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1018
약먹는 천재마법사 1018화
이정표(5)
“어라, 큰일 났네?”
촤악!!
손짓 한 번으로 연맹 술사의 머리를 뜯어낸 7사도, 라리아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상을 휩쓸고 짓누르던 어둠의 해일이 멈추고, 고요해진 일시적인 소강상태.
하지만 명왕의 존재와는 상관없이 전장에 모인 이들은 계속해서 살육을 반복하고 있다.
오랫동안 이어진 연맹과 교단의 전쟁으로 가뜩이나 중앙의 분위기가 흉흉해진 상황.
“그륵……!”
뚜두둑!!
맨손으로 움켜쥔 인간의 머리를 으적으적 씹어 넘긴다.
교단 사제들을 보호하기는커녕, 마음대로 전장을 휘저으며 인간을 잡아 죽이는 7사도의 모습.
하지만 난전 속에서 날뛰던 라리아타의 시선은 어느새 상공에 떠오른 어둠의 누각에 고정되어 있었다.
“…….”
“라리아타 님……!!”
기도문을 외우던 사제들이 다급하게 그녀를 불렀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피로 물든 화장을 한 라리아타가 웃음기가 싹 사라진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을 뿐.
미동도 없이 고요한 어둠의 누각을 뚫어져라 응시하던 그녀가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명왕이…… 정신을 차린 것 같은데.”
“……예?”
가비행 내내 미쳐서 학살과 파괴를 자행하는 희대의 괴물이, 이 시점에 정신을 차렸다는 것인가.
바로 직전 누각과 충돌해서 방향을 틀어버린 천번의 일과 관련이 있는 것인지.
라리아타의 설명을 듣고 있던 사제의 머릿속에서 온갖 생각이 오가던 그 순간.
서걱!
사제의 목을 한 손으로 잘라 버린 라리아타가 그것을 씹어먹기 시작했다.
같은 교단의 사제마저 가리지 않고 잡아먹어 배를 채운 라리아타가, 피범벅이 된 입가를 닦으면서 고개를 젖혔다.
“좋아, 대충 할당량은 맞췄으니 시작해 볼까요?”
파리한 안색으로 기도문을 암송하는 사제들을 돌아본 라리아타가 씩 웃으며 시선을 돌렸다.
“암리타 동생의 저울 술식 준비해요. 무슨 느낌인지 말 안 해도 알죠?”
“…….”
“아니, 그 이름이 아니었던가? 이번에 새로 10사도가 된 신사분 이름이 뭐였지?”
라리아타가 고심에 잠긴 표정으로 고개를 기울인 찰나.
우우우우웅……!!!
지상을 향해 돌아선 어둠의 누각 저편에서, 소름 끼칠 만큼 섬뜩한 의념이 맥동하기 시작했다.
* * *
레녹을 대신해 관문도시의 난전을 직접 정리하겠다는 명의 선언.
설명을 구하고 답을 들을 시간조차 없었다.
명이 지상을 향해 손을 펼친 순간, 흘러넘치는 어둠이 지평선 끝에서부터 맥동하기 시작했으니까.
“일어나라.”
어둠의 해일을 짓밟고 선 명의 선언과 함께, 지상의 풍경이 통째로 뒤집혔다.
의지가 약동하는 것과 동시에 지상을 짓밟던 암흑거인의 눈에 안광이 새겨졌다.
쿵!!
걸음을 옮기던 암흑거인들이 멈춰서, 자신들이 휩쓸고 지나간 지상을 향해 돌아섰다.
살아남은 연맹이나 교단의 초인들이 암흑거인들의 회군에 뒷걸음질 치다 넘어진 순간.
두 팔을 양옆으로 교차한 거인들이 서로의 손을 맞잡고 수인을 맺기 시작했다.
고오오오……!!!
“으아, 아아……!!!”
“미쳤……!! 주문을-!!”
암흑거인이 직접 흑마법을 영창하고 있음을 깨달은 초인들이 발작하는 사이.
하늘에서 떨어진 암흑의 광선이, 흑색의 기둥이 되어 지상을 향해 내리꽂혔다.
[직흑(直黑)]명의 의지에 따라 형태 없는 사념이 스스로 흑마법을 구축해서 발동.
어둠 속에서 일그러진 검은 선이 공간을 내리긋고, 검은 파문을 수천번씩 연달아 터트렸다.
퍼버버버버버벙!!!!
“끄아아아악!!”
