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of living again RAW novel - Chapter 86
86. 프레스티시모 (Prestissimo, 아주 아주 빠르게) -2
밥을 코로 먹었다.
정말 코로 먹었다는 게 아니라 정석 선배와 함께 있었음에도 무슨 대화를 나눴던 건지 기억하지 못할 만큼 서둘러 먹었다는 말이었다.
빠르게 식사를 마치고 돌아온 나는 시간을 보았다.
현재 시각은 저녁 8시 반.
그나마 가까운 음식점으로 향했기에 이 시간에 돌아올 수 있었다.
나는 지체 없이 친숙한 피아노가 기다리는 연습실로 향했고 건반에 손을 올린 상태로 눈을 감았다.
대학에 다닐 때를 회상해보았다.
잘난 것 하나 없이, 순전히 시간을 들이부어서 자신을 담금질하던 때의 나.
그때의 꽤나 거친 방식으로 성장했다.
기대해주는 이 하나 없고,
지켜봐 주는 사람도 없으니 하나부터 열까지 혼자서 연습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맨땅의 헤딩이라고 해야 하나.
나는 그걸 수십, 수백 번 하며 성장했다.
그 덕분이겠지.
이제는 눈만 감아도 보였다.
이런 날에는 저렇게 연습을 했고, 저런 날에는 이렇게 연습을 했던 내 모습이 말이다.
“후우.”
나는 내 안에서 프로토타입화 되어있는 다양한 주법을 떠올려 보았다.
손끝에 세기,
특정 감정을 표현할 때 좋은 형식,
페달을 밟는 타이밍과 때는 힘,
머릿속에 있는 다양한 정보를 조합, 비교해본 결과.
딩-
내 손은 움직였다.
저번 콩쿠르에서 김민호의 손끝에서 탄생했던 베토벤의 ‘월광’.
그 장엄하고 끈적한 감각을 살릴 수 있게 연주를 해보았다.
“으음”
3분가량 연주를 하던 중, 내 입은 자연스럽게 그런 소리를 냈다.
상상 속 대상이 민호가 되어버리니 내 마음에 드는 음색을 완전히 자아낼 수가 없던 것이다.
“다시.”
이번에는 다른 대상을 떠올렸다.
연습실에서 악보에 파묻혀 지내던 스물셋의 나,
군대를 제대하고 음악에 대한 감을 잃어 막연히 방황하던 나, 스물일곱을 먹고 나서야 다시금 감을 잡고 음악에 정진하던 나.
딩!-
다양한 나를 콩쿠르에서 연주하는 민호에 투영시켜가며 월광을 연주했다.
숨은 거칠어졌고, 갑작스러운 고된 연주에 손끝에는 찌릿함이 감돌기 시작했지만, 나는 그 느낌이 너무 좋았다.
내가 제자리에 멈춰 있지 않고 발전하는 중이라는 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는 감각이었기 때문이었다.
총 네 번의 월광을 연주했다.
각기 다른 나와 진지한 얼굴의 김민호까지.
“후우우우우우.”
무엇하나 이거다! 싶은 느낌은 받지는 못했지만, 확실히 의식하고 나니 몸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 실감이 났다.
같은 악보를 떠올린 네 번의 연주가 모두 다른 형태의 선율을 자아내는 것에 성공했기 때문이었다.
예전이었다면, 나는 자신을 민호에게 투영시키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난항을 겪었다.
민호가 원체 손가락이 길어야 말이지.
뒤에서 보면 피아노의 반은 가릴 것 같은 몸에 기다란 팔과 손가락.
지금까지는 같은 자세로 연주를 하려 노력해도 그게 마음처럼 되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제는 가능해졌다.
아무래도 먼지 쌓인 낡은 책을 서재에서 끄집어내는 것과 비슷한 작업이었기에 삐걱거리는 부분은 분명 있었지만, 김민호와 완전히 같은 폼으로 연주하는 것도, 과거의 자신을 재현하는 것도 다 가능해졌다.
“후후후.”
만족감이 샘솟는다.
지금까지의 내 연습이 벽에 부딪힐 때마다 그걸 깨부수기 위해 사력을 다한 것이었다면, 이제는 눈앞에 드넓은 평야가 있어서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가슴이 뻥 뚫리는 상쾌함이 밀려왔다.
“연습은 잘 됐니?”
늦은 시각,
나를 집까지 데려다주시겠다며 운전대를 잡은 정석 선배가 그렇게 물었다.
“아, 네. 선배 덕분에요.”
“나는 아무것도 안 했는데?”
“아니에요. 제 상태가 변했다는 걸 선배가 알려주셨잖아요. 만약에 혼자였다면 그 당연한 걸 깨닫는 데 한 달은 걸렸을 거예요.”
