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30
“아까 나한테 하려던 것 처럼 말이지. 알아들었나?”
“알겠습니다!!”
새파래진 안색으로 복명복창하는 남자를 돌려보내고 레녹은 담벼락에 기대서 남은 담배를 다 피웠다.
“슬슬 과수원에 한번 더 들려야 할텐데….”
플럼버의 과수원에서 구입한 연초 캐쉬번 서른 개피.
아껴서 피기위해서 기를 쓰고 노력했지만, 이렇게 큼지막한 의뢰가 있을때는 어쩔 수 없이 소모가 빠르다.
품안을 뒤적이니 벌써 네 개피밖에 남지 않은 채.
미리미리 사 놓았어야 했는데, 가격이 너무 비싸다보니 계속 뒤로 미뤘던것이 화근이다.
전투에 지장이 있을까?
레녹은 잠깐 고민해봤지만, 직접 부딫혀보고 상대의 수준을 가늠해보지 않는이상 잘 짐작이 가지 않는것도 사실이었다.
‘약효가 지속되는 시간을 기준으로 한다면 하루 정도는 온전히 버틸 수 있겠지만….’
만약 갱단쪽에서 병력을 나누어서 시간차로 돌입해온다면 그때는 레녹도 조금 곤란해질수 있는것이다.
쓸데없는 걱정이 될 가능성이 높았지만, 레녹은 생각을 멈추지 않았다.
모든 상황을 상정하고 작전에 돌입해도 변수는 얼마든지 생길 수 있다.
레녹은 크로켄 아실러스와의 만남으로 그걸 뼈져리게 배웠다.
‘마력과 탄알은 넉넉한 상태야. 여차하면 총으로 때우면서 시간을 벌어야 할 가능성도 생각해두어야 해.’
당연하지만 무슨 일이 생겼을때의 도주 루트 정도는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창고 건물 안쪽에 나 있는 지하 통로도 오가면서 기억에 담아두었으니 그쪽에서 문제가 발생하지는 않을 터.
적당히 생각을 멈추고 몸을 일으켜세웠다.
너무 오랫동안 자리를 비웠으니 사람들에게 슬슬 모습을 보여줄 때가 됐다.
안그대로 갱단을 상대하는것에 불안감을 느끼고 있을텐데, 레녹이 오랫동안 자리를 비우면 그 사이 몰래 도망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레녹은 스스로에게 리더십이나 지휘능력은 없다고 생각했지만, 적어도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생각할지 정도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짐작대로 레녹이 창고쪽으로 돌아오자 몇몇 사람들이 움찔하면서 고개를 돌렸다.
“……..”
그들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누구에게나 목숨은 소중한 법이니까.
하지만 선택 역시 그들의 몫이다. 레녹은 그 선택을 도와줄 생각은 없었다.
레녹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창고 안쪽에 들어가 아무 상자나 깔고 주저앉았다.
특허청이 열리기 까지 시간은 아직 많이 남아있다.
갱단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어쩌면 정말 꽤 많은 시간을 대기하며 보내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군대 생각이 나는군.’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는것만으로 2년을 흘러보내던 그때에 비교하면 어렵지 않다.
다행히 마법사의 강인한 정신력은 밤을 꼴딱 새도 사고력이 둔화되지 않게 만들어주고 수 있었다.
시간이 흐른다.
품에서 리볼버를 꺼내서 손질하던 레녹은 바깥이 조금씩 소란스러워지는것을 감지했다.
곧바로 마력을 사방에 풀어서 기척을 살핀다.
반경 2km. 이전보다 훨씬 더 넓고 강렬하게 발달한 인지능력이 날카롭게 주변을 훑는다.
과연 그 느낌대로, 알 수 없는 온갖 열기들이 이 일대를 둘러싸고 있는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레녹은 더욱 정신을 집중해서 빠르게 이 자리에 모여들고 있는 기척의 세기를 가늠했다.
‘열기가 강한 기척이 대략 둘. 그 다음이 열. 나머지는 백 오십 정도….’
무리를 이끄는 머리 둘과 간부 열. 단원 150명.
제니가 말했던 것보다는 적은 숫자지만, 그렇다고 방심할 수 있을만한 머릿수는 아니다.
순식간에 차가워진 머리를 이끌고 밖으로 나서자 곧바로 대기하고 있던 사람들이 레녹에게 뛰어왔다.
“마, 마법사님….!! 밖에 지금….”
“알아.”
남자의 말을 잘라낸 레녹은 계속해서 정신을 집중한채로 밖의 동향을 살폈다.
속도가…. 상당히 빠르다.
한두명 정도가 이렇다면 마력사용자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백명이 넘는 인원이 한꺼번에 질주하고 있다면 차량을 이용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아보였다.
그때 순찰을 마치고 돌아온 조가 창고쪽으로 뛰어들어오며 소리쳤다.
