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166
“이 열차가 자치령에 순탄하게 도착할 가능성은 굉장히 낮아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쪽의 협력을 부탁하고 싶어요.”
“……….”
보상을 먼저 내밀고 용건을 말한다. 때로는 꽤 효과적인 협상방식이 될 수 있지만, 적어도 지금 상황에 어울리는 방식은 아니었다.
이런 식의 협상에 능숙하지 못한 것으로 보니 음지 쪽 일을 겪어보지 못한 것은 확실해보였다.
지금 할 말을 위해서 나름대로 이것저것 준비를 해왔겠지만, 레녹이 보기에 어딘가 어설프게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말하는 말은 결국, 처음부터 흘려넘길 수 있는 일은 아니었던 셈이다.
레녹은 멍하니 연초를 피우다가 한숨을 푹 내쉬고 물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군요. 갑자기 이 열차가 폭발하기라도 한다는 겁니까?”
“정확해요. 가만히 놔두면 비슷한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죠.”
카시아는 가면 너머 투명한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며 대답했다.
“오늘 오전 2시를 기점으로, 발칸 외곽지역을 순환하던 모든 드론과 정찰전력이 긴급점검에 들어갔어요. 발칸과 필레놈 자치령을 잇는 고원을 감시하는 눈이 꺼지면, 수배령이 붙은 무법자들이 자유롭게 날뛸 가능성이 높아지죠. 비공식 루트를 사용하는 열차는 표적이 될 수 밖에 없어요.”
“……….”
“토이나 연구소에서 정찰대의 장비를 신형으로 교체해주겠다는 명분으로 저지른 일이라, 저도 우…연히 정보를 입수하게 되었어요. 아마 그쪽도 알기는 쉽지 않았을거예요.”
토이나와 바일라 연구소. 레녹은 그 두개의 이름을 모두 들어본 적이 있었다.
라바테논 대학에 기술지원을 하는 주요 연구소들 중 하나. 아리스의 일을 도와주며 바일라와 토이나의 이름을 모두 본 적이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경쟁관계에 있는 토이나에서 그녀의 움직임을 깨닫고 방해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저지른 공작일까.
카시아의 태도는 그걸 숨기기에는 조금 서툴렀지만, 레녹이 아니라면 그 인과관계를 짚어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 그 순간 무방비하게 움직이는 목표물이 있다면 분명….”
그 이상은 더 들을 필요도 없는 이야기였다.
“그 이야기를 처음 보는 제게 먼저 꺼내는 이유는?”
“간단해요.”
카시아가 웃었다.
“당신은 틀림없이, 내가 본 마법사들 중에서도 손에 꼽힐만큼 노련한 사람일테니까.”
열차 (2)
노련하다, 라…….
언뜻 듣기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어보이는 수식어지만, 레녹으로서는 결코 흘려들을 수 없는 말이다.
그건 어떻게 보면 레녹이라는 마법사를 가장 잘 나타내는 말이 틀림없을 테니.
하지만 레녹은 그 말에 당황하는 대신 여유롭게 웃었다.
단 한순간도 스스로의 모습을 숨기는 일에 소홀해 본 적이 없었으니까.
단순히 외견을 바꾸고 마력패턴을 변형시키는 것을 떠나, 피부의 질감과 쓰는 향수까지 바꿔가면서 완전히 다른 사람을 연기한다.
생사를 오가는 전투중에도 단 한번도 드러나지 않은 본질을, 고작 연구소 출신 마법사가 훔쳐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만약 레녹의 외견에서 그의 비범함을 느꼈다면, 그건 그의 재능이나 정체를 깨달았기 때문이 아니라 다른 요소들 때문이겠지.
“재밌군요.”
그 대담한 추리와 과감한 언동은 언뜻 무례하게까지 들렸지만 레녹은 거기에서 오히려 호감을 느끼고 있었다.
어리숙한 거래방식과 사람을 대하는 태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법사다운 날카로운 직관과 판단능력을 겸비하고 있다.
