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936
약먹는 천재마법사 936화
아나테마(10)
파직!
레녹의 손끝에서 일어난 번갯불이 사도의 미간에 꽂혀 들어간 순간.
조인 나사처럼 격렬하게 회전한 뇌광이 그의 머리 뒤로 폭발하며 엄청난 광량을 내뿜었다.
콰아아아앙!!!!
대지의 구체 안쪽을 가득 메우고 솟구치는 새파란 뇌전의 광채.
빛의 중심에서 검은 코트를 입은 청년이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섰다.
후욱!!
손에 쥐고 있던 앰플 주사기 병을 떨구면서, 입으로는 영약을 씹어 삼킨다.
손목 아래로 고대 문자가 적힌 붕대를 감고, 투명한 삽입관을 심장 부근에 꽂아 넣는 레녹의 모습.
그 순간, 타오르는 번갯불 속에서 아나테마의 나직한 속삭임이 울려 퍼졌다.
[애처롭기 그지없구나.]“…….”
[그만한 지성과 소질을 지니고도, 한번 전장에 나서기 위해 그토록 세심한 작업이 필요한 것이냐.]쿵!!
미간에 꽂힌 벼락의 광채를, 맨몸으로 버텨내며 몸을 일으켜 세운다.
금이 간 채로 쩍쩍 갈라진 대지의 갑주 위로 아나테마의 시선이 마법사를 향했다.
[그대의 삶을 붙들고 있는 것은 천명이나 축복이 아니구나. 인간종의 육체에게 허락되지 않는 재능이란, 바로 그대를 일컫는 말이겠지.]“그쪽이 보기에는 그럴지도 모르지.”
치익!!
손가락을 튕겨 연초에 불을 붙인 레녹이 말했다.
“나도 사도를 잡아보는 건 오랜만이라 준비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아나테마의 눈이 가늘게 변했다.
[그대는 마치 예전에도 사도를 상대해 본 것처럼 말하는구나.]“너희들은 한번 잡을 때 공을 들이지 않으면 죽인 다음에도 쓸데없이 손이 많이 가더군.”
마력을 끌어올리며 손목 아래 마력회로의 흐름을 관조한 레녹이 말했다.
“특히 지금 이 싸움에 걸려 있는 거래들을 생각하면, 교주의 비호를 받고 있는 널 가능한 깔끔하게 처리할 필요도 있었지.”
[광오한 말이로다. 하나 그 몸으로 이 싸움을 여기까지 끌고 온 그대라면 그렇게 말할 자격이 있지.]아나테마가 시원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인정하마. 그대가 휘두르는 마법의 위광이 내게 가장 거슬렸으며, 그 주문의 열기가 무엇보다 고통스러웠도다.]“…….”
[전위를 두고 주문을 난사하며, 승부를 끝낼 순간을 직접 골라 나선 판단은 실로 용맹했으나…… 한가지 그대가 파악하지 못한 것이 있구나.]쩌저적!!
발아래 대지구체를 가리킨 아나테마가 말했다.
[그대와 본인을 둘러싼 이 구체는, 사도술식의 위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전투를 포기하는 형태가 아니다. 오히려 그 진가는 완전히 반대에 있지.]실시간으로 완성되어가는 구체의 천장이 조금씩 그 틈을 좁혀 간다.
간간이 엿보이던 밤하늘이 가려지고, 레녹과 아나테마의 신형이 구체에 완벽하게 둘러싸인 순간.
아나테마의 눈이 처음으로 둥글게 휘어졌다.
[모든 외부의 개입을 배제하고 승패를 가르기 위한 결투장. 오직 대적자와의 일기토를 위해 만들어진 감옥이 바로 그대와 나를 둘러싼 전장일진저.]쩌저저적……!!!
그 말과 동시에 6사도의 몸에 자잘한 균열이 생기며, 조금씩 부서지기 시작했다.
쉴 새 없이 이어진 격전으로 지친 사도의 몸이 나무껍질처럼 갈라지고 떨어져 나가며 탈피를 거듭했다.
