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1017
약먹는 천재마법사 1017화
이정표(4)
콰르르르릉……!!!
암흑거인들이 배회하며 짓누르는 지상.
하늘 위로 부유하는 거대한 어둠의 누각.
헤아릴 수 없는 어둠 속에서 서로를 마주한 두 마법사의 모습.
레녹을 향해 돌아서면서 느긋하게 미소짓는 명의 얼굴까지.
“……명.”
“오감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군. 생각보다 운이 좋은걸.”
느릿하게 한 손을 쥐었다 편 명이, 자신의 손을 물끄러미 들여다보면서 말했다.
“이 정도라면 아직 움직일 수는 있겠어.”
“…….”
피어오르는 어둠 속에서 더할 나위 없이 선명하게 들려오는 명의 목소리.
하지만 레녹조차도, 명이 이렇게 빠르게 정신을 차리리라 예상한 것은 아니었다.
비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강해진 명이 그 반동으로 정신이 불안정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만큼.
이렇게 초월적인 힘을 휘두르면서 쉽사리 그 부작용에서 벗어날 수 없으리란 사실은 자명한 바.
하지만 명은 이렇게 보란 듯이 레녹의 눈앞에서 정신을 되찾고, 그를 향해 웃고 있었다.
처음 레녹을 만나서 그에게 흥미를 보였던 그때와 똑같이.
“정신을…… 차린 건가?”
“덕분에. 아니, 예정대로라 해야 할까?”
명이 웃으면서 고개를 젖히자, 그의 몸에 달라붙은 어둠이 천천히 떨어진다.
이성을 차린 순간 사방의 어둠은 이미 그의 완벽한 통제 아래 놓여 있었다.
순식간에 인간의 형상을 되찾은 그가 레녹의 앞으로 천천히 걸어 나오며 웃었다.
“오랜만이다, 반. 이렇게 다시 보니 생각보다도 훨씬…… 반가운걸.”
“…….”
“흠.”
대답하지 않는 레녹을 바라보는 명의 눈이 가늘게 변했다.
“몸이 엉망이야. 부상이 심해 보이는데.”
“……일이 좀 있었지.”
접합술주와의 교전은 물론이고, 명에게 접근하기 위해 조금 무리를 한 상황.
당장 이 어둠의 누각 위에서 흘린 피도 상당하다.
명 역시 그것을 인지했는지, 대수롭지 않은 손길로 레녹의 어깨를 짚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군. 치료해 주마.”
“치료?”
파앗!!
그 순간, 명의 손안에서 흘러나온 환한 정광(正光)이 레녹의 상처 위로 내려앉았다.
정광에서 느껴지는 온기에 레녹이 표정을 굳혔지만, 대상지정 저항을 켜기도 전에 몸을 휘감고 사라졌다.
“이건…….”
정광의 파동이 사라지는 순간, 몸의 고통과 피로마저도 같이 소멸한 듯한 기이한 감각.
깔끔하게 지혈이 된 상처들을 확인한 레녹이 살짝 놀란 표정으로 명을 돌아보았다.
“치유술식인가? 흑마법에 이런 능력은 없을 텐데.”
흑마법은 대륙 역사에 존재했던 모든 술식을 통틀어 가장 이질적인 마법체계 중 하나.
똑같은 공정을 사용해도 흑마력을 사용한다면 술식의 결괏값은 판이하게 달라진다.
기존의 마법체계와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아웃풋을 도출하는 힘.
그렇기에 흑마법은 기존의 술사들이 다루지 않는 죽음 같은 개념에 간섭할 수 있음에도, 반대로 치유와 같은 능력과는 한없이 거리가 먼 술식이었다.
지금처럼 명이 사용한 치유능력은, 흑마법의 마법체계에 아예 존재하지 않는 능력이었을 터.
하지만 명은 레녹의 의문을 이해하면서도 느긋하게 웃으며 손을 털었다.
“탈각(脫却)이라고 한다.”
“……탈각?”
“흑의 율법이 극에 달해서 초월하는 순간 도달하는 두 가지 방향성 중 하나지.”
명이 그렇게 말하며 손가락을 펼쳤다.
“부정적인 기운이 흘러 넘치다, 완전히 마모되어 씻겨 나가는 거야. 그 과정에서 정제되어 남은 기운은 철저하게 생명에게 이로운 공능으로 작용하지.”
