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188
약먹는 천재마법사 188화
플랜트(2)
두 명의 마법사가 동시에 서로를 향해 손을 휘저었다.
콰아아아앙!!
아무런 전조도 없이 쏘아진 형광색의 불길이 거인의 손처럼 펼쳐지며 레녹이 있던 자리를 통째로 움켜쥐었다.
지면을 불사른 불길이 끊기질 않고 그대로 회전하며 솟아올라 거대한 불기둥을 그린다.
레녹은 담담하게 실드로 몸을 보호하면서 한발짝 뒤로 물러나 그 풍경을 바라보았다.
청년이 뻗어낸 불기둥은 힘을 다해 사라지는 대신, 오히려 그 안에서 새로운 생명을 태동시켰다.
[그오오오오!!!]불기둥의 중심에서 화염의 파도를 가르고 3미터가 넘는 형광색의 거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거인이 레녹을 노려보면서 기괴한 울음소리를 한껏 내뻗었다.
레녹 역시 손안에서 불길을 일으켜 그대로 땅에 내리찍었다.
재가 풀풀 날리는 지면에서 거대한 불의 장벽이 몸을 일으키는 것과 동시에.
거인이 내지른 형광빛의 주먹이 격돌했다.
콰아아아아앙!!
퍼져나가는 충격파에 이질적인 형광빛이 섞여 나왔다.
두 갈래의 불길이 부딫히면서 있을 수 없는 파육음이 들려온다.
원래라면 물리력을 띄지 않아야 할 불길은, 마법사의 의지와 술식이라는 틀 안에서 기존의 물리법칙을 벗어난다.
아마 바로 이것이 속성계열 고유마법이 가지는 특징 중 하나겠지.
단순히 토르번 학파의 고유마법만 연구하고 있을 때는 알 수 없었지만, 블레이버 마탑의 고유마법까지 손에 넣은 레녹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하는 게 아닙니다.”
“……뭐라고?”
“단계를 밟아가면서 천천히 전개하셔야죠. 처음 시작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까?”
[작염구(炸炎球)] [사중화(四衆化) – 공명(共鳴)]화르륵!!
네 개의 화염구가 레녹의 양 손에서 떠오르며, 동시에 해체되어 네 갈래 불길로 변한다.
순식간에 거인을 중심으로 동서남북 사방위를 점하고 한 점으로 회전하며 수렴하는 거대한 나선을 그렸다.
[진화(鎭火)]파아아아!!
네갈래 불길이 공명하면서 일으키는 강렬한 파동이 거인의 전신을 좀 먹기 시작하자 뒤이어 처절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오오오오오오!!]불길을 진압하는 불길. 레녹의 화염이 청년이 불러낸 거인을 태워내면서 서서히 그 존재를 짓누른다.
거인이 허우적거리면서 주인을 찾아 헤맸지만, 청년은 자신의 작품에 오래 미련을 두지 않을 모양이었다.
첫 공방이 어긋났다는 것을 깨닫자마자 미련없이 거인을 버리고 새로운 불길을 일으켜 레녹에게 쏘아내기 시작한 것이다.
두두두두!!
허공을 격하고 쏘아지는 십수 갈래의 길쭉한 화염.
채찍처럼 사방을 할퀴면서 동선을 제압하고 짓쳐들어오는 그 모습에 레녹 역시 다시 한번 화염구를 뽑아 들었다.
화염의 채찍이 휘둘러지는 모든 공간에 절묘하게 틀어박힌 레녹의 화염구가 일제히 폭발하면서 다시 한번 불의 장막을 만들고.
커튼처럼 넓게 펼쳐졌던 장막이 회전하면서 휘감겨 거대한 불의 창을 그린다.
반대로 청년이 쏘아낸 수십 발의 화염채찍은 넓게 퍼져나가며 거대한 화염의 그물로 변했다.
[회염(廻炎)] [화망(火網)]콰아아아앙!!
끊임없이 몰이치는 화염의 폭풍 속에서 두 마법사가 쉬지 않고 손을 놀린다.
투사하는 마력과 의지에 맞춰서 한번 쏘아낸 불길은 사그라드는 일도 없이 계속해서 형태를 바꾸고 몸집을 부풀린다.