“왔다!! 모두 준비해!”
부우우웅!!
그 말과 함께 저 멀리서 흐릿하게 들려오는 엔진소리.
옅은 어둠을 헤치고 사방을 밝히는 헤드라이트와 매캐한 냄새가 울려퍼지고 코끝을 찌른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 일대의 어둠이 싹 걷히고, 주변이 자동차 불빛으로 온통 환하게 변했다.
불꽃놀이
“…….”
담벼락 너머까지 엔진소리와 불빛이 가득한 것을 보면, 아마 다른 사람들도 지금 이 창고 근처가 완전히 포위되었다는 사실을 눈치챘을테지.
사람들은 겁먹은 표정으로 레녹을 돌아보았지만, 레녹은 일부러 표정을 차갑게 굳히고 대꾸했다.
“입구만 잘 지켜라.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할테니.”
이 자리에서 가장 강한 사람도, 이들을 어떻게든 써먹을 수 있을만한 사람도 레녹뿐이다.
가능한 한 냉정을 유지하고 평정심을 심어줄 필요가 있었다.
그나마 레녹에게 반협박을 들었던 염화능력자가 가장 앞에 서 있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정말 위험하다 싶으면 레녹이고 뭐고 도망쳐버리겠지.
고민하는 사이 거친 경적소리는 더욱 가까워지고 있었다.
제각기 맞잡은 장비들을 꽉 움켜쥐고, 기다린다.
헤드라이트 불빛을 등진 흐릿한 인영들이 보이지만, 정작 창고 앞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이쪽의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기다리는 것일까.
기나긴 침묵이 흐르고, 먼저 움직인 것은 입구 쪽의 차량이 아닌 창고 근처의 담벼락이었다.
쿠웅!!
지축이 살짝 흔들리면서 굉음이 터져나온다.
“히익…!!”
누군가 새된 비명을 질렀지만, 그 심정에 동감하지 않는 이가 없다.
상황을 알아차리는데까지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창고를 둘러싼 갱단의 차량이 그대로 담벼락을 들이받고 있는것이다.
‘아예 담벼락을 모조리 무너뜨리고 포위망을 완성할 생각이군.’
이 자리에서 한명도 살려보내지 않겠다는 잔혹한 의도가 그대로 느껴졌지만, 레녹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고작 이 잠깐의 시간동안 얼마나 상대를 파악했다고 저렇게 생각없이 들이받는 길을 선택한단 말인가.
방금 저들이 내민 한 수로 확실해졌다.
이 자리에서 살아돌아가지 못하는 것이 누구인지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생각이 끝나기 무섭게 안배가 빛을 발한다.
콰아아아앙!!
등 뒤에서 들려오는 귀청을 찢는 폭음. 등 뒤를 느슨하게 적시는 매서운 열풍.
어두운 하늘이 새빨갛게 물들고 후끈한 열기가 피어올랐다.
이 순간 모두가 같은 심정이 되어 하늘을 올려다본다.
활활 타오르고 있는 낡은 지프 한대가 허공에서 빙빙 회전하면서 차체를 휙휙 뒤집고 있다.
쿠우웅!!
하늘을 날던 시뻘건 불덩이 한대가 창고 부지 바로 앞에 떨어지면서 사방으로 불똥을 흩날린다.
사람들이 기겁하면서 사방으로 몸을 피했지만, 레녹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생각에 잠겼다.
‘폭발에 휩쓸렸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멀리 날아오지는 않을텐데….. 뭐 때문이지?’
레녹은 자신이 설치한 [클레이모어] 마법의 위력이 어떤지 그 누구보다 정확하게 잘 알고 있다.
투자한 마력량과 개조시킨 범위위력은 이미 그의 감각안에서 완벽하게 정리되어 있었으니.
아무리 차체의 기름과 맞닥뜨려서 격렬하게 폭발한다고 하더라도 자동차를 날려버릴만큼 큰 폭발이 일어나는것은 이상하다.
그렇게 고민하던 레녹은 자동차의 안쪽에서 흘러나오는 기름을 문득 발견하고 눈을 빛냈다.
불길에 휩싸여 잘 보이지는 않지만, 평범한 기름과는 전혀 다른 짙은 형광색.
차체에서 새어나와 열기와 맞닥뜨리자마자 급격하게 반응하면서 불길을 활활태우고 있다.
아무래도 갱단은 평범한 연료가 아니라 좀 더 다른 방식의 연료를 운전에 사용하고 있었던 듯 했다.
그 작은 우연과 레녹의 안배가 만나면서 순식간에 밤하늘 위로 장관을 펼쳐냈다.
콰앙! 콰아앙!! 콰아아앙!!!
폭발은 한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연이어서 들려오는 폭음과 어두운 하늘을 넘어 폭죽처럼 떠오르는 불덩이들.