“…….”
“내가 지닌 계통마법과는 상반되는 힘을 스스로 빚어낼 수 있게 되는 거다. 속된 말로 하자면, 극과 극은 통한다고 할까.”
흑마법을 초월에 다다르는 수준으로 끌어올렸기에, 오히려 완전히 상반되는 힘을 스스로 뽑아낼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인가.
마공을 극한까지 익힌 마인들이 극에 이르면 반대로 광증을 벗어던진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았지만, 그것을 설마 마법체계의 개념 아래서도 행할 수 있을 줄이야.
레녹이 그 말도 안 되는 설명에 할 말을 잃은 사이, 힐끗 시선을 돌린 명이 발 아래 펼쳐진 관문도시의 폐허를 내려다보았다.
“첫 번째 관문 주변이군. 중앙전선을 다시 찾는 건 꽤 오랜만이야.”
“…….”
“관문 역할을 하던 장생종의 시체. 그것의 죽음이 의미를 잃지 않도록 손을 거든 적이 있었거든.”
어둠에 물든 관문도시를 내려다보던 명의 시선에 복잡한 감정이 섞였다.
“다시 여기서 가비행을 시작하게 된 건 우연이 아니겠지.”
“잠깐.”
한 손으로 미간을 짚은 레녹이 물었다.
“장생종의 죽음에 개입한 적이 있다고? 아니, 그것보다-”
“접합술주를 죽였군?”
“…….”
레녹이 입을 다문 사이, 명이 짐짓 유쾌한 표정으로 웃었다.
“대단한걸. 그는 연맹의 대술주 중에서도 굉장한 실력자야. 술식의 잠재력만 따지자면 연맹 내부에서도 독보적인 수준이지.”
“그건…….”
“생명권역과 수술실. 장생종을 부활시키려 했나? 기분 나쁜 실험을 한 모양이군. 술주의 취미를 생각하면 이상한 일은 아니지만…….”
“…….”
잠시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보는 것만으로, 이 근방에서 있었던 일을 숨 쉬듯이 자연스럽게 읽어낸다.
오감으로 느낄 수 없는 것을 느끼고, 시간을 거슬러 기억할 수 없는 것을 기억해 낸다.
우물에서 깨어난 승천자, 편람이 다른 승천자들의 생사를 행성 단위로 탐색해 읽어낸 것처럼.
명의 힘과 감각은 이미 그와 유사한 경지에 도달해 있었던 것이다.
“자성영역을 펼쳐서 승부를 냈군. 결과로서 시간에 손을 대기 시작한 건가.”
레녹을 바라보던 명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래, 벌써 여기까지 도달했단 말이지…….”
“…….”
“역시…… 내 선택은 틀리지 않았던 거야.”
오래 전의 기억을 돌이켜보듯, 눈을 감은 채 조용히 속삭이는 명의 목소리.
그 독백에서 느껴지는 깊은 만족감에, 무어라 대답하지 못하던 레녹이, 어렵게 입을 열었다.
“당신은 이미…… 승천자들과 견줄 수 있는 경지에 도달했군.”
“…….”
“승천에 도전하지 않은 채로 그러한 힘을 손에 넣었다면…….”
박사는 가비행을 가리켜 승천과 직접 연계되지 않은 의식이라 말한 적이 있다.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던 그 말이, 처음부터 승천의 자격을 얻지 않기 위한 안배였다면.
승천하지 않고 승천자를 뛰어넘는 것이, 명이 바라는 진정한 목적이라면.
“자격을 얻지 않고 초월을 넘어서는 것. 그것이 가비행의 진짜 목적인가?”
처음 명과 만난 이래, 그의 힘은 레녹조차 놀랄 만큼 폭발적으로 성장을 거듭해 왔다.
위계를 초월한 뒤로도 멈추는 일 없이 비대해져, 원치 않은 초월의 문 앞에 도달할 정도의 고강함.
하지만 명을 지금껏 강하게 만들어준 ‘무언가’가 계속해서 폭주하며, 명 자신마저 잡아먹고 있던 것.
바로 그 비밀이 명을 강하게 만들어준, 그리고 그의 정신을 한없이 불안정하게 만드는 핵심이다.
