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Mythic creator is a regressed player RAW novel - Chapter 106
금안 (4)
“검후, 오후에 시간 되나?”
“무슨 일이시죠, 선배.”
“새로 설치한 기관의 난이도가 적절한 지 시험 좀 한 번 해주게. 아무리 생각해도 수련생들에겐 무리일 것 같아서.”
“알겠습니다. 신시 무렵(오전 15시~17시)이면 괜찮을까요?”
“음, 고맙네. 기다리지.”
“그 때 뵙겠습니다.”
포권으로 상대를 배웅한 벽려군은 고단한 몸을 이끌고 다시 처소로 향했다.
어느덧 2개월 앞으로 다가온 천무학관의 개관 준비로, 최근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그녀다.
자신이 담당하는 수업 준비를 제외하고도 검의 고수인 그녀를 필요로 하는 곳은 널리고 널렸으니.
허나 잠깐의 휴식을 위해 찾은 처소에서는 또 다른 일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톡톡, 톡-.
창가에서 들려오는 조그만 소리를 따라 걸음을 옮기자 새하얀 전서구 한 마리가 눈에 띈다.
비둘기의 발목에 묶인 작은 통 안에는 곱게 접힌 서신이 들어 있었다.
[검후 친전]하오문에서 도착한 서신에는 최근 감숙 부근에서 일어난 여인들의 실종 사건이 담겨 있었다.
“······.”
서신을 훑는 눈길에 갈등이 어린다.
허나 그녀는 이내 편지를 곱게 접어 서랍 깊숙이 밀어 넣으며 짧은 고민을 마쳤다.
천무학관이 있는 하남에서 감숙까지의 거리는 무려 삼천리에 이른다.
그녀가 아무리 서둘러도 서신에 적힌 사건을 조사하고 개관일까지 돌아오는 것은 무리다.
과거였다면 어쩌면 다른 선택을 했을지도 모른다.
스승을 해한 금안마군의 행방을 찾는 일은 그녀의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과제였으니.
허나 아무런 성과 없이 지나간 14년의 세월은 그녀의 가슴에 어떤 의혹이 싹트게 만들었다.
그 자, 살아있긴 한 건지.
어쩌면 이미 늙어서 죽은 건 아닐까?
그러한 의심과 더불어, 지난 해 어떤 사내와 굳게 나눈 약조 역시 그녀의 발걸음을 무겁게 만드는 원인이었다.
‘약속해주시오. 무리하지 않겠다고.’
‘돌아왔을 때 그대의 모습이 보이지 않으면… 쓸쓸할 것이오.’
“은공···.”
벌써 몇 차례나 함께 사선을 넘어온 사내, 석율을 떠올린 벽려군의 눈빛이 일순 먹먹해졌다.
허나 아련한 표정도 잠시, 다음 순간 그녀의 얼굴엔 드물게도 샐쭉한 표정이 자리를 잡았다.
마교의 습격에 대한 뒤처리로 정신이 없는 틈을 타, 서신 한 장만 달랑 남기고 사라진 사내에 대한 원망이 뒤늦게 솟구친 것이다.
그리고 매번 그와 동시에 자취를 감추는 어떤 청년에 대한 의혹 역시.
“당신과 조가휘 수련생은 정말 다른 사람인가요?”
삼자대면을 통해 두 사람이 별개의 인물임을 확인한 지 어느덧 1년.
그 사이 그녀의 의심은 다시 무럭무럭 자라나 있었다.
애초에 그녀의 추측은 가휘가 석율로 역용했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 반대의 경우도 얼마든지 가능하지 않겠는가.
일대종사라도 되지 않는 이상 그처럼 감쪽같은 역용술을 자력으로 익혔을 리 없으니, 어쩌면 그의 스승이나 동문 중 누군가가 가휘를 도와줬을지도 모를 일이다.
“···너무 갔어.”
근거 없는 망상임은 그녀가 제일 잘 안다.