동시에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주저하지 않고 협력을 구하는 그 당당한 태도가 레녹이 아는 몇몇 프리랜서들과도 얼핏 겹쳐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를 들을 수 있겠습니까?”
카시아가 곧바로 대답했다.
“뭐, 어려운 일은 아니었죠……. 일단 제 감지에 걸리는 생명반응이 상당히 흐릿해요. 일단 이게 첫 번째.”
“…….”
“엄연히 제 눈앞에 앉아 있는데도 기척을 느끼기 쉽지 않다는 건 그만큼 마력조작에 숙련되어 있는 마법사거나, 혹은 그만한 아티팩트를 손에 넣고 있을 만한 실력자. 이것만 봐도 뻔하죠.”
“두 번째는?”
“당신이 피고 있는 그 연초.”
카시아가 웃었다.
“플럼버 과수원의 물건이죠? 나도 알아요……. 왜냐면 내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비슷한 물건들을 이것저것 알아보고 다녔으니까.”
아픈 몸에 필요한 진통제를 찾기 위해서 마약성 연초를 찾아다녔다는 말인가.
바일라가 일종의 희귀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놀랍지는 않았다.
“거기에 그 연초는 틀림없이 레드 스칼렛……. 재수 없는 영감탱이가 만들기 어렵다고 허구한 날 투덜거리는 상당한 고급품이죠. 손님을 가려 받는 그 영감의 성격을 생각해 보면, 그 물건을 받은 당신 역시 상당한 실력자일 수밖에.”
“…….”
플럼버의 과수원……. 레녹은 빠르게 기억을 떠올리고 납득했다.
그때 식물원에서 안타레스 용병사무소를 만났던 것을 생각하면, 아마 양지와 음지를 가리지 않고 그의 물건들이 인기리에 시중에 나돌고 있는 모양이다.
그런 와중에 그의 손님들 중 카시아가 있다고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다만 레드 스칼렛이라는 물건을 알아보고 레녹의 신분을 집중하여 추리하는 그녀의 안목 역시 평범한 수준은 아니라는 말이겠지.
한없이 가벼워 보이는 노인이 드문드문 던지던 의미심장한 말들을 생각하면 아마 과수원의 노인도 평범한 인물은 아닐 터.
언젠가 그 영감과도 따로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고 생각하고는 있었지만, 일단 지금 해야 할 일은 아니었다.
레녹은 거기까지 듣고 슬쩍 웃었다.
입에 물고 있던 연초를 손가락 사이에 끼운 그가 천천히 대답했다.
“아주 날카로운 판단력이군요. 과연 바일라 연구소장님을 일선에서 모시는 분 답습니다.”
“…….”
이번에는 그녀가 입을 다물 차례였다.
어렵게 돌아서 레녹의 재능을 유추해낸 그녀가, 이 자리에서 역으로 정체가 까발려지는 순간의 표정은 꽤 볼만했다.
가면 아래쪽으로 희미하게나마 보이는 그녀의 입꼬리가 파들거리며 떨리는 것이 보였다.
“유, 유감이군요. 나는 그런 사람 누군지…….”
그녀는 순간 평정심을 잃고 발뺌하려 했지만, 곧바로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것을 깨닫고 고개를 푹 숙였다.
대신 날카로운 마력을 천천히 흘리기 시작했다.
위잉……!!
“……당신, 정체가 뭐죠? 날 노리고 온 건가?”
이해할 수 없는 반응은 아니었다.
“뭔가 착각을 하고 계시는 것 같은데.”
하지만 레녹은 그 예민한 반응에 고개를 살짝 기울이면서 말했다.
“그쪽이 먼저 말을 걸지 않았다면 저도 굳이 이런 대답을 드릴 필요는 없었을 겁니다.”
“그건……!”
“굳이 서로의 정체를 떠보는 듯한 말을 하다가 역으로 허를 찔릴 일도 없었겠죠.”