“당신이 짊어진 저주와 가장 오래된 혈통. 그 안에 어떤 비밀이 존재하는 거지?”
“네게는 이미 내가 무엇이 되려는지 보이기 시작하는군.”
명이 웃었다.
“궁금하겠지. 거기까지 짐작하고 있다면 누구라도 그랬을 거다.”
“…….”
“하지만 대답하기에 앞서, 먼저 해보고 싶은 일이 하나 있군.”
명이 가볍게 손짓하는 것과 동시에 손안에서 검은 어둠이 솟구쳤다.
어둠의 누각 위로 펼쳐진 암흑이 회전하며, 두 사람이 서 있는 공간을 크게 넓혔다.
후욱!!
격렬하게 회전하는 어둠의 공동 한복판에 마주 보고 선 레녹과 명의 모습.
누각의 형태를 개조해 만들어낸 공간 속에서 레녹이 고개를 젖혔다.
“뭘 하려는 거지?”
“이 어둠 안에서는 모든 감각을 차단할 수 있지. 여기서 벌어지는 일은 바깥에 일체 새어나가지 않을 거다.”
쿠구구!!!
어둠의 장벽이 회전하면서 쉴새없이 사방의 기척과 시선을 갈아 지워 버린다.
명의 말대로 이 공간 자체가 철저하게 암막으로 기능하며 은폐하기 위해 존재하기 때문일 터.
순식간에 주변의 공간을 가두고 격리시킨 명이 레녹의 앞으로 걸어 나오며 말했다.
“술식을 써라, 반.”
“……뭐?”
“몸을 치료해 줬으니 영창에 지장은 없겠지.”
명이 웃으면서 손을 펼쳤다.
“네 마법을 보고 싶군. 내가 정신이 온전할 때, 마지막으로 네 재능을 확인하고 싶다.”
“…….”
“네 말이 맞아. 지금이 아니라면 기회가 없을지도 모르지. 이제는 이런 시간조차 없을지도 몰라.”
우우우웅……!!
명이 가볍게 마력을 끌어올리는 것만으로 사방의 공간이 요동치듯 거세게 흔들린다.
흘러넘치는 어둠을 발 아래 철벅이며 명이 고개를 젖혔다.
“네가 정한 대답. 내가 내린 결론. 너와 같은 마법사라면 그 모든 인과를 주문 한 번에 담을 수 있을 테니까.”
“그건…….”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시거 뱅 때처럼 하면 돼. 기억하지?”
명이 씩 웃었다.
“죽일 각오로 해봐라. 마침 가르쳐 주고 싶은 것도 있었으니.”
처음 명을 만난 당시, 죽음을 직감하면서도 그를 향해 덤볐던 순간.
명 역시 레녹을 보며 여전히 그 순간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명과 다시 만난 지금, 그에게 물어보아야 할 것이 많다.
풀리지 않은 미혹도, 그의 가문에 대한 비밀도, 가비행의 진실과 명이 바라는 결말도.
그가 레녹에게 호의를 보이면서 맡기려고 했던 역할의 의미도 아직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좋아.”
하지만 레녹은 그 사실을 알면서도, 마력을 끌어올리면서 호흡을 가다듬었다.
레녹이 그러했던 것처럼 명 역시 이 순간을 기다려왔음을.
모든 것을 미뤄두고도 레녹에게 전해주고 싶은 것이 있음을 직감했기 때문.
명이 자신의 대답을 마법으로 대신하고자 한다면, 그의 결정을 의지로서 확신하려 한다면
레녹은 이제 그러한 소망에 답해줄 수 있는 경지에 올라 있었다.
팟!
가볍게 걸음을 물러서 몸을 비튼 레녹이 말했다.
“보여줄 수 있는 건, 아주 잠깐 뿐이다. 알고 있겠지?”
“알다마다.”
명이 팔짱을 낀 채로 느긋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한순간이면 충분해. 그것만으로도 부족함이 없을 테니까.”
“……그럼.”
접합술주와의 결전으로 레녹의 의념과 심상은 상당히 소모된 상황.
마력의 회복과는 별개로 몸의 컨디션 역시 정상이 아니다.
가비행을 다시 시작한 명과는 애초에 조건을 비할 수 없을 만큼 열세.