그러나 본능은 자꾸만 가휘와 석율이 같은 사람이라고 외치고 있었다.
그들이 마교의 습격이 끝나자마자 그렇게 도망치듯 자취를 감춘 것은, 자신의 그런 의심이 겉으로 드러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인사 정도는 하고 가지.”
서운함과는 별개로 그녀의 의심은 더욱 짙어졌다.
가휘가 학관으로 복귀하기까지 앞으로 2개월, 벽려군은 이번에야말로 자신이 품은 미혹의 진상을 확인할 생각이다.
그리고 그 다음엔···.
그 다음엔 어떡해야 하지?
만약 석율과 조가휘, 둘이 같은 인물이라면 난···.
“하···.”
짙은 한숨을 쏟아낸 그녀는 창밖의 먼 하늘을 바라보며 아련히 속삭였다.
“당신은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나요?”
***
“내가 바로 금안신군 사부님의 제자요!”
알 수 없는 알고리즘이 날 그 대답으로 인도했다.
“···지금 무어라 했소?”
“그, 금안신군의 제자···.”
[카신 : 또라휘ㅋㅋ] [래치하 : 금안마군 죽어서도 능욕]낄낄거리는 시청자들과 달리 장내의 분위기는 심각했다.
천천히 내 얼굴을 훑어보는 마교도들의 눈에는 의심과 경계심이 가득했으니.
그나마 그들이 들이닥치기 직전 습관적으로 석율의 얼굴로 역용을 해서 천만다행이지.
지난 반년 간 중원을 여행하며 알게 된 사실은, 지난 무림대회의 우승자인 내 용모파기가 무림인들 사이에 제법 알려져 있다는 것이었다.
상황이 그러하니 마교에서 성염대 격파의 일등공신인 나를 모를 리 없다.
“그대가 신군 어르신의 제자라고?”
“그렇소.”
“···이름이 무엇이오.”
어··· 얘 이름이 뭐였더라? 어제 듣긴 들었는데.
기겁하여 전날 방송분을 뒤져보려는 찰나, 오늘도 채팅창의 집단 지성이 빛을 발했다.
[펭귄목살 : 서원] [빅그림 : 서원이]“···서원.”
“서신에 적힌 것과 일치합니다.”
나이스 어시!
젊은 마교도 하나가 품에서 꺼낸 서신을 확인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허나 보고를 받는 사내의 매서운 눈빛에는 일말의 변화도 없었다.
“성은 무엇이오.”
누구 아는 사람?
[······.]좆됐다. 이번에는 시청자들도 전혀 모르는 눈치다.
절체절명의 순간, 때마침 마교도가 손에 쥔 서신이 시야에 들어온다.
난 얼른 카메라를 날려 서신에 적힌 내용을 컨닝했다.
[내 제자 천서원 역시 나를 따라 교로···]“···천서원! 천서원이오.”
“아까부터 묘하게 대답이 조금씩 늦지 않소?”
“쿨룩, 내, 내상이··· 너무 심해···서. 사실 서 있기도 힘들 지경이오···. 답변이 늦어도 이해해주길 바라오.”
“대주, 일단 자초지종부터 들어보시지요.”
“음··· 그러지. 대체 노야께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오.”
다른 마교도의 중재에 난 얼른 전날 있었던 일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물론 약간의 각색을 거쳐서.
“어제 사시 무렵(오전 9~11시)이었소. 스승께서 갑자기 재미있는 일이 생겼다며 모옥을 나서신 것이.”
“그대는 무얼 하고 있었지?”
“난 스승께서 명하신 대로 모옥에서 대기했소. 헌데 반 각이나 지났을까? 갑자기 밖에서 굉음이 들려오기 시작했소. 난 스승께 꾸중을 들을 것을 알면서도 나가보지 않을 수 없었소.”
전날 금안마군에게 은신이 발각되기 직전까지 모옥을 촬영하고 있던 내 대답에 망설임은 없었다.