“살려, 살려줘……!!!”
“흐아아!! 흐아아아!!”
공간을 덮친 해일 속에서 암흑의 파동이 몰아치면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으깨져 죽어나간다.
지상에 자라난 검은 나무들이 성장하면서, 날카로운 가지 사이로 인간을 꿰어 죽였다.
암흑거인들이 지상을 짓밟고 움직일 때마다, 수십 종에 달하는 흑마법이 하늘에서 현현되어 사출.
차르르르륵!!!
“끄르르륵……!!!”
사슬소리와 비명소리, 폭발과 절규.
어둠과 핏물이 한데 어우러져 시들어버린 초원 위로 끈적하게 녹아내렸다.
술사들이 발작하듯 영창하는 술식도, 사제들이 읊는 기도문도, 능력자들의 역장조차 의미를 잃었다.
방금 전까지의 죽음은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것처럼, 단 한순간에 시작된 압도적인 학살.
싸늘한 주검이 된 육신 위로 검은 매화가 피어나면서 어둑한 죽음의 향기를 드리웠다.
“푸핫, 하하하핫……!!!”
“흐히히힛!!!”
다가오는 어둠을 마주하지 못하고 미쳐 버린 술사들 중 한 명이 폭소하며 제 머리를 단검으로 찔렀다.
온갖 전투로 단련된 주문연맹의 술사들조차 오래 버티지 못할 만큼 압도적이고 선명한 죽음의 형상.
“이건…….”
“타인의 죽음이든, 자신의 죽음이든 마찬가지다.”
명이 레녹의 옆에서 손을 거두며 말했다.
“죽음을 깊게 인지한 존재일수록 나의 율법에서 벗어나는 건 불가능하지. 어떤 초인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
“죽음을 거부하는 의지와 생존본능의 우선순위를 뒤섞는 거야. 삶을 향한 의지는 인력이 되고, 죽음의 공포는 척력이 되어 서로를 밀어내고 잡아당기면…….”
지상에 펼쳐진 참상을 내려다보며 명이 말했다.
“자신이 살고 싶어 하는지, 죽고 싶어 하는지도 알 수 없게 되지.”
“하하하하하!!!”
“여기다!! 여기다!!”
“크흐흐흣……!! 크헤헤헷!!!”
뚜두둑!!
으지지직!!!!
연맹의 술사들이 암흑거인을 향해 스스로 뛰어들어 자살한다.
전단의 능력자들이 어둠의 파동 속에 몸을 누이고 자신의 몸을 초능력으로 터트렸다.
교단의 사제들이 죽은 나뭇가지에 제 심장을 찔러넣고 기도하듯 몸을 숙였다.
방금 전까지 죽음에서 도망치던 이들이, 스스로 자처해 죽음을 받아들이는 섬뜩한 참상.
쿠오오오오오!!!
머리 위에서 내리 찍히는 죽음의 선고. 지상을 휩쓰는 사념의 파동.
검은 나무와 암흑 거인이 인간의 육신을 찢어발기고 짓밟아 터트리며, 엄청난 속도로 인간의 숫자를 줄여나갔다.
“초월에 이른다는 것은 이런 의미다. 불확실하고 모호한 개념 조작이 아니라, 원인과 결과에 간섭해 앞뒤를 뒤틀어 버리는 것.”
“…….”
“생사의 저울을 쥐고 내 마음대로 장난칠 수 있게 되는 거지.”
“그것이…… 가비행의 본질인가?”
고오오오……!!
상공을 부유하는 누각 위에서 설명을 듣던 레녹이 묻자, 명이 침묵했다.
“가비행이란 본래 초월에 앞서 혼을 위로하고 넋을 달래는 여정을 이르는 말이었지.”
말없이 지상을 내려다보던 명이 조용히 말했다.
“하지만 내가 사용하는 가문의 방식은 죽은 자의 운명을 빼앗고, 그들에게 죽음보다 못한 안식을 주는 것…….”
지상에서 죽어나가는 인간들을 바라보는 명의 시선이, 순간 흐릿하게 일렁였다.
“나는 죄인이다. 그러니 마지막에는 벌을 피할 수 없겠지.”
“……명.”
“아, 알고 있어. 모두를 죽이고 싶은 건 아니지?”
순간, 명의 표정이 더할 나위 없이 잔혹한 미소를 띄웠다.
“몇 명은 살려두지. 하지만 네게 가장 해로운 살의를 뻗친 벌레들은 보아넘길 수 없겠군.”
