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155
인파 속에 섞인 그의 모습이 순식간에 모습을 감추고, 사람들 사이로 녹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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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아앙!!
전음능력을 끊자마자 이리나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주먹을 책상을 부서져라 내리찍는 것이었다.
싸늘한 살기가 어린 그 한방에 그녀를 지켜보던 다른 탐사단원들은 입조차 열지 못했다.
“그 새끼야. 확실해.”
이리나가 번들거리는 시선을 들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입을 놀리는 솜씨가 아주 예술이더군요. 분명 브룩도 그런 식으로 농락당하다가 죽었겠죠.”
“………..”
이리나는 브룩 파웰이 어떤 남자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녀가 행하는 ‘탐사활동’에 대해 어떤 의문도 내비치지 않으면서, 이제까지 충실하게 탐사단을 보조하는데 힘쓰던 믿음직한 동료.
불가피한 희생이 있을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그녀 대신 굳은 일을 도맡아 하는것도 주저하지 않았던 살림꾼이다.
만인의 앞에서도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연기할 수 있는 대담함과 몰입감.
그리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훌륭한 지성.
브룩이야말로 온갖 욕망과 이익의 혼돈이 몰아치는 경매장에서 그녀가 원하는 물건을 낚아채기 위한 적임자였을 터.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이 이렇게까지 흘러갔다면, 거기에는 합당한 이유가 있는법이다.
레녹이 품고 있는 심계의 깊이에, 브룩이 따라가지 못했다는 아주 단순한 사실이.
그녀가 그 모든 순간을 뻔히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조작계열의 마법을 사용하는 대신, 뻔뻔하게 전이능력을 사용하는 그 대담함.
마치 이리나 페스필드라는 탐사단장을 조롱하는 듯한 미묘한 언동.
겉으로는 발뺌하는 척 했지만, 그 의뭉스러운 말의 너머에서 그녀가 해온 행위들을 적나라하게 꼬집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 벌써부터 무지갯빛 보석에 숨겨져있던 전이능력을 알아차리고, 그것을 전투에서 사용할 정도의 판단력과 의지력까지…..
결코 쉽게 볼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지만, 오랫동안 두고 볼 수 있는 상대도 결코 아니었다.
시간을 오래 끌면 끌수록, 놈은 유물에 숨겨진 능력의 가치를 깨닫고 역으로 이쪽을 치러 오겠지.
그 전에 승부에 나서야했다.
외투를 챙긴 그녀가 방문을 박차고 성큼 걸어나왔다.
수십명에 달하는 탐사단원들이 말없이 그녀의 뒤를 따랐다.
“상대를 특정하는 일은 끝났어요. 이제부터 ‘준비’에 들어갑니다.”
이리나의 싸늘한 시선이 한바퀴를 돌아 그녀의 동료들에게 향했다.
“스폰서들에게 연락을 넣고, 자금을 지원받아서 제게 보고하세요. 필요한 물건을 이동금고에서 꺼내오고, 자리를 잡겠어요.”
한없이 믿음직스럽고, 또 듬직한 동료들.
하지만 그런 이리나의 심정과는 달리, 그녀와 눈을 마주치려는 이들은 많지 않다.
흔들리지 않는 조직력과 충성심. 하지만 그것을 뒷받침하고 있는 것이 단순히 그녀가 탐사에서 올리고 있는 막대한 실적 때문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채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사흘 안으로 모든 일을 마무리짓고, 발칸을 뜨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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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둣발을 몇번 두드리고 코트 자락을 정리한 뒤 레녹은 곧바로 걸음을 옮겼다.
손바닥에 닿는 장갑의 차가운 감촉을 느끼면서 천천히 유리문을 잡고 열었다.
언제부턴가 청바지 대신 구두와 셔츠 차림이 익숙해지기 시작했지만, 큰 불만은 없다.
이런 피비린내나는 거리에서 일을 하더라도, 격식있는 옷차림이 도움이 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널찍한 로비.
안내 데스크 뒤쪽에 큼지막하게 그려진 유려한 글자.
그동안 지겹도록 말을 들어왔고, 심지어 용병단원들과는 같이 일해보기도 했지만 직접 방문하는 것은 처음이다.
레녹은 이리나의 생각따위는 알지 못했지만, 그 역시 이 일을 오래 끌어서는 안된다는 걸 짐작하고 있었다.
그리고 뛰어난 마법사가 고심끝에 도출해낸 견적은, 산전수전 다 겪은 탐사단장보다 한발 앞서 있었다.
하루.
레녹은 오늘 모든 준비를 마치고 곧바로 승부를 걸 생각이었다.
준비 시간이 촉박하기 그지없다. 하루만에 모든 일을 레녹 혼자서 해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오늘 용병단을 방문한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로비에서 시시껄렁한 잡담을 하고 있던 용병 몇명이 레녹을 돌아보는 것이 느껴졌다.
그 시선을 무시하고 데스크에 앉아있던 직원에게 말을 걸었다.
“사람을 한명 불러줄 수 있나?”