[그대의 판단이 틀렸다고 말하지는 않겠다.]쿵!!
갈라진 허물 안쪽에서 걸어 나온 것은, 처음 현신을 통해 제단 위에 나타난 아나테마 본인.
[두 전위가 목숨을 걸고 만들어준 빈틈. 본인이 처음으로 몸을 고정하고 시전하는 대규모 술식발동. 대지와 동화된 사도의 진체가 취약해지는 유일한 순간이라 판단했을 터.]“…….”
[하나 본인은 처음부터 그대를 죽이지 않고서는 이 전장에서 어떠한 진전조차 없으리라 판단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사도술식으로 대지의 해일을 일으키고 지형변화를 꾀하며, 철저하게 전장을 장악하는 일에만 몰두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지. 그리고 마침내 이렇게-]쿵!
레녹의 눈앞에 선 아나테마가 느릿한 음색으로 속삭였다.
[벼락을 품은 새가 내 손안에 스스로 내려앉게 만들었던 것이다.]페이샤가 찔러넣은 누진통에 아나테마가 피해를 입은 것은 사실.
하나 아나테마는 육체와 영혼이 동시에 꿰뚫리는 타격에도 흥분하거나 분노하지 않았다.
오히려 스스로롤 고조시키며 대규모 술식 발동에 집중하는 척 틈을 드러내고. 레녹을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까지 전장을 자신의 뜻대로 통제해 온 이 마법사라면, 아나테마가 내보인 허점을 자신이 설계했다고 확신하고 있을 테니까.
자신이 직접 나서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이 자리에서 확신의 결과물을 쟁취하려 할 터.
그렇기에 아나테마는 대규모 지형변화 술식을 사용하는 척, 사도술식으로 결전장을 전개.
레녹이 나타나 전격마법을 꽂아 넣는 것과 동시에 간이성역을 구축해 전장을 닫아버렸던 것이다.
[나의 승리다, 마법사.]후욱!!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6사도가 레녹의 멱줄을 잡아쥔다.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그대로 들어 올려진 레녹을 바라보며, 아나테마가 느릿하게 말했다.
[술식의 우열도, 전투의 논리도, 전략의 대결도 모두 이 아나테마가 그대보다 위에 있구나.]“…….”
“안다.”
[……뭐라?]“네가 마지막으로 사용할 사도술식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지.”
레녹의 무표정한 시선이 아나테마를 내려다보았다.
“그래서 방해하지 않은 것뿐이다. 바깥과 격리된 전장의 구축은 나도 바라는 바였으니.”
콰아아앙!!!
그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아나테마가 레녹의 멱살을 움켜쥔 채로 땅에 메다꽂아 버렸다.
손목을 돌리며 마력을 끌어올리는 것만으로 지면이 으스러지며 벽을 타고 파문이 요동쳤다.
하지만 으깨진 지면 아래 인간의 피와 살점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아나테마가 깨달은 순간.
“주변의 대지를 조작해서 시공간을 격리시키는 6사도의 비의.”
아나테마의 뒤에 나타난 레녹이 물고 있던 연초를 벽에 비벼 끄면서 말했다.
“여섯 번째 사도의 공능 중에서 가장 직접전투와 무관하면서도, 그렇기에 가장 강력한 공능이지.”
사도술식으로 만들어지는 결전장은, 상대와 자신만을 격리시켜 가두는 것을 목적으로 만들어지는 간이성역.
직접적으로 전투에 도움이 되는 능력은 아니지만, 그것을 속박으로 삼아 끌어올린 결전장의 내구력은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한다.
편람의 우물에서 전대 6사도가 사용했던 결전장은, 잠깐이지만 무려 승천자의 발조차 묶고 시간을 끌었을 정도.
레녹은 아나테마가 결전장을 구축하기 시작한 시점에서 이미 그것을 인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화륵!!
손끝으로 남은 연초 개비를 전부 불태워 증발시킨 레녹이 품 안에 손을 뻗었다.
쉴 새 없이 준동하는 대지의 구체를 가로지른 마법사가 앰플을 손목에 박아넣으며 걸음을 옮겼다.