“끄아, 아아아악!!!”
온몸이 어둠에 물든 초능력자, 뢰비드의 몸이 그 자리에서 붕 떠올랐다.
이능개화전단의 13석. 금속조작 능력자이자 레녹을 습격했던 척살대의 대장.
몸에 존재하는 모든 구멍에서 매캐한 어둠을 쏟아내면서 덜덜 발작하는 모습.
능력을 사용하려는 듯 주변에 널브러진 금속이 들썩이지만, 그때마다 피 대신 암흑 덩어리를 뱃속에서 꾸역꾸역 토해낸다.
“꺼어어어……!!”
“체내 내장기관을 모조리 흑마력으로 치환하는 제물 마법의 일종이다.”
명이 친절하게 설명했다.
“죽음을 앞둔 흑마법사가, 자신의 모든 신체기능을 흑마력으로 환원시켜 사용하는 각성기지.”
“…….”
“원래라면 술자에게 도움이 될 마법도, 법칙을 반전시키면 살인기로 사용할 수 있는거다. 그 반대도 얼마든지 가능하지.”
“끄그그극, 그으으으……!!”
눈의 흰자위마저 검게 물든 채, 검은 거품을 토해내며 죽어가는 뢰비드의 모습.
지금까지는 뢰비드 스스로의 성취로 버티고 있었지만, 명이 그에게 술식을 집중시키는 순간 버티지 못하는 것.
자신을 죽이는 존재의 모습조차도 제대로 보지 못한 채, 벌레처럼 발작하면서 고통받다 죽어간다.
“초능력자. 마물. 마법사. 용병. 사제. 무엇이든 상관은 없어.”
명이 지상을 향해 느릿하게 손을 쥐었다 펴며 말했다.
“중요한 건 아까 말한 대로 우선순위를 바꾸는 일이다. 말은 거창해 보이지만, 너도 감각을 인지한다면 금방 사용할 수 있을 거다.”
“……그건.”
“지금 나누는 대화를 잘 기억해둬라, 반.”
레녹의 어깨를 짚은 명이 느긋하게 말했다.
“지금처럼 정신이 온전한 채로 너를 만나는 것도, 이제 정말 마지막일지도 모르니까.”
“…….”
“마법을 다루는 감각이든, 초월에 이른 체감이든…… 마음 같아서는 이 자리에서 전부 전해주고 싶지만, 시간이 없어.”
고개를 숙인 명의 표정이, 검은 머리칼 사이로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언젠가 명과 비슷한 대화를 나누었던 것을 기억한다.
아직 8레벨에 오르지 못한 레녹에게, 결과로서 시공간을 다루는 법을 조언해 주던 그의 모습.
정신을 차린 지금에 와서도, 명은 레녹에게 무엇을 익히고 다듬어야 하는지 알려주려 하는 것인가.
생각해 보면 처음 만난 그때부터 지금까지, 명은 언제나 레녹을 향해 일관된 태도를 고수해 왔다.
레녹보다 한 발짝 앞서 걸으며, 자신이 경험하고 체득했던 감각이나 요령을 레녹에게 풀어 설명하려 한다.
지상의 인간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학살하고 죽여대는 이 순간에도, 레녹에게 조언과 충고를 아끼지 않는다.
그 모순된 태도와 반응에 대해 고민하면서도, 여태까지는 명에 대해 판단을 망설여왔지만-
“내게 무엇을 바라는 거지?”
“…….”
“결말을 앞두고 맡기고 싶은 역할은…… 무엇을 의미하는 거지?”
천천히 명을 향해 돌아선 레녹이 물었다.
“나는 한 가지를 선택할 수 없어. 그러니 당신이 바라는 대로만은 움직일 수 없겠지.”
“…….”
“과거나 현재가 아니라, 미래의 가능성을 그리기에 나는…… 내가 체득한 모든 것을 답으로 삼으려 한다.”
침묵하는 명을 두고 레녹이 눈을 감았다.
“결과보다 중요한 과정이 있다고 믿으니까. 순간이 결말에 선행할 수 없다면, 나는-”
그것이 가능한 세계를 직접 만들어낼 수밖에.
동화도, 파괴도, 구원과 신살도 레녹의 답이 아니라면.
그 모든 것을 만상 아래 담는 세계를 그리려 한다.
단장과 교주와의 만남에서 나누었던 그날의 대답을, 그 무엇보다 가깝게 명에게 이른다.