직원은 레녹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곧바로 씩 웃었다.
“물론입니다. 딜런을 불러드리면 될까요?”
“………..”
이름을 말하지도 않았는데, 누굴 불러달라는지 알고 있었다는 말인가.
직원이 수화기에 손을 가져다대며 능청스럽게 말했다.
“49구역의 전격마법사를 모르면 용병단에서 일한다고 하면 안되겠죠. 로비에서 기다리고 계시면 곧바로 호출해드리겠습니다.”
레녹은 그 말을 듣고서야 마력을 돋구면서 주위에서 오가는 용병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그 마법사군. 여기는 무슨 일이지?”
“요즘 상당히 바쁘다고 들었는데, 목적없이 들리지는 않았겠지.”
“흠…. 한번쯤 같이 일해보고 싶은데, 실력을 볼 기회가 있다면 좋겠군.”
“아서라. 위험한 놈이야. 손속이 상당히 잔혹하다던데….. 밀라도 손을 내젓는데는 이유가 있겠지.”
“그딴게 어디있어? 일만 잘하면 장땡이지.”
“놈이 사용하는 마법에 대해 궁금해는 녀석들이 많아. 잘만하면 괜찮은 정보를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곳저곳에서 그에 대해서 수군거리는 대화를 들은 레녹이 말없이 뺨을 긁적였다.
경계와 호의가 복잡하게 섞인 시선.
거의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오가는 대화의 내용은 반이라는 마법사를 잘 알지 않고서는 결코 할 수 없는 말들이었다.
용병단 중에서도 일선에 서 있는 이들이 그의 얼굴을 알아볼 정도라면, 그래도 프리랜서로 일해온 시간이 마냥 헛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유명해지는 것이 마냥 좋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결국 레녹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조금이라도 더 명성을 쌓고 위로 올라가야 하지 않겠는가.
단지 일을 수주하는 프리랜서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용병단에게 일을 맡기기 위해 나와있는 지금처럼.
생각에 잠긴 사이, 로비 한쪽에 놓여있던 엘리베이터의 문이 벌컥 열리고 시끌벅적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반!!”
훤칠한 체격에, 얼굴의 조금도 내보이지 않는 괴상한 가면을 쓴 차림새.
온 몸에 덕지덕지 날붙이를 매단 꼬라지는 여전하다.
방정맞게 손을 흔들어대는 딜런의 모습을 본 레녹이 피식 웃었다.
딜런은 곧바로 근처의 자판기에서 음료 두개를 꺼내 하나를 레녹에게 던지면서 말했다.
당연하지만 레녹은 음료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
바닥에 떨어진 캔을 주워드는 레녹을 보며 딜런이 호들갑스럽게 어깨를 으쓱였다.
“오랜만이다. 내가 용병단에 놀러오라고 한지 1년이 넘어서야 얼굴을 비추는 건 무슨 심보야?”
“볼 일이 없었으니 찾아올 일도 없었을 뿐이야.”
“게다가 하필 찾아와도 이런 타이밍이라니…. 대장한테 널 소개시켜줄 생각이었는데, 어떻게 딱 출장을 가 있을때 찾아오는 거냐.”
“대장? 흠, 그건 확실히…. 아쉽기는 하군.”
소문으로만 듣던 안타레스의 얼굴을 한번 보고 싶었는데, 마침 또 자리를 비웠다니 운이 나빴다.
“대신 펠릭스가 자리를 지키고 있기는 한데, 한번 보고 갈래? 저번에 밀라랑 같이 식물원에서 만났다면서.”
딜런의 태연한 대답에 레녹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 여자가 그런 이야기까지 떠벌리고 다니는건가?”
“펠릭스가 말해주던데? 대장한테 언제고 꼭 한번 널 데려오고 싶다고 술자리에서 실컷 주절거리더군. 그 양반 생긴거랑은 다르게 굉장히 말이 많거든.”
“………..”
그 근엄한 새의 부리를 가지고 쉴 새 없이 떠들어대는 모습이 잘 상상이 가지는 않았지만, 레녹은 대충 납득했다.
생각해보면 식물원에서 그를 만났을때도 꽤 말이 많은 편이었지.
“그래서, 어쨌던 여길 찾아왔다는 건 볼 일이 있다는 말이잖아. 한번 얘기해보라고.”
“어려운 일은 아니야. 쓸만한 전위를 둘 정도 찾고 있다.”
“호오…. 네가 전위를 찾고 있다니, 이건 좀 놀라운데.”
레녹의 말을 들은 딜런의 목소리가 진중하게 변했다.
다른 사람들이라면 몰라도, 딜런은 레녹에 대해서 꽤 자세하게 알고 있는 부분이 많았다.
그가 레녹과 여러 번 호흡을 맞춰본 것은 물론이고, 심심하면 제니의 술집에 찾아와서 시간을 때우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레녹은 단지 혼자 움직이기를 원해서 혈혈단신으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와 함께 했던 첫 의뢰. 크로켄 아실러스를 상대했던 공장에서는 그럭저럭 합을 맞춰가며 싸우지 않았던가.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와는 달리 그는 생각보다 그렇게 팀플레이를 싫어하지는 않는다.