찰칵!
주렁주렁 매달린 실린더와 링거 바늘을 몸에서 빼내자, 텅 빈 약병과 주사기 바늘이 코트 아래로 후두둑 떨어져 내렸다.
한 손으로는 호흡기를 쥐고 레버를 당기며, 영약 다섯 알을 입 안에 털어 넣는다.
전신에서 시퍼런 마력을 줄줄 흘리면서, 다시금 아나테마의 앞까지 걸어온 레녹이 씩 웃었다.
“어렵게 생각하지는 마라. 서로 원하는 바가 일치했고, 합의 끝에 무대에 올라선 것뿐이니까.”
[…….]“도망치거나 숨는 일 없이 결판을 내려고 했지. 그거 하나면 충분하지 않겠나?”
[……전장에 서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에게 떳떳하고자 하는가?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이로군.]아나테마가 웃었다.
[초월적인 마법의 재능을 타고났으면서도, 긍지 높은 전사처럼 행동하는가. 그대는 결국 자기 자신만을 무엇보다 온전히 신뢰하는구나.]“원하든 원하지 않든, 싸우다 보면 혼자가 되는 일이 많았지.”
레녹이 느긋하게 대꾸했다.
“종말의 화신체처럼 기분 나쁜 괴물들 사이에서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유한한 시간이 그대의 소질을 더욱 무궁하게 만들었는가.]아나테마와 레녹이 동시에 한 걸음 앞으로 내디딘 순간, 서로의 시간이 가속한다.
바라보는 시계와 보고 느끼는 오감이 한없이 늘어지며 기괴하게 일그러진다.
키이이잉……!!!
두 괴물의 의념이 폭발적으로 증폭되며 인지능력이 극한까지 확장된 찰나.
육감을 넘어 칠감의 영역에서 선공과 후공이 나뉘고 사도와 마법사가 움직였다.
[점멸(點滅)] [지약(地躍)]공간도약과 지면이동을 난사하는 마법사와 사도의 신형이 초음속의 속도로 가속.
파바바바바방!!
지면이 갈라지고 천둥이 몰아치는 소리와 함께, 결전장 사방에서 수십 번의 충격파가 터져 나왔다.
방향과 고도를 가리지 않고 서로 다른 시공에서 격돌하는 초고속의 술식공방.
아나테마의 발아래서 수십 가지 무구가 솟구쳐 손에 잡히고, 레녹의 등 뒤에서 무수한 마법진이 떠올라 회전했다.
서로의 술식이 교차하는 매 순간마다 한 자리에 머무르는 일 없이, 수싸움과 구도를 통째로 개편하며 움직였다.
걸음 한 번에 수십 개의 마법을 영창해 무기로 삼아 휘두르고, 다시 손짓 한 번에 모조리 파기시킨다.
평범한 술사가 온 정신을 집중해야 사용가능한 고위술식조차, 한낱 도구로서 소모하고 내다 버리는 광인들의 격돌.
[창뢰(唱雷)] [육관(六關)]드르르르륵!!!
아나테마의 몸을 6중으로 관통한 벼락이 폭발하며 사도의 신형을 뒤로 처박았다.
눈부신 번개의 창극이 벽면을 따라 번뜩이며 질주하고, 그 끝에 올라탄 레녹이 쉴 새 없이 마력을 펌프질했다.
숨을 쉴 때마다 전신에서 밀어내듯 토해내는 마력이 고스란히 전격계 속성마력으로 변환.
순식간에 결전장의 절반을 눈부신 번개의 파문으로 가득 채우며 회전했다.
[위상전역(僞狀電域)]빠지지지지직!!!!
그 모습을 확인한 아나테마가 즉시 사도술식을 전력으로 기용.
결전장의 바닥이 십 미터 넘게 일어서며 절벽으로 화해 번개의 파도를 막아세운다.
일렁이는 대지와 번개의 충돌.
결전장의 무대를 자신의 속성으로 뒤덮는 것과 동시에, 아나테마와 레녹 역시 마력의 폭풍 속에서 움직였다.
