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77
딜런은 그렇게 말하면서 지그시 레녹을 바라보았다.
“……….”
“이 미친놈이 기어이 도박에도 손을 댔구나. 안타레스한테 연락하면 되지?”
“아, 원금만 회수하고 빠질거라고!”
어린애들처럼 강짜를 부리는 딜런을 바라보던 레녹이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유쾌한건지, 천진난만한건지 알 수가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일적인 부분에서는 적어도 신뢰할 수 있는 동료인 건 확실했다.
“2천.”
설마 레녹이 먼저 몸값을 제시할줄은 몰랐는지 두 사람의 눈이 동그래졌지만, 딜런이 먼저 정신을 차렸다.
“4천. 대신 갱단 보스의 목을 딸때까지 협력하겠어.”
“너 아까부터 계속 듣고 있던거야?”
“이 바닥에 소문이 파다한데 모를리가 있겠냐고.”
레녹은 제니와 투닥거리는 딜런을 바라보다가 피식 웃었다.
“3천 달라는 소리를 길게도 돌려말하는군.”
“콜.”
3천만 셀에 믿을만한 전위를 하나 고용할 수 있다면 더할나위 없다.
어차피 비용은 다이크 앞으로 달아놓으면 파노아가 알아서 청구해줄 터. 원래라면 협상조차 필요없는 일이었다.
마치 약속이나 한것처럼 악수를 나누는 두 남자를 바라보던 제니가 고개를 저었다.
“반 당신도 딜런이랑 어울리다 비슷해지는 것 같은데.”
“말 조심해.”
황당한 얼굴로 혀를 내두르던 그녀가 갑자기 바 아래쪽 노트북에 고개를 처박았다.
“…….파노아한테 연락이 왔어. 마지막 의뢰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는군.”
레녹은 그 말을 듣고서 희미한 미소를 머금었다.
마침내, 이 길고도 길었던 다이크와의 협업에도 끝이 보이고 있었다.
#
“협상은 없습니다.”
회의실에 들어선 파노아가 가장 먼저 내뱉은 말은 그것이었다.
“작전을 시작하기 전이라면 모를까, 이제와서 저런 수작에 넘어갈 이유는 어디에도 없죠.”
“자세한 계획은?”
“48시간 뒤에 곧바로 시거 뱅의 본진을 탈환하도록 하겠습니다.”
“오….”
레녹을 따라 쫄래쫄래 회의실까지 따라온 딜런의 놀란 목소리가 나직하게 울려퍼졌다.
“굉장히 과격한 아가씨군.”
속삭이는 딜런의 말을 무시한 레녹이 한번 더 물었다.
“가용되는 전력을 설명해줘.”
“현재 여기 모여계신 분들과, 사측에서 새로 고용한 프리랜서 100여명. 그리고 저희 프로젝트 팀에서 무력지원이 가능한 전력을 모두 내세울 생각입니다.”
그 말을 들은 레녹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킬리안에게로 향했다.
지금까지 작전에 참가하지 않은 프로젝트 소속 전력이라고 하면 그밖에 더 있겠는가.
그 시선을 눈치챈 킬리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마지막 작전이 되겠지. 시의회의 허락도 떨어졌겠다, 이제는 이쪽에서 나서도 문제가 없을거야.”
“문제는 저쪽 갱단의 보스가 어떤 수를 숨기고 있느냐, 그 부분이 관건이 되겠지요.”
파노아가 말을 이었다.
“갱단이 최근 들어서 시도하려고 했던 다양한 사업협력을 생각하면, 혼자 죽을 생각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해보입니다.”
퇴역군인들과의 거래, 폴 아커만 같은 마약상에게 받던 투자나 용병사무소, 스캐빈저와의 협력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다.
“36시간 뒤부터 시거 뱅의 본진을 포위하고, 특별한 이상징후가 발견되지 않는다면 12시간 뒤에 후진입하도록 하겠습니다.”
본진의 진입루트, 각 병력의 분산과 집결 장소를 구체적으로 설명한 그녀가 회의실에 앉은 다른 이들을 둘러보며 물었다.
“질문 있으십니까?”
대답은 없었다.
계획의 성공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철도역 작전의 성공, 그리고 벡 클린턴의 사살이 한번에 이루어졌던 우연이 전화위복이 되어 승기가 크게 갈렸다.
그리고 이 작전의 성패를 크게 앞당긴 것은 레녹의 능력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겠지.
모두의 시선이 구석자리에 앉아있는 젊은 마법사에게로 향했다.
레녹은 가만히 생각에 잠겨있다가 말했다.
“바로 시작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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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거 뱅의 본진은 48구역 외곽의 큼지막한 발전소에 위치해 있다.