“그런가? 나는 성현이가 내 간섭 없이도 알아서 잘 했을 것 같은데.”
“과대평가에요.”
과대평가라···.
정석 선배는 내 칼 대답에 그런 말을 작게 중얼거리셨다.
뭔가 감사하다는 말을 하려고 했던 것인데, 말을 끊게 된 것 같아서 나는 바로 예의 바른 아이의 언행으로 사과를 드렸다.
다행히 마음씨 좋은 정석 선배는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씀해주셨다.
그 대화를 끝으로 정석 선배의 차는 우리 집 앞에 도착했다.
“항상 감사합니다.”
“아니야. 오늘도 고생했어. 성현아.”
그렇게 밤 11시 반.
집에 도착한 나는 흥건하게 흘린 땀을 씻어내려고 욕실로 향했다.
옷을 벗다가 핸드폰을 발견해 펼쳐보았지만, 온 연락은 없었다.
지은이는 소식이 없었다.
일이 잘 풀렸으면 문자 한 통이라도 남겨주지···.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뜨거운 물을 가득 채운 욕조에 몸을 담그며 내일까지 연락이 없으면 내가 먼저 해보자고 다짐했다.
***
다음날,
정석은 M스튜디오 사무실 자신의 자리에 앉아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과대평가라···.”
그 중얼거림을 통해 정석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파악할 수 있었다.
그는 어젯밤 직접 집까지 데려다주었던 성현을 생각하고 있던 것이다.
만난 지는 이제 9개월째.
처음에는 그저, 너무나 깊은 감성을 당연하다시피 선율에 녹여내는 것이 신기해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을 뿐인 아이.
상식적으로 깊은 감성은 살아온 세월이나 특수한 경험에서 나온다.
하지만 성현은 첫 만남에 이미 감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 기초만 조금씩 잡아줘도 남들과 비교를 불허할 만큼의 속도로 성장할 것이라는 게 정석의 예상이었다.
그래,
단 5년 만에 모든 경쟁자를 무찌르고 같은 나잇대 아이 중에서 정상에 우뚝 선 민호처럼 말이다.
하지만 성현은 정석의 예상을 보기 좋게 초월해냈다.
그의 성장세는 장난이 아니었다.
농담이 아니라 지금껏 옆에서 지켜본 9개월간 그는 전담으로 레슨을 진행해주는 강사조차 없이 현재의 민호와 동급의 연주자로 우뚝 섰다.
다시 말하지만 9개월이다.
그 중학교 음악실에서 만나고, 지금까지 경과한 시간이 말이다.
실력을 차곡차곡 발전시키는 이들과 달리 흡사 수직으로 상승하고 있다고 해도 믿을 만큼의 급변화.
일취월장이라는 말과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존재가 바로 성현이었다.
“전혀 과대평가가 아닌데 말이지.”
이대로 있다간 향후 1년 내로 아니, 어쩌면 그것보다도 더 빠르게 성현은 정석, 자신까지도 넘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석은 국내에서 톱텐에 속하는 실력자였다.
아무리 현재는 피아니스트가 아닌 지휘자로 활동하시는 분들을 제외한 순위일지라도 톱텐이라는 호칭은 가볍게 받아들일 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런 정석이 스스로 확신한 것이다.
“성현이라면···.”
그 아이라면 분명, 향후 1년 내로 자신과 같은 레벨의 콩쿠르에 출전하리라는 것을.
“그렇게 된다면 정말, 재미있겠는걸?”
정석은 절로 나오는 미소를 감추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곧바로 향하는 곳은 다름 아닌 성현의 연습실.
그는 오늘도 M스튜디오에 오자마자 연습실에 틀어박혀 버렸다.
정말, 어지간히도 피아노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면 절대로 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딸깍,
정석은 슬쩍 성현의 연습실 문을 조용히 열었다.
손가락 한 마디 정도의 문틈으로 들려오는 연주 소리.
성현은 어제 자유곡을 정하겠다고 말했었으나 집에 데려다줄 때 물어보니 아직 정하지 못했다고 답했었다.
뭔가 조언해줄 수 있는 것이 있지 않을까.
정석은 그런 마음에 성현의 연주를 차분히 오랫동안 들어보려는 심산이었는데,
“응?”
뭔가 이상했다.
한 곡이 연주되고 그다음 곡으로 넘어가는 순간, 미묘하게 바뀌는 음색.
예전에 정석과 함께 구상했던 ‘필살기’라고 보기에는 분위기가 확 바뀌지도 않았다.
하지만 음색은 분명히 변했다.
