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749
약먹는 천재마법사 749화
일인극(1)
“대상지정저항을 조금만 풀어주면, 내 기억 속에서 에반의 이미지만을 골라서 유령에게 덮어씌울 수 있지.”
에반으로 변한 유령을 한바퀴 돌며 외견을 쭉 살핀 레녹이 말했다.
“유령이라는 말과는 달리 엄연히 실체가 있는 데다, 내 기억을 그대로 빌려오는지라 분위기나 외형은 거의 흡사해.”
대마법사의 경지에 오른 레녹의 기억과 자기객관화능력은 다른 초인들과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정교하다.
순간순간의 강렬한 이미지에 의존하는 다른 이들과는 달리, 그 기억을 통해 재현하는 에반의 외견은 거의 실사 그 자체라 보아야 할 정도.
다비 역시 그런 레녹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곧바로 이해한 것 같았다.
[그러니까, 이건 다시 말하자면…….]고민하던 다비가 황당하다는 듯 말했다.
[마스터가 찾던 분신능력이랑 똑같네요?]레녹이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해서 새로 정립하려던 자신의 분신.
그동안은 레녹 자신의 강력한 자의식과 존재성으로 인해 쉽사리 구축하기 어려웠던 능력이다.
하지만 레녹의 존재에 대한 지정저항이 아니라, 반지의 능력에 대한 저항을 조금 푸는 정도라면 지금도 가능했다.
레녹은 그 사실을 인지하자마자 반지의 능력을 기억 일부에만 사용해 에반의 형상을 불러내는 데 성공했고.
인도자의 유령을 분신 대용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다비 역시 뒤늦게 깨달았던 것이다.
그동안 심증만으로 회피해왔던 레녹의 다중 신분에 대한 의심을 어느 정도 덜어낼 수도 있을 터.
하지만 레녹은 그런 다비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아쉽지만 이런 식으로 가능한 건 에반 바일런의 신분뿐이다. 반이나 빅터의 신분을 재현하기는 힘들겠지.”
에반 바일런은 대외적으로 훌륭한 연구자이나, 그 본신의 힘은 대단치 않은 정령술사로 알려져 있다.
그렇기에 인도자의 유령을 사용해 외견만 적당히 꾸며내도 에반을 흉내 내게 만드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겠지만.
반대로 강력한 술사로 이름 높은 반이나 빅터의 신분을 흉내 내게 만드는 것은 불가능한 일.
외견이라면 모를까, 그들이 내뿜는 마력이나 위압감, 기세를 유령에게 따라 하게 만들 수는 없었다.
[엑, 그럼 당장 그렇게 쓸모가 있지는 않겠네요.]다비가 살짝 실망한 듯 귀를 축 늘어뜨리며 말했다.
전뇌정령 역시 가장 분신 능력이 필요한 것은 에반이 아니라, 반이나 빅터의 신분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신분의 리스크가 크지 않은 에반과는 달리, 반이나 빅터는 그 정체를 의심받는 것만으로 위험해질 가능성이 있으니.
“무슨 소리지?”
하지만 레녹은 다비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웃었다.
“비록 바로 앞에서 에반의 분신을 만들어내는 것 뿐이지만, 이걸로도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많은데.”
괜히 레녹이 사브리나의 앞에서 이 능력을 좀 더 구체적으로 실험해 보지 않은 것이 아니다.
이 능력을 유용하게 써먹기 위해서는 되도록 이 능력 자체의 언급이나 묘사가 유출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직감했기 때문.
[뭘 어떻게 하려구요?]고개를 갸웃거리는 다비를 두고 레녹이 곧바로 휴대폰을 들었다.
지체하지 않고 제니에게 통화를 연결한 레녹이 맞은 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듣고 입을 열었다.
“제니, 마탑 시공이 거의 다 끝나가는 걸로 아는데. 슬슬 협력업체와 투자자를 정해야 하지 않나?”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소리치며 뭐라뭐라 투덜대는 대답을 무시한 레녹이 곧바로 말했다.
“괜찮은 협력업체를 하나 구해놓았다. 마탑의 연구인력을 구하는 데 도움이 될 거다.”
레녹은 휴대폰 너머에서 속사포처럼 빠르게 돌아오는 대답을 들으며 피식 웃었다.
“아니, 아주 유명한 쪽이다. 너도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거야.”
