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200
약먹는 천재마법사 200화
조력(4)
“도서관 말입니까?”
“오해하지는 말아요.”
아리스가 빠른 속도로 말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당분간 학교 안에서는 레녹이 유의미한 연구를 이어갈 수 없을 것 같아서, 정 그렇다면 예전에 도서관에서 하던 것처럼, 서로 이론에 대한 소견을 주고받는 방식이 좋지 않겠어요?”
“…….”
레녹은 말없이 고개를 돌려 아리스의 옆모습을 쳐다보았다.
아리스는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지만, 흘러내린 머리칼 옆의 얼굴이 어떨지는 대충 짐작이 갔다.
그녀가 어떤 심정으로 그런 말을 꺼내는지 모르는 것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레녹이 쓸데없는 일에 휘말려 피곤해지는 것을 염려하는 것이겠지.
다만, 그때 함께 보냈던 시간을 아리스가 그렇게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햇살이 비추는 도서관의 정경을 마음에 들어 했던 것은 레녹뿐만은 아니었나.
왠지 모를 만족감과 함께 레녹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퍼어엉!!
“우아아악!!”
“뜨, 뜨거어어……!!”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블레이버 마탑의 화염마법을 손에 넣은 뒤로,
이렇게 난데없이 시비를 걸어오는 양아치들을 상대하는 일도 훨씬 쉬워졌다.
작염구 응용전개.
생득염(生得炎)을 이용하면 불꽃이 주위의 살아 있는 것들에 미친 듯이 달라붙는다.
무리를 지은 놈들일수록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는 불꽃은 레녹이 신경 쓸 일을 대폭 줄여주었다.
“화염마법이 의외로 이런 데 쓸만하단 말이지…….”
솔직하게 말하자면, 단일 전투에서 화염마법은 전격마법을 따라오는 것이 불가능하다.
고속에 고출력, 고화력의 삼박자를 모조리 만족시키는 데다, 사용자의 역량에 따라서 그 위력이 제곱으로 증폭되는 전격마법의 순간적인 위력은 속성계열 마력 중 단연 최강이다.
반면 화염마법은 기본적으로 규모와 화력을 키우는데 어느 정도 예열시간이 필요한 데다, 화력을 집중시키는 것도 단계를 밟아야 할 필요가 있다.
그건 마법의 ‘스케일’을 술자의 역량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데는 굉장한 도움이 되지만, 일대일 전투에서 크게 도움이 되는 특징은 아니다.
마약왕이나 마탑의 약쟁이 청년과의 전투에서 레녹이 바이젠으로 위장하지 않았다면, 전투는 한결 더 쉬웠을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화염마법의 방대한 스케일과 단신으로 불바다를 일으키는 예열방식은 마음에 든다.
이런 마법들을 계속 수집해서 각자의 특징을 잘 조합한다면, 레녹이 직접 만들어낸 마법 ‘만리인쇄’처럼 새로운 마법체계를 정립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레녹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더러운 골목길을 지나쳤다.
“후우…….”
오물이 질척거리는 거리를 걸으면서도 레녹의 표정은 멀쩡했다.
한숨을 내쉬던 얼굴이 천천히 무표정하게 변하고, 사고가 날카롭게 가다듬어지며 자연스럽게 주위에 기세가 뻗어나온다.
오늘 해야 할 일을 생각하면 고작 저런 놈들 때문에 집중력을 흐트러뜨릴 수는 없었다.
코트가 펄럭이며, 안쪽에 주렁주렁 매달린 아티팩트의 모습이 희미하게 엿보였다.
마력회복량은 멀쩡하고, 조작능력에도 문제는 없다. 감각권은 언제나 이 일대를 아득하게 뒤덮고 있다.
쓸 일은 없겠지만, 몸이 제대로 멀쩡하게 움직이는지까지 확인한 레녹이 천천히 걸으면서 마지막으로 장비들을 점검했다.
철컥! 철컥!!
탄창과 장전 여부 모두 완벽하다.
아티팩트의 작동 역시 원활하게 돌아가고, 에낙필의 다섯 손가락과 대천사의 연민 역시 완벽하게 작동한다.
이날을 위해 꽤 오랫동안 준비를 해왔다.
지금부터 만나야 할 사람이 누구인지를 생각하면, 조금의 빈틈도 허용되지 않는다.
