 서열전에 대해 공부했다.
무려 30판을 한 뒤에야 이신은 만족해했다.
“이제야 좀 서열전에 대해 알 것 같습니다.”
“그, 그런가요?”
그래모리는 내리 30판의 모의전을 치러서 매우 피곤한 기색이었다.
30판 중 그녀는 단 7승밖에 건지지 못했다. 그마저도 아직 적응이 덜된 초반에 거둔 승리였다.
일단 서열전에 대해 충분히 알게 되자 그녀는 더 이상 이신을 이기지 못했다.
“다른 차원 공간에서도 연습을 해봐야겠습니다만…….”
이신은 질려 버린 그레모리의 안색을 살피며 말을 이었다.
“일단은 여기까지 해두죠. 당장 도전이 오면 이곳 제1전장 아스테이아에서 맞이하죠.”
“그, 그래요.”
서열전에서 택할 수 있는 12가지 차원 공간은 제각각 지형적 특성이 다를 게 틀림없었다.
하지만 일단은 한 차원 공간이라도 완전히 파악한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궁전에 돌아와 이신은 제1전장 아스테이아의 지도를 대충 그렸다.
그 지도를 들여다보며 전략·전술을 연구했다.
‘가장 선호하는 종족이 마물이라고 했지?’
종족 선호도는 마물이 4할 이상이라고 했다.
나머지는 오크, 엘프, 드워프, 휴먼의 순으로 인기가 있다고 했다.
‘4할 이상이 마물이라니, 요번에 도전을 해올 상급 마족도 주 중족이 마물이겠군.’
어쨌거나 이신은 여러 가지 상황을 가정하여서 전략을 수립하며 시간을 보냈다.
***
불과 며칠이 흘렀을 뿐이었다. 하지만 마침내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72악마군주의 제72좌, 그레모리 님께 인사 올립니다.”
핏기가 하나도 없는 새하얀 피부의 젊은 남자가 궁전을 방문했다.
정중하게 예를 갖췄으나 표정에는 자신만만한 기색이 가득했다.
옥좌에 앉은 그레모리는 남자를 바라보며 물었다.
“상급 악마 엘티마구나.”
“예, 그레모리 님. 이제 때가 된 듯해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저 상급 악마 엘티마는 감히 그레모리 님의 72좌에 도전하는 바입니다.”
이신에게는 어서 군주 자리 내놓으라는 말투로 들렸다.
‘벌써 다 이긴 것 같은 태도인데.’
72악마군주.
그레모리도 그렇고, 그 자리가 악마들에게는 정말 특별한 의미인 모양이었다.
‘황병철이 저랬지.’
이신은 문득 자신의 맞수를 떠올렸다.
만년 2인자 황병철.
사실 본래 실력만 따지면 이신에게 그나마 대적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프로게이머였다.
프로팀 간의 친선 연습 게임에서도 황병철에 대한 승률은 60% 정도밖에 안 되었다.
이신에게서 40%의 패배를 안길 수 있다는 것은 실로 대단한 일이고, 황병철만이 그게 가능했다.
하지만 개인리그 결승전에서 마주쳤을 때, 황병철은 유독 흥분을 했었다.
목전에 놓인 번쩍이는 우승컵과 상금!
신을 꺾고 e스포츠의 새로운 별이 되는 미래에 도취되고 말았다.
그 결과 5전 3선승제 시합에서 3연패. 세기의 명승부를 기대한 팬들에게 실망을 안겨주었다.
‘미끼를 던져주면 덥석덥석 물었으니까.’
조금만 승기가 보이면 당장 잡으려 드는 황병철의 조급함을 철저히 이용한 것이었다.
그 뒤로 황병철은 이신만 만나면 심리전에서 말리는 신세가 되었다. 만년 2인자의 탄생이었다.
왕좌에 군림하면서 그런 도전자를 수없이 만나본 이신은 상급 악마 엘티마에게서도 같은 냄새를 감지했다.
‘생각보다 쉽겠는데.’
분위기에 잘 도취되는 상대.
이신이 가장 좋아하는 먹잇감이었다.
그레모리가 말했다.
“좋다. 마신께서 정하신 율법에 의하면 자격을 갖춘 자의 도전을 거부하기란 불가능하니까.”
“마력은 얼마나 거시겠습니까?”
그렇게 묻는 엘티마의 목소리가 갈증에 잠긴 것 같았다.
그 순간, 이신은 과감하게 손가락 2개를 펼쳤다.
이를 본 그레모리가 즉각 답했다.
“2만 마력을 걸겠다.”
“2만이요?”
엘티마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자기 예상보다 많았던 모양이었다.
“진심이십니까?”
“내 말을 의심하느냐?”
“아뇨,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좋습니다, 2만, 아주 좋습니다.”
엘티마의 입가에 번지는 미소. 그레모리는 자신을 무시하는 엘티마의 태도에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는 동안에도 이신은 계속 엘티마의 표정을 살피며 심리를 분석하고 있었다.
‘우리가 최저치인 1만을 배팅할 거라고 예상했나 보군.’
그보다 더 많이 배팅하자 좋아하는 눈치였다.
아무래도 그레모리는 연패의 늪에 빠져 모두에게 얕보이게 된 모양이었다.
“결전 장소는 제1전장 아스테이아다.”
이신이 연습하고 분석한 유일한 전장.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좋습니다.”
“그럼 당장 시작하자꾸나.”
왕좌에서 일어선 그레모리는 옆에 서 있던 이신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파앗!
두 사람의 신형이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