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766
약먹는 천재마법사 766화
일인극(18)
바리츠 사 사내 보안 데이터베이스.
프레스캇의 단말기를 빼앗아 침투한 네트워크 내부에서 마주한 아주 오래된 영상.
교황성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발칸을 방문할 당시의 영상이라 했던가.
교황성이라는 말 자체는 처음 들어봤지만, 레녹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렵지 않게 짐작해낼 수 있었다.
아마 교단 내부에서 교주를 보필하는 최정예 집단을 일컫는 말이겠지.
어쩌면 교주의 의지를 대변하기 위한 개념에 이름을 붙여 부르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
하지만 레녹은 교단의 조직도에 대한 잠깐의 상념조차 오래 이어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일렁거리는 단말기 스크린 너머.
화면 저편을 뚫고 터져 나와 스튜디오 전역을 메운 불쾌한 노이즈의 끝자락에서.
어느새 이쪽을 향해 시선을 돌린 교주가, 레녹을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
물감이 번진 것처럼 베일 저편으로 지워져 보이지 않는 얼굴.
순백색의 옥좌 위에 축 늘어진 시체와도 같은 모습과, 금이 간 채로 바스러지는 창백한 피부.
호흡을 하고 있는지조차 불확실한 그 처참한 몰골같이, 화면 너머로 들려오는 염상도 흐릿하고 불안정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레녹은 그런 교주의 죽어가는 그 모습보다도, 교주의 본질에만 철저하게 집중하고 있었다.
‘변했지만, 변하지 않았다…….’
단말기의 화면. 오래된 영상. 노이즈로 범벅이 된 괴리감.
그 모든 장벽을 뚫고 들어오는 상리를 뛰어넘은 초월자의 압도적인 존재감.
모습이 달라져도, 마주치는 시간과 장소가 변해도 달라지지 않는다.
과거의 기억과 기록 속에 남겨진 교주에 대한 그 모든 흔적들이 교주 그 자신이나 마찬가지.
타인의 믿음과 숭배 안에 자신을 맡기는 존재방식을 인간에게 허락된 일이라 할 수 있을까.
승천에 도전하는 초월자들조차 엄두도 내지 못하는 그 선택이 외려 교주를 더욱 위험하고 초연해 보이게 만든다.
이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순간마다 소멸의 위험을 감수하는 듯한.
매 순간마다 칼 끝을 걷고 있는 듯한 그 선택이.
레녹이 선택한 삶의 방식과 유사해 보인다면 그건 우연일까.
교단 극동지부에서 암리타를 죽이고 도달했던 그 만남이, 이제 와 예상치 못한 형태로 이어지는 것에 레녹이 주저하던 찰나.
[오래전의 일이군요…….]힐끗 자신의 모습을 내려다본 교주가 입을 열었다.
[아직 속세에 남아야 할 이유가 있던 시절의 기억…… 실수를 반복해 온 나의 부끄러운 모습이지요.]“…….”
교주가 레녹을 놀리듯이 말했다.
[별로 보여주고 싶은 모습은 아니군요. 특히나 당신에게는.]영상이 막 만들어질 당시에는 교주가 이 세계에 의식을 두고 있던 시간대라는 말인가.
교주 역시 처음부터 타인의 기억과 기록에 그 존재를 의존해 온 것은 아니겠지.
레녹이 그 사실을 깨닫고 빠르게 기억을 돌이켜보던 순간, 베일 너머에서 초월자가 옅은 웃음을 흘렸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원하는 것은 제때 오지 않고, 기다리는 것은 의미를 다한 뒤에야 도착하여…… 그럼에도 아직 놓지 못한다는 것이.]“……너는.”
[하지만 이런 만남조차 의미는 있는 법이지요. 오래전에는 불가능했던 일도, 지금은 가능하니까요.]그가 하는 말에는 너무나 많은 의미가 담겨 있어, 한번 듣고도 그 뜻을 바로 파악하기 어렵다.