방금까지 들려오던 근엄한 ‘황제’가 어느새 고독한 ‘황제’가 된 것이다.
같은 ‘황제’임에도, 다른 황제가 떠오르는 신비로운 변화였다.
성현이는 이렇게 세밀하게 음색의 변화를 줄 수 있는 아이였다는 말인가.
솔직히 이 정도로 디테일하게 연주의 바리에이션을 넓히는 건 정석, 자신도 한 곡을 삼일 내내 연주하고, 연구해야 가능한 묘기였다.
그런데 성현은 그걸 아침 식사를 하는 것처럼 당연하게 해내고 있다.
“대, 대체···.”
전부터 그랬지만, 성현은 역시 상식이 통하지 않는 아이였다.
“선배?”
그때, 성현이 정석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어느새 그는 시원스럽게 ‘황제’의 연주를 마치고 고개를 돌려 정석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마 연습실 문이 열려서 자신의 귀에 닿는 소리가 조금 변한 것을 느낀 모양이었다.
“성현아. 잠깐 이야기 좀 나눌까?”
“네? 아, 당연하죠.”
정석의 한마디에 성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걸어 나왔다.
“자유곡은 정했니?”
성현이 혹시나 조급해할 수도 있으니 여유로운 목소리로 그리 묻는 정석.
하지만, 성현은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아뇨. 음, 뭐라고 하면 좋을까요. 제 장점이라고 하면 어떤 곡이든 빠르게 완성도를 갖출 수 있다는 것뿐이잖아요?”
“으음?”
정석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거냐는 의미로 반문했던 것이었지만, 성현은 정석의 목소리를 동의로 받아들였는지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지정곡을 정하고 나서 이번 무대에서 어떤 임팩트를 줄지 정하면서 자유곡을 그거에 맞춰보려고요.”
대담한 생각이었다.
보통은 ‘자신이 가장 자신 있는’ 것을 기준으로 고르는 자유곡을 통해 남들과 차별화된 임팩트를 줄 생각을 하다니···.
실력이 없는 이가 같은 말을 했다가는 상소리를 들을 수도 있는 그 정도의 발언이었다.
하지만 그걸 성현이 하니 뭐라 할 마음은 들지 않았다.
“그런데, 솔직히 좀 걱정돼요.”
“걱정?”
“네. 다른 참가자들은 이미 예전부터 자유곡을 준비해두고 있었을 텐데 제가 이런 참신함 같은 거로 곡을 정해도 되나 싶어서요.”
오오,
좀 의외였다.
정석의 예상과 달리 성현은 일반적인 상식도 충분히 가지고 있는 것인지, 자신의 발상이 대담하다는 걸 알고 있는 눈치였다.
게다가 어울리지 않게 의기소침한 기색이었다.
이럴 때 정석이 해야 할 일은 간단했다.
바로, 평소와 같이 성현이라는 천재의 과감한 발상에 힘을 실어주는 것.
“성현아, 너는 콩쿠르 준비를 어떤 식으로 할 때, 더 재미있을 것 같니?”
“재미···요?”
정석이 미소를 지으며 그리 말하자 성현은 의아한 얼굴로 반문했다.
“그래. 재미 말이야. 내가 기억하기로 성현이는 항상 즐거운 마음으로 곡을 연주하고 연마해왔던 것 같은데 아니었니?”
“그건, 음. 맞아요. 그런데 모리스 슈만 콩쿠르에 참가자들은 프로로 데뷔해도 이상하지 않을 사람들뿐인걸요.”
그런데 재미를 느끼며 연습을 진행해도 괜찮은 건가.
성현은 정석에게 그런 질문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걱정은 정석에게 있어 참, 우스운 걱정이었다.
“프로로 데뷔해도 이상하지 않을 사람들이라···. 그게 왜 문제가 되는 거니?”
“네? 저보다 경력도, 실적도 많은 참가자들하고 겨루는 건데. 당연히 신경 써야 하는 것 아닌가요?”
“후훗. 그래. 성현이 너는 항상 그런 면이 있었지.”
성현이는 남들이 들으면 절대 믿을 수 없을 만한 업적을 팍팍 만들어내면서도, 자신의 실력에 대해서만 많이 박하게 평가하는 면이 있었다.
‘자신 정도 하는 사람은 세상에 많을 것이다.
지금 단계에서야 주목을 받아도 그다음 레벨에 올라서면 생각보다 별것 아닌 연주자일지도 모른다.’
같은, 그런 생각을 하는 모양이었다.
아마 ‘프로’라는 단어에 과민 반응을 하는 것 같은데, 아무리 매일 신화를 써 내려가고, 도깨비라도 되는 양 실력이 미친 듯이 상승해도 결국 성현이는 이제 음악을 공부한 지 9개월밖에 되지 않은 아이였다.