이후에 있었던 일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
3시간이 넘도록 도주와 전투를 반복한 탓에 당시의 이동경로나 지형지물, 서로가 펼친 무공에 대한 기억은 아직도 생생했다.
거기에 한 술 더 떠 전투 장면을 다시보기로 돌려보며 경험담을 이어가니, 주위를 둘러싼 마교도들은 금세 하나, 둘 내 실감 넘치는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정말 신군 어른과 합공을 하고도 승기를 잡지 못했단 말이오?”
“부끄럽지만 사실이오. 그만큼 상대의 신위는 대단했소.”
“그 자가 혹시 이 자요?”
적의 수장이 손가락으로 신호를 주자, 한 마교도가 어깨에 메고 있던 진짜 천서원의 시신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흠칫 놀란 것도 잠시, 난 얼른 원통한 표정을 지으며 시신에 침을 뱉었다.
“퉷, 그렇소. 스승님을 해한 것이 바로 이놈이오.”
“믿기 힘들군. 신군 어른께서 이토록 젊은 자에게 당하시다니.”
이미 호랑이 등에 탄 형국이나 마찬가지.
여기서 물러나면 죽도 밥도 안 된다.
지금 필요한 건 배짱!
“스승께서도 그런 내공을 지닌 이는 처음 보았다 하셨소. 특히 쓰러지는 거목을 발로 밀어 날려 보낼 땐 전율이 일더이다.”
그것은 아직 천서원이 현장에 도달하기 전에 벌어진 일이었으나 알게 무언가, 어차피 확인도 못할 텐데.
가슴의 통증도 잊은 채 열띤 목소리로 스승의 눈부신 활약상을 전파하는 사이, 이야기는 어느덧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비록 놈이 강하긴 했으나 결코 나와 스승을 합친 만큼은 아니었소. 헌데··· 그 간악한 놈이 궁지에 몰리니 날 인질로 잡았소.”
“인질이라니! 어찌 그 정도의 무예를 쌓은 자가 부끄러움도 없이!”
“중원 놈들이 위선적이라는 것은 우리 명교의 형제들을 마교도라 음해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소.”
“그 말대로요!”
오, 통한다. 통해!
이제 클라이맥스다.
저들에게 들려주자.
제자를 인질로 잡힌 금안마군의 최후가 얼마나 처절하고 장렬했는지···!
“난 스승께 짐이 되기 싫어 자결을 하려 했으나 혈마저 점해진 탓에 불가능했소.”
“음···.”
“스승께선 제자의 목숨을 신경 쓰느라 싸움에 집중하지 못하셨소. 그럼에도 스승께선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으셨고, 마침내 선천지기마저 불살라 놈과 동귀어진을 이룬 것이오.”
고조되는 분위기 속에 난 한껏 감정을 실어 연기했다.
“돌아가시기 전까지도 제자를 걱정하시던 그 눈빛을··· 으음, 난··· 아직도 잊을 수 없소.”
[금안마군 : ???] [뽀미 : ㅋㅋㅋㅋㅋㅋ 개꿀잼] [원퉁사 : 깐휘 목소리 먹먹한 거 실화냐] [localusers : 내가 금안마군이었으면 벌써 부활해서 갈! 외쳤음] [무리에수에 : 위에 아이디 뭐야 시밬ㅋㅋ]그렇게 제자마저 승리의 도구로 이용했던 추악한 노인은, 내 이야기 속에서 겉은 엄하지만 속은 누구보다 따뜻했던 츤데레 스승으로 재탄생했다.
“노야께 그런 면이···.”
“비록 세간에는 냉철한 분으로 알려져 있지만, 내겐 한없이 따뜻한 분이셨소.”
“노야의 시신은 그대가 옮긴 것이오?”
