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of living again RAW novel - Chapter 73
73. 알라르간도 (Allargando, 점점 느려지면서 폭넓게 세게)
-에이잉! 그래도 적지 않게 살아왔다고 자부하는 나도, 너 같은 놈은 정말로 처음 본다 요놈아.
‘모리스 슈만 콩쿠르’에 대한 일정과 모이는 위치 같은 사무적인 대화가 끝나자마자 모리스는 갑자기 그런 말을 했다.
“저 같은 놈이요?”
매번 자세한 설명을 건너뛰는 모리스에게 내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그리 말하자 그는 또 내 귀청을 떨어뜨리려는 것처럼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세상에 봉사 활동이나 좀 하고 있으라니까 그 센터 사람을 다 데려가서 콘서트를 열어버리는 놈 말이다! 네 얘기를 네가 모르겠는 게야?
아무래도 모리스 슈만까지 이번 세브란스 플래시 몹에는 적잖게 놀란 모양이었다.
확실히 그는 저번에도 SNS에 올린 버스킹 영상이나 미향예고 연주회 같은 내 족적들을 모조리 파악하고 나서 나타났었던 만큼, 이번에도 엄청난 속도로 내 소식을 접했으리라.
“괜찮았나요?”
그리고 나는 그런 모리스에게 아예 당돌한 태도로 물었다.
그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나를 뻔뻔하면서도 잘난 놈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니 나쁘지 않은 반응이 나올 것 같아서 굳이 물어본 것.
-그걸 말이라고 하냐 이놈아?!
그리고 내 예상은 적중했다.
-아주 최고였다. 이 똑똑한 놈아!
그리고 돌아오는 칭찬에 나는 그가 전생의 나에게 ‘천상의 반주자’라는 호칭을 줬을 때와 같은 수준으로 놀랐다.
모리스 슈만이라는 작곡가는 남을 칭찬하는 일이 아예 없다고 알려진 사람인 만큼 대놓고 ‘최고였다’라고 표현해줄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래서 이 늙은이가 전에 봉사 활동으로 느끼는 바가 있을 거라고 했던 건, 좀 느끼고 왔느냐?
이미 한 달이나 지난 질문을 바로 어제 있었던 일처럼 꺼내는 모리스.
확실히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다.
갑자기 미향예고에 나타나 나를 예선에 부를지 말지, 자신의 곡을 연주시켜본 다음, 갑자기 이대로라면 예선에 떨어질 거라고 말하고는 내게 ‘재능기부 봉사 활동’을 권했었다.
그걸 계기로 나는 이 ‘리 하모닉 클래식 센터’를 떠올렸고, 그 결과 상상을 초월하는 파문을 일으킨 이번 플래시 몹으로 이어진 것.
봉사 활동을 하면서도, 주기적으로 생각하기는 했었다.
왜 모리스 슈만은 내게 봉사 활동을 권했던 걸까.
실력이 모자랐던 거라면 콩쿠르 출전을 권하면 되고, 다른 무언가가 부족했던 거라면 그에 맞는 활동을 시키면 되는데.
어째서 하필 봉사 활동을 추천했을까.
그런데 그러한 의문은 예전에 민재를 위해 말없이 피아노를 연주하던 도중 뜬금없이 해결되었었다.
‘모리스 슈만은 타인의 생을 기리고, 축복하기 위해 작곡을 한다.’
전생에서 내게 ‘천상의 반주자’라는 호칭을 줬던 사람인 만큼, 내 나름대로 그를 조사하던 중 보게 되었던 한 칼럼에 적힌 내용 중 일부가 문득 떠오른 것이다.
그는 타인의 생을 토대로 작곡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렇게 말하면 그가 다른 사람을 작곡의 소재 거리로만 바라보는 괴상한 사람이 되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으나, 그게 아니다.
내가 먼 과거에 조사했던 모리스 슈만은 타인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기 위한 작곡을 하는 사람이었고,
혈기왕성한 젊은 음악가에게 자신을 표현하는 것 이상의 행위가 남을 존중하는 것이라는 걸 가르치기 위해 여생을 살아가는 남자였다.
-잠이라도 자는 게냐? 왜 아무 말이 없어!
내가 잠시간 생각에 빠져 있자 다시금 목소리를 키워 소리치는 모리스.