미리 언질을 들은 약속장소로 향하던 도중, 문득 뒤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지금 거리에서 갑작스럽게 나타난 생명반응. 하지만 거리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
분명 눈앞에서 선명한 기척이 느껴지고, 마력감지에도 누군가의 호흡이 잡히는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잠깐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레녹은 그것이 순전히 무형의 마력을 뭉쳐서 사람의 모양으로 만들어놓은 작품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 순간, 눈앞에서 사람의 인기척이 산산이 흩어지면서 한 줄의 문장으로 변한다.
그 말의 의미를 깨달은 레녹이 헛웃음을 흘렸다.
“하…….”
직접 두 눈으로 보고 느끼고 있으면서도 쉽사리 실감이 나지 않는 기예다.
레녹의 마력감지에 별다른 기척이 잡히지 않는 것을 보면 족히 수킬로 미터 밖에서 마력을 조작해서 레녹에게 의사를 투영하고 있다는 의미일 터.
단순히 마력량이나 마력조작능력과는 상관없이, 마력감응력이 정말 극한까지 다다라야 가능한 일일 터.
이 정도 마력감응력이라면 정말 천리 밖의 마력을 제 몸처럼 느끼고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레녹의 걸음이 곧바로 방향을 바꾸었다.
마력이 가르쳐준 방향을 따라 한참을 걷자, 무형의 압력이 느릿하게 주위를 짓누르는 것이 느껴졌다.
쿠우우우우-
“…….”
마치 일대의 중력이 강해지는 것만 같은 기묘한 현상.
일체의 마력이나 영역 없이, 오직 스스로의 존재감만으로 이만한 압력을 사방에 전개하고 있는 것인가.
소문으로만 그 위명을 들어왔을 뿐이지만, 직접 그 모습을 보는 것은 처음이다.
비좁은 골목길을 지나 압력이 강해지는 곳으로 걸음을 틀자, 일순 주위가 확 넓어지면서 거대한 폐차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수천 대가 넘는 망가진 자동차들이 쓰레기처럼 버려져 있다.
어두운 밤하늘에 걸린 달 아래로, 녹이 슨 포크레인과 컨테이너 박스가 널브러져 있고.
무수한 자동차의 시체더미에 올라앉은 한 남자가 다리를 꼰 채 레녹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반가워.”
턱을 괴고 있던 남자가 부드럽게 웃었다.
“얼굴을 직접 보는 건 처음이지?”
검은 셔츠에 슬랙스. 두꺼운 털이 달린 코트가 인상적이다.
길게 기른 머리를 아무렇게나 넘겼음에도 인상은 의외로 단정하다.
차분한 표정과 시선이 이 난잡한 폐차장에서도 그를 가라앉히지만, 남자의 주위에서 날뛰는 막대한 마력은 정반대로 난폭하기 그지없다.
그리샤와 비교해도 그리 밀리지 않는 압도적인 마력.
얼굴을 보는 것은 처음이지만, 단 한 번 시선을 교환하는 것으로 알 수 있었다.
거대도시 발칸에서 가장 강력한 용병단을 손에 넣은 단장.
안타레스가 바로 레녹의 눈앞에 서 있었다.
“이런 식으로 약속을 잡은 건 다소 미안하게 생각해.”
안타레스는 그렇게 말하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생각보다 훤칠한 체격. 190㎝는 가뿐히 넘어 보이는 장신이다.
“하지만 너도 이렇게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을 거야. 그렇지 않아?”
“글쎄.”
레녹이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생각했던 이미지와 많이 다르기는 하군.”
딜런이나 밀라에게 그에 대해 들었을 때는, 우락부락한 데다 덩치가 큰 전사를 상상했는데, 생각과는 영 딴판이다.
용병치고는 속내를 알 수 없는 미소나, 나긋한 말투가 꽤 이질적인 남자였다.
“하하핫!! 딜런이 말한 대로군. 신경이 굵은 남자라더니, 틀린 말은 아니었어.”
안타레스는 그렇게 말하면서 레녹의 뒤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
족히 수백 미터는 넘는 거리.
그 도약을 감지하는 것은 레녹의 마력감지로도 아주 찰나의 순간이었다.
만약 사각에서 선공을 날렸다면, 레녹조차 반응할 수 있을지 가늠하기 쉽지 않다.
너무나 당연하지만, 상대는 괴물이 틀림없었다.
“뭐, 그렇게 됐다. 원래라면 이것보다는 훨씬 빨리 이야기를 끝내 놓았어야 했는데…… 일이 바빠서 실수했지 뭐야.”