쿠과과과과과!!!
초고속으로 사방을 이동하는 사이 공격의 우선권이 쉴 새 없이 뒤집히며 변화한다.
대지를 변형시킨 거대한 해머가 내리찍히고, 톱날과 주먹이 회전하며 충돌했다.
[나뢰살(螺雷殺)] [회천(廻踐)]나선형으로 회전하는 번갯죽지를 터트려 해머를 받아내고, 직후 회전속도를 높이며 이중영창.
[개화(開花)]열방향으로 활짝 펼쳐진 벼락이 번개의 꽃처럼 발광하고, 아나테마의 육신을 휩쓸고 불태웠다.
그 화력을 이기지 못하고 아나테마의 전신에 두른 대지의 갑주가 불타 갈라지고 증발하며 터져 나갔다.
카가가가각!!!
[……!!]온몸의 감각이 낱낱이 쪼개져 으스러지는 듯하다.
살점과 근육을 넘어 뼈와 신경을 불태우고 뜯어내는 듯한 격통.
내구력과 맷집만으로는 단연코 최상위에 꼽히는 6사도의 육체가, 번갯불의 화력을 이기지 못하고 으스러진다.
육체를 넘어 사도의 정신마저 관통하는 뇌명에, 아나테마조차 순간 평정을 잃고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낙뢰술식……!!! 참으로 지독하기 그지없구나!!]순수술식계 속성마법 중에서도 파괴의 극한에 다다른 전격계 고유마법.
순간적인 출력의 고점만을 놓고 보면, 대륙에 존재하는 모든 이능 중에서도 최상위로 평가받는 파괴술식이다.
술식의 출력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모든 성질변화를 깨우치고 의념을 다룰 줄 알아야 한다는 조건이 존재하지만.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술자의 손에서 얼마나 위력적인 무기인지, 눈앞의 마법사가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아나테마가 그 사실을 깨닫고 갑주를 더하기 위해 순간적으로 의념을 끌어올린 찰나.
“해(解).”
레녹의 신형이 기다렸다는 듯 엄청난 속도로 내리꽂히며 그의 가슴팍을 찍어눌렀다.
콰아아아앙!!!
“궁(穹). 작(酌). 토(吐). 압(壓). 술(述).”
화력의 불균형 속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허점을 찍어누른 레녹에게 주어지는 찰나의 여유.
그 순간을 처음부터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레녹이 양 손으로 수인을 맺으며 영창을 시작한다.
복잡한 수인을 맺으면서 사방에서 솟구치는 뇌격을 지휘하듯 가리킨 순간.
“지정선언 개시.”
사도의 발아래 거대한 육망성이 새겨지며 전격의 폭풍우가 터져 나왔다.
전격계열 고유마법
6중영창 복합공명
[뇌정도래(雷情道來) : 초상진휘(超想震輝)]파지지지지지직……!!!!
육망성의 꼭짓점에서 폭발한 뇌명의 기둥이 기울어지며 아나테마의 전신을 관통한다.
사지를 꿰뚫고 조이면서 저릿하게 마비시켜, 일체의 이동을 허락하지 않는 구속기.
그것이 다음으로 이어지는 파괴술식의 전조에 불과하다는 것을 직감한 아나타메가 노성을 토해내고.
[오오오오오오오!!!!!!!]“육신뢰(六神雷).”
아나테마의 어깨를 짓밟고 그의 미간을 가리킨 레녹이 싸늘하게 영창을 내뱉었다.
“비탄(悲嘆).”
쩌저저적!!
그 순간, 육망성의 중심에서 기묘한 소음이 울려 퍼지고 아나테마의 안색이 싹 변했다.
공간의 균열이 아나테마의 몸 안에서 터져 나오고, 그 직후 아나테마 역시 전력으로 사도술식을 운용.
빛의 기둥이 솟구치는 것과 동시에, 아나테마의 육체가 산산조각 나 결전장 사방으로 폭발하듯 비산했다.