별다른 준비도 없이 무식하게 꼬라박은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것이다.
땅이 흔들리는 진동과 함께 일순, 대낮처럼 사방이 환하게 변하고.
그 빛 아래에서 레녹은 갱단을 이끌고 있는 머리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빡빡 밀어버린 머리와 생각보다 젊어보이는 얼굴. 입가에 길쭉하게 난 흉터. 그리고 대장의 위엄과는 그리 어울리지 않는 헐렁한 트레이닝 복.
그의 옆에 서 있는 또 다른 남자는 얄상하게 길쭉한 지팡이를 들고 묘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지팡이를 든 남자에게서 새어나오는 은은한 마력을 눈치챈 레녹이 눈을 빛냈다.
‘마법사군.’
같은 마법사를 만나는것은 이번이 세번째다.
교수 아리스 리첼렌. 스캐빈저를 돕고 있던 탐색계열 마법사. 그리고 이 남자.
그리고 정면에서 직접 상대하는것은 처음이나 마찬가지.
어떤 마법을 쓸까.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주로 사용하는 계열은? 가지고 있는 시니스터 체계는?
선공을 날리는것이 좋을까. 일단 받아내고 카운터를 날릴까.
‘알고 싶다.’
마법사를 보자마자 순식간에 수십가지 생각을 떠올리던 레녹은 스스로의 생각에 잠식되어가는 자신을 발견하고 살짝 놀라고 말았다.
“…….”
갱단 수백명을 앞에두고 집중을 잃다니, 위험한 일이었다.
그러나 너무나도 궁금하다.
이 세상의 마법사들이 진정으로 어떤 마법을 사용하는지.
어떤 공격수단으로 어떤 수싸움을 강요해올지. 내가 사용하는 마법을 어떻게 받아치려고 할지.
마법사의 재능에 가장 완벽하게 맞춰진 그의 이성과 판단력은 그 순간을 즐기는것을 넘어서 온전히 탐닉하고 있었다.
그렇다. 저번에 만났던 탐색계열의 마법사를 상대하는 일은 너무 허무하게 느껴졌다.
레녹의 간섭을 막지도 못하고, 오히려 역으로 마법을 간파당해서 오버클럭으로 순식간에 쇼크사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이 마법사는 다르다.
무려 갱단의 선두에 서서 무리를 통솔하고 있는 두 머리 중 하나가 아닌가.
그보다는 훨씬 더 수준높은 전투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후읍.”
…..진정하자.
심호흡을 하자 그에 맞춰서 연기가 깊숙하게 폐부를 찌른다.
뒤통수를 둔중하게 때리는 감각과 함께, 빠르게 몸속 곳곳으로 스며드는 약 성분이 미미하게 힘을 더해준다.
순식간에 냉정을 되찾은 레녹이 다시 주변으로 시선을 돌렸다.
[클레이모어]의 효과가 어찌나 폭발적이었는지, 이 주변을 빙 둘러싸고 있던 포위망에 구멍이 뻥 뚫렸다.애초에 백명정도의 인원으로 도주로를 막는다는 발상 자체가 어이가 없는 일이었지만, 안그래도 많지 않은 병력에 결원이 생긴것은 긍정적이다.
실제로 레녹의 앞에 버티고 있는 이들도 상황을 눈치챘는지 얼굴에 화색이 가득했다.
마력을 퍼트려서 다시한번 빠르게 주변을 훑었다.
‘박살난 차량은 열대를 조금 넘어. 남은 인원은 거의 정확하게 백명 정도.’
그것도 거의 대부분의 인원이 창고 부지 정면에 쏠려있다.
방심할 이유도 없지만, 더 이상 긴장할 필요도 없었다.
오른손을 목에 가져다대고 마력을 일으킨다.
우우웅!!
마력의 격렬한 진동과 함께 그의 목소리에서 나온 말이 천둥처럼 사방을 크게 울렸다.
[언제까지 그렇게 기다리기만 할거지?]“……!!!”
[들어오라고. 하고 싶은 말이 있을텐데.]귀를 시끄럽게 울리던 엔진소리가, 뚝 멎었다.
다소 동요한 듯한 사람들의 웅성거림과 함께, 차에서 다른 사람들이 내리는 소리가 들린다.
완전히 망가진 차체에 붙어있던 불꽃이 사라지고 다시 어둠이 내려앉았다.
그 흐릿한 어둠을 뚫고 저벅저벅. 사람들이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정말로 갱단측에서 창고 안쪽을 향해 걸어들어오고 있는것이다.
원래라면 이렇게 저쪽에서 레녹의 말대로 대화의지를 보여주는 일따위는 일어나지 않았을것이다
갱단의 입장에서는 그냥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을 싹 쓸어버리고 신약 샘플을 확보하기만 하면 그만일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