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522
약먹는 천재마법사 522화
연구, 조정, 개량(2)
우로보로스 마법체계의 새로운 사용방법.
레녹이 괜히 이 테마에 대해 고민하며 시행착오를 거듭해 보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교단 10사도 암리타 프라우벨과의 마지막 결전에서, 우로보로스와 자성영역을 동시에 운용하려 했을때 인지한 문제점.
“암리타는 자성영역이 아니라, 우로보로스의 힘을 자해를 하면서까지 막으려 들었지.”
레녹의 시선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건 단순히 우로보로스의 힘이 더 위험하게 느껴졌기 때문만은 아니야.”
분기점을 관측해 투영하는 만화경의 영역과는 달리, 우로보로스는 주변의 가능성을 수렴해 움켜쥐는 힘에 가깝다.
레녹의 내면에서 시작해 외부로 발산하는 만화경의 영역은 인지할 수도, 막을 수도 없지만.
상대의 힘과 심상을 해체해서 분석하는 우로보로스 마법체계는 작동만으로 죽음에 가까운 기시감을 선사하는 바.
자연스럽게 그 대상이 된 표적 역시 무슨 수를 써서라도 우로보로스의 작동을 막으려 들게 되는 것이다.
우로보로스의 힘을 인지하지 못하는 상대에게는 애초에 이 기술을 사용할 필요가 없고.
우로보로스를 사용해야 할 정도로 강한 적은 반드시 이 기술의 위험성을 눈치채고 방해하려 든다.
강력한 상대와의 전투에서는 사실상 사용이 봉인되다시피 하는 치명적인 맹점.
계백을 상대로 우로보로스를 사용했을 때는 타락한 승천자 본인이 주위에 관심이 없었기에 가능했지만.
높은 지성을 갖춘 암리타와 같은 괴물을 상대할 때는 오히려 사용하는 것이 레녹에게 손해가 될 가능성이 높다.
우로보로스를 처음 사용했던 마드리치 오니온과의 전투에서는 전장 자체가 마드리치 본인의 권역이었기에 그 간극을 노려 성공시켰을 뿐.
마법체계의 위력과 실전에서의 효용성 사이의 간극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결국 애물단지가 될 수밖에 없다.
레녹은 그 사실을 인지하고 우로보로브 마법체계 자체의 작동 방식을 손대기 위해 연구장비를 통채로 사들여 제대로 된 마법연구에 들어가려 했던 것이다.
위계를 초월한 수준에서 전개되는 완전히 새로운 마법체계.
그 출력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초대형 마도공학 설비에 사용되는 연구장비 정도는 되어야만 할 테니까.
“박람회가 시작되기 전에 전부 끝내는 건 어렵겠지만, 방향은 잡아놓고 싶어.”
[마력동조 준비 끝났어요.]레녹이 양 손을 내밀고 마력을 끌어올리는 것과 동시에 다비가 레녹의 의념을 읽고 동조.
전뇌정령의 조작에 따라 연구실에 자리한 장비 수십대가 일제히 회전하며 레녹을 중심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우우우웅!!!
경고와 시스템 출력을 무시하고 움직이는 마도공학 설비들이 사방에서 바쁘게 움직이며 레녹의 컨디션을 조절했다.
마력흐름을 강제로 안정화시키며 우로보로스 마법체계에서 터져 나오는 반발을 억눌러 억지로 길을 만들어 열어젖혔다.
쿠구구!!!
그 충격으로 저택 지하에 설치된 연구실이 통째로 진동하며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리지만 신경 쓰지 않는다.
고위계 마법사에게 있어 연구실이란 단순히 마법이나 술식을 공부하고 연습하기만 하는 공간이 아니다.
일대 공간의 환경 자체를 마법사 자신의 체내와 같은 조건으로 동조시켜, 자신의 술식 자체를 관조하는 것.
레녹의 몸 안에서만 흐르고 조립되던 심상과 마력을 외부로 꺼내놓고 실시간으로 조정하고 안정화시켜 최적의 상태를 찾아내기 위한 작업.
이 거대한 연구실의 공간 자체가, 레녹이라는 술자 자신과 같은 개념으로 취급하고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올리비에라의 연구실이 스스로의 이상향을 담은 권역으로 변했던 것 역시, 그녀가 오랫동안 그 공간에서 자기 자신을 관조했다는 증거.