콰아아아아아아!!!!
대지의 구체 중앙을 관통하듯 가로지르는 강렬한 뇌광천주.
편람의 발작조차 잠시 버텨냈던 결전장이 당장이라도 뚫릴 것처럼 미친 듯이 요동쳤다.
대상의 몸을 관통한 여섯 갈래 번개를 충돌시켜, 그 중심에서 공간째로 분열시키는 육신뢰 비탄.
결과로서 공간에 간섭 가능한 8레벨의 경지에 올라, 레녹이 새롭게 만들어낸 극위마법이다.
사전영창을 필요로 하며, 지정선언을 통해 여섯 개의 주문을 강제로 융합시켜야 한다는 조건이 있지만.
그 위력만큼은 순수하게 전격의 충돌만으로 공간을 으깨버릴 정도.
하지만 레녹은 눈앞에서 폭발해버린 아나테마의 육체를 보고도 마력을 거두지 않았다.
육신뢰 비탄이 적중한 직후 사방으로 터져나간 사도의 육체가, 퍼즐 조각처럼 모여들며 형상을 갖추었기 때문.
“공간균열이 적중하기 직전에 일부러 제 몸을 쪼개 사방으로 던져 버린 건가.”
아나테마가 육신뢰를 피한 방법을 간파한 레녹이 머리를 쓸어넘기며 웃었다.
“중앙의 귀족이 사도가 되니 온갖 괴상한 술수를 다 부리는군. 스스로 자폭하고도 재생하는걸 생물이라고 부를 수 있나?”
[아르스노바가 멸망한 뒤로도, 여전히 세상은 넓고 천재들은 넘쳐 흐르는구나.]순식간에 제 몸을 재생시킨 아나테마가 감탄을 숨기지 못하고 중얼거렸다.
[이토록 극단적인 전투법을 구사하는 술사가 대마법사의 경지에 도달하다니, 경이롭기 그지없도다……!]마법사의 몸을 보호하는 것은 피부 위에 두른 최소한의 실드 뿐.
지금까지 레녹이 전투에서 영창한 모든 마법은 철저하게 사도의 육신을 부수기 위한 공격마법이었다.
아나테마의 공격을 파괴술식으로 받아치고, 거기서부터 새로운 마법의 영창을 이어나간다.
상호간의 공방을 모조리 공격으로 치환하여, 끊임없이 피해를 누적시키고 상대의 방어를 무너뜨린다.
그를 눈치채고 역공을 가하려는 순간조차 심리전의 일부로 삼아, 사전영창이 필요한 고위 마법을 적중시키는 것.
레녹을 상대하는 적의 인식이 바뀌는 잠깐의 시간조차 극한까지 쪼개어 술식에 때려 박는다.
전장에서 이어지는 거의 모든 수싸움에 자신의 의지를 개입시키고, 주도권을 잃지 않기 위한 극단적인 외줄타기.
한 번이라도 실패하는 순간 허무하게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도박에 가까운 전법이다.
그럼에도 눈앞의 마법사가 보여주는 무위는, 앞선 두 창사와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강렬하기 그지없었다.
[그대는 필멸자의 한계를 뛰어넘는 전투 끝에서 초월의 광명을 찾았는가.]그것을 깨달은 아나테마의 눈이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깊게 가라앉았다.
[내전에 참가하지 않았던 인간종이, 어째서 피에 미친 마법사라는 흉명을 달고 다니는지 알겠구나.]“그쪽이야말로, 대전의 경험자라 그런지 생각보다 훨씬 더 귀찮게 싸우는군.”
피곤한 기색으로 고개를 젖힌 레녹이 말했다.
육신뢰 비탄을 적중시키지 못한 시점에서 무의미하게 날려 먹은 마력소모가 상당하다.
아나테마 역시 자폭과 재생을 반복한만큼 소모가 없지는 않겠으나, 그는 교주의 비호를 받고 있는 상황.
“사도술식을 능숙하게 다루는 거야 그렇다쳐도, 벌써부터 제 몸을 그렇게 도구처럼 써먹고 있다니…….”
