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Of the Unique Lineage RAW novel - Chapter 223
220. 총원 열
“진짜 그래도 되겠어요?”
“네.”
남자와 여자, 정확히는 나이가 찬 여자와 어리고 젊고 잘생긴 남자다.
물론 가문 내에서 보자면 저런 얼굴은 흔하다.
하지만 그 능력만큼은 귀하다. 저 피는 더 귀하고.
그래서 자신이 나섰다.
순혈 정가의 프로젝트, 경국지색의 주인인 자신이.
자신 있었다.
끊임없는 운동으로 단련된 몸매, 또렷한 눈과 적당한 눈썹, 오렌지빛 입술과 특유의 분위기까지.
특히나 바스트는 그녀의 자랑이기도 했다.
얼굴에 혹하고 몸매에 빠지는 게 남자란 동물이 아닌가.
적어도 그녀의 미인계에 빠진 남자들은 다 그러했다.
특히나 이십 대 초반의 남자에게 먹히는 청순이란 카드도 꺼냈다.
흰색과 파란색이 섞인 원피스를 입고 플랫 슈즈를 신었다.
작전은 단순했다.
마주 걸어가다가 들고 있던 커피를 상대에게 쏟는 것.
여덟 걸음 안쪽이었다.
둘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 여자를 보다가 날 보면.’
같이 걷는 사람은 일반인으로 보였다. 그것도 나이가 마흔은 훌쩍 넘은 그런 여자.
단숨에 시선을 뺏을 자신이 있었다.
앞서 실패한 사람이 넷이나 더 있다고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일까.
어머.
놀라며 커피를 흘릴 타이밍이었다.
그 전에 광익의 손이 먼저 커피잔을 잡았다.
넘어지기 직전에 발로 무릎 부근을 누르기도 했다.
준비된 동작처럼 자연스러웠고, 완벽했다.
합을 짠 대련 같았다.
“괜찮아요. 그래도 됩니다.”
거기에 말도 멈추지 않았다.
그대로 옆으로 자신을 내친 광익이 말했다.
“그쪽 제 타입 아닙니다. 내 이상형 모르시는 것 같은데, 내 이상형은 섹시하고 청순하고 고아하고 귀엽고 지적이며 배려 깊고 같이 놀아 주고 얼굴 예쁘고 몸매 좋고 어우동과 신사임당이 반반씩 섞인 그런 여자랍니다.”
말한 광익은 자신을 바로 세우고 제 갈 길을 갔다.
그 옆에 붙은 여자가 묻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데?”
* * *
순혈 정가 가주는 한결같았다.
끝없이 내 정자를 노린다. 미친 사람임이 틀림없다는 생각과 함께 그쪽 관계자, 정수라에게 문자를 보내며 답했다.
“있어요. 순혈 정가에서 끊임없이 보내는 유괴범.”
문자로는 그만 좀 하라고 보냈다.
그나마 얘는 사람답다.
제 딸을 위해서 어쩔 수 없다는 답변이 올 것이다.
언제나 그랬듯.
그래도 처음에 지나가는 여자가 갑자기 길 한복판에서 나한테 유혹의 소나타를 췄을 때, 그때 의심이 들어 물었더니, 순순히 가문의 수작이라고 답해 주기도 했다.
나쁘지 않은 친구다.
그래서 친구로 지내는 것도 있고.
“뭘 유괴해?”
옆에서 물었다.
차마 내 씨앗 유괴라는 말이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친구 어머니께 이런 상스러운 농담을 할 수는 없지 않나.
내가 위트에 목숨 걸었다지만, 이건 너무 나가는 거다.
“그런 게 있어요.”
“그러니?”
혜민의 엄마가 고개를 갸웃했다.
일반인치고는 동안에 요가와 필라테스를 즐기는 아줌마다.
대외적으로는 이렇지만 뒤에서는 마법사, 주문쟁이다.
세분화해서 나눠 말하자면 스펠 크리에이터.
이전에 대가를 톡톡히 주고 의뢰를 맡긴 사람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로즈 또라이, 전직 테러리스트인 여자의 정신 제어를 위한 의뢰.
“준비가 길긴 했네요. 꼭 직접 가셔야 한다니 같이 오긴 했는데.”