단지 그와 그동안 함께했던 팀원들이 이런 저런 사정으로 나가떨어지고 혼자 일을 해결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
하지만 그럼에도 별다른 일이 없다면 그냥 주어진 환경에서 스스로의 능력만으로 일을 처리하는 것을 선호했던 레녹이, 먼저 이렇게 일을 함께 할 동료를 찾아나서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 틀림없었다.
딜런의 말에 레녹이 어깨를 으쓱였다.
“뭐….. 일단 한대 피워도 되나?”
“어…. 실내흡연이 되던가?”
갑자기 갈팡질팡하는 딜런을 본 레녹이 막 꺼내려던 연초를 집어넣고 고개를 흔들었다.
“앉아서 얘기하지.”
레녹은 그렇게 말하면서 자연스럽게 그를 이끌고 로비 근처의 개인실로 들어갔다.
“흠, 네가 손님인거 맞지?”
개소리를 지껄이는 딜런을 무시하고 손가락을 튕겨 근처의 소음과 간섭을 차단한다.
레녹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알아차린 딜런의 목소리가 살짝 변했다.
“이렇게까지 하는걸 보니까 진짜 큰 일인가본데…..”
“………..”
역시, 허구한 날 제니에게 두드려맞는 것처럼 보여도 딜런의 실력은 진짜다.
레녹이 조작하는 마력의 낌새를 알아차리고 분위기를 눈치챌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의 마력감응력이 어느정도인지 짐작이 간다.
예전에는 아는 것이 없었고, 또 혼자 살아남기에도 급급했기에 제대로 눈치채지 못했지만.
그 크로켄 아실러스와 맞붙어서 목숨을 부지했다는 것 자체가 딜런의 실력을 증명해주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오히려 그의 실력에 비하면 받는 수임료가 터무니없이 싸 보일 정도로.
레녹이 괜히 그를 찾아온 것이 아니다.
딜런 오케이시는 레녹이 그동안 만난 무수한 전위들 중에서도 세손가락 안에 꼽히는 강력한 전사였다.
격돌 (1)
거기에다 적지 않은 시간을 보아오며 쌓아온 신뢰와 의심가지 않는 행적.
안타레스 용병단이라는 그럴듯한 간판까지.
실력과 신뢰도, 호흡과 성격이나 인성과 같은 다양한 면모를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그보다 나은 전력을 찾아보기는 힘든 일이다.
그나마 테러조직 팔시온을 소탕하는 과정에서 함께했던 첸과 같은 이들이 레녹의 기준에 부합할 정도.
하지만 그쪽은 사업준비로 한창 바쁜 모양이니 레녹도 굳이 연락을 해보지는 않았다.
레녹은 주위로 소리가 새어나가지 않는 것을 한번 더 확인한 뒤에 곧바로 그동안 있었던 일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그에게 대천사의 연민 유물 일부를 가지고 있다고 말할 필요까지는 없더라도, 일단 탐사단과 대립하게 된 경위를 설명하지 않으면 협조를 구하는 것도 불가능해질테니.
이야기를 듣는 사이 딜런의 기색도 점점 진중하게 변했다.
“으음…..”
얼굴을 완전히 뒤덮은 가면을 긁적인 딜런이 손에 쥐고 있던 캔커피를 흔들면서 말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아라샤크 탐사단과 한판 벌일 생각이라는 얘기잖아.”
“아니, 사실상 이미 시작했다고 봐야겠지.”
“저쪽에서는 반 네가 상대인지 모르는 상황이라는 거고.”
“그렇게 생각하기는 하지만…. 언제 발각되도 이상하지 않다는거지.”
레녹의 대답을 들은 딜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확실히 위험하기는 하겠군.”
“위험하다고?”
“네가 아니라 제니쪽이. 경매장에서 함께 있었다며?”
“……….”
딜런은 말문이 막힌 레녹을 보면서 말을 이었다.
“발칸 밖에서 활동을 이어온 탐사단이 브로커를 건드리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을테니까. 어차피 놈들 입장에서는 발칸에서 볼일만 해결하고 빠져나가면 그만이잖아. 그러면 브로커를 건드리지 않는다는 불문율을 지킬 필요도 없는 셈이지.”
“음…..”
틀린 말은 아니다.
아니, 따지자면 레녹 역시 알고 있었음에도 그동안은 크게 생각하지 않아왔던 문제였다.
엄밀히 말하자면 그동안 있었던 의뢰들을 해결하는 과정은 철저하게 고객과 손님의 관계였고, 자기 한 몸을 건사하는 것 역시 알아서 해야 할 영역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탐사단의 위협은 순전히 레녹의 개인적인 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리스크고, 그걸 제니의 술집이 온전히 짊어지는 것은 온당치 못한 일이었다.
복잡한 표정으로 변한 레녹의 얼굴을 바라본 딜런이 웃으면서 어깨를 두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