[…….]“그래. 내가 직접 가지.”
그렇게 말한 레녹이 다비가 띄워준 일정표를 확인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시기가 딱 맞는군.”
* * *
“에반. 아직도 믿기지가 않는군.”
라바테논 마법대학의 개강일.
방학이 끝나고 학기가 시작하며 학부생들이 다시 학교에 가득 들어차고, 기숙사와 연구동이 떠들썩하다.
환절기를 막 지나 포근해진 학장 집무실.
창밖에 서서 학관을 내려다보던 학장, 사이올러스 가르테아논이 떨떠름한 기색으로 말했다.
괴신궁의 습격 사태 이후 잠시 안식을 취하고 복귀한 그의 얼굴은 꽤 수척해져 있었지만.
그 얼굴에는 비교할수도 없을만큼 큰 놀라움과 얼떨떨함이 동시에 비춰지고 있었다.
“자네가 이런 일을 해낼 거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네.”
학관 사방을 돌아다니는 학부생들만큼이나, 외부에서 취재를 위해 찾아온 언론사와 미디어가 한가득이다.
뿐만 아니라 오늘 이 순간을 구경하기 위해 학교 바깥에서 찾아온 무수한 손님들까지.
찰칵, 찰칵!!
파바바밧!!
“학생들, 잠깐 여기 좀 봐주세요!!”
“시간 괜찮다면 인터뷰 가능할까요? 수당은 넉넉하게 드리겠습니다!”
“원소학부 강의동이 어디죠? 가능하면 포토존 쪽으로 안내 부탁합니다……!!”
시간이 없는 것처럼 다급하게 돌아다니는 기자들과 취재진, 촬영 스태프와 언론사 인력까지.
학관 하늘 위로는 헬기와 드론이 쉴 새 없이 날아다니며 라바테논 마법대학의 전경을 촬영하고.
라바테논 연구동을 가로지르는 대로변에는 주차된 차량이 빽빽하게 들어차 길이 막히고 있다.
빠아아앙!!
저 멀리서 끊임없이 들려오는 경적과 시끌벅적한 말소리.
학장실 뒤쪽 소파에 앉아 약수를 마시던 레녹이 그런 학장의 말을 듣고 피식 웃었다.
“제게 별로 기대를 걸지 않았다는 말씀입니까?”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시선을 돌린 학장이 레녹을 보며 따라 웃었다.
“학교 내 다른 중진 교수들도 해내지 못한 일을, 자네가 대뜸 해낼 거라고 믿기지 않아서 말일세.”
“운이 좋았습니다.”
“운이 좋다는 말로 설명이 가능한 일이 아니야. 지금 이 인파를 보게.”
살짝 흥분한 기색으로 학교를 돌아본 학장이 말했다.
“라바테논 마법대학이 발칸 최초의 마탑과 협약을 맺는다는 소식. 그것 하나만으로 온 도시의 언론사가 이곳으로 몰려오고 있네.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나?”
“…….”
지금 학관 내부에 사람이 이리 가득 찬 것은 단순히 라바테논 마법대학의 개강일이 다가왔기 때문이 아니다.
단순히 학기가 시작된다는 이벤트를 초월하는, 학교의 역사와 입지를 통째로 바꿀 수도 있는 거대한 협약.
라바테논 마법대학과 발칸 최초의 마탑이 체결하는 공식적인 첫 번째 협약.
온갖 투자기관과 연구소, 다른 마탑과 사업체들을 제치고 라바테논이 처음으로 그 대상이 되었다는 의미.
그리고 그 건을 주선해 실행시킨 장본인이, 바로 에반 바일런 조교수라는 사실까지.
레녹이 인도자의 반지를 손에 넣고 에반의 형상을 만든 직후 한 일은, 바로 라바테논과 마탑의 공식적인 협력이었던 것이다.
“이 일을 성사시킨 것만으로 자네는 라바테논의 역사에 한 획을 그었네. 마음같아선 대학 전당에 당장 자네의 이름을 올리고 싶을 지경이야.”
[부우우우~]학장의 어깨 위에 올라탄 털뭉치 정령이, 그런 주인의 기분을 눈치채고 기분 좋게 울었다.
괴신궁 사태 이후 학장이 출근하지 않을 때마다 레녹이 돌봐주었지만, 주인이 돌아오자 한결 활기를 되찾은 모습.