“그렇소. 스승님의 희생으로 연명한 목숨, 마음 같아선 당장이라도 죽음으로 사죄하고 싶었지만 어찌 스승의 장례도 치르지 않고 갈 수 있겠소. 모두 이 못난 제자의 잘못이오. 으흑.”
일이 잘 안 풀리면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눈물을 흘리는 것이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때마침 내상으로 욱신거리는 가슴도 감정이입에 제법 도움이 됐다.
거기에 전, 현생 통틀어 가장 슬펐던 순간까지 떠올리며 눈물을 짜낸 덕에 내 연기는 더욱 그럴듯해졌다.
물론 방송을 보는 시청자들은 웃음을 감추지 못했지만.
[비굴링 : 못난 제자 ㅇㅈㄹ ㅋㅋ] [百雨 : 킹안마군 저승에서 오열] [방역mask : 이 새끼 가만히 보면 입만 열면 구라임ㅋㅋㅋ] [Upton9 : 깐휘형 우희랑 약빈이도 이렇게 꼬신 거야?] [PARAD : 신투 제자 ntr당함 ㅋㅋ] [으항 : 신투와 킹안마군 모두가 상처 받는 세계의 완성]웃지 마세요, 여러분. 난 존나 심각하니까.
어쨌든 분위기는 무르익었다.
여기에 신빙성을 더해줄 적당한 양념만 있으면···?
“그러고 보니 이 자의 장법을 보신 사부님께서 현천장이란 말씀을 하셨소만···.”
“현천장···!”
“검성 여능천!!”
“대주, 아까 노야의 시신을 살펴보시고 범상치 않은 장법의 흔적이 있다고 하셨잖습니까.”
“으음···.”
여태 묵묵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대주마저도 이번에는 고개를 끄덕이며 침음을 흘렸다.
어제 금안마군과 싸울 때도 느낀 거지만 맹주님의 위용이 참 대단하긴 하다.
여능천이란 이름 석 자가 나오자마자 다들 안색이 일변하는 걸 보니.
그래. 어차피 맹주님이야 원래부터 마교의 주적이니 원한 하나가 더해져도 괜찮겠지.
“과연, 여능천이 몰래 키우던 전인이라면 젊은 나이에 그리 고강한 무공을 지닌 것도 이해가 가는군.”
“스승께선 10년만 있어도 대적할 자가 없을 것이라며, 교의 미래를 위해선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고 하셨소.”
“어르신께서···! 음, 교주님의 상심이 크시겠군.”
“조용-.”
웅성거리기 시작한 교도들을 진정시킨 사내가 조금은 누그러진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이야기는 잘 들었소. 오기 전 밖에서 살펴본 전투의 흔적도 당신의 증언과 일치하오. 허나 그것만으론 그대가 신군 어르신의 제자라는 것을 증명하기에 부족하오. 어쩌면 당신이야말로 방금 말한 그 여능천의 전인일 수 있으니···!”
“헉!”
“확실히···.”
아, 저 개새끼.
사내의 한 마디에 잠시나마 우호적이던 장내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뒤바뀌었다.
다시금 모옥 안을 채우기 시작한 짙은 긴장감에, 난 얼른 앞으로 나서며 입을 열었다.
“내가 어찌 하면 믿겠소.”
“사실 그대가 노야의 제자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아주 쉽소.”
“그게 무엇이오.”
“이 자리에서 노야의 무공을 한 자락 펼쳐 보이면 될 일이오.”
그래, 그럴 줄 알았다, 내가.
어렴풋이 예상은 했다.
본디 무인은 무공으로 말하는 법.
허나 막상 상대의 요구를 들으니 눈앞이 캄캄했다.
어제 처음 만난 금안마군의 무공을 내가 펼칠 수 있을 리 없잖은가!
더구나 금안마군의 무공은 지극히 사악한 마공.
극과 극은 통한다지만, 선기마저 깃들었다고 평가받는 나의 내공으로 마공을 펼칠 수 있을 리 없다.
주화입마나 안 걸리면 다행이지.