“제어 주문을 교차로 거는 건 엄청 어렵거든. 나 아니면 시도하기도 어려울걸? 그리고 술자와 식(式)과 대상은 가까울수록 효과가 있으니까.”
“정부도 그걸 알 거고요.”
“넌 그걸 이용해서 속일 거고.”
난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정신 제어를 걸 수는 있지만, 90% 이상의 확률로 애가 백치가 된단다.
그래서 생각했다.
그렇게 빼내면 정보고 뭐고 활용을 못 하지 않나.
메두사의 눈이라는 희귀 능력자에 전직 테러리스트, 정보도 꽤 많이 알고 있다.
거기에 얘가 무슨 천인공노할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테러 짓도 나름 사정 봐주면서 했다.
그게 죄가 아니라는 건 아닌데.
죄지었다고 다 백치가 될 벌을 받아야 한다면.
그럴 사람이 얘만 있는 건 아니지.
결론은 이거다.
로즈는 전직 테러리스트고, 지금은 아니라는 것.
그녀의 마음이 진심이라면.
그러니까 복수심에 불타는 장미 덩굴이 되었다면.
내 편에 두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
길게 말하면 이런 거고, 짧게 말하면 이런 거다.
내 변덕이라고.
불멸특수대에서 마련한 감옥 안으로 들어갔다.
일은 쉬웠다.
“정신 제어를 걸어서 데리고 나가겠다고?”
일전의 감옥 안이다.
흰머리 본부장이 말했다.
그동안 자백제, 심문 따위에 시달려 피폐해진 로즈가 보였다.
그래도 눈은 살아 있었다.
눈에서 불을 뿜었다.
그녀를 보며 입 모양으로 물었다.
‘생각은 변함없고?’
제대로 씻기지도 않는지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후각이 예민한 변신족에게는 꽤 괴로운 지린내다.
문도 안 열었는데 이 정도다.
애를 사람 취급은 해 줘야 할 거 아니야. 저게 뭐냐고.
끄덕.
로즈가 보일 듯 말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뭘 믿고?”
본부장이 말했다.
그 얼굴에 ‘네가 말한다고 내가 내줘야 해?’라고 쓰여 있었다.
“음, 그쪽 허락이 필요한 일은 아니라서요.”
“뭐?”
타이밍 좋게 연락이 왔다.
본부장의 전화가 진동했고 그가 액정을 보더니, 잠깐만이라 말하며 전화를 받았다.
“네, 사장님.”
남 사장 전화겠지.
이거 때문에 오기 전에 장관님부터 만나고 왔다.
간단하게 말해서 딜하고 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설득해서 데려갈 명분이 없기에, 권력으로 찍어 누르기로 했다.
불멸특수대는 단독 지휘권을 가진 단체지만, 그래도 소속은 행안부 밑이다.
장관의 요청을 마냥 거절할 수는 없단 거지.
거기에 대통령께서도 힘을 써 줬고.
장관님이 행안부로 들어오라며 설득한 게 1시간이었고.
정작 거래 설득은 1분도 안 걸렸다.
“응, 너 해, 사후처리는 네 아버지가 보증하겠다니까.”
아버지 배경도 좀 썼다.
피닉스 팀장이 사후처리를 약속하고.
행안부 장관이 밀어붙인 결과.
“그렇죠?”
전화를 끊으며 동공이 떨리는 본부장을 보며 내가 되물었다.
권력이 이래서 좋은 거구나 싶었다.
이유도, 변명도, 핑계도 필요 없었다.
“해 주세요.”
눈속임을 위한 주문이 시작됐다.
혜민이 어머니는 들어오기 전에 얼굴부터 꼭꼭 가렸다.
“내가 흔한 얼굴은 아니잖니?”
라고 말하긴 했지만, 일인 전승 마법사의 비애 같은 거로 보였다.
주문 사냥꾼 따위에 쫓기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보니, 모습을 숨기고 사는 게 버릇인 거다.
불멸자 앞에서 어설픈 외형 변화 주문을 거느니, 차라리 복면을 뒤집어쓰는 게 효율적이긴 했다.
그녀는 그리했고 이 자리에 섰다.
주문이 이뤄진다. 빛이 반짝이고 몇 번이고 봤지만, 신기한 장면이 눈앞에 펼쳐졌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린 혜민이 어머니는 십여 분 정도 시간을 끈 뒤, 말했다.