쿠오오오오-!!!
색이 다른 두 갈래의 불길이 노을 진 하늘을 이리저리 휘저으면서 유린하고 창공의 색깔을 바꾸어나갔다.
화염계열 고유마법은 한 번의 시전을 통해서 최대한의 위력을 뽑아내는 전격계열 마법과는 궤가 다르다.
한번 쏘아낸 불길은 쉬이 사라지는 법이 없고, 불꽃이 떠난 자리에도 열기는 남아 있기 마련.
이미 투사한 마력에 다시 마력을 더하고, 거기에 다시 의지를 더한다.
한번 불꽃으로 변한 마력은 손끝에서 흘러나오는 일 없이 계속해서 위력과 범위를 넓혀가고.
마법사의 역량이 닿는 그 순간까지 팽창과 증폭을 계속한다.
끊임없이 성장하고 폭발하는 불꽃의 성질.
블레이버 마탑의 고유마법은 바로 이런 성정과 효율성을 극대화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었던 것이다.
화염구와 불길의 채찍으로 시작했던 두 사람의 불길은 어느샌가 거대한 불꽃의 파도로 변해 사방에서 넘실거린다.
전혀 다른 두 색을 띄는 수십미터의 불바다가 플랜트를 사이에 두고 출렁이며 몰아쳤다.
무아지경으로 이어지는 공방속에서, 환희로 가득 차 있던 청년의 얼굴은 무참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어떻게, 어떻게…… 이건 말도 안 돼. 어떻게 네가 감히 나와 마법으로 손을 섞을 수 있다는 말이냐……!!!”
단 한 번도 같은 수준이라 생각해 본 적이 없던 상대.
마법적 성취를 끌어올리기 위해 약에 손을 대고도 같은 마탑의 사제조차 죽이지 못하는 심정은 어떨까.
레녹은 그 공허한 감정에 대답하는 대신, 마력을 조작하는데 집중했다.
바이젠과는 어울리지 않는 사고능력을 여러번 보여주고, 믿을 수 없는 마법의 성취를 연달아 선보이고 있음에도 청년이 레녹의 정체를 의심하지 않는 이유는.
바로 레녹이 마법을 사용하는 모든 순간마다 바이젠의 마력패턴을 흉내 내고 있었기 때문이었으니.
같은 마탑 내부에서도 안면이 있을 정도라면 서로의 마력패턴 정도는 눈에 익은 상태일 터.
그렇기에 청년은 누군가 바이젠으로 변장했다고 생각하기보다는, 바이젠이 지금까지 이빨을 숨기고 있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콰아아아아아!!
넘실거리는 불바다.
하늘과 땅이 노을과 화염으로 제각기 붉게 타오르고.
한도를 뛰어넘는 온도 속에서 바짝 메마른 흙이 열기를 이기지 못하고 증발하기 시작한다.
사방으로 마력을 휘젓는 두 마법사를 중심으로 조금씩 지반이 가라앉아 간다.
지면의 높이가 조금씩 낮아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청년의 안색이 더 처참하게 구겨져 간다.
“사형, 겁이 나십니까?”
레녹이 웃었다.
그는 단 한 번도 스승이나 사형 따위를 두어본 적도 없었지만, 생전 처음 보는 사형을 놀리는 재미는 쏠쏠했다.
“그야 그렇겠지요. 제 추측대로라면 이 플랜트의 지하에는 사형이 목숨을 걸고 숨겨야 할 마약공장이 숨어 있을 테니 말입니다.”
“……닥쳐라.”
“사형의 팔다리를 자르고 단면을 지져놓은 다음, 그대로 마탑으로 끌고가 당신의 만행을 낱낱히 고할겁니다. 저희 자랑스러운 블레이버 마탑에서, 감히 복마전과 결탁하려는 배신자가 나왔다고 말이지요.”
“흐흐…… 넌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군.”
청년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 애써 힘겹게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이 모든 일이 정녕 나 혼자서 가능했을 거라고 생각하느냐? 네게는 진실을 엿볼 자격조차 없다. 단지 그것뿐인 것을.”
“…….”
역시,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하지만 내심 깔보고 있던 사제가 쉴새없이 던지는 도발에 반응하지 않기란 힘든 법이다.
