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293
약먹는 천재마법사 293화
메시지의 의미(3)
“그래서, 휴가 동안 팔굉성채를 싹 다 뒤집어 놓고 왔다 이거야?”
바에 턱을 괸 채 앉아 있던 제니가 황당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 결과물이 저 두 사람이고?”
“그런 셈이지.”
레녹이 고개를 끄덕이며 슬쩍 시선을 돌렸다.
남색 머리의 여성 창사, 그리고 소심한 표정을 지은 청년.
팔굉성채의 폐쇄적인 창구를 없애고, 외부와의 소통을 천명한 오렌이 가장 먼저 두 사람을 성채의 전령으로 삼아 밖으로 내보냈던 것이다.
발칸의 음지와는 아무런 연도 없는 두 사람이 몸을 의탁할 만한 장소가 어디인지는 말할 필요도 없었다.
“수련이라고 한다. 잘 부탁하네.”
“아, 아스이라고 합니다.”
“…….”
“두 사람 모두 자기 분야에서는 일가견이 있는 사람들이다.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될 거야.”
수련의 실력이 회사 전력에 직접 보탬이 되는 것은 물론이고, 아스이의 그림자술식 역시 쓸모가 많은 편이다.
특히 그의 전투를 꺼려 하는 성격에서 발현된 영역형태, 그림자 장막은 시선을 차단하거나 감추는 일에 한해서는 레녹만큼이나 능률이 높은바.
이제는 육방성채로 그 이름을 바꾼 성채 내부에서도 적지 않은 전력을 차지할 두 사람이 굳이 밖으로 나온 이유는 간단하다.
당장 성채 내부에 틀어박혀서 무력을 키우는 데 집중하기보다는, 적극적으로 외부와 소통하면서 다른 협상방안을 모색하기로 했던 것이다.
8레벨에 근접했던 전대 채주가 급사하고, 일원과 이본이 자멸한 후 무력적으로 육방성채가 다른 삼두령에 비견되기 어렵다는 것은 자명한 결과.
억지로 덩치를 유지하려 노력하느니, 차라리 빠르게 현실을 받아들이고 변화하겠다는 오렌의 의지였다.
다소 까칠한 언동과 근엄한 성정에도 불구하고, 그는 좋은 지도자의 자질을 지니고 있었다.
레녹이 두 사람의 배경과 능력에 대해 간단히 설명을 해주자, 그제야 제니도 얼굴을 활짝 피고 웃었다.
“성채쪽 고위 혈족 출신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환영이야. 팔굉성채 쪽으로 유통망을 뚫는 일은 포기하고 있었는데, 두 사람이 있다면 상당히 도움이 되겠는걸.”
“……그런가?”
레녹의 떨떠름한 대꾸에도 제니가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지. 성채 거주인구는 구역면적에 비해 밀집도가 아주 높은 편이잖아. 다 잠재적인 고객이나 마찬가지라고.”
“…….”
“안 그래도 최근 유통망 성장세가 정체기에 접어들었다 싶었는데, 어디서 이렇게 기특한 인맥을…… 흐흐흐.”
음흉한 웃음을 흘린 그녀가 유령처럼 자리에서 일어나 두 사람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다.
“두 사람 모두 입사를 환영해. 우리 함께 뼈가 삭을 때까지 일해보자고.”
“음, 이런 음침한 지하에서 일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이것도 나쁘지 않겠지. 잘 부탁한다.”
예전부터 바깥의 생활을 동경했기 때문일까, 그렇게 말하는 수련의 얼굴은 어딘가 설렘이 가득해 보였다.
“…….”
제니는 그런 수련의 얼굴을 삐딱하게 바라보다가, 맞잡은 수련의 손을 꽉 쥐었다.
수련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제니를 응시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왜 그러지? 아, 혹시 이것이 바깥에서 나누는 악수 방식인가?”
꽈악!
“꺄악!! 아냐 아냐!! 내가 실수했어, 잠깐만!!”
제니의 날카로운 비명이 터져 나오는 것과 동시에 순식간에 술집이 떠들썩하게 변했다.
“제니, 뭐 하는 거야!”
“브로커가 고객을 상대로 기선제압에 실패하면 안 되지!”
“장사 접고 운동 좀 하고 와!”
웃음소리가 터져 나온 술집의 바 뒤쪽에서 제니가 울상이 된 얼굴로 손을 주물렀다.
퉁퉁 부어오른 제니의 손에 포션을 흘려준 레녹이 한숨을 내쉬었다.
6레벨의 군위능력자를 상대로 손아귀 힘을 시험해 볼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두 사람 모두 성채 안에서만 살아온지라 모르는 것이 많을 거다. 따로 사람을 붙여주는 편이 좋을 거야.”