레녹이 지금 하려는 일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눈부시게 빛나는 우로보로스의 마력흐름을 안정화시키기 위해 온갖 연구장비들이 빠르게 움직이며 다양한 마력을 뿜어내고.
그 중심에 선 레녹이 거침없이 품 안에서 낡은 마도서를 꺼내 들었다.
판데모니엄의 중간결산에서 손에 넣은 1세계의 유물, 운명자천칭 극예 5법.
다섯가지 계통의 극의가 담겨 있는 비전마도서를 거침없이 필친 레녹이 [조화] 계통의 극의마법이 적힌 페이지를 펼치고 시선을 들어올렸다.
찬란하게 빛나는 뱀의 고리를 바라보는 레녹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마법체계에 새로운 질서를 쌓아올릴거야. 시작하자.”
* * *
머피의 병원.
아르스노바의 생체 데이터를 통해 진료 기록을 뽑아낸 뒤, 거진 한달만에 레녹은 진료실에 다시 찾아왔다.
“세부사양을 조정하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등을 돌린 채로 이것저것 손질하던 머피가 등을 휙 돌리고 레녹에게 손에 든 장비를 내밀었다.
“원래 사용하던 물건과 비슷한 디자인으로 만들었어. 스태프의 형태가 확실히 휴대가 편리하고, 마법사에게도 잘 어울리지.”
솟아오르는 물줄기를 닮은 스태프의 형상.
펜터렉트를 통해 변화했던 생명유지장치와 다른 점이 있다면, 스태프의 끝에 박힌 보석이 짙은 흑색을 띄고 있다는 것일까.
레녹이 스태프를 받아드는 것과 동시에 검은빛의 보석 위에 희미한 선이 떠올라 꿈틀거렸다.
“생명선이다.”
머피가 말했다.
“심박수와 마력안정도, 체내 영양 흐름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서 보여주는 기능이지.”
휙 고개를 돌리고 진료실 한쪽에 놓인 컴튜더를 만지작거리며 머피가 첨언했다.
“망가진 네 육신 자체를 수복하는 건 불가능하지만, 현상 유지 자체는 어렵지 않을거다.”
“그렇군.”
“어디까지나 절대적으로 안정을 취한다는 가정 하의 일이야. 당연하지만 전투는 무조건 피해야겠지.”
“…….”
다시 이 진료실에 찾아오기까지 레녹이 얼마나 많은 전투를 치뤘는지 굳이 말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머피가 안경 너머로 물끄러미 레녹을 응시했다.
“한번이라도 균형이 무너진다면 돌이킬 수 없을 거다. 알고 있겠지?”
“어느정도는.”
“당신 같은 고위계 마법사는 더욱 그래. 쌓아올린 탑이 높고 정교할수록, 흔들리기 시작하면 겉잡을 수 없어진다. 지금까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대충 알법하지만, 이제부터는 모든 것을 바꿔야 할 거야.”
틀린 말은 아니다.
결국 레녹이 지금까지 살아남아 여기 앉아 있는 사실 자체가, 흔들릴지언정 무너지지 않았기 때문이 아닌가.
한번의 치명적인 패배. 돌이킬 수 없는 실수. 언젠가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인정하면서도 결국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뭐, 그래도 늦게라도 날 찾아온 건 현명한 선택이었다.”
무표정한 얼굴로 레녹을 바라보던 머피가 이내 피식 웃었다.
“조정이 필요하면 바로 찾아올 수 있도록. 굉장히 섬세한 물건인 만큼, 자주 손을 보지 않으면 없느니만 못한 물건이 될 거다.”
“명심하지.”
그 뒤로 레녹은 머피에게 약속한 제작비를 지불하고 병원을 나섰다.
지팡이를 쥔 채로 손등을 두들기던 레녹이 고개를 기울였다.
“아무래도 약을 복용하지 않은 상태에서 감도를 확인해봐야 할 것 같긴 한데…….”
대천사의 눈물을 복용해 컨디션을 개선한 데다, 평소에도 온갖 약물을 몸에 꽂아 넣고 있다 보니 체감이 쉽지 않다.