그건 레녹이 그만큼 이 위대한 흑마법사에게 빚을 졌다고 느꼈기 때문이겠지.
오래전부터 레녹을 지켜보고, 도와주려 했던 명이라면 대답을 들을 자격이 있음을.
어떤 형태로 변질된다 해도 해야 하는 말이 있음을 레녹은 알고 있던 것이다.
“그렇겠지. 그래서 언젠가는 이렇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명 역시, 레녹이 어떤 답을 그리는지 알고 있었을까.
픽 웃은 그가 시선을 돌렸다.
“너는 단장과 같으면서도 다르니까. 판데모니엄과 가까워질수록 반대로 멀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었지.”
“그렇다면 어째서…….”
명은 레녹을 굳이 직접 판데모니엄에 끌어들인 것인가.
어째서 단장과 마주하여 그의 대답을 보고, 스스로 판단하도록 유도한 것일까.
하지만 명은 그런 레녹의 말을 이해했음에도, 그에 대해서는 대답하지 않았다.
“알고 있잖나, 반.”
사라질 것처럼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시선을 돌렸을 뿐.
“필설로 형용하는 수백 번의 설명보다, 한 번의 깨달음이 우리에게 더 필요하다는걸.”
“…….”
“네가 스스로 깨우쳐온 그 모든 진실들이, 그만한 가치와 이유가 있었음을 알고 있잖나.”
그렇게 말한 명이 천천히 돌아섰다.
“네 말이 맞다. 결과보다 중요한 과정이 있기에, 그 순간을 더럽혀서는 안 돼. 그것이 네게 바라는 전부였다.”
“순간을 더럽혀서는 안 된다고……?”
“그래, 이를테면-”
지상을 바라보는 명의 눈동자에, 숨길 수 없는 냉소가 섞였다.
“지금도 저편에서 우리를 지켜보는 초월자의 존재가 그렇겠지.”
“……뭐?”
그 말을 따라 무심코 지상을 내려다본 레녹이, 미간을 찌푸렸다.
명이 일으키는 어둠을 따라 무참히 죽어나가는 용병부대와 연맹의 술사, 전단의 능력자들.
시체 위에 시체가 쌓이고, 사지가 뒤틀린 주검이 기괴한 형체로 일그러지며…….
문자가 된다.
[흑 마 법 사 가 문 혈 족 오 래 된 피]“……!!!!!”
지상에 널브러진 시체들이 섬뜩한 문자의 형상을 그리고 있다.
죽어 온몸이 굳은 시체들이 메시지 그 자체로 기능하는 소름 끼치는 기시감.
레녹은 이미 이 언령(言領)의 전달방식이 누구의 것인지 알고 있었다.
“진와인가……!!!”
중앙전선 장막 외곽에 자리 잡은 타락한 승천자.
대륙의 공용어를 만든 최고의 언령사이자, 이제는 신이 되고자 하는 초월자.
인간을 문자로서 부리는 그 괴물이 실낙원에서 관문도시의 이변을 눈치챘다.
키이이이잉!!!
그 순간, 강렬한 정신파가 레녹과 명의 머리 위로 내리찍히며 폭발했다.
“큭……!!!”
레녹의 눈앞에서, 실제 하는 언령(言領)이 불꽃을 튀기며 펼쳐지는 듯했다.
순간적으로 뇌리를 찌르고, 의념과 정신파를 엉망진창으로 꼬아 끊어버리려는 듯한 의념.
지상에서 시체를 붓으로 삼은 주언(呪言)이 연달아 펼쳐졌다.
[멈 춰 섰 고 추 락 했 고 영 속 됐 고]시체를 형상화한 문자가, 순간 비웃는 듯이 흐릿하게 기울어졌다.
[배 신 했 군]쩌적, 쩌저적……!!!
칠흑처럼 어두운 암흑이 모자이크 단위로 깨져 부서진다.
명이 이 자리에 전개한 어둠의 해일을 관통해, 대놓고 펼쳐지는 주언(呪言).
마치 이 관문도시의 기억을 읽고, 강제로 끄집어내려는 듯한 집요하고 광기 어린 의지.
[추 악 하 고 숭 고 한 희 생 을 사 해 답 을 얻 으 려 하 는 가]“답은 이미 얻었다, 진와.”
양손을 합장하며 수인을 맺은 명이 말했다.
“본질적인 해답에서 멀어졌다는 점에서 당신과 나는 비슷한 구석이 있지.”