“그, 그렇겠네. 갑자기 시비를 거는 줄 알고…….”
“…….”
설마 공들여 가꾼 바가 음침하다는 말을 듣고 꼭지가 풀리기라도 한 걸까.
제니는 이 바닥에서 몇 년을 굴러온 브로커였지만, 철저한 업무처리능력과는 달리 다혈질적인 면이 있었다.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 제니가 손을 주무르면서 노트북을 두드렸다.
“성채 쪽에서 개방에 나섰다면 이쪽도 그쪽 정보를 갱신하는 주기와 범위를 대폭 늘려야겠는걸. 지금까지는 채주와 그 측근 세 가문에 대한 대략적인 정보만을 수집해 왔지만, 완전히 취급범위를 수정해야겠어.”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수련과 아스이에게 시선을 돌렸다.
“수련 당신에겐 일단 사원들의 훈련 쪽을 부탁할게. 드레이의 지휘 아래 움직일 특수물자 수송부대를 꾸리고 있는데, 그 대원들의 전투훈련을 맨슨이 도와주고 있어. 거기 합류하면 될 거야.”
“창을 다루는 일에는 자신이 있다. 그 정신병자와 함께 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좋겠군.”
“아스이는 일단 대기. 당장 그림자 술식에 대한 감이 잘 오지가 않아. 위험도가 낮은 일에 순차적으로 투입해가면서 효율을 좀 비교해 봐야 할 것 같아. 보아하니 웨이안이랑 비슷한 나이인 것 같은데, 일단 두 사람을 같이 묶어서 한 조로 편성하는 게 좋겠어.”
“내, 내가 저놈이랑?”
이제 막 훈련이 끝났는지, 흘러내리는 땀을 수건으로 닦아 내던 웨이안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
“전위랑 후위로 딱 밸런스도 맞고, 너희 같은 실력자들을 팀 단위로 활동시키면 회사 차원에서 시킬 수 있는 일이 늘어나잖아.”
“그, 그건 그렇지만……. 으음……. 반이 데려온 놈인데, 술사에다 천재라…… 나랑은 완전히 정 반대 같은데…….”
레녹이 직접 데려온 또래라는 사실에 경쟁의식을 느끼기라도 하는 것일까.
웨이안은 작게 반항해 봤지만, 업무지시라는 명목으로 몰아붙이는 제니에게 찍소리도 하지 못하고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떫은 표정을 지으면서도 아스이를 데리고 나선 웨이안과 사옥 지하에 마련된 훈련장에서 드레이의 소개로 창술 시연을 시작한 수련의 모습에 레녹이 픽 웃었다.
“일처리가 너무 빠른데. 내가 없는 사이에 너무 할 일을 다 끝내놓은 것 아니야?”
방금 제니가 던진 지시와 그에 따른 사원들의 행동은, 이미 회사 내부에서 각자 맡은 특기 분야와 업무가 확실하게 구분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두 사람의 명의를 걸고 물자 유통 사업을 시작하겠다고 말한 지가 엊그제 같은데, 레녹이 밖에서 이런저런 일을 처리하는 동안 회사는 착실하게 덩치를 불려 나가고 있었다.
제니는 대수롭지 않게 노트북을 두드리면서 대답했다.
“드레이를 따라 입사한 전직 특수부대원들 덕분에 가닥이 잡혔어. 회사 내부에 기준이 되는 집단의 힘이 생기고 나면, 사업규모를 얼마나 확장하고 유지시킬 수 있는지 감이 잡히지.”
“그렇군…….”
“거기에 나도 아직 브로커 일을 겸임하고 있으니까, 리스크가 큰 업무를 의뢰로 지정해 프리랜서들에게 넘겨주면 굉장히 효율이 좋단 말이지…….”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레녹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결정적으로, 우리 사장님이 계속 밖에서 알아서 명성과 인맥을 만들어오니까.”
“…….”
“성채의 위상이 내려간 건 거대도시 전체로 보면 큰 문제지만, 반 네가 채주와 직접 거래를 주고받았다는 건 우리에게 굉장히 큰 소득이지. 육방성채가 삼두령의 자리에서 내려가기 전에, 그 위상을 최대한 많이 빨아먹는 거야. 흐흐흐…….”
음흉한 웃음을 흘리면서 노트북을 마구 두드리는 제니의 모습에, 레녹이 말없이 시선을 돌렸다.
바 구석에서 말없이 유리잔을 닦고 있던 조든이 그런 레녹을 보고 희미한 미소를 던졌다.
카르텔과 팔굉성채에서 연달아 골치 아픈 일을 처리하면서 회사 경영에 있어서 큰 걸림돌은 많이 사라진 느낌이다.