하지만 그럼에도 남은 여력을 모조리 털어낸다는 전제 하에, 싸움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지상에 자리한 복잡한 상황과 전장을 모두 제쳐두고 남김없이 쏟아붓는 단 한 번의 마법.
아마도 명이 레녹에게 원하는 것 역시 그것이겠지.
“후우…….”
아무런 도핑도, 약물도, 증강도 없이 맨몸으로 시작하는 전투.
하지만 레녹은 눈앞의 명왕을 상대로, 자신이 무엇을 보여주어야 할지 알 것 같았다.
그가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음에도, 레녹이 제대로 답하지 않았음에도.
지금 어떤 마법을 명에게 휘둘러야 할지 알 수 있다.
그건-
탁.
고요한 적막 속에서 깊게 심호흡을 한 레녹이 앞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어둠 저편에 선 명을 향해 한발씩 거리를 좁히다, 세 번째 걸음에서 속도를 높였다.
탁. 탁.
넷. 다섯. 여섯.
일곱 번째 걸음에서 전력으로 마력을 회전시키면서 술식을 영창.
흐릿한 불꽃의 꼬리와 함께 레녹의 몸이 폭발적으로 가속했다.
파아아아앙!!!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쏘아진 레녹의 신형이 명과 충돌. 직후 사방으로 불꽃의 충격파를 터트렸다.
일그러진 화염을 맨손으로 움켜쥔 명이 그대로 비틀어 방향을 빗겨냈다.
뚜두둑!!
어둠으로 일그러진 공동에서 두 사람의 팔과 어깨가 얽히면서 충돌하고.
화염과 어둠을 터트리며 회전한 두 술사의 신형이 순식간에 반대방향으로 튕겨 나갔다.
쩌어어엉!!!
“큭……!!”
대수롭지 않은 듯 손목을 매만지는 명과, 숨을 몰아쉬며 고개를 숙인 레녹의 모습.
화염이 넘실거리는 레녹의 양손이 희미하게 경련하고 있었다.
‘형태가 잡히지 않는군. 맨손으로 파도를 때리는 것 같아…….’
명의 몸과 하나가 된 흑마력은 사위를 잠식하는 어둠 그 자체.
술식이나 체술로 타격해도 충격은 전해지지 않고, 명의 내면으로 흡수되어 사라지기만 한다.
실체를 갖추고 형상화한 어둠을 상대한다는 것은 이런 의미였던 것인가.
정륜결계와 신격결계를 사용하지 않는 지금 명과 잠깐이나마 마주하는 것조차 버겁다.
“부상이 심한데, 이대로도 괜찮겠나?”
명 역시 그것을 느꼈는지 돌아서며 물었다.
“이래서 짧게 마법만 보고 끝내려 한 거였다만.”
“……아니. 이 정도면 충분해.”
꾸역꾸역 핏물을 삼킨 레녹이 대꾸했다.
“필요한 공정이었으니.”
쿠화아아악!!!
동시에 발아래서 피어오른 불길이 격렬하게 회전하면서 솟구쳤다.
어둠의 공동을 환히 불태우며 거대한 화염의 십자가를 그리는 불꽃의 형상.
“체술의 동작을 수인이자 영창으로 다듬었나.”
대번에 레녹의 대체영창을 이해한 명이 감탄한 기색으로 눈을 빛냈다.
“대단하군. 체술이라면 나도 자신이 있지만, 동작에 수인을 섞어 원하는 술식으로 구축하는 건 체득의 영역이 아닐 텐데.”
발칸의 마법사들이 한참 연구에 매진하는 대체영창의 개념과 원리를 일축하는 명의 안목.
“준비는 끝났어.”
레녹이 씹어뱉듯이 말을 토해내며 몸을 돌렸다.
“이게, 마지막이다……!!”
염열계열 고유마법
성질변화 창조변속
[십자화인(十字火印)]쿠구구구!!!
레녹이 뻗은 손을 따라 화염의 십자가가 맹렬하게 회전하며 가속했다.
활활 불타는 십자 화염이 어둠의 공동 전역을 메우고 명의 코앞까지 들이닥쳤다.
“그렇군.”
하지만 다가오는 십자화인을 바라보는 명의 표정은 담담했다.
“조금 모자랄 듯하지만, 상황을 감안하면 어쩔 수 없지.”