간단한 영창조차 암흑거인으로 대신하던 명이, 승천자를 상대로 펼쳐내는 두 번째 흑마법.
“그렇기에 당신도 나의 도래를 인지하고 미리 이곳을 엿보려 했던 것 아니었나?”
[네 놈]명의 대답에서 무언가를 느끼기라도 한 것일까.
시체를 뭉개 기울이는 진와의 언령이 섬뜩할 만큼 날카롭게 일어선 순간.
흑율계열 고유마법
성질변화 명리현현
사상전연(思想全燃)
[태인(太引)]명의 손 안에서 짙게 뭉친 어둠이 둥글게 회전하며 일그러졌다.
태극의 형상을 그리듯이 회전한 암흑이, 한 점으로 깊게 침잠하며 압축된 순간.
지상을 휩쓸던 어둠의 해일이 중력을 거스르고 일제히 하늘로 솟구치기 시작했다.
[감 히 나 의 장 원 을 흙 발 로 더 럽 힐-]두두두두!!!
암흑의 기둥이 하늘과 지상을 지탱하고, 진와가 깨트린 시공간의 균열을 뒤덮는다.
지평선 일대를 새카맣게 물들였던 어둠이, 거대한 기둥이 그리는 길 위로 구부러지듯이 끌려나간 순간.
가비행(加備行)의 방향 자체가 뒤틀리며 궤도를 이탈하기 시작했다.
쿠과과과과과!!!!
지평선 끝까지 물들었던 장대한 어둠이, 방향을 틀어 관문도시 옆으로 밀려나듯 움직였다.
그제서야 지금 이 상황을 이해한 레녹이 눈을 크게 떴다.
“설마, 처음부터 가비행은……!!”
방금 명이 사용한 흑마법은, 주문의 이름대로 운명을 이끄는 인력의 현현 그 자체.
그리고 명은 진와의 존재를 방향키로 삼아, 자신이 인도하는 가비행의 방향 자체를 바꿔 버렸다.
관문도시를 통째로 휩쓸고, 장막 뒤쪽으로 대피한 민간인들까지 휩쓸리기 전에 명이 손을 쓴 것일까.
하지만, 진와의 실낙원을 대상으로 삼았다면 이번 가비행이 끝나는 종점은 결국-
“반, 앞으로 중앙에서 활동할 때는 이러한 부분을 조심하는 게 좋을 거다.”
레녹이 형용할 수 없는 충격에 할 말을 잃은 사이, 명이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르스노바가 위치한 중앙은 이 별에서 외해와 가까운 경계선. 세계의 경계선이 희미하기에, 온갖 초월자들이 안팎에서 중앙을 관조하고 있지.”
“…….”
“그들은 네가 아니라, 네가 만들어낸 죽음과 인과를 읽고 찾아온다. 이번에는 내가 도와줄 수 있지만…….”
명이 웃으면서 손을 비튼 순간, 이번에야말로 진와가 깨트린 균열이 남김없이 어둠으로 뒤덮였다.
“다음번에는 너를 보호해 줄 수 있는 수단이나 뒷배가 필요해지겠지.”
지상의 어둠이 모조리 하늘로 솟구치면서 이번에야말로 그 균열을 모조리 메워 버렸다.
콰아아아아아!!!
하늘을 향해 기울어진 암흑의 파문이, 사선으로 휘어지며 폭포처럼 쏟아져 내렸다.
순식간에 사방을 물들이는 어둠 속에서, 명이 레녹을 향해 등을 돌렸다.
“그녀는 미치기 전에도 가장 예민한 승천자들 중 하나였지. 그러니 당분간은 이걸로 충분할 거다.”
“……명.”
“나가는 길에는 네 관문을 빌리도록 하지. 가비행의 방향을 틀어버린 뒤로는 통제가 어려우니, 당분간 중앙에는 접근하지 않는 게 좋을 거다.”
관문도시 사방에서 레녹을 위협하는 적을 궤멸 직전까지 학살하고도, 명은 마지막까지 통제력을 잃지 않았다.
진와의 개입마저 가비행을 뒤트는 계기로 삼아 방향을 바꾸고, 관문도시 뒤쪽으로 대피한 민간인의 학살을 피했으며.
마지막까지 레녹에게 중앙에서 조심하고 경계해야 하는 것들을 일러주려 한다.
그렇게, 가비행의 끝에서 명이 바라는 결말이란-
레녹이 무어라 쉽게 말을 잇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나는…….”