나는 겉으로는 거칠고 난폭하지만, 속으로는 남을 존중할 줄 아는 이 거장에 대해 떠올리고는 피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자기 자신만의 음악에 매몰되지 않고 남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연주자가 되어라. 그걸 알려주시려고 했던 것 아닌가요?”
-…!
내가 자신감 있는 태도로 말하자 한껏 숨을 들이켜며 놀란 소리를 내는 모리스.
아무래도 교과서적으로 그가 원하던 답을 내놓은 터라 적잖게 놀란 모양이었다.
-역시, 똑똑한 놈은 뭐가 달라도 다른 게냐···?
떨리는 모리스의 목소리.
다행히도 내 예상은 시원하게 적중한 것 같았다.
***
다음날,
아직 플래시 몹에 대한 열기가 채 식지 않은 그 날.
나는 교장에게 받은 특혜를 바로 이용해서 오후 전공 시간을 빠지고 학교를 나와, 모리스 슈만이 어젯밤 알려주었던 장소로 향하던 중이었다.
“그, 근데 성현아. 그 모우리 만슈라는 유명한 작곡가가···.”
“모리스 슈만이야. 예린아.”
그리고 바로 지하철 내 옆자리에 앉아 질문을 던지려다 막힌 예린이와 딴죽을 건 지은이.
“그래, 그 모리스 슈만이라는 작곡가분한테 불린 건 성현이 혼자 아니야? 왜 우리도 같이 가는 거야?”
어렵사리 제대로 된 문장을 완성한 예린이의 질문에 나는 시원스럽게 대답했다.
“그게···.”
어젯밤, 모리스 슈만은 전화를 끊기 직전에 이번 플래시 몹의 숨은 공로자가 있는지 물었었다.
당연히 나는 연주조차 포기하고 두 발로 뛰어준 여기 두 사람에 대해 열렬히 말했고 그러자 모리스가 내일 자리에 나올 때 두 사람도 다 데려오라고 말했었다.
“우리를 왜?”
“음, 그렇게 말하고는 갑자기 통화를 끊어버려서 자세한 건 나도 모르겠어.”
“혹시 막, 그 작곡가님의 한국 SNS 계정 관리라도 맡기시려고 그런 거 아냐?”
“그럴 수도 있고.”
“에? 나 장난으로 해본 말인데···.”
“아냐, 진짜 그럴 수도 있어. 모리스씨 한국 좋아하고, 그 나이에 스마트폰도 사용할 정도로 그쪽에도 관심이 많으시거든.”
장난스러운 예린이의 추측에 내가 힘을 실어주자 그녀는 얼굴이 새파랗게 물들면서 당황한 소리를 냈다.
“응? 정말, 정말이라고? 설마, 아니겠지.”
200만 너튜버 이예린이었다면 모리스가 그럴 생각이 없어도 설득해서 일거리를 받아 냈을 텐데,
지금의 예린이는 아직 낯가림이 좀 남아있다 보니 황당하다는 듯 목소리를 낼뿐이었다.
“야. 성현아.”
그리고 그런 예린이는 보이지도 않는 것처럼 내게 말을 거는 최지은.
“응?”
“자신 있어?”
“뭘?”
“이번 모리스 슈만 콩쿠르는 음대생들을 뽑아서 진행된다고 했어. 그 사람들 사이에서 안 밀릴 자신, 있냐고.”
역시 이쪽 계열에서는 모르는 게 없는 최지은은 어디서 정보를 얻었는지 올해 모리스 슈만 콩쿠르에 대한 소식을 다 아는 눈치로 그렇게 물었다.
“안 밀릴 자신···. 이라고 하면 잘 모르겠는데, 솔직히 나는 이런 콩쿠르가 실존하고 있었는지도 몰랐었으니까. 알잖아. 나 피이노 제대로 배운지 이제 8개월째인 거.”
“아······. 그랬었지. 미안.”
뭐라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었던 터라 말을 돌리려고 그렇게 말해봤는데, 지은이는 내 생각보다 더 크게 놀라며 사과를 했다.
왜 사과를 하는 걸까 잠시 이해가 가질 않아 내가 멍하니 있으니 지은이가 덧붙였다.
“한참 긴장하고 있었을 텐데, 미안.”
아마 내가 긴장하던 중인데 자신이 압박까지 넣게 된 상황이라고 여기는 모양이었다.