한 손을 쥐고 떨어뜨리듯 펼친 명이 마력을 끌어올리자, 검게 일그러진 구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사안(死眼)]쩌억……!!
사위에 존재하는 암흑을 극한까지 압축해 만들어낸 암흑 구체의 형상.
마치 무언가의 눈동자처럼 보이는 그것을 띄워올린 명이 십자화인 앞에 비춘 순간.
레녹이 움켜쥔 화염의 십자가 사이로 남은 의념을 모조리 쏟아부었다.
파직, 파지직……!!!
타오르는 십자화인의 안에서, 눈부신 푸른 전격이 폭발하듯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레녹이 지닌 가장 강력한 마법이자, 천번의 신분으로는 사용하지 않는 뇌전.
그 위력과 요란함 때문에 오직 견뢰의 신분으로만 제한해 왔던 레녹의 전력.
성질변화 속성전환
전격계열 고유마법
파지지지지직!!!
숨이 멎을 듯한 강렬한 우레의 광채가 번뜩이며 십자화인을 집어삼킨다.
이미 영창이 끝난 염열마법을 통째로 성질변화시켜 현현하는 새로운 전격마법.
화인(火印)의 속성전환을 통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전격계열 고유마법의 비의.
[뇌인(雷印)]쿠오오오오!!!
찬연하게 빛나는 은백색의 뇌전을 역수로 움켜쥔 레녹이 몸을 돌려 세운다.
어둠의 공동 내부를 아름다운 별빛으로 물들이는 뇌인의 광채.
암흑의 눈동자를 띄워올린 명의 표정 역시 순간적으로 놀란 듯 변했다.
“이건……!!”
시거 뱅 갱단의 전격마법사를 죽일 당시, 레녹이 고유마법의 각성과 동시에 사용한 오의.
명이 퍼뜩 시선을 들어올리고, 은백색의 벼락을 부서져라 움켜쥔 레녹이 이를 악물고 팔을 휘두른다.
역수로 쥔 뇌인의 벼락이 허공에서 명이 띄워 올린 어둠의 눈동자와 충돌한 순간.
엄청난 공명음과 동시에, 공동 전체가 어둠과 은백색의 광채로 양분되어 일그러졌다.
콰아아아아아아아!!!
어둠의 공동 전역이 그 충돌을 이기지 못하고 미친 듯이 들썩이다, 하얗게 탈색되기 시작했다.
흑마력 자체를 소멸시키고, 공간을 통째로 일소하는 뇌인의 광채가 격렬하게 회전한 순간.
빠직!!
눈동자를 관통한 은백색 벼락이, 명의 폐부를 관통하고 공동 반대편까지 뻗어나갔다.
동시에 명의 등 뒤로 눈부신 벼락의 충격파를 흩뿌리며 사방을 저릿하게 울리고 터트렸다.
쩌어어어엉!!!
어둠의 공동을 가로질러 관통하고 으스러지는 은백색의 뇌전.
뇌인의 벼락에 몸이 관통당한 명이, 이내 느릿하게 숨을 내쉬었다.
“……!!!”
명의 폐부가 꿰뚫리는 것과 동시에 전장에 찾아오는 고요한 적막.
손을 뻗은 채 멈춰선 레녹과, 그 앞에서 한걸음 물러선 채 어둠에 파묻힌 명의 모습.
고개를 숙인 채, 어둠 속에서 번뜩이는 은백색의 잔향을 지켜보던 명이 중얼거렸다.
“이미 완성된 술식의 계통변환이라…….”
본래 사출하는 식으로 사용하는 뇌인을, 지근거리에서 터트리기 위해 술식전환을 통해 영창한 것인가.
십자화인을 속성전환해 영창했기에, 뇌인의 주문은 폭발하지 않고 형상을 갖춘 채 압축될 수 있었다.
체술을 이용한 대체영창. 염열마법의 속성전환. 뇌인의 압축까지.
마지막까지 명의 틈을 찌르면서도, 남아 있는 여력을 한점에 압축해 때려박는 단 한 가지 방법.
레녹과 명이 만났던 처음 그 순간을 고스란히 재현하는 기적의 마법까지.
모든 순간에서 명의 예상을 벗어났음에도, 그 모든 결과들이 이루 말할 수 없을만큼 경이롭다.