그야말로 독안에 든 쥐나 다름없는 상황.
그러나 이대로 손 놓고 죽음을 기다릴 수는 없는 일이다.
발버둥이라도 쳐봐야지.
“···잠시 운기요상으로 몸을 달래도 되겠소? 여능천의 제자에게 당한 내상이 만만치 않소.”
“반 시진 주겠소. 그 정도면 간단한 무공을 펼치기엔 충분하다고 생각되는데?”
“그렇···지.”
“우린 이 자리에서 기다릴 테니 저 쪽에서 몸을 다스리시오. 정확히 반 시진 뒤에 기별할 테니.”
사내가 모옥 안쪽의 침상을 손으로 가리켰다.
반 시진, 도주에 필요한 기력을 회복하기엔 턱 없이 모자란 시간이지만, 상대의 단호한 표정을 보니 더 큰 기대는 하지 않는 편이 좋을 듯 싶다.
터벅, 터벅-.
새까맣게 타들어가는 속을 당당한 보무 속에 감추고 침상으로 향한다.
그나마 침상 앞에 주렴이 있어 다행이다.
본래 천서원이 여인에게 채음보양을 시전하는 스승의 모습을 가리기 위해 사용한 것으로 보이나, 지금은 초조한 표정을 감출 수만 있다면 만족이다.
“후···.”
짙은 한숨으로 긴장을 덜어낸 나는, 눈을 감자마자 다급히 채팅을 입력했다.
[조가휘 : 지구의 시청자님들, 조금이라도 좋으니 제게 기를···!]지금 이 순간에도 실시간 스트리밍을 통해 빠른 속도로 내공이 쌓이고 있지만, 기존에 지녔던 양에 비하면 말 그대로 새 발의 피나 다름없다.
반면, 바깥에 있는 마교도들은 결코 이 정도 내공으로 물리칠 정도로 녹록한 자들이 아니다.
설령 몸이 멀쩡했다 한들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자들과 이런 패널티를 안은 채 싸워야 한다니!
새삼 눈앞이 막막하다.
뭔가 다른 방법은 없는 걸까?
정말 금안마군의 무공이라도 한 토막 익혀봐?
어차피 내공은 방송을 통해 저절로 쌓일 테니, 그 시간 동안 금안마군의 무공에 매달리는 것도 나쁘진 않아 보인다.
운이 나쁘면 내상이 더 심해지겠지만, 혹여 운이 좋아 부작용 없이 익힌다면 당장의 위기는 모면할 수 있을 테니.
문제는 현재 금안마군의 무공 비급이 침실 밖에 있다는 건데···.
다시 가지러 나가면 분위기 싸해지겠지?
그나마 오늘 아침에 스캔해둔 게 있어 다행이다.
어지러워서 몇 장 넘겨본 게 전부지만, 어차피 우희 같은 천재가 아닌 이상 한 시진 안에 얻을 수 있는 깨달음은 크지 않으니.
그렇게 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가부좌를 틀고 두 눈을 감았다.
누군가 본다면 운기요상이라도 하는 줄 알겠지만 실상은 컨닝 중이다.
또한 보는 것은 느끼는 것에서 시작된다.
또한 느끼기 위해선···.]
학관에서 비급의 해석 수업을 들어두길 다행이다.
그 때의 경험이 아니었다면 분명 지금 쯤 비급을 집어던지고도 남았으리라.
허나 해석 끝에 도출되는 혈도를 따라 진기를 유도하던 난 급히 운기를 멈출 수밖에 없었다.
“우욱···.”
전날 입은 내상이 다시 도졌는지 입가를 타고 피가 흘러내렸다.
내공과 어울리지 않는 성격의 무공을 억지로 펼치려 하니 기혈이 꼬인 것이다.
역시 안 되는 건가?
이로써 금안마군은 심성 뿐 아니라, 익힌 무공 역시 사악한 마공임이 밝혀진 셈.