버려진 발전소를 통채로 개조해서 만들어낸 본진은 널찍한 주차장을 포함하고 있는데, 이 주차장의 구역을 통채로 철조망으로 둘러싸고 발전소는 창문을 틀어막아 침입을 방지하고 있었다.
그 밖에도 발전소 옥상에 다발로 놓여진 기관총 포대와, 로켓 런처.
주차장 앞에 난잡하게 널브러진 수백대의 차량을 엄폐물로 사용하는 갱단의 본진은 척 보기에도 공략이 쉽지 않아보였다.
“그래서 아직까지 정문을 뚫지 못했다는 말이군.”
제니의 술집에 들렀다 뒤늦게 합류한 레녹이 어이가 없는 얼굴로 말했다.
먼저 도착해서 다른 프리랜서들을 이끌고 발전소를 공략중이던 킬리안이 피곤한 얼굴로 대답했다.
“저항이 상당해. 저쪽에서도 꽤 까다로운 협력자를 데려왔더군.”
“협력자?”
“갱단원과는 확실하게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이들이 몰려다니면서 이쪽 병력을 몰아내고 있어. 아마 저쪽과 거래하던 퇴역군인들을 불러온게 아닐까 싶군.”
“………”
철도역에서의 일로 군인들과의 거래망을 완전히 끊어냈다고 생각했는데, 용케 다시 지원군을 요청한 모양이다.
저쪽 보스의 수완이 그만큼 대단하다고 해야할까.
레녹은 킬리안을 밀치고 앞으로 나서서 돌아가는 정황을 파악하기 위해 마력을 사방으로 넓게 퍼트렸다.
반경 수 킬로미터를 뒤덮은 그의 드넓은 감각권이 퍼져나가면서 순식간에 발전소를 둘러싸고 사방의 생명반응을 포착해냈다.
에덴
발전소 안쪽에 대략 오백. 발전소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이쪽 전력이 대략 백하고도 스물.
그 중에서 자잘한 부상자들을 걸러내고 나면 대략 병력비율은 4대 1 정도.
그나마 레녹과 함께하던 다른 팀원들이 분투하고 있기에 균형이 유지되고 있는건가.
특히 뒤늦게 데려온 딜런의 활약이 압도적이다.
아예 정문에 자리잡고 쏟아지는 총격을 대놓고 맞으면서 전진하며 아군의 공간을 확보하는데 집중하고 있었다.
안타레스 사무소 소속 용병들이, 다른 프리랜서에 비해 얼마나 고급인력인지 여실히 보여주는 듯 하다.
그 밖에 유의해야 할 점이라면…. 갱단 측 인원들이 보여주는 생명반응과 마력의 움직임이 비정상적으로 활발하다.
아마 특별한 방법을 통해서 아군의 전력을 끌어올린 듯 했다.
킬리안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자 그가 짐작이 가는 부분이 있다는 듯 얼굴을 찡그렸다.
“그러고보니 이쪽에서 생포했던 포로중에서 금단증상과 유사한 증세를 보이는 놈들이 꽤 있어. 아마 마약종류를 사용해서 도핑을 하지 않았나 싶은데.”
“짧은 시간동안 신체능력을 끌어올리는 대신 부작용이 심한 쪽이겠지.”
“그래. 그걸 생각하면 차라리 지금 물러났다 나중에 발전소를 공략하는게 나을수도 있겠는데?”
킬리안이 중요한 비밀을 깨달은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훤히 보였다.
이대로 계속해서 시간을 끌다보면 갱단과 군인들은 마약의 부작용에 잠식당할테고, 확연히 전력이 약해진 이들을 상대로는 지금보다 수월하게 발전소를 공략할 수 있다는 생각때문이겠지.
하지만 레녹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지금 당장 들어가야한다.”
“뭐? 어째서?”
레녹은 대답하지 않고 곧바로 걸음을 옮겼다.
킬리안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는 않는 모양이지만, 아마 파노아가 이 자리에 있었더라도 레녹과 똑같은 말을 했을것이다.
‘다이크 본사에 도발을 걸어놓고 고작 이런 허접한 수만 준비했을리가 없어.’
얼굴도 모르는 갱단의 보스였지만 레녹은 결코 그를 무시하거나 얕잡아보지 않았다.
상대는 레녹이 이 일에 뛰어들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순조롭게 40번대 구역의 무기사업을 점유해가던 능숙한 사업가다.
어디까지 수싸움을 계산하고 먼저 손을 썼는지는 몰라도, 고작 킬리안이 생각한 공략법에 당할만큼 단순한 대책을 준비해오지는 않았을 터.
아니, 오히려 이쪽에게 시간을 끌수록 유리하다는 인상을 심어주려는 가능성이 다분해보였다.
‘뭘 준비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아마 시간을 끌어야 하는건 저쪽이겠지.’