“됐어요.”
그 말에 로즈가 날 바라봤다.
“나갈까?”
그녀를 부축했다. 제 발로는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
본부장은 끙끙 앓더니 길을 비켜 줬다.
죄수가 당당히 나가는 걸 보여 줄 수는 없는 노릇인지라, 겉옷 몇 개로 로즈를 감쌌다.
그래도 냄새는 여전히 지독했다.
“야, 너 안 씻고 다니냐.”
부축한 로즈에게 말했다.
“일주일 전에 씻었어. 염병할 놈들이 볼일 볼 공간을 제대로 안 줘.”
로즈가 욕을 씹어 뱉었다.
다 들릴 텐데.
그 말에 본부장이 눈썹을 씰룩였다.
“미친 테러리스트가 사치를 부리게 할 수는 없지.”
화장실이 사치였냐. 언제부터.
뭐라고 할 마음은 없었다.
제네바 협정이고 뭐고 간에.
그거야 일반인 상대로 하는 말이고.
특수종 감금과 실험이 판치는 세상이다.
이 정도는 양반이었다.
본부장과 휘하 내부 감사팀으로 보이는 직원 몇이 호위 겸 감시로 따라붙었다.
아는 얼굴이 간간이 보였다.
나한테 말을 걸려고 하다가 뒤에서 본부장을 보고 얌전히 물러난다.
그리 특수대 한가운데를 나서는 순간이었다.
“이제 사장이라니, 기도 안 차네.”
시발 팀장의 목소리였다.
오랜만에 들으니, 이 목소리도 반갑네.
뒤를 돌아봤다.
본부장의 압력 따위도 무시하는 불멸자가 날 보며 피식 웃었다.
그 미소를 보고 나도 반가워 말했다.
“여긴 일개 사원이 한 회사 대표한테 말을 놓습니까? 너무 하네, 대기업 갑질.”
“미친 새끼.”
농담에 팀장이 낄낄 웃었다.
나도 마주 웃어 주니.
“안 가나?”
본부장이 성을 냈다.
“갑니다.”
내려오며 인포메이션 센터를 보니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재직 당시 친해졌던 안내 누나다.
내 건물에도 1층에 인포메이션 센터를 만들었다.
일단 비워 두긴 했는데, 곧 사람이 오기로 했으니 누군가가 그 자리를 맡아야 했다.
“누나.”
“아, 광익 씨.”
안내 누나가 본부장 눈치를 보며 말했다.
인사 하나도 쉽게 못 하게 하는구나.
본부장이 뒤에서 눈을 부라릴 게 뻔했다.
그래서 빨리 말했다.
“연봉 얼마 받아요? 나중에 여기로 연락 한번 줘요.”
말하며 스티븐 최의 명함을 뿌렸다.
걔가 그랬다. 혹, 회사에 관심 있는 사람 있으면 일단 명함부터 주라고.
화림 인포메이션 데스크 쪽 일이 꽤 힘들고 위험한 일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가끔 진상 부리는 특수종을 상대도 해야 한다고.
그러면서 복지는 형편없다고.
특수종에게야 복지 팔만대장경을 폈지만, 일반인에게는 그 반대라고.
“……에?”
놀란 누나한테 윙크 한 번 날리고 돌아섰다.
“지금 뭐 하는 건가?”
본부장이 물었다.
“헌팅이요.”
정성스레 답해 줬다.
그 말에 풉 하고 로즈가 웃었다.
야, 웃으라고 한 말 아닌데.
“큼.”
혜민이 어머니는 교양 있게 헛기침을 뱉었고.
농담 한마디에 본부장의 얼굴이 빨갛게 변했다.
토마토 같았다.
“다음에 봬요.”
조금 더 놀리면 벌컥 화를 낼 것 같아서 내뺐다.
2인용 스포츠카만 몰고 다니자니 영 불편해서, 새로 산 차에 올랐다.
“안녕, 광익 씨.”
“또 왔어요?”
“와, 세최특.”
이곳은 화림 앞마당이다.
예전에야 특수종 회사가 있다는 걸 잘 숨겼지만, 습격 이후로 남 사장은 스탠스를 바꿨다.