어쩌면 레녹의 신체감각 자체가 이미 반쯤 망가져서 어지간한 조치로는 체감이 힘든 것일지도 모르지.
레녹은 적당히 지팡이를 만지작거리다 이내 그것을 짚고 곧바로 걸음을 옮겼다.
결국 중요한 건 생명유지장치를 통해 견뢰가 부상을 입었다는 정황을 인지시키는 것.
반의 신분으로 활동하는 시간이 줄어든 만큼, 그에 대한 알리바이를 만들어두기 위한 조치인 만큼 성능이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레녹은 곧바로 지팡이를 짚은 채로 보란 듯이 걸어서 제니의 술집이 위치한 49구역으로 향했다.
어딘가 사늘한 분위기가 감도는 49구역에서도 유난히 사람이 몰리는 고층 빌딩 지대.
몇 차례 재건축과 확장을 거친 뒤에 이제 몰라보게 달라진 술집 입구에서는 십수 명의 사람들이 한시도 쉬지 않고 계속해서 들락거리고 있다.
한껏 로비 홀을 넓힌 술집 안에서는 어두운 조명을 등지고 자기들끼리 쑥덕이는 프리랜서와 조직원들이 가득했다.
곳곳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피해 테이블에 도착한 레녹이 이쪽으로 다가오는 노인을 보고 손을 흔들었다.
“반.”
아무런 말도 없이 레녹의 앞에 술잔을 내려놓고 능숙한 솜씨로 칵테일을 섞는다.
자연스럽게 술잔을 기울인 레녹이 입안에서 퍼지는 쓴맛에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쉽지 않은 맛이군요. 이게 도대체 뭡니까?”
“쑥과 마늘, 생강을 섞어 만든 약주일세. 대륙 밖에서 레시피가 만들어졌다는 술이지. 몸에 좋다고 하니 쭉 들이키게.”
“쑥과 마늘 말입니까?”
누구 하나 새로 사람으로 만들 일이라도 있는 걸까.
어쨌든 몸에 좋다고 하니 군말 없이 마신다.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로 약주를 삼키는 레녹을 보며 조든이 웃었다.
“좋지 않은 소문이 자주 들리더군. 제니가 딥웹에서 따로 레시피랑 재료를 사 와서 만들었네.”
“…….”
마드리치 오니온과의 전투로 부상을 입었다는 정황은, 소문이 퍼지기 전에 제니에게 미리 언질을 해두었다.
다만 그렇다 하더라도 그 뒤로 직접 술집에 방문한 적이 없었던 만큼, 제니 역시 어느 정도 신경을 쓸 수밖에 없겠지.
“반응이 괜찮으면 새로운 메뉴로 시판해 볼 생각이다만, 어떤가? 자네는 술맛에 대해 거의 평가를 하지 않아서, 호불호를 알기가 어렵군.”
“신선한 맛이기는 하군요. 기력 증진을 테마로 내세우고 팔면 찾는 사람이 있긴 할 겁니다.”
레녹이 인상을 찌푸린 채로 남은 술을 들이켜는 사이, 바 뒤쪽에서 제니가 관자놀이를 누르며 빠르게 걸어 나왔다.
다크서클이 깊게 내려앉은 얼굴로 바를 휙휙 둘러보던 그녀가 레녹을 보고 얼굴이 확 폈다.
“반……!! 몸은 괜찮은 거야?”
“돌아다닐 정도로는.”
곧바로 레녹의 맞은 편에 앉은 제니가 바 테이블 안쪽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쿵!!
“주문했던 영약들, 경매장이랑 딥웹을 싹 뒤져서 모조리 구해놨어.”
“고맙다.”
“도시 중심구역에서 유명한 의원한테 부탁해서 약도 달여왔으니까, 필요하면 챙겨가든가 하라고.”
아무래도 제니에게는 나중에 왜 이런 소문이 돌고 있는지 말해두어야 할 것 같았다.
지금은 일단 그녀를 찾아온 용건부터 해결할 수밖에.
무엇보다 오늘 약속을 잡은 것은 레녹이 아니라 제니의 요청이었다.
“일단 위로 올라갈까? 손님이 기다리고 있어.”
술집 옆에 위치한 회사의 최상층 집무실로 올라서자, 소파 한구석을 가득 차지하고 앉은 거인의 모습이 바로 눈에 들어왔다.