이대로라면 제니가 직접 운영하는 음지 물자 유통 사업이 자멸할 가능성은 낮겠지.
“이미 이쪽 근방 상권의 소유권 입찰이 끝났어. 사업장 확대는 물론이고, 사옥 재건축 허가가 나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을 거야. 49구역의 상업지 구분이 애매모호하다는 걸 생각하면, 뒷돈 좀 찔러주고 용적률을 더 높일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레녹은 그 뒤로도 적당히 제니가 말해주는 회사 내부 행정에 관한 이야기를 듣다가, 자리를 떴다.
당장 회사 전망이 밝고, 경영 상태도 양호하다는 것을 인지했는데 굳이 손을 댈 이유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레녹은 당장 자신이 성채에서 얻은 지식과 수확을 정리하는 일에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빠듯했다.
그것을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굳이 시간을 내서 제니를 찾았던 것은, 결국 자신의 성장만큼이나 미래를 담보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
언젠가 결국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나 시련이 생겨도 이상하지 않다.
그리고 레녹이 제니와 함께 이 거대도시의 음지에 씨앗을 뿌린 안배들이 자라나, 어떤 방식으로 도움이 될지는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올리비에라와 안타레스처럼, 단신으로도 이미 인간종의 한계를 초월한 강자들이 어째서 집단을 일구고 인재를 긁어모으는지, 레녹 역시 그 이유를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바로 집으로 돌아가지는 않을 건가요?]49구역을 벗어난 레녹의 발걸음이 구역 안쪽이 아니라 밖으로 향하는 것을 눈치챈 다비가 물었다.
“지금 해볼 실험은 집에 만든 연구실에서 하기는 너무 위험해서.”
[두꺼비집……. 집이 그리워요…….]“그건 네 집이 아니란다.”
시무룩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다비의 꼬리를 쓰다듬으며 레녹은 곧바로 걸음을 옮겼다.
* * *
도착한 곳은 한적한 거리에 세워진 어느 폐건물.
사람이라고는 얼씬도 하지 않는 싸늘한 거리 한복판.
콘크리트 더미와 철근이 이리저리 널려 있는 그 모습은 짓다 말아버린 이 건축행태를 여실히 드러낸다.
온갖 불량배와 양아치들이 아지트로 삼았어도 이상하지 않을법한 외진 곳이지만, 의외로 깨끗하고 먼지 하나 없이 유지되고 있다.
카르텔의 인가 아래 지속적으로 관리를 받아왔던 50번대 구역의 버려진 거리.
파계승 파르덴 맥퀸과 자성영역을 통한 결전을 벌였던 고층 빌딩이 여기서 멀지 않다.
사외이사 자리를 얻은 뒤로는 상대적으로 카르텔의 상권이나 영역을 이용하는 일에 있어서 자유로워진바.
레녹은 기껏 얻은 이사 권한을 썩혀둘 생각은 없었다.
“카르텔 본사에 이미 언질을 해뒀으니, 아마 이 거리로 사람이 출입할 일은 많지 않을 거다.”
거기에 닉스의 휘장과 그림자 술식을 사용하여 주위의 시선과 감각을 차단하고 나면 레녹을 위한 간이 훈련장이 완성된다.
간단한 결계와 보안마법까지 설치해 방비를 더하고, 다비를 통해 일대 전파를 무력화시킨 레녹이 다시금 마력을 끌어올렸다.
레녹의 품 안에서 빠져나온 다비가 컨테이너 위에 앉아 그를 내려다보았다.
순식간에 정신을 집중한 레녹이 빠르게 체내에서 마력배열을 변화시키기 시작했다.
차라라라락!!
손바닥 위에서 빠르게 조립되어가는 마력의 흐름을 바라보는 레녹의 두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성채에서 나온 뒤로는 첫 번째 시도.’
시공간이 괴리된 비처. 구세계의 유적지에서 레녹은 이 세계의 단면을 온전히 바라보는 데 성공했다.
그것은 세상을 지탱하는 두 갈래 기둥, 시간과 공간의 개념을 명시적으로 이해하고 그 작동원리를 가시적으로 판단했다는 의미.
막연하게만 느끼고 있던 두 가지 개념에 대한 구체적인 접근법을 인지했다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당장 시간에 손을 대는 건 무리였지만, 공간 쪽 이해도는 다르다.’
시간의 마법을 찾아서 교단의 흔적을 뒤지고 유적지를 쫓았지만, 당장 구체적인 데이터를 손에 넣은 것 이상의 진척은 없었다.
자신의 시간조차 마음대로 조작하지 못하는 레녹이 세계의 시간에 손을 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
하지만 공간 계통에 대해서는 이야기가 다르다.