그 불분명한 의미의 중첩과 혼용이 교주 본인이 의도한 것인지, 반대로 스스로 선택한 결과의 부작용인 것인지.
어느 쪽이든 당장 레녹으로서는 답을 알아낼 수 없겠지.
레녹은 그렇기에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먼저 말하기로 했다.
“바깥의 일을 알면서도, 이 대면을 거절하지 않았다면 이유가 있겠지. 알고 있다.”
바리츠 사에게 교주의 모습이 담긴 영상이 데이터로 남아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논문을 작성하던 레녹이 그것을 구하다가 접촉했다는 이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전혀 접점이 없어 보이는 이 당혹스러운 만남에 이유가 있다면.
레녹은 그것이 자신과 교주 모두에게 존재하는 한 가지 ‘동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확신하고 있었다.
“바리츠 사에서 제작한 마력흐름 재현모듈.”
고요한 스튜디오 너머로, 레녹의 목소리만이 조용히 울려 퍼졌다.
“그것을 당신이 설계해 주문했었다는 사실이 우연은 아니겠지.”
[…….]교주는 대답하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사라질법한 희미한 기척으로, 그저 그 자리에서 레녹의 말을 기다렸을 뿐.
이미 레녹이 무엇을 물을지 알고 있으면서도, 굳이 그 말을 직접 듣고 싶은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레녹은 그걸 알면서도 던져야 하는 질문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당신과 내가 바라는 것이 이 세계에서 한 번이나마 겹쳤다면…….”
고민하던 레녹이 물었다.
“내가 생각하던 것을, 당신 역시 한때나마 시도하려 했기 때문이었나?”
레녹이 마력흐름 재현모듈을 구하려던 근본적인 이유는, 세 번째 논문을 완성하는데 그 모듈이 필요했기 때문.
하지만 아주 오래전에 교주가 그것을 주문하여 제작하려 했다면 그 동기가 무엇이었을까.
레녹과 교주가 원하는 것이 겹쳤다는 이 기이한 우연.
레녹은 그것이 자신이 원하는 논문의 성과를, 한때 교주가 앞서 시도해 보려 한 것이 아니었는지를 묻고 있었던 것이다.
“명분은 생명유지장치를 핑계로 댔지만, 진짜 목적은 그게 아니었을 거야. 그런 식의 여생에 집착하지는 않았을 테니.”
교주가 이 세계에 존재하기 위해 선택한 방식은 육체와 정신을 넘어선 이형의 것.
그를 생각하면 생명유지장치를 만들기 위해 모듈을 주문했을 가능성은 낮다.
레녹처럼 급하게 처리해야 하는 일이 있었고 그를 시도해 보기 위해 바리츠 사의 도움을 빌린 것이 아닐까.
한참 동안 잊혀져 있던 그 데이터가, 이제 와서 레녹의 손으로 다시 발굴되어 그 모습을 드러낸 거라면.
“당신은, 그것을 사용해 원하는 결과를 얻어냈나?”
어쩌면 세번째 논문의 성패를 지금 이 자리에서 바로 확인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
그렇기에 레녹은 위험을 감수하고 여기서 교주에게 확인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교주는 그런 레녹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천천히 영상 저편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베일 저편에서 일렁이는 노이즈만이, 그 시선의 방향을 짐작게 할 뿐.
그 이상의 정보는 여전히 아무것도 레녹에게 주어지는 일이 없지만,
그럼에도 레녹은 교주가 그 질문에 대해 복잡한 감정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직감할 수 있었다.
교주 자신이 앉아 있는 순백색의 옥좌. 베일 아래 그를 보필하는 수천의 행렬.
[글쎄요……. 의미가 있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군요.]그 신도들을 말없이 한참을 바라보던 교주가 말했다.
[그 모든 순간을 돌아보고 추억하기에는, 이미 너무나도 많은 실패를 지나쳐 온지라.]“…….”
말끝을 흐렸지만, 교주가 암시하는 것은 결코 성공에 가까운 느낌은 아니었다.