팔짱을 낀 채로 허리를 꼿꼿히 펴고 앉은 채, 눈을 감고 있는 새머리거인의 모습.
레녹이 집무실에 들어서는 것과 동시에 두 눈을 번쩍 뜬 거인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반!!”
“펠릭스, 오랜만이군.”
레녹도 그 반가워하는 기색에 무심코 픽 웃었다.
펠릭스 마가트. 안타레스 용병 사무소의 실장이자, 성위급의 전사로 레녹에게도 꽤 익숙한 얼굴이다.
“몸은 좀 괜찮나?”
마지막으로 만난지도 꽤 오래 되었지만, 당시의 일을 꽤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방위군 반역 사태. 공중요새를 박살내며 나타난 크로켄을 상대로 레녹과 단 둘이서 맞서 싸운 전사.
그 과정에서 승천자 도래의 마력이 담긴 전투해머를 사용하다 혼수상태로 병원에 입원하지 않았던가.
레녹이 청의 눈의 소집령을 받아 항하사미궁으로 향하며 더 이상 소식을 듣기 어려웠는데, 그 사이 어느정도 몸을 추스른 것처럼 보였다.
“그건 내가 할 말일세, 반.”
펠릭스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었다.
“8레벨의 군령술사와 사투를 벌이고 중태에 빠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지금 남을 걱정할 처지인가?”
독수리의 강인한 눈매가 레녹이 짚고 있는 지팡이로 향했다.
“불길한 소문이 돈다 싶었더니, 제니의 걱정이 틀리지 않았던 모양이군. 우리 사무소에서도 자네의 건강을 신경 쓰는 이들이 적지 않아.”
“그쪽 사무소에서 말인가?”
“안타레스 용병사무소와, 너희 유통회사 간의 후원 계약이 방금 공식적으로 확정이 됐거든.”
그리고 그런 펠릭스의 등 뒤에서 나타난 냉담한 인상의 단발머리 여성.
전자담배를 문 채로 연기를 내뿜는 그녀의 얼굴은 레녹의 기억에도 아직 남아 있었다.
“앞으로는 건강에도 좀 신경쓰면서 살자고. 워커홀릭은 우리 소장만으로도 충분하니까.”
“……스텔라.”
스텔라 그리엔. 펠릭스가 입원했을 당시 마주친 적이 있던 안타레스 용병 사무소의 부소장이다.
펠릭스와 스텔라가 이 자리에 와 있다면, 사무소의 결정권자 두 명이 직접 제니의 회사에 와 있는 셈.
제니는 안타레스 용병 사무소와 거래하여, 사업 전반적으로 그들의 전면적인 조력을 받아내는 후원 계약을 체결하는 데 성공했던 것이다.
오늘 이 자리는 그간 회사 일에 손을 놓고 있던 레녹까지도 직접 참관이 필요할 만큼 규모가 큰 계약을 따내는 자리.
명목상으로는 레녹 역시 이 회사의 사장이자, 공동경영자인만큼 거쳐야 할 절차가 있었다.
“유통사업을 이렇게 키우는 사이에도 브로커 일을 꾸준히 지속해 왔지.”
제니가 만들어준 임시 날인을 서류에 몇장 찍는 사이 스텔라가 말했다.
“프리랜서 인력과 유통망 구축 양면에서 성과를 보이면서, 우리 사무소의 용병들도 제니의 의뢰를 우선적으로 처리하는 일에 관심이 많아.”
그렇기 때문에 제니가 물어오는 의뢰를 우선적으로 받는 후원 계약에 동의하기로 한 건가.
명목상으로는 대등한 두 조직간의 거래지만, 따지자면 안타레스 사무소의 용병들의 전면적인 협조 승인.
이 바닥에서도 한손에 꼽히는 용병단의 힘을 가장 먼저 빌릴 수 있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레녹이 모를 리가 없었다.
“안타레스는 알고 있나?”
“아, 우리 소장은…….”
“음, 굳이 안 숨겨도 이미 눈치채고 있는 것 같은데?”
서로 의미심장한 대화를 주고받은 두 사람이 웃었다.
레녹이 그들을 보며 고개를 내젓는 사이, 제니가 테이블을 두들기며 두 사람을 향해 말했다.