“아냐, 그보다 내가 진짜 몰라서 그러는데, 모리스 슈만 콩쿠르가 유명해?”
“엉. 유명하지. 모리스 선생님이 워낙 독특하셔서 취재나 인터뷰를 일절 거절해서 그렇지. 사실 한국에서는 벌써 열 번이 넘게 열린 알아주는 콩쿠르야.”
“열 번?”
“말이 열 번이지, 불규칙하게 한국에 방문하는 모리스 선생님이 결선 무대를 아예 자기가 작곡한 곡을 처음으로 공개하는 연주회처럼 만드시니까. 예전에 오케 경연에서 봤던 교수님들은 결선 무대를 보고 싶어 할 만큼 유명해.”
즉, 거장인 모리스 슈만의 신곡 발표회 같은 콩쿠르라서 많은 전문가가 방문하는 연주회처럼 규모가 커졌고 그로 인해 단번에 명성을 드높일 기회의 장이 되었다는 소리 아닌가.
“거기다가 모리스 선생님이 직접 뽑은 참가자들은 하나 같이 수준도 엄청 높아서 더 주목을 받지. 그리고 그중에서 첫 번째로 선발된 사람이 매번 우승 후보였다고 하던데···. 그게 너였다면서?”
“그, 그랬구나···.”
아무래도 전생에서는 그 존재조차 모르고 있던 터라 이번에는 지은이에게 배우는 게 많았다.
그보다 첫 번째 예선 합격자가 우승 후보로 여겨진다니,
모리스 슈만은 내 생각보다 훨씬 더 나를 마음에 들었던 것 같았다.
“아무튼, 왜 나까지 부른지는 모르겠지만 모리스 슈만 콩쿠르니까. 보통 콩쿠르하고는 많이 형식이 다를 거야.”
“형식?”
“엉. 보통은 그냥 과제곡을 주고 곡을 연마하고 연주하는 거로 모든 걸 평가하잖아? 근데 이 콩쿠르는 매번 독특한 방식으로 진행돼”
“독특하다고?”
“엉. 제일 독특하다고 했던 예선이 아마 연주자들만 다 모아놓고 자작곡 써오라고 했던 때였을걸.”
“자, 작곡을 하라고 했다고?”
내가 당황하며 묻자 최지은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연주자를 데려다 놓고 작곡을 시켰다니.
작곡과 연주는 엄연히 다른 영역의 일인데 말이다.
보통 그런 형식으로 평가를 진행하면 논란이 되고 비난을 받기에 절대로 하지 않는 행동이지만,
‘예끼 이놈아!’
내가 기억하는 모리스 슈만이라면 충분이 가능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지하철을 타고 가는 내내 나는 지은이에게 이전 모리스 슈만 콩쿠르에 대해 이것저것을 물어보았고 그녀는 사뭇 친절한 태도로 답을 해주었다.
“암튼 아까 내가 자신 있냐고 물었던 건 그런 뜻이었어. 이번 콩쿠르가 음대생들을 모아서 진행되는 만큼 진짜 말도 안 되는 과제가 예선으로 진행될 수도 있는데 괜찮겠냐고···.”
“그런 말이었구나.”
말도 안 되는 형식의 예선이라니, 지금까지 들은 말만 종합해봐도 확실히 내 사고를 뛰어넘는 뭔가 어마어마한 조건이 제시되리라는 생각이 든다.
예전 같으면 이런 기분이 들 때마다,
‘이번 콩쿠르는 예선 탈락이 아닌 거로 만족해야겠다.’거나, ‘되는 데까지만 해보고 안되면 어쩔 수 없다’라는 생각을 해왔던 나였지만,
왜인지 이번에는 그런 마음이 들질 않았다.
오히려 좋은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음대생들을 대상으로 ‘예상을 뛰어넘는’ 조건이 제시될 예선, 그러니까 더더욱 몸은 고등학교 1학년일지라도 정신은 마흔이 다 되어가는 내게 유리한 것 아닌가.
지은이도 이렇게 크게 반응하는 것을 보아하니, 정말로 내 예상보다 더 모리스 슈만 콩쿠르가 가지는 권위는 상당한 것 같았다.
그러니 나는 다짐했다.
“이번만큼은 진짜 1등을 목표로 해보자.”