“지금와서 묻기도 그렇지만, 대체 어떻게 그 마법사를 설득해서 이번 일에 끌어들인 겐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정령을 품에 안고 쓰다듬던 학장이 물었다.
“내가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바로는, 만나기 어려운 수준이 아니라 목숨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위태로운 성정이라던데.”
“……평판에 오해가 섞여 있는 것은 아닐까요?”
레녹이 잠시 침묵하다가 대답했다.
“대화가 통하지 않는 상대는 아니더군요. 그쪽에서 원하는 조건이 맞아 진전이 빨랐습니다.”
“아니, 단순히 오해라기에는 견뢰가 그동안 저지른 일이 너무 많지. 그가 어떻게 명성을 쌓아 올렸는지 잘 알지 않나.”
학장이 그런 레녹의 은근한 변호를 단칼에 부정했다.
“내가 알고 지내는 시의원들이 좀 있네. 그를 직접 만나본 이들도 하나같이 제정신이 아니라고 말하더군.”
“…….”
“중앙의회를 상대로 무력행사와 압박을 즐길 만큼 기준이 비틀린 마법사야. 그래서 사실 나는 조금 걱정스럽기도 하군.”
학장이 그 사이 살짝 가라앉은 기색으로 말했다.
“견뢰가 작정하고 학관 안에서 힘을 투사한다면, 그것만으로 많은 사람들이 위험해질 걸세.”
사이올러스는 견뢰가 어떤 마법사인지 실감하지 못해도, 그가 얼마나 위험한 존재인지는 알고 있다.
위계의 고하를 떠나, 단신으로 발칸의 음지에서 살아남은 마법사가 얼마나 치밀하고 집요한지 경험상으로 짐작하는 것이겠지.
“견뢰가 그럴 마음을 먹었다면 굳이 이런 명분을 만들 필요도 없겠죠.”
레녹이 차분하게 대답했다.
“가능한지 여부는 둘째 치더라도, 너무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계시는 것 아닙니까.”
“…….”
확실히, 레녹의 입장에서 굳이 전력을 다하지 않아도 이 학교 전체를 상대하는 일 자체는 어렵지 않을 터.
하지만 그건 라바테논에 소속된 마법사들 대부분이 전투보다는 연구와 학문 쪽에 특화된 학자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마탑과 대학의 협업은, 이제 막 창설된 마탑에 필요한 연구인력을 공급하기 적절한 수단이 될 터.
반과 에반의 신분으로 양쪽에 발을 걸치고 있는 만큼, 돌아가는 상황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확인할 수 있다.
레녹이 인도자의 반지를 손에 넣자마자 이쪽 일을 추진한 것은, 무조건적으로 이 상황이 이득이 될 거란 확신이 있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래. 괜한 걱정을 하는 거겠지. 나이가 드니 쓸데없는 생각이 늘었어.”
쓴웃음을 지은 학장이 불길한 생각을 털어내듯 고개를 저었다.
“중앙의회에서 견뢰에게 마탑의 권한을 쥐여준 것부터가, 경우 없는 자는 아니라는 증거겠지. 그리 믿어야 하는데…….”
“여차하면 제가 책임을 지겠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시죠.”
“…….”
“왜 그러십니까?”
살짝 놀란 기색으로 레녹을 돌아보는 학장의 모습.
떨떠름하게 반문한 레녹을 보며, 학장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별것 아닐세. 단지 아리스의 손에 끌려온 자네가, 어느새 이리도 학교를 걱정하는 참된 선생님이 되었다는 생각에…….”
“…….”
“그래. 이런 교육자의 성장과 보람을 옆에서 지켜보고자 학장 자리를 받아들였던 건데, 내 마음이 너무 약해졌군.”
단단하게 입매를 굳힌 학장이 거울 앞에서 옷깃을 차분하게 정돈하고 돌아섰다.
레녹을 내려다보는 그의 눈빛에는 결연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책임을 지는 건 자네가 아니야. 난 이제 준비가 됐네. 가지.”
뭔가 이상한 착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그걸로 학장의 불안감이 사라졌다면 좋은 것 아닐까.
레녹은 대충 미심쩍은 생각을 뭉개고 학장을 따라 자리에서 일어섰다.
학장 집무실이 위치한 중앙 학관을 돌아, 원소학부 연구동으로 향했다.