“자자, 이제 합의 끝났으니까 나가봐. 반한테 들을 이야기가 있다고.”
“아니, 그쪽도 같이 듣지.”
“뭐?”
레녹의 말에 제니가 고개를 홱 돌렸다.
“안타레스 사무소와 후원계약을 맺은 시점에서 굳이 비밀로 할 필요는 없는 이야기다. 어차피 조만간 발칸에도 정보가 퍼지겠지.”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재미있네. 우리 쪽 일과도 어느정도 관련이 있다는 말인가?”
스텔라가 나른한 표정으로 전자담배를 뻑뻑 피우며 웃었다.
“뭐, 우리야 그쪽이 정보를 공유해 준다면 굳이 사양할 생각은 없는데.”
레녹이 괜히 제니의 부탁을 받아 오랜만에 회사와 술집에 방문했던 것이 아니다.
청의 눈과 판데모니엄 양측을 오가며 전해들었던 대륙의 정황과 최신 정보들.
그 중에서는 거대도시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정보들도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제니는 레녹과 같이 일하는 동업자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프리랜서들을 연결시켜 주는 음지의 브로커.
이런 정보들을 미리 알고 움직일수록 혼란스러운 판국에서 취할 수 있는 이득이 극대화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데드라이즈 본대가 돌아올거라고?”
하지만 레녹이 전해준 말에 세 사람의 표정이 경직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주문연맹과 교단의 휴전협정으로 인해 전선이 안정화되면서 그런 소문이 돌고 있는 듯하다.”
“믿을 만한 정보야?”
“아마도.”
“…….”
레녹의 담담한 대답에 펠릭스와 스텔라가 가만히 서로를 돌아보았다.
“이거 생각보다 좀 큰 문제인데.”
“……괜히 듣겠다고 했나?”
두 사람이 지금 레녹이 이런 이야기를 해주는 이유를 모를 리가 없다.
하지만 제니는 그런 반응은 신경쓰지 않고, 곧바로 차분한 기색으로 노트북을 두들겼다.
“중앙전선에서 용병과 군인들의 출입기록이 줄어들고 있어. 세력을 정비하고 있다고 보는 게 타당하겠는걸.”
“…….”
“파라디니 공화국 수출의 비약적인 증대, 북부 공업도시들의 매출은 대폭 감소…… 견적이 대충 나와.”
노트북을 두들길 때마다 프로젝터를 통해 온갖 뉴스와 기사들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고작 레녹의 말 한마디만을 듣고 이 자리에서 관련정보를 긁어모아 실시간으로 대조해 보고 있는 것인가.
단순히 데이터 수집이나 연산능력이 뛰어나다고 가능한 일은 아니다.
음지의 일을 처리하며 손에 넣은 요령과 경험을 통해 특정한 경향성을 빠르게 포착. 사실관계를 대조해 보고 큰 그림을 추측해내는 능력.
레녹이 함께 일했던 어느 누구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기민한 판단력과 요령을 갖춘 동업자.
이 정도로 일머리가 좋고 손이 빠르기 때문에 유통사업에 손을 대는 것도 모자라, 음지의 시장까지 잡아먹을 수 있던 것이겠지.
스텔라가 그런 제니의 일처리에 살짝 감탄한 기색으로 의견을 보탰다.
“그동안 활동이 지나치게 적긴 했지. 가만히 죽치고 앉아만 있을 놈들이 아닌데 말이야. 본대가 돌아올 거라는 언질이 있었다면 이해가 가.”
“중앙전선이 안정되기 전부터 정해진 결정이다?”
“아니, 그것보다는 오히려…… 휴전협정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게 더 정확하겠는걸.”
펠릭스의 질문에 제니가 머리칼을 쓸어넘기며 대꾸했다.
“데드라이즈 수뇌부들 중에, 교단이나 주문연맹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이 있는 거야. 이쪽이 틀림없어.”
“확신하고 있군.”
“아는 사이니까.”
레녹은 무어라 대답하려다, 그만 입을 다물었다.
물끄러미 노트북을 노려보는 제니의 얼굴에, 복잡한 표정이 어려 있었던 것이다.
“그럴 능력도, 심성도 능히 가진 사람들이야.”