“무슨 의미지?”
“네가 이렇게까지 빨리 올라올 줄 알았으면, 딜런에게 이야기를 들은 그날 깔끔하게 결론을 냈을 텐데.”
뚜두둑!!
손가락을 펴는 것과 동시에 굵직한 소음이 들린다.
가볍게 목을 돌리는 것으로 몸을 푼 안타레스가 말했다.
“그걸 못해서 지금 네가 누구인지 알아봐야 한다는 게 말이야.”
“아무래도 상관없다.”
레녹 역시 품 안에서 연초를 꺼내 물면서 등을 돌렸다.
불을 붙이고 퍼져나온 자줏빛의 연기를 들이마시는 것과 동시에 몸속에서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활력이 피어 오른다.
연금술 연구를 병행해서 만들어낸 첫 번째 시제품.
아직 제대로 완성된 것은 아니지만, 그 성능을 시험해 보기에는 딱 좋은 시점이다.
“나 역시 네가 어느 쪽인지 궁금한 건 마찬가지니까.”
“으음?”
딜런과 밀라에게 들었던 여러 가지 이야기가 아니었다면 레녹은 그를 단순한 용병단장으로 생각하고 넘겼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발칸 밖에서 일어났던 블랙컨슈머 프로젝트에 어느 정도 연관이 되어 있다는 암시.
거기에 용병단에서 자주 자리를 비우는 일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로 레녹은 한 가지 의문을 머릿속에 담아두고 있었다.
“안타레스.”
후우욱!!
그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레녹이 물었다.
“너, 혹시 판데모니엄 소속인가?”
대답은 없었다.
단 한걸음으로 지근거리를 파고든 안타레스가 주먹을 가볍게 말아쥐었다.
허공을 가볍게 두드리는 듯한 동작.
그러나 고작 그 손짓 한 번에 자줏빛의 파동이 터져 나오고, 지축이 뒤틀리며 일대의 폐차들이 제자리에서 펄쩍 뛰어올랐다.
콰아아앙!!
중력을 통째로 뒤흔드는 듯한 기이한 일격.
하지만 레녹 역시 그새 한 발짝 뒤로 물러나면서 손에 쥔 전격을 하늘에 집어 던졌다.
찰나의 순간 빚어낸 의념을 그대로 허공에서 잡아챈 대기가 반응한다.
어두워진 하늘이 번뜩이고, 한줄기 낙뢰가 그대로 폐차장에 떨어져 내렸다.
[썬더 콜링]콰아아아아아!!
막대한 화력이 안타레스를 향해 쏟아져 내리지만, 착탄지점에 이미 그의 모습은 없다.
레녹 역시 아랑곳하지 않고 곧바로 마력을 연이어 움직였다.
마법사의 전투에서 중요한 것은 상대를 맞추느냐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다.
특히 육탄전을 위주로 하는 상대라면, 직접 판을 깔아서 적중할 수밖에 없는 순간을 설계하는 것.
레녹이 그 누구보다 자신 있는 분야였다.
“찾았다.”
강력한 마력감응력 아래서 시야의 사각을 파고드는 일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렇기에 안타레스 역시 레녹이 가진 감각의 헛점을 파고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을 터.
뒤쪽 사선에서 안타레스의 기척을 감지한 레녹이 손목으로 손을 뻗으며 몸을 돌렸다.
위이잉……!!
마력사를 양쪽 어깨에 붙이고 몸을 비틀면서 순식간에 샷건을 손에 쥔다.
축소마법을 해제하는 것과 동시에 사격보조마법을 전개.
눈 깜짝할 사이에 그 모든 공정을 마친 레녹의 손가락이 움직이고
콰아앙!!
귀를 찢는 소음과 함께 눈앞에서 팔을 내리긋는 안타레스를 향해 발포.
따다다다닥!!
발사와 동시에 산탄되어 목표를 향해 모조리 틀어박히는 샷건.
하지만 안타레스가 팔을 허공에 두드리는 것과 동시에 모든 것이 무위로 돌아간다.
“다 끝났나?”
후두둑!!
주먹을 펴는 것과 동시에 그의 손에서 부서진 탄환의 잔해가 떨어져 내렸다.
“…….”
그동안 인간 같지 않은 초인들을 적지 않게 만나오기는 했지만, 이렇게까지 태연하게 상식 이상의 짓거리를 저지르는 상대는 오랜만이다.