저쪽 보스가 준비하고 있는 대책이 별거 아니라면 상관없겠지만, 만약 이 상황을 뒤집을 일발역전의 한 수를 준비해왔다면?
갱단이 복마전과 접선하려던 시도가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레녹은 그 노림수에 당해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단번에 돌파한다.’
마력을 강하게 끌어올리면서 한걸음 앞으로 내디딘다.
그 강렬한 흐름에 정문을 공략하던 딜런이 고개를 돌렸다.
두 자루의 단창을 손에 쥐고 있던 그의 가죽자켓은 총탄의 흔적으로 너덜너덜했지만, 정작 움직임은 멀쩡해보였다.
“반, 너무 늦은거 아니야?”
“뒤로 물러나.”
화르르륵!!
손안에서 길쭉한 화염을 뿜어낸 레녹이 중얼거렸다.
“지금 당장 발전소를 뚫어버릴테니까.”
딜런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곧바로 자신을 따르던 다른 프리랜서들을 뒤로 물렸다.
이미 수차례의 경험으로 레녹이 어떤 수준의 마법사인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레녹은 그런 딜런의 기대를 조금도 배신하지 않았다.
오른손에 휘감긴 불꽃을 그대로 땅에 던지듯이 내리꽃는다.
[필드 오브 플레임]후우우욱!!
아스팔트를 타고 들불처럼 번져나간 불꽃이, 순식간에 발전소 안쪽으로 흘러들어간다.
드넓은 주차장을 별다른 기름도 없이 불태우기 시작한 화염은 그리 뜨겁지도, 격렬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발전소 안쪽 주차장에 널려있는 무수한 차량의 엔진들을 자극하기에는 충분했다.
콰아아아앙!! 콰아앙!!
발전소 안팎의 모든 사람들의 레녹의 노림수를 알아차린 것은, 주차장 안쪽 차량들이 수십개의 불덩이가 되어 터져나가기 시작한 뒤였다.
“아, 안돼!!”
“막아! 저게 모두 터져나가면 우린 다 죽는다!!”
“씨, 씨발…!!”
순식간에 패닉에 빠져버린 갱단과 군인들을 바라보던 레녹이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가자.”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레녹의 뒤에 서 있던 수십명의 프리랜서들이 발전소 안쪽으로 뛰어들기 시작하고.
소식을 듣고 달려온 다른 팀원들 역시 합류해서 일제히 갱단을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뒤늦게 합류한 킬리안의 주둥이가 길쭉하게 변하더니 늑대의 형상으로 변해 적진에 뛰어들고, 딜런의 단창이 빠르게 사방을 누비면서 약에 취한 퇴역군인들을 꿰뚫었다.
발전소 옥상에서 쏟아져 내리는 기관단총은 아그리아가 레이저로 저격하고, 조드와 케이니가 가장 먼저 앞으로 달려나갔다.
지금까지 유지되었던 균형이 거짓말인 것처럼 전세가 역전되고, 발전소가 다시 포위당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레녹은 일행의 가장 뒤쪽에서 그들을 따라 걸으면서 발전소 입구에 시선을 던졌다.
‘슬슬 나올때가 되었지.’
아무리 저쪽에서 시간을 끌고싶어하더라도, 여기까지 몰린 뒤에도 반응을 보이지 않기란 불가능하다.
정말로 레녹이 생각하는 것처럼 보스에게 숨겨진 한수가 있다면, 그 수를 준비하기 위해서라도 몸소 시간을 벌러 걸음을 옮길 터.
아니나 다를까, 주차장에 싸늘한 침묵이 흐를때즈음, 발전소 옥상에서 한 남자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날카롭고 예민해보이는 미남. 잠을 설친듯이 수척해보이는 인상이지만 의외로 체격 자체는 건장하기 그지없다.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발전소 아래쪽에 모여든 백여명의 사람들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그 몸안에서 들끓는 격렬한 마력의 흐름을 확인한 레녹이 직감했다.
‘저놈이군.’
시거 뱅이라는 거대한 갱단을 이끌던 머리.
벡 클린턴과 함께 40번대 무기사업을 점유하고 있던 사업가.
갱단의 두령, 에덴 가르시아가 드디어 이 자리에 처음으로 얼굴을 보인 것이다.
“내가 보낸 편지가 전달이 잘 안된 모양이군.”
에덴이 말했다. 낮은 목소리였지만 귓가를 선명하게 파고든다. 마력의 힘이었다.
“초대장을 보내기는 했지만, 이런 식의 대접을 원한 건 아니었는데.”
“하고 싶은 말은 그것뿐이냐?”
킬리안이 대답했다.
“그것보다는 좀 더 괜찮은 유언을 원할줄 알았는데.”
비아냥에 가까운 대꾸. 그만큼 킬리안이 이번 계획의 승리를 확신하고 있다는 의미나 다름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