자기도 모르게 블레이버 마탑의 비밀을 술술 불어대는 청년의 모습을 본 레녹이 씩 웃었다.
“그것참, 마음에 드는 대답이군요.”
레녹은 생면부지의 마탑에는 아무런 미련도 연민도 없다.
정황상 블레이버 마탑이 마약왕과 뒤에서 손을 잡은 모양인데, 여기서 오히려 레녹이 마탑의 전령을 자처하면서 마약왕을 배신하는 척 한다면 놈의 시선이 어느 쪽으로 쏠릴지는 뻔한 일이었다.
설령 이 자리에서 마약왕의 계획을 파훼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놈이 가진 자산과 칼날은 곧바로 다른 방향을 향하리라.
“하지만 그 전에, 누가 정녕 정진정명한 불의 계승자인지를 증명하도록 합시다.”
양쪽 팔을 크게 휘젓는 것과 함께 사방의 불길이 거대한 음률을 이루며 출렁인다.
아주 작은 불꽃에서부터 번져나가 온 지상을 불태우는 이 강력한 범위마법의 힘.
숨을 쉬기만 해도 지상을 휩쓸어버리는 이 강대한 화염의 숨결은, 레녹이 이미 바이젠을 아득하게 뛰어넘었다는 증거.
아이러니한 일이다.
평생을 블레이버 마탑에 충성하고 연구에 전념하던 어린 천재들보다, 땅바닥을 구르며 먼지를 들이마시던 레녹에게 마법의 진리가 더 가까이 있다는 적나라한 진실은.
그를 제외한 다른 모든 이들에게 처절한 흉터를 남긴다.
오른 손을 위로 치켜들고, 검지와 중지를 구부려 비틀었다.
간단한 수인과 레녹의 강대한 의념이 어우러지는 순간, 레녹을 감싸안고 있던 불길이 청년을 중심으로 회전하며 거대한 불의 고리를 그리기 시작했다.
바이젠이 지식으로나마 알고 있던 가장 강력한 화염계열 고유마법이 이 자리에서 떨쳐울렸다.
실체가 존재하지 않았어야 할 형광색의 불길을 공간째로 제압하고 숨통을 조여들어간다.
“끄, 으으으으으으으으!!!! 이럴 수는 없어어어!!!”
그제서야 청년은 레녹이 아직까지도 여력을 남겨두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절규했다.
[육진홍(六進紅)]청년 역시 불길을 여섯 갈래로 쪼개 사방으로 내뻗는 고유마법을 사용해서 어떻게든 반항하려고 했지만, 불의 고리가 멈추는 일은 없었다.
“약을 사용해서 마법의 위력 자체는 끌어올린 모양이지만, 지속성이 엉망입니다. 아마 머릿속을 휘젓는 약기운 때문에 집중력이 툭툭 끊어지기 때문이겠죠.”
강력한 위력과 이질적인 색 때문에 현혹되기 쉽지만, 단순하게 말하자면 억지로 호흡을 당긴 탓에 출력 자체는 높아도 도중에 흐름이 툭툭 끊어지는 셈이다.
이와 같은 부작용은 평소에는 티가 잘 나지 않을지 몰라도, 비슷한 수준의 술사들끼리 마력을 조작할 때는 치명적인 단점으로 작용한다.
아마 청년 역시 이러한 사실을 모르지는 않았을테지만, 설마 바이젠이 이렇게까지 그를 몰아붙일 거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것이겠지.
레녹 역시 그렇기 때문에 정신에 영향을 주는 약은 어떤 상황에서도 피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그를 묶어두고 있는 굴레는 정신이 아니라 육체쪽에 있기에 더더욱.
한번 기세가 밀리기 시작한 순간부터 걷잡을 수 없다.
플랜트의 농장을 불태우며 땅까지 증발시키던 불바다는 어느새 자취를 감추고, 레녹이 휘두른 불의 고리가 끊임없이 청년을 짓눌렀다.
거의 완벽하게 승기를 잡은 것처럼 보이는 순간에도 레녹은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저 정도 마력을 지닌 마법사가 약의 힘을 빌려 도달하고 싶었던 경치는, 고작 이런 풍경이 아닐 테니까.