***
전철을 타고 1시간 반이나 걸려서 도착한 곳은 양평에 도착한 나는 역에서 그다지 멀지 않다고 전화로 들었던 모리스 슈만의 ‘별장’에 가고자 지도를 펼쳤는데,
막상 도착하고 보니 무슨 거대한 체육관 같은 시설이 떡하니 서 있어 당황하고 말았다.
“여, 여기가 별장···. 이라고?”
그리고 나처럼 놀란 목소리로 그런 질문을 던지는 예린이.
나를 대신해 목소리를 높여준 예린이에게 속으로 감사하면서 나는 좀 황당하기는 했다만 일단 안으로 들어갔다.
“오오, 여기야.”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깨끗한 풍경에 우리 셋은 잠시 놀란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는데, 멀리서부터 목소리가 들렸다.
젠틀한 미소와 함께 가볍게 손을 흔드는 남자.
분명, 모리스 슈만의 휠체어를 끌며 그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던 A스튜디오의 ‘이재상’이라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했어. 분명, 민호의 친구였던 성현이 맞지?”
“안녕하세요. 저번에 오케 경연 때 로비에서 잠깐 인사를 나눴던 그분 맞으시죠?”
“맞아. 아 그리고, 우리 나이 차이 2살밖에 안 나니까 너무 격식 차리지 않아도 돼. 그리고 지은이도 안녕?”
“아···. 네.”
물 흐르듯이 대화를 하며 나뿐만이 아니라 예린이 지은이와도 인사를 나누는 이재상.
특히 지은이의 경우는 이미 면식이 있는 사이 같았다.
“너희들 이번에 큰일 했더라. 복지 센터 살리기, 환자들에게 좋은 공연 보여주기, 대충 봤는데도 장난 아니던데?”
그리고 역시나 들려오는 플래시 몹에 대한 이야기.
그는 정말 능숙하게 칭찬과 질문을 섞어가며 대화를 이어나갔고, 정신없이 대화를 나누다 보니 꽤나 널찍한 건물이었음에도 어느새 우리는 목적지에 도달해있을 정도였다.
“도착했어.”
끼이익,
큼직한 문을 열고 안으로 쓱 들어가 버리는 이재상.
안을 보자 열 명이 조금 넘어 보이는 사람들이 일제히 이쪽을 바라보았다.
아마도 그들이 모리스 슈만이 직접 선출한 이번 콩쿠르의 참가자들인 것 같았다.
“저 녀석이···”
“고등학교 1학년에 벌써···.”
“쟤가 그 이성현.”
“그 유명한 1번 참가자가 저 애란 말이지?”
곧바로 웅성거리기 시작하는 참가자들.
어째서인지는 모르겠다만, 음대생씩이나 되시는 그분들은 하나같이 내게 날카로운 경계심을 표하고 있었다.
분명, ‘고작 고등학생이!’ 같은 반응이 오리라 예상하던 내게 그런 모습은 좀 의외였다.
하지만 이로써,
이제 이성현이라는 이름 석 자는 내가 종잡을 수 없을 만큼 멀리 그리고 파격적으로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었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예끼 놈들아!”
그때 엄청나게 큰 호통이 이쪽을 엄습했다.
“무슨 성인이라는 것들이 다 같이 모여서 핏덩이 같은 것한테 겁먹어서는 궁시렁거리고 있어! 유치한 놈들 같으니!”
이재상의 도움을 받아 휠체어를 타고 나타난 모리스 슈만.
그는 내게 이목이 쏠려있던 음대생들의 주의를 끌고 가더니 대뜸 사람들이 모여있는 이 방 중앙에 멈춰 서더니 말했다.
“지금 막 도착한 고등학생들 빼고 나머지는 이미 아침에 몇 번이고 말했었으니 바로 본론만 이야기하마!”
모리스의 말투를 보아하니 여기 모인 열 몇 명의 음대생들과는 이미 아침부터 만나 충분한 대화를 나눈 것 같았다.
왜 나에게만 남들과 다른 집합 시간을 말해줬던 걸까···.
그런 의문이 내 머리를 스치는 것과 동시에 모리스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예선 과제’를 듣고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건 대놓고 나를 편애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파격적인 형식의 과제였으니까···!
그리고 이곳에 모여있던 대학생들도 나처럼 눈을 휘둥그렇게 뜨기까지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모리스 슈만은 정말로, 괴짜가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