“……”
데드라이즈의 핵심 수뇌부들은 과거 카이세의 심복으로 있던 능력자들.
카이세의 손녀인 제니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그들과 안면이 있어도 이상하지 않다.
조부의 이름이 나와도 개의치 않던 제니가 이렇게 반응할 정도라면, 그만큼 그들의 능력이나 성정이 비범하다는 의미일 터.
“위험할 거라고 생각하나?”
“……글쎄. 내가 기억하던 그 사람들은 절대 이유없이 움직이지 않아.”
제니가 양 손으로 미간을 누르며 대답했다.
“지금같은 시기에 도시로 돌아온다면, 전선이 소강상태에 빠졌다는 이유 때문만은 아니겠지. 일단 동향을 관찰하는 일에 집중할게.”
빠르게 노트북을 조작해 딥웹과 시정보 공용 네트워크 양측을 조사하기 시작한 제니가 레녹을 돌아보며 말했다.
“음지의 유통망은 이미 절반 이상 우리 손안에 있어. 설령 데드라이즈 본대가 돌아와 움직여도, 그 징조부터 감지하고 막아버릴 수 있어.”
“……”
“걱정하지 마. 이쪽도 그만큼 전력 구축과 인력수급에 신경 쓰고 있으니까. 부상자의 손을 빌리지 않아도 충분해.”
“…….아니, 내 컨디션 보다는 상황에 맞춰 유동적으로 대처하는 일에 집중하는 게 좋겠군.”
“왜?”
레녹은 대답을 하기에 앞서 가볍게 스텔라와 펠릭스에게 눈짓했다. 두 사람이 곧바로 알아듣고 집무실 밖으로 사라졌다.
마력장을 펼쳐 주위의 감각을 차단한 레녹이 말했다.
“당시 오니온과의 전투로 부상을 입었던 건 사실이지만, 그렇게까지 심각한 상황은 아니야.”
“……심각한 상황이 아니라고?”
“그래. 전투가 필요하다면 굳이 시기를 뒤로 미룰 필요는 없다는 말을 해두는게 나을-”
레녹의 말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제니의 반응에 곧바로 끊겼다.
거침없이 선반에서 종이 한장을 꺼내 탁탁 내려놓은 제니가 차가운 얼굴로 팔짱을 끼고 레녹을 응시했다.
[환자 보호자분이 필히 읽고 숙지해야 할 요양 안내서]“네 진료를 담당한 의사가 이런 걸 보내왔는데도 그런 말이 나와?”
“……이걸 어디서 구한거지?”
머피의 진료기록임을 확인한 레녹이 살짝 황당한 기색으로 물은 그 순간.
레녹의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구해줬지.”
“…….”
“제니가 우리 사무소에 직접 의뢰를 넣은 건 오랜만이라서 말이야. 간만에 힘 좀 썼어.”
두터운 털이 달린 코트를 걸친 청년이, 어느샌가 집무실 창가에 기대듯이 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길게 기른 머리를 아무렇게나 넘겼음에도 인상은 의외로 단정하다.
차분한 안색과는 달리 내면에서 난폭하게 날뛰는 듯한 마력의 기세.
레녹이 그 얼굴을 확인하고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면서 일어섰다.
“……안타레스, 마력장을 편 이유를 내 입으로 설명해 줘야겠나? 순서라는 걸 기다릴 생각이 없군.”
8레벨의 육체능력자. 안타레스 용병사무소의 소장.
음지에서 한손 안에 꼽히는 초월적인 격투가이자, 무수한 업적과 영예를 쌓아 올린 여행자.
전지의 편린을 손에 넣은 대신, 피할 수 없는 결말을 받아들인 예언자.
안타레스는 처음부터 이 자리에 와 있었고, 레녹은 그 사실을 이미 인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희미하게 웃은 안타레스가 레녹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중요한 이야기 중에 끼어든 건 미안하지만, 나도 여유가 없어서 말이야.”
“여유라니, 누군 시간이 많아서 이렇게-”
레녹의 말은 안타레스가 입을 열자마자 곧바로 끊겼다.
“박람회에 대해 할 이야기가 있다. 잠깐 시간 괜찮을까?”
지금 상황에서는 결코 어울리지 않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레녹의 의표를 찌르는 대답이 돌아왔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