이미 교주 자신이 먼저 시도를 하여, 실패에 가까운 결과를 얻어내었다는 의미가 아닐까.
[하지만 내가 시도했던 일과, 그대가 이제부터 하려는 일…… 그 성패를 비교하는 것은 무의미한 행위입니다.]그런 레녹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교주가 부드럽게 말했다.
[서로 지나쳐온 시간이 같지 않기에. 같은 질문을 던져도 다른 대답이 돌아오기 마련. 그 다름이야말로, 우리가 무엇보다 긍휼히 여겨야 할 가치이니까요.]같은 것을 계획하고 시도하더라도, 그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는 말.
교주 자신이 실패한 것과는 달리, 레녹에게는 다를 수도 있다는 묘한 대답.
[같지 않으면서도 같아지려 하고, 원하지 않으면서도 공감하려 하기에. 통제할 수 없는 모순을 양립시켜야 하는 것이죠.]레녹이 그것을 생각하던 사이, 교주의 목소리가 한없이 싸늘하게 변했다.
[그를 위해서라면, 진실을 호도하는 것도 꼭 나쁜 일은 아니지 않겠습니까…….]“……뭐?”
베일 너머로, 서늘한 시선이 다시 레녹을 향했다.
[다른 이들에게도 다소 가혹한 기준을 적용하게 되더군요.]“그게…… 당신이 질문에 대답하는 이유인가?”
교주가 웃었다.
[그래요. 허울뿐인 거짓으로 속이려 해도, 서로의 대답이 겹치지 않기에는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났어요.]“…….”
레녹이 침묵하는 사이, 영상의 풍경이 서서히 무너져내리기 시작한다.
바리츠 사 보안 네트워크 내부에 있는 오래된 영상.
그 영상의 재생시간이 전부 끝나는 것과 동시에, 이 공간 역시 그대로 소멸해 사라지는 것.
아마 이대로 두 번 다시 네트워크 내부에 존재하는 영상이 열리는 일은 없겠지.
레녹이 그것을 직감하고 퍼뜩 시선을 치켜든 찰나.
[무엇을 하려는지는 알겠지만 말리지는 않겠습니다. 당신이라면 나와 다른 것을 손에 넣을 수 있을 테니.]교주가 그렇게 말하며 천천히 손가락을 까닥였다.
금이 간 채로 바스러지는 손끝이 옥좌 손잡이를 부드럽게 쓰다듬은 순간.
영상 저편에서 교주를 보필하는 수천 명의 신도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려 레녹을 바라보았다.
[그대가 추구하는 바가 머지 않았다면, 조만간 내 실패작 중 하나를 만나볼 수 있을 겁니다.]자신을 숭배하는 무수한 신도들의 행렬의 정점에서, 교주가 힘없이 웃었다.
[바라마지 않던 만남은 아닐지라도…… 후후, 부디 잘 부탁드리지요.]고오오……!!
처음 교주를 기억 속에서 마주쳤을 때와 같은 그 섬뜩한 풍경.
마치 강제로 레녹와 교주 사이의 시선을 채워 넣는 듯한 그 이질감.
레녹이 그 위화감을 느끼고 무언가 말하기 위해 입을 열려던 직후.
파지직……!!
퍼엉!!
영상을 송출하던 단말기가 그 자리에서 폭발해 완전히 꺼져버렸다.
레녹의 어깨에 머리를 얹은 채로 축 늘어진 다비가 힘없이 중얼거렸다.
교주가 자의를 가지고 기록 저편에서 움직이기 시작한 순간 빠르게 치솟던 데이터 과부하.
그것을 다비가 몽상전의경의 힘으로 어떻게든 눌러서, 레녹과 대화가 가능할 정도의 시간을 벌어주고 있었던 것.
[자, 자성영역으로도 더 이상은 출력 과부하를 억제할 수가…….]“……아니. 이걸로 충분해. 고생했어.”