개인과 세계의 시간이라는 두 가지 시간개념을 모두 감을 잡지 못한 지금과는 달리, 공간에 대해서는 다르다.
레녹 본인을 위시로 한 개인좌표. 세계를 중심으로 하는 중심좌표.
그동안 손에 넣었던 여러 공간계열 아티팩트들이 이 두 가지 공간 개념을 지겹도록 레녹에게 체화시켜 주었기 때문이다.
소모적인 개념으로 공간이동을 가능케 했던 아티팩트, 에낙필의 다섯 손가락.
물질에 한한 공간전이를 발동시키는 유물, 대천사의 연민.
그리고 꾸준한 예열과 마력소모를 조건으로 대상을 지정하고 공간째로 구속시키는 법구, 정토신해진언의 존재까지.
그동안 아이템을 사용해서 눈으로 보고 느끼면서도 직접 손을 댈 수는 없었던 공간의 변주와 응용.
그것을 다루는 경험과 감각을 착실하게 기억하고 인지해 오면서 막연하게나마 느끼고 있던 공간에 대한 감각이,
마침내 성채에서의 경험을 통해 기준점을 넘어섰던 것이다.
“후우……!!”
위이이잉!!!
식은땀을 흘리면서 입술을 깨문 레녹의 체내에서 엔진과도 같은 맹렬한 소음이 울려 퍼진다.
조작하는 공간의 범위만큼이나 마력의 소모량이 미친 듯이 늘어나지만, 레녹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마력을 불태우는 것으로 공간이라는 개념을 오감 너머의 직관으로 인지하는 것.
단순히 감각이라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아득한 인지와 예측, 무의식의 너머에서 정립된 구체적인 개념을 머릿속에서 조금씩 움직인다.
술사의 심상에 새겨진 명확한 개념을 조작하며 마력으로 그것을 투영한다.
마법이라는 기적을 다루는 가장 기본적인 조작법. 하지만 그 조작을 통해 다루고 있는 것은 그 어떤 마법사도 엄두를 내지 못하는 영역이다.
눈앞의 공간에 투영한 의사에 따라, 현실이 따라 움직인다.
끼이이이익……!!
마치 두꺼운 철덩어리가 비틀리는 듯한 기괴한 소음.
그와 동시에 레녹의 손 너머로 비추는 풍경이 조금씩 비틀리면서, 마치 종이가 구겨지듯 우그러들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내려다보던 다비 역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인지를 넘어 간섭까지……!]거대도시의 데이터 베이스를 마음대로 드나드는 그녀 역시, 일개 인간이 공간에 손을 댄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다.
레녹은 지금 그 누구의 도움이나 가르침도 없이. 오직 스스로의 재능과 깨달음을 발판으로 삼아.
공간을 다루는 질서를 창조해 내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던 것이다.
그것은 마치 어둠 속에서 희미한 불빛만을 따라 걸으며, 밤하늘의 별자리를 그려내는 것만큼이나 아득하고 난해한 일.
눈앞의 개념조차 명확하게 마주할 수 없는 상황에서 세계의 이치를 직관으로 가늠하고 그 원리를 어루만지는 것이다.
“후우우……!!”
전력으로 마력을 불태운 레녹의 온몸이 땀에 흠뻑 젖어 들었다.
약을 복용하지도 않은 상태로 온 정신을 집중해 끌어올린 고양감의 후유증이 그대로 몸을 덮친다.
하지만 그 수척해진 안색이 티도 나지 않을 만큼, 레녹의 얼굴은 강렬한 성취감으로 가득했다.
“이렇게……!!”
그의 손안에서 비틀린 공간의 아지랑이가, 살아 있는 생명처럼 손바닥 위에 올라타 흐릿하게 흔들리고 있었던 것이다.
시간과 공간. 세계의 시공을 지탱하는 그 두 가지 개념들 중, 하나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레녹이 그간 해왔던 노력과 발악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 증거.
그토록 힘든 시련과 고된 일들을 버텨내며 앞으로 나아간 시간이 무의미하지 않았다는 대답이 그의 손에 쥐여 있었다.
떨리는 손을 들어 올린 레녹이 다비에게 말했다.
“아직…… 제대로 된 조작은 무리지만, 성공했어.”
[네. 틀림없어 보여요.]“전이와 동결은 힘들더라도, 공간을 짧게 밀어내는 것 자체는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건…….”
어떤 이동마법도 사용할 수 없던 레녹에게 새로운 기동력에 대한 희망을 심어주는 한 걸음.
진정한 의미의 공간이동 술식을 손에 넣을 수도 있을지 모른다는 뜻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