화림임을 내세우고 여기저기서 의뢰를 받는 거로.
아직도 궁핍하게 회사를 운영하는 것 같았다.
역시 사람은 돈이 있어야 한다.
그건 내가 차린 회사도 마찬가지일 테고.
새로 산 SUV에 몸을 실었다.
외제 차에 기름 먹는 하마이긴 했지만, 이건 무려 주문 방어가 걸린 차였다.
그걸 본 혜민이 어머니가 이리 말하긴 했다.
“하급 주문 외에는 막지도 못하겠네요.”
그 하급 주문 막는 옵션이 1억이었습니다. 어머니.
겉으로 보기에 평범한 미시 같은 혜민이 어머니 재산이 백억이 넘는다고 했던가.
스펠 크리에이터가 작정하고 일하면 걸어 다니는 일인 기업이라고 했다.
“어머니, 취직할 생각 없으세요? 뭐, 사외 이사쯤으로?”
“그럴까?”
반쯤 농담삼아 건넸는데, 흥미를 보였다.
“저 진심인데.”
“우리 혜민이 시집가면 생각해 보고.”
“혜민이 소개팅부터 시켜 줘야겠네.”
“그거 우리 딸이 들으면 기겁해서 하이킥 날릴 소리인데.”
“걔 툭하면 발 날리는 버릇 안 고칩니까?”
“어쩌겠어. 험한 세상을 사는 딸인데.”
수수하게 웃으며 말하긴 하는데, 그 속에 담긴 뜻이 살벌했다.
아줌마는 혜민이 과외 당시 때부터 날 반쯤 사위라고 생각했으니.
백미러로 뒤를 보니, 로즈가 침울한 얼굴로 창밖을 보는 모습이 보였다.
난 다 속였다.
불멸특수대도 속이고.
“그럼 난 이제 네가 시키는 대로 살아야 하는 거냐?”
창밖에 시선을 둔 채, 로즈가 물었다.
로즈도 속였다.
그녀에게는 정신 제어 대신 머릿속에 시한폭탄을 심어 뒀다고 했다.
정확히는 주문으로 만든 폭탄을.
개수작을 부리면 터트릴 권한은 나한테 있다는 거짓도 함께다.
“네가 옷을 벗으라고 하면 벗고?”
로즈가 말을 이었다.
얘가 돌았나.
“안 시킨다. 그런 거.”
잽싸게 답했다.
“그럼 입은 채로?”
“무슨 생각을 하는 거냐?”
“나 같은 미녀를 보면 남자들이 흔히 하는 생각.”
“……넌 역시 또라이야.”
괜히 내가 장미 또라이라고 부른 게 아니다.
이런 타이밍에 저런 미친 소리라니.
뭐,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앞으로도 그런 건 꿈도 꾸지 말라는 경고 같은 거겠지.
“영웅호색이란 말 들어 봤어요?”
옆에서 혜민이 어머니가 말했다.
“네?”
“여자 많이 만나 보라고.”
이게 자기 딸이랑 결혼하라는 어머니가 할 말인가.
이쪽도 정상은 아니다.
하긴, 마법사에게 정상을 바라는 내가 미친놈일지도.
운전에 집중했다.
그렇게 집이자, 회사로 돌아와.
로즈에게 지낼 방을 빼 주고.
일주일 휴식 시간을 줬다.
그 시간 내내 난 훈련에 매진했다.
그사이 공식적으로 주일호, 작대기 선생님이 합류했고.
“너 머리 그만 굴려.”
통나무 선생님도 합류했다.
이쪽은 어머니의 옵션이었다. 괜히 어머니를 끌어들인 게 아니다.
어머니가 오면 이쪽도 같이 올 걸 알았다.
머리 굴린다고 불평을 뱉기에.
“스톡옵션 드릴게요.”
지분을 나눠줬다.
통나무 선생의 소원은 불로소득으로 평생 먹고 사는 것.
그래서 주식에 매진하는 사람이니.
지분을 준다는 말에 순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럴 때 보면 가혹하게 가르치던 그 선생이 맞나 싶다.
“다 모였네요.”
그렇게 모인 사람이다.
총원 열, 이게 시작이었다.
준비한 일이 있지만, 그 전에 몸풀기부터 할 생각이었다.
몸풀기는 회사 출범식 대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