이것이 마지막인가.
지금 이 순간이 명과 마지막으로 만나, 온전한 정신으로 의지를 전해 받는 마지막 순간인 건가.
처음 그와 만난 뒤로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에게 받아왔던 여러 조력들을 아직 기억하고 있는데.
복잡한 심경을 억누른 레녹이 입을 다문 사이, 명이 레녹을 바라보며 웃었다.
“아까 네 역할이 무엇이냐고 물었었지.”
명이 나직하게 말했다.
“너는 이정표다, 반.”
“이정표라고?”
“네 재능에서 비롯되는 두 번 다시 존재하지 않을 절대성…… 그것을 보면, 나도 이렇게 방향을 고쳐잡을 수 있거든.”
“…….”
“내가 진혼하고 먹어치운 죽음 속에서 환상으로도 흉내 낼 수 없는 가능성.”
명이 웃었다.
“네 존재는 지금 이 순간이 현실이라는 무엇보다 명확한 증거다. 그러니 너는 그 존재만으로 내게 있어서, 결말에 다다르는 과정이 되는 셈이지.”
“…….”
“그러니 고민할 필요는 없어. 너는 이미 스스로의 역할을 다하고 있으니까.”
그제서야 레녹은 명이 레녹을 보자마자 빠르게 정신을 되찾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가비행을 통해 힘을 얻은 명은, 그 대가로 자신이 죽인 이들의 죽음을 먹어치우며 미쳐가고 있던 상황.
하지만 현실과 지옥의 구분이 희미해지는 와중에도, 레녹과 같은 존재는 오직 현실에서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명은 정신이 불안정해 미쳐가는 도중에도, 레녹이 지닌 재능을 방향으로 삼아 현실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인가.
“너를 만난 것도 그렇고, 이번에는 여러모로 운이 좋았어.”
서서히 하늘을 향해 시선을 들어올린 명이 중얼거렸다.
“그렇기에 우리의 결말은 다음이 아닐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난 그러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
“나의 결말이 예정된 순간에 찾아오지 않는다는 건, 결국 단장의 실패를 의미하는 것일 테니.”
“단장의 대답에 동조하면서도…… 결말은 내게 맡겨두겠다는 건가?”
“단장은 변하지 않아. 그는 처음부터 그런 사람이었으니까. 그것이 틀렸다는 말은 아니지만…….”
명이 레녹을 돌아보며 웃었다.
“너는 변하겠지. 어쩌면 네가 그러한 변화 그 자체일지도 모르고.”
“……그건.”
“나는 그렇기에 내 결말을 네게 걸어보려고 한다.”
쿠오오오오……!!
사방의 어둠이 회전하듯 몰아치며, 한 점으로 빨려나간다.
레녹에게 돌아선 명의 모습 역시, 그 어둠 속으로 서서히 흐릿해졌다.
어둠과 하나가 된 명의 눈동자가, 빠르게 초점을 잃고 침잠한다.
“작별이다, 반. 부디 다음 이정표에서는…….”
레녹과 만나면서 되찾았던 시간조차 그 의미를 잃고, 다시금 무한한 죽음과 하나가 되는 것.
하지만 명은 힘겹게 시선을 들고, 마지막 순간 잊어버릴 뻔했던 말을 다시금 자아냈다.
“다음 이정표에서는 우리의 결말이 있었으면 좋겠군.”
위이이잉……!!!
어둠의 누각이 레녹을 남겨두고 엄청난 속도로 상승을 거듭한다.
천화만리향의 관문 위로 빨려들어가듯 회전하며, 장막 너머로 자욱하게 어둠을 드리우고.
파아아아아앙!!
하늘을 가린 어둠이 걷히면서 새벽에 가까워진 하늘이 모습을 드러냈다.
일렁이는 장막 위로 옮겨붙은 천화만리향의 불길과 새벽 하늘 사이로 은은하게 반짝이는 별빛.
어둠의 누각을 뚫고 추락한 레녹의 신형이, 구름 사이로 떨어지며 불꽃을 피운다.
가비행이 휩쓸고 떠난 자리에 남겨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무수한 죽음의 형상.
마지막 순간까지 명이 남긴 배려인지, 말하지 않았음에도 이미 알고 있던 것인지.
“…….”
모든 것이 끝난 관문도시의 폐허를 내려다보는 레녹의 표정은, 말할 수 없는 착잡함으로 물들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