막상 먼저 말을 건 것도, 귀찮아하는 기색의 레녹을 대화에 이끌어낸 것도 모두 카시아 그녀였으니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심지어 재능과 관련된 사고관을 꺼내 들면서 억지로 대화를 이끌어나가려고 했던 것 역시 그녀였다.
“…….”
“아까는 비공식 루트를 사용하는 열차가 표적이 될 수밖에 없다고 했지만, 그쪽의 소속을 생각하면 결국 이건 연구소 간의 알력싸움……. 거기에 바일라 연구소장의 건강까지 연관되어 있는 정치공작이겠군요.”
대번에 핵심을 찌르는 레녹의 말에 카시아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도대체 그걸 어떻게…….”
그 대화에 종지부를 찍듯이 레녹이 말했다.
“걱정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제가 자치령으로 향하는 이유는 그쪽의 개인적인 사정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을 테니까.”
“……당신, 생각보다 훨씬 더 위험한 사람이군요.”
결국 서순의 문제다. 먼저 레녹에게 협력을 요청한 그녀가 이제 와서 레녹을 의심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한숨을 내쉰 카시아가 말했다. 하지만 아직 평정을 되찾지는 못했는지 손끝이 희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어쨌든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게 전부예요. 가능한 빨리 결정을 내려주시면 좋겠네요. 다른 사람들에게도 협력을 요청할 수 있는지 확인하러 가야 해서…….”
“그럴 필요는 없을 겁니다.”
“예?”
“지금 이 열차에 탄 사람들 중에서 그럴듯한 전투능력을 가진 사람은 우리 둘뿐이니까요.”
레녹은 열차에 들어서기 전부터 내부의 승객들을 모조리 확인하고 위험을 가늠해 왔다.
여기서 그나마 전투다운 전투가 가능한 건 온몸을 기계로 대체한 사이보그 하나와 중절모를 쓴 신사. 그리고 열차 가장 뒤쪽 칸을 혼자 차지하고 앉아서 코를 고는 거너 하나 정도.
그리고 그 셋에게서 느껴지는 마력이나 기세는 그리 인상적이지 못했다.
“차라리 제게 가져오신 아티팩트를 전부 넘겨주고, 일의 해결을 부탁하는 게 나을 수도 있겠군요.”
“이봐요, 당신의 직관이 굉장히 날카롭다는 건 알겠지만-”
심드렁한 레녹의 얼굴을 보고 발끈한 카시아가 뭐라 쏘아붙이려던 찰나.
구우웅!!
열차 뒤쪽에서 무언가 둔중한 충격음이 울려 퍼졌다.
운행을 직접적으로 방해할 만큼 가까이서 들려온 것은 아니지만, 한창 철로를 내달리고 있는 지금 결코 우연일 리 없는 소음.
“…….”
두 마법사가 약속이나 한 것처럼 동시에 마력감지를 활성화시켰다.
먼저 그 소음의 정체를 깨달은 레녹이 얼굴을 찌푸리고, 카시아가 안색을 하얗게 물들였다.
“이건……”
레녹이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아무래도 그쪽이 걱정했던 친구들이 도착한 모양입니다.”
열차가 달리는 반경 수 킬로미터.
서른 개가 넘는 기척이 빠른 속도로 접근하고 있었다.
접근 속도가 일정하면서도 평균적으로 균일하게 유지되는 것을 보아 아마 바이크나 자동차를 이용한 추격.
이 시간에 자치령으로 가는 열차가 운행 중이라는 것을, 그리고 정찰대가 자리를 비웠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서는 결코 보일 수 없는 단체행동이다.
레녹이 필레놈 자치령으로 향한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약선과 제니, 그리고 조든 세 명뿐인 데다 출발하기 한참 전부터 신분을 바꾼 상황.
거기에 열차를 안내한 등이 굽은 남자에게도 작전 직전에 연락이 갔다는 것을 생각하면 정보가 유출되었을 가능성은 한없이 낮다.