애초에 전뇌정령의 힘이 아니었다면 이런 식으로 네트워크에 침입해 바리츠 사의 협력을 받아내는 것조차 불가능했겠지.
다비가 이런 부분에서 결코 요령을 피우거나 변명을 대지 않을 거라는 사실은 레녹도 알고 있었다.
거대여우로 변한 다비의 머리를 쓰다듬은 레녹이 천천히 망가진 단말기를 놓고 일어섰다.
기절한 바리츠 사 관계자들과, 망가진 시설들이 사방에 널브러진 고요한 스튜디오의 정경.
눈처럼 흩날리는 푸른 빛의 다면체 입자들과 그를 통해 이어지는 전뇌영역의 풍경만이 영역의 흔적을 내비치고 있을 뿐이다.
후우우웅……!
천천히 마력을 거둬들여 자성영역을 취소시킨 레녹이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열어보지 않은 메시지가 쌓인 메신저 안에는, 어느새인가 새로운 메시지가 하나 더 도착해 있었다.
[영상을 확인하셨다면 당시 교황성의 행태가 어떠했는지 이해하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마치 영상을 통해 당연히 바리츠 사와 교단과의 관계가 해명이 되었다는 듯한 뉘앙스.
하지만 레녹은 정작 기록 속의 교주와 대화하느라 영상의 내용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다.
애초에 영상 저편에서 자의식을 가지고 존재하는 교주의 존재로 인해, 기록 자체가 멀쩡하게 작동하지 않은 상황.
하지만 그럼에도 이어지는 전언은 확실하게 레녹의 흥미를 끌 만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교황성에서 주문한 모듈을 기반으로 하는 시제품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물건을 확인하고 싶으시다면, 언제든지 찾아와주시길.]“시제품이라…….”
[부회장님께서 기다리고 계실 겁니다.]-바리츠 사 전략기획실 2팀장. 단테 클락스턴
아마 이자가 방금 사내 보안 네트워크에서 레녹에게 직접 말을 걸었던, 바리츠 사 관계자 본인이겠지.
교황성이 발칸을 방문했을 당시 영상의 존재를 인지하고, 그를 이 자리에서 레녹에게 직접 보여줄 생각을 했던 당사자.
그는 이 영상이 얼마나 위험한 데이터인지, 또 어떤 가치를 지닌 자산인지 알고 있었을까.
레녹은 아마 그럴 가능성은 낮다고 생각했다.
‘교주와 통신이 가능한 기록물이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고작 이런 식으로 소모하지는 않았겠지.’
단말기의 흔적을 들어 올린 레녹이 고민에 잠겼다.
‘영상을 재생한다고 매번 반응하는 방식도 아니었을 거야. 교주 자신이 원하는 순간에만 존재를 드러내는 식이라면…….’
결국 레녹이 직접 영상을 확인했기에 교주가 이 만남을 거절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맞겠지.
교주 자신이 실패한 것과는 달리, 레녹은 다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면.
역시 지금 당장 세 번째 논문을 완성하는 일을 망설일 필요는 없다.
“……좋아.”
그렇게 중얼거린 레녹이 마력사를 뻗어 프레스캇을 묶어 질질 끌고 가기 시작했다.
기절한 대원의 품 안에서 차 키를 꺼내 들어, 스튜디오 밖에 주차된 차량을 찾아 곧바로 탑승.
축 늘어진 프레스캇을 뒷좌석에 던져놓고, 레녹은 운전석에 앉아 차 키를 꽂았다.
조수석에 올라탄 다비가 다섯 개의 꼬리 중 하나를 계기판에 꽂아 넣으며 말했다.
[클락스턴이란 유기체가 좌표를 따로 보내줬어요. 이대로 방향을 찍을까요?”“그러지. 바로 바리츠 사 관계자를 만나러 가자.”
시동을 걸고 방향을 확인한 레녹이 다비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필요한 견본 제작 과정을 대폭 앞당길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
“교주가 모듈을 사용해 만든 물건이 뭔지 확인해 봐야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