“너는 정해진 결과를 바꾸어…… 과정까지 손을 대고자 하는구나.”
“큽……!! 쿨럭!!”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눈을 뜬 명이 천천히 시선을 내렸다.
힘없이 손을 뻗은 채,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휘청이는 레녹을 바라보던 그가 말했다.
“그래…… 역시 네가 맞아.”
“…….”
“처음부터 내가 아니라 너였어야 했다.”
고개를 숙인 명이 다시 레녹의 어깨를 짚고 가볍게 두들긴다.
그것만으로 레녹의 너덜너덜해진 몸에 온기가 감돌며, 서서히 기력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명이 설명했던 탈각(脫却)한 정광을, 레녹의 몸 안에 직접 불어넣는 것이겠지.
창백한 표정으로 숨을 내쉬던 레녹이 명을 바라보며 입매를 비틀었다.
“이제…… 내가 던진 질문에 대해 대답을 들을 시간이군.”
“…….”
말없이 웃고 있던 명이 입을 열었다.
“반. 이제 너는 내게 상처를 입혔다는 ‘결과’를 손에 넣었다.”
“뭐?”
“이는 더 늦기 전에 안배해야 했던 인과이자, 나의 결말을 대신하는 연결점이지.”
명이 그렇게 말하며 손을 펼치자, 그의 손 안에서 부서진 눈동자가 나타났다.
형태를 갖춘 어둠이 굳어서, 검은 보석처럼 경화된 듯한 사안(死眼).
레녹의 손에 그것을 쥐여준 명이 말했다.
“이것으로 너는 나의 흑마법을 전승받을 자격을 갖추었다.”
“자격이라고……?”
“정확하게 말하자면, 나의 흑마법을 전승받을 ‘가능성’이지.”
방금 레녹과 명이 벌인 전투가, 흑마법을 전승받을 자격을 전하기 위함이었다는 말인가.
하지만 레녹의 생각은 다음으로 명이 던진 말에 휩쓸려 사라져 버렸다.
“하지만 네게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거다. 그렇지?”
“……!!”
명이 웃으면서 천천히 시선을 추켜들었다.
“정확한 형태를 볼 수는 없지만 이해할수는 있다. 네가 보여준 대답과 재능은 모두 결국…….”
“……명.”
이미 알고 있던 것인가.
하지만 레녹은 그에 대해 알면서도, 한편으로는 놀라지 않는 자신을 발견했다.
명은 레녹의 여러 이름에 대해 알고 있음은 물론이고, 그 신분을 직접 만들어주기까지 했었으니.
레녹이 왜 이렇게 움직이면서 여러 가능성과 분기점을 체득하려 하는지.
왜 레녹이 계통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술식과 이능을 다루면서 연구하고 있는지.
명이 그것을 이해했다면, 무한한 분기점의 잔흔에서부터 거꾸로 근원을 짐작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겠지.
하지만 어째서 명은 이 시점에 그것을 레녹에게 설명하고, 대신 전하려 한 것인가.
왜 그는 레녹의 남은 여력을 모조리 긁어내서 대답을 확인하고, 확신을 가지려 했는가.
“설명을 듣고 싶겠지. 알고 있어.”
“…….”
“하지만 대답을 듣고 나면, 내게 주어진 시간은 모두 끝나고 말 거다.”
명이 한 발을 딛고 돌아서는 순간, 관문도시를 지나치던 어둠의 누각이 머리를 돌렸다.
쿠구구구구!!!!!
어둠의 해일을 몰고 지상을 휩쓰는 누각이 기울어지면서 지상의 인간들을 굽어본다.
지상에서 죽어가는 초인들을 바라보는 명의 눈에 희미한 경멸이 스쳤다.
“그럼 내가 떠난 자리에 살아남은 저 벌레들이, 이번에야말로 네 운명에 손을 대려 하겠지.”
“…….”
“내 부탁으로 마법을 긁어낸 네게는 여러모로 못 할 짓이다. 그러니 지금부터는…….”
자연스럽게 레녹의 옆에 선 명이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지상을 향해 검지를 뻗은 명이 차갑게 속삭였다.
“너를 대신해 지상에 남은 벌레들을 모두 청소하면서 설명하도록 하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