헌데··· 어째서일까.
아랫배가 꽉 막힌 듯 답답하고, 고통스러운 이 기분이 그리 낯설지 않다.
마치 언젠가 겪었던 일처럼.
도대체 뭐지? 분명 어디선가 느껴본···.
“아!”
강한 기시감 속에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던 난 마침내 과거의 어느 사건을 떠올리곤 전율했다.
그것은 10년도 더 된 옛날, 방송으로 내공을 쌓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의 이야기.
햇살처럼 밝게 빛나는 보통의 스페어 내공과 달리, 탁한 회색빛을 지닌 ‘어떤 내공’을 억지로 사용하려고 할 때마다 나타나던 증상과 똑같은 일이, 지금 내 몸에 일어나고 있었다.
설마 이건···.
‘싫어요 영상?’
그것을 깨닫는 순간,
지난 오랜 세월 계륵처럼 보관해오던,
심지어는 금안마군에게 목숨을 잃기 직전까지도 미동조차 없었던 회색 스페어 영상에서 묵빛 기운이 울컥 쏟아져 나왔다.
“아···!”
그 순간, 난 꽉 막혔던 단전이 뻥 뚫리는 것을 느끼며 전율했다.
그와 동시에 사지백해로 뻗어나간 엄청난 양의 내공이 ‘관조신안신공’의 경로를 따라 몸 안을 유유히 흐르기 시작했다.
다시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후···.”
아쉬움이 담긴 한숨과 함께 몰입에서 깨어난다.
메말랐던 몸에 흘러든 생명수는 그토록 황홀했다.
비록 그것이 평소 즐겨마시던 물이 아니라 새까만 콜라일지라도.
유유히 몸속을 흐르는 회색빛 기운을 다시 한 번 만끽한 뒤 스르르 눈을 뜨던 그 때,
“···응?”
카메라에 포착된 무언가가 신경을 자극한다.
깜빡, 하고 빛의 속도로 한 쪽 눈을 감는다.
그와 동시에 조금 전에 느꼈던 위화감의 정체를 깨닫는다.
“이게··· 뭐야?”
카메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확인한 내 입이 멍하니 벌어졌다.
***
“대주. 슬슬 확인해봐야 하는 것 아닙니까?”
“음···.”
금안신군의 제자를 자처하는 사내가 운기에 들어간 지 정확히 반시진이 흘렀다.
영검대주 신주원은 아까보다 좀 더 기울어진 창틀의 그림자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발을 젖혀라.”
“네!”
명령을 받은 수하가 침실의 발을 젖히려는 순간이었다.
푸화아악!
“헉!”
“이렇게 짙은 마기라니!”
침실에서 흘러나오는 시커멓고 음산한 기운에 모두가 놀라 발 너머를 바라봤다.
그것은 중원인들이 명교를 음해하기 위해 퍼뜨린 정치적 의미의 ‘마(魔)’가 아닌, 극악무도한 방법으로 쌓은 공력에서나 느낄 수 있는 사악하고 음습한 진짜 마기였다!
‘열까요?’
‘내가 하겠다.’
눈짓으로 묻는 수하에게 고개를 저어보인 신주원은, 마른 침을 삼키며 마기의 진원지인 침실 앞에 섰다.
허나 그는 직접 주렴 안쪽을 확인할 수 없었다.
그의 손이 닿기 직전, 안에서 불쑥 튀어나온 손이 한 발 먼저 주렴을 젖혔으니.
“그럴 필요 없소.”
발 너머로 드러난 사내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모든 명교 형제의 얼굴에 남아 있던 일말의 긴장과 의심이 씻은 듯 사라졌다.
이유는 단순했다.
사내의 얼굴엔 그가 금안마군의 제자라는 증거가 또렷하게 드러나 있었으니.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오.”
넘실거리는 마기의 한가운데,
눈동자에 광폭한 황금빛을 머금은 사내가 그들을 향해 미소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