그건 아마 안타레스라는 이 남자가, 레녹이 생각하는 바로 그 경계선을 한창 뛰어넘은 실력자라는 증거.
규격 이외의 강자.
단신으로 판을 뒤집어엎을 수 있는 괴물.
틀림없이 레녹이 만난 전사들 중에서도 한 손에 꼽힐만한 남자였다.
“아니.”
레녹이 웃으며 대답했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품 안에서 다섯 종이 넘는 알약을 입안에 털어 넣은 레녹이 곧바로 움직였다.
하나같이 이번 일을 위해 준비한 마력보조와 회복을 증진시켜 주는 영약이다.
체내의 마력이 모조리 빠져나가는 듯한 허탈감과 함께 모은 마력을 그대로 발밑에 내려찍었다.
파아아아아아아아!!!!
자성영역 발동.
무채색의 파동이 퍼져 나가며 일대의 공간을 뒤덮고, 순식간에 레녹의 영역으로 탈바꿈한다.
공간 자체에 성질변화를 걸고 시전자에게 최적의 환경으로 만드는 6레벨 군위마법사의 비의.
순식간에 일대를 뒤덮은 영역의 존재를 감지한 안타레스가 씩 웃었다.
“역시.”
그 영역의 반경이 무려 100m.
평소에는 고작 수십 미터에 불과한 영역을 전개하는데 그쳤던 레녹이 전장 200m라는 영역을 발동시켰다는 것부터가, 그가 얼마나 이번 만남에 철저하게 준비를 마치고 나왔는지를 증명한다.
이런 식으로 영약을 섭취하는 건 당장의 마력량을 증폭시키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며칠 정도는 후유증을 남길 수밖에 없음에도 레녹은 주저하지 않았다.
상대는 틀림없이 7레벨 이상의 최고위 권사.
육체능력. 그중에서도 체술의 극한을 바라보는 것이 분명한 괴물이다.
시작부터 전력을 때려 박지 않는다면 한순간에 승부가 끝나도 이상하지 않았다.
콰아아아아아!!
레녹이 다룰 수 있던 한계치를 넘어선 마력이 영역 내부에 사납게 휘몰아친다.
단순히 자신을 중심으로 마력을 전개하는 수준을 넘어, 공간 자체의 마력을 지배하고 법칙을 뒤바꾼다.
하지만 안타레스는 그 영역의 중심에 서서 멀쩡하게 주위를 둘러보며 감탄을 거듭했다.
“당연한 일인가. 그렇게 자유자재로 마력의 성질변화를 가지고 놀면서 자성영역을 다루지 못한다는 게 말이 안 되는 일이기는 했지.”
“후우우우……”
“그렇지만 아직 심상각인을 제대로 완성시키지도 않고서 이 정도의 지배력…… 틀림없이 내가 보아온 재능중에서는 한 손에 꼽힐 만해.”
그렇게 말한 안타레스가 처음으로 레녹을 바라보며 자세를 잡았다.
왼발을 앞으로 살짝 뻗으면서, 상반신을 돌리고 오른팔을 미미하게 들어올린다.
“그렇기에 더더욱 이 자리에서 확실하게 매듭을 짓고 가야겠구나.”
“매듭?”
레녹이 웃으며 대답했다.
주위에 휘몰아치는 마력이 은은하게 빛나면서 그의 시선을 따라 새파란 안광을 흩뿌렸다.
후우우우웅!!
“그런 건 일단 네 실력을 보여주고 말하는 게 어때?”
[리버스 그래비티] [마그네틱 컨트롤] [일렉트로닉 필드]의지를 발하는 순간 이적으로 변한다.
마력이 뻗어 나가는 일 없이 공간에서 몰아치던 움직임 그대로 조합되면서 강력한 의지의 현현으로 내리꽂힌다.
폐차장에 한가득 쌓여 있던 수백 개가 넘는 고철덩이들이 하늘로 떠오르며 휘몰아치고
쩌어어어엉!!
[감류전역(感流電域)]영역 내부에 떨어져 내린 전격의 폭풍을 맞고 미친 듯이 번득이기 시작했다.
금속과 전격의 역류가 어우러지면서 동시에 강력한 자기폭풍이 몰아치고
손을 들어 올린 레녹이 천천히 팔을 내리는 것과 동시에 강력한 볼트의 전격으로 감전된 폐차들이 허공에서 내리꽂히기 시작했다.
두두두두두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