그렇다면 지금 열차를 추적해 오는 이들이 노리는 목적은 레녹이 아니라, 바로 그의 옆에 앉아 있는 동승인 때문이겠지.
카시아 역시 비슷한 생각인 듯 난처한 표정으로 어깨를 떨었다.
지금이야 마력감지능력이 뛰어난 마법사 두 명만이 눈치를 챈 상황이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승객들도 슬슬 추적이 붙었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될 터.
결국 누군가는 나서서 상황을 해결해야 했다.
“하아……”
이런 일에 손을 거들어야 한다는 게 짜증이 나지만, 결국 이러쿵저러쿵해도 열차가 무사해야 자치령에 도착하지 않겠는가.
심지어 이 열차가 운행하는 주기는 한 달에 한 번.
오늘 이 순간을 놓쳐버리면 발칸에서 다시 손가락을 쪽쪽 빨고 있어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카시아의 사정이라고 손을 놓고 있다가 열차가 망가져 버리는 건 본말전도였다.
필터만 남은 연초를 비벼끄면서 레녹이 말했다.
“일단 기관사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열차 속도를 올려달라고 전해주세요.”
“네?”
“무슨 일이 있어도 열차를 멈추지 말라고도 말해주고, 돌아와서 손을 거들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레녹은 그렇게 말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머지는 제가 일단 손을 써보죠.”
“……알겠어요. 최대한 빠르게 처리하고 돌아올게요.”
다행히 그녀는 레녹이 하는 말의 의미를 곧바로 알아듣고 빠르게 열차 앞칸으로 향했다.
레녹은 가타부타 말을 덧붙이는 대신 열차 가장 뒤쪽 칸으로 걸음을 옮겼다.
드르륵!!
텅 비어 있는 낡은 객실.
이런 소란 따위는 아무것도 모르고 태평하게 곯아떨어진 털보가 하나 보인다.
그의 발치에 놓여 있던 큼지막한 라이플 케이스를 확인한 레녹이 주저하지 않고 그것을 집어 들었다.
레녹이 일부러 기척을 돋구고 접근했는데도 아직까지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것으로 보아 그리 실력 있는 총사는 아니다.
차라리 레녹이 직접 집어 들고 사용하면서 적당히 신분을 감추는 용도로 사용하는 게 훨씬 나으리라.
털보의 맞은편에 앉아서 태연하게 라이플 케이스를 손에 쥐었다.
케이스에 달린 보안장치가 레녹을 막아 세웠지만, 다비를 불러내자 2초 만에 해킹을 완료하고 케이스를 열어젖혔다.
“흠…….”
[그래도 거너답게 꽤 좋은 물건을 들고 다니는군요.]레녹의 어깨 위에 내려앉은 다비가 하는 말대로, 케이스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 물건은 예상보다 상당히 좋은 물건이었다.
원래는 스나이퍼 라이플로만 사용되는 물건을 시가전에서도 사용할 수 있도록 개조를 거친 듯했다.
스크린이 떠오르는 스코프와 생체인식 시스템이 달려 있는 손잡이, 다양한 방식의 레이저 포인터가 탑재된 라이플은 털보가 자신의 무기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실감 나게 했다.
새하얀 상아빛의 데코레이션이 커스텀된 정성스러운 장식까지 확인한 레녹이 뺨을 긁적였다.
“쓰고 버릴 생각이었는데…… 곱게 돌려줘야겠군.”
레녹은 다른 사람의 아티팩트나 유물을 주워 사용하는 걸 즐기는 편이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아무런 잘못 없는 사람의 물건까지 빼앗아 버릴 만큼 날강도는 아니었다.
잠깐 사용하고 돌려주는 정도라면 충분하겠지.
“다비, 생체 인식코드 풀어줘.”
[확인했습니다.]레녹이 상아색 라이플의 손잡이를 움켜쥐는 것과 동시에 스크린에 떠오르던 붉은 빛이 순식간에 녹색으로 변하고.
철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