다급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본 청년의 얼굴에 비틀린 결심이 서린다.
품 안을 뒤적이던 청년의 손끝에 매달린 약 세 봉지를 확인한 레녹이 조용히 마력을 가다듬었다.
“하아, 하아, 하아……!!! 하아아아아아아아악!!!”
가루약 세 봉을 자신의 눈과 코에 쑤셔 박은 청년의 눈동자가 그대로 뒤로 뒤집히면서 입에 거품을 물었다.
당장이라도 의식이 날아갈 것처럼 아슬아슬한 표정이지만, 반대로 그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형광색의 불길은 그 크기와 위력을 더해간다.
그 직후, 그의 몸을 중심으로 뿜어져나오는 무채색의 파동이 사방을 묵직하게 내리누르기 시작했다.
6레벨의 술사들 중에서도 선택받은 이들만이 손에 넣을 수 있다는 자성영역.
뇌를 짓무르는 마약을 다발로 흡입하고 나서 청년은 마침내 그 영역에 발을 들이민 것이다.
“아하하, 하하하핫!!! 아하하하!!! 드디어……!!”
환희에 찬 표정으로 웃음을 터트리는 청년의 얼굴은 눈물과 콧물이 줄줄 흘러내려 그 모습을 제대로 알아보기도 힘들었다.
자성영역이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것과 동시에 그의 주위에서 흘러나오는 형광색의 불꽃이 거세게 타오르기 시작하고.
그 시점에 맞춰서 레녹이 정확하게 품안의 물건을 향해 손을 뻗었다.
이리나 페스필드의 유품이자, 이제는 레녹의 손에 온전하게 들어온 고대 유물.
대천사의 연민이 코트 안에서 찬란한 무지갯빛으로 번뜩였다.
“다비.”
놈이 수세에 몰리면 뒷일을 생각하지 않고 약을 처먹을거라는 것 정도는 짐작하고 있었다.
같은 약쟁이의 마음을 그가 아니면 도대체 누가 알아줄까.
단순하게 힘싸움으로 흘러가면 레녹이 패배하는 일은 없겠지만, 그 과정에서 적지 않은 시간이 소모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건 레녹이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그래서 억지로 심리전을 걸고, 일부러 태염륜과 같이 포위가 가능한 마법을 사용해서 수세에 몰아넣은 다음 놈이 자성영역을 전개하게 만들었다.
자성영역을 전개하기 위해 필요한 강력한 의념과 방대한 마력.
그 모든 것이 일순 외부로 뻗어나가는 한순간의 빈틈을 노리기 위해서.
레녹이 꺼내든 아이템을 다비가 확인하고, 허공을 향해 힘껏 휘두르는 순간 대천사의 연민을 발동시킨다.
다비의 알고리즘을 활용한 강력한 연산능력과, 유물이 가진 마력을 사용하지 않는 전이능력.
그리고 상대의 빈틈을 정확한 순간에 포착한 레녹의 판단이 어우러져 두 사람 사이에 있는 모든 불꽃과 방벽을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푸욱!!
발광하는 청년의 앞에서 나타난 무언가가, 휘둘러진 속도 그대로 가슴팍에 꽂혀 들어간다.
“……!!!!”
청년의 몸이 번개라도 맞은 것처럼 한차례 크게 떨리고,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반쯤 뒤집혔던 눈동자로 보이는 시선의 너머.
날이 비틀린 단검 한 자루가 그의 심장을 찌르고 있었다.
타앙!
그 직후 레녹이 꺼내든 리볼버의 탄환이 정확하게 단검의 손잡이를 때리고.
푸욱!
날끝이 등 뒤로 튀어나오는 것과 동시에 그의 몸을 파고드는 저주술식의 기운.
평소라면 코웃음을 치며 흘려보냈을만한 위력이지만, 전심전력을 다해 자성영역을 전개하는 이 순간.
약의 기운을 빌려 억지로 한계 이상의 퍼포먼스를 휘두르는 지금 이 시점에는 모든 균형을 무너뜨리는 작은 망치질이 된다.
와장창!
내면에서 유리가 부숴지는 소리가 들렸다.
청년이 평생 동안 쌓아 올린 모든 것들이 무너지는 소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