성현은 아직, 자신의 위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 분명했다.
“성현아.”
“예?”
“내 눈에 넌 이미 프로의 레벨을 뛰어넘었단다.”
“네?!”
당연하지만, 성현은 정석이 이런 말을 할 줄은 몰랐는지 진심으로 놀란 표정을 지었다.
“심지어 너는, 그 프로 중에서도 꽤나 상위권에 속할 거란다. 혹시 내가 거짓말을 하는 것 같다면 내기를 해도 좋아.”
“정말요?”
“그래. 당연하지.”
정석의 생각에 성현이 전보다 자신감이 부족해진 것은 자신을 아직도 미향예고 1학년의 학생일 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았다.
하지만, 냉정하게 말해서 그와 함께 다니는 지은이는 당장 음대에 입학해도 모자람이 없는 천재였다.
민호는 말할 것도 없다.
그는 이미 독일로 유학을 가서 오케에 서브 피아니스트로 활동하고 있지 않은가.
두 천재 역시, 성현을 만나 일취월장한 것이다.
아마 자신의 영향을 받아 급속도로 실력이 향상된 두 사람만 보다 보니, 프로와 자신 사이의 거리감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게 된 듯했다.
성현이의 입장에서는 함께 공부하는 두 사람이 자신만큼은 아니어도 실력이 팍팍 늘어나니 다들 그런 것인가? 싶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성현아. 나를 믿고, 이번 콩쿠르에서도 네가 즐길 수 있는 연주를 해보렴.”
정석은 그렇게 말하며 성현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어쩌면 머지않은 날에 같은 무대에서 겨루게 될지도 모르는 아이의 머리를 말이다.
“너라면 할 수 있어.”
***
정석 선배에게 응원을 받은 덕택일까.
나는 이후 연습을 참 가뿐한 마음으로 임할 수 있었다.
사실, 내 실력이 이미 정민주나 이재상과 동급이라는 것 정도는 당연히 나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워낙 내 주변에 얽힌 사람들이 ‘괴물’이라는 호칭이 아쉽지 않은 사람들이었나 보니 객관적으로 현재의 내 위치를 평가하기가 좀 힘든 상황이었다.
냉정하게 바라봤을 때, 내 실력은 어디쯤일까?
그게 궁금해서 나는 일부러 정석 선배에게 다른 참가자들에 비교해 내가 부족하지 않은지를 물어봤다.
그런데 그의 대답은 내 기대를 넘어섰다.
‘프로 중에서도 꽤나 상위권에 속할 거란다.’
현재의 내 실력이 프로에서도 상위권이라니, 전생으로 따지면 ‘필 하모니 오케스트라’에 입단했던 서른두 살 때의 실력과 비슷하다고 생각해도 될 정도인 걸까.
그렇다면 나는, 이번 신체적인 성장을 계기로 전생의 내 전성기를 뛰어넘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만 된다면 이번 ‘백건오 한국 종합 콩쿠르’에 참가하는 건 고사하고 수상을 목표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정석 선배는 워낙 나에 대한 평가가 후한 편이라 사실 객관적이라는 말과는 거리가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선배의 말에 나는 전보다 훨씬 더 큰 용기를 얻었다. 그게 중요한 거겠지.
이후의 연습은 좀 더 차분하게 진행해봤다.
현재의 몸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연주와 그렇지 않은 연주를 구분했고, 당장 해낼 수 있는 주법으로 살릴 수 있는 장점을 정리했다.
본래라면 한가지 주법을 단련하고 바꿔가며 넓히게 되는 요소들을, 나는 이미 확보한 상태로 취사선택을 할 수 있다.
이건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의 큰 장점이 분명했다.
나는 오랜만에 혼자 대중교통을 타고 집으로 돌아가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버스정류장에서 15분 정도 거리에 있는 우리 집.
나는 은색 월광을 쐬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걸었다.
그런데, 우리 집이 내 시선에 들어오자 그 앞에 서 있는 새카만 그림자가 보였다.
그 그림자도 나를 본 것인지 흠칫 떠는 모습이 보였다.
무슨 일이 생기면 당장 큰 소리를 질러 부모님을 부를 심산으로 내가 그 그림자를 향해 터벅, 터벅 다가가자 어둑하게 가려져 있던 그 얼굴이 보였다.
“여, 여기서 뭐 해?”
당황한 나는 너무 놀라 쇳소리를 내며 그리 말했고 눈앞에 있던 그것 아니, 지은이는 금방이라도 눈물을 터트릴 것 같은 얼굴로 내게 다가왔다.
“지은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