두 사람을 발견하자마자 멀리서 빠르게 다가오는 인파. 순식간에 주변이 떠들썩하게 변했다.
파바바밧!!!
“바일런 교수. 여기 좀 봐주세요!!”
“마탑과 협약을 체결하게 된 계기라도 간단하게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학장님, 이번 협약으로 라바테논의 입지가 시정부에서 대폭 올라설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연구동으로 가는 길을 따라 쭉 늘어선 수백 명의 취재진과, 쉴 새 없이 빛나는 스포트라이트.
대낮임에도 사방에서 비추는 카메라 불빛 덕에 눈이 부실 지경이다.
“밀지 마세요, 안전거리를 유지해 주셔야 합니다!!”
“모두 한 걸음씩만 뒤로 물러나 주세요!”
사방에서 안전요원들이 필사적으로 길을 막고 목이 터져라 소리치는 사이.
레녹과 학장은 연구동 1층 입구 바로 앞에 마련된 성대한 현판 아래 도착했다.
축하의 메시지와 협약을 기념하는 팻말이 펄럭이고, 라바테논 마법대학과 원소학부의 깃발이 나풀거리며 커튼처럼 넘실거릴 정도.
미리 자리해 있던 다른 수행원과 교수들이 벌떡 일어나 레녹과 학장을 맞이했다.
칼라일 연구소장이자 임시교수로 재직 중인 바일라 교수와, 연구소 직원이자 조교수로 일하고 있는 카시아도 자리한 상황.
그 밖에 원소학부에 발을 걸친 교수들이나 대학원생, 연구원들 모두가 약속이나 한 듯 출석해 있다.
원소학부 학부생들 역시 강의동 창문 밖으로 이곳을 지켜보는 상황.
저 멀리서 긴장된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는 프리실라의 모습이 보였다.
“…….”
호기심이 가득한 표정이면서도, 어딘가 희미한 불안감이 공존하는 얼굴.
자신이 예전에 에반에게 했던 진로 상담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까.
레녹은 그런 프리실라를 보며, 등 뒤에서 펄럭이는 깃발로 자신의 얼굴을 살짝 가렸다.
그와 동시에 학관 하늘 저편에서 새카만 비행선 한 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부아아앙!!
“저건……”
“사진 찍을 수 있겠어?”
세간에서 사용되는 헬기나, 곳곳에 떠다니는 다른 비행장비들과는 확연히 다른 외견에 기자들이 술렁였다.
매끈한 유선형의 동체와 베일 것처럼 날카로운 칼날 날개.
날개 아래쪽으로 회전하는 원형의 프로펠러가 일체 소리도 내지 않고 비행선을 부유시키고 있다.
대기를 헤치고 양력으로 비행하는 것이 아니라, 물 위에 떠 있는 듯한 기묘한 부유감.
다른 이들이 그 우아한 비행선의 동선을 멍하니 바라보는 사이, 소리도 없이 비행선이 강의동 한복판에 내려섰다.
치익!
비행선의 문이 열리는 것과 동시에 사방에서 사람들이 카메라를 들어 올린다.
찰칵, 찰칵, 찰칵!!
발칸 최초의 마탑을 세운 대마법사.
단신으로 프리랜서 업계를 짓밟고 정상에 오른 굴지의 초인.
이 도시에서 가장 위험한 명성과 괴담을 동시에 보유한 희대의 기인.
위계를 초월해 자신만의 마법체계를 새로이 창시한 대종사이자, 이 거대한 도시에서도 그 악명과 전공이 조금도 빛바래지 않는 괴물.
그자가 이곳에 직접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을 찍기 위해, 카메라 셔터가 초당 수백 번은 넘게 눌리고 있는 그 순간.
[구경꾼이 많군.]차가운 음색이 아무런 전조도 없이 모두의 귓가에 내리꽂혔다.
“……!!”
기묘하게 울리는 전성을, 수천 명의 인파를 상대로 직접 머릿속에 때려 박는 듯한 전언.
의지 자체를 상대에게 강제로 공유시켜, 그 의사를 말하지 않아도 이해하게 만드는 마법사의 언령이다.
그 진가를 이해한 이들이 몸을 딱딱하게 굳히고, 영문을 모르는 사람들이 고개를 갸웃거린 직후.
[헛수고를 하지 않게 도와주마.]지지직……!!
사람들이 들고 있던 카메라가 일제히 먹통이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