레녹의 초월적인 직관과 전투경험은 종의 한계를 뛰어넘어 그 너머를 바라보고 있다.
예측과 예지의 개념을 초월한 수싸움과 심리전에서 레녹을 이길 수 있는 상대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수준.
지금껏 레녹과 상대했던 대부분의 적들은 그것을 인지조차 하지 못하거나, 이해하고도 꺾여 버리곤 했다.
하지만 아나테마는 자신이 레녹과의 수싸움에서 밀리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자마자 방향을 틀었다.
레녹의 마법에 피격당하는 한이 있더라도, 자신의 내구력을 믿고 공방에서 밀리지 않겠다는 심산.
수싸움에서 밀려 손해를 보는 한이 있어도, 공격기회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계산은 아무나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눈앞의 적을 상대로 우선순위를 정하고, 버려야 한다면 자신의 육신이라도 포기하며 배제하는 것.
아나테마 본인이 걸출한 전사이자, 전쟁에서 무수한 사선을 넘어온 군인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겠지.
“점잔떠는 말투와는 달리 사고방식은 군인에 가깝군. 이제 막 사도가 되었으니 당분간은 광증에서 자유롭게 움직이겠지?”
쿠구궁!!
떨어지는 암반을 뇌전으로 쳐내 터트린 레녹이 웃었다.
“역시 여기서 널 살려보내면 일이 귀찮아지겠어.”
[틀린 말은 아니로구나. 나는 이 싸움이 끝나면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강해질 터이니.]아나테마가 그를 따라 웃으며 천천히 마력을 끌어올렸다.
“…….”
[현신을 유지할 수 있는 시간에 쫓기면서 다급하게 처리했던 모든 일들을 하나하나 돌아보며, 이전과는 전혀 다른 존재로서 새롭게 태어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추방의 저주를 완전히 해소하고 나면…….]쿵!!
레녹의 눈앞에 선 아나테마가 속삭였다.
[다시 아르스노바로 돌아가야겠지.]“역시, 교단과 손을 잡은 이유가 그거였군.”
레녹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체 중앙도시에 무엇이 남아 있길래 모두가 그 안으로 들어가려 하는 거지?”
아르스노바의 문명과 기술, 술식이 다른 도시와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고도화되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계백 아우렐 실포드. 실패한 승천자를 인위적으로 만들어냈다는 위업마저, 중앙도시가 어떠한 경지에 이르렀는지 방증하고 있었으니.
하지만 멸망해버린 그 도시에 대체 무엇이 남아 있길래, 대륙에서 답을 찾는 모든 이들이 장막 너머로 향하는 것을 염원하고 있는 것인가.
이제껏 금제 때문에 그 누구에게서도 대답을 들을 수 없던 질문.
레녹 역시 대답을 기대하고 던진 질문은 아니었지만, 놀랍게도 아나테마는 대답했다.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위대한 유산이 그곳에 잠들어 있지.]“……유산?”
[카이세의 실패는 정해진 멸망을 앞당긴 결과일 뿐. 그렇기에 나는 그의 실패를 원망하지 않는다.]레녹의 질문에서 자신의 기억을 되짚어보기라도 한 걸까, 아나테마의 시선이 눈앞의 적을 떠나 먼 곳을 향하는 듯했다.
[우리의 위대한 고향은 이미 몰락을 향해 가고 있었으니까. 시도할 수 있던 모든 기적과 금술이 실패로 돌아간 순간부터 정해진 일이었지.]“…….”
[황제만이 존재하지 않는 다음에 대해 답을 갖고 있었을 뿐. 하나 누가 그것을 진정으로 해답이라고 믿었단 말이냐?]“설마, 너는…….”
프로젝트와 아르스노바에 대해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말하는 아나테마의 모습.
다른 이들에게서는 전혀 들을 수 없었던 그 자유로운 대답에서, 레녹은 어째서 교주가 아나테마를 사도로 삼았는지 깨달았다.
아르스노바의 멸망 이후 아나테마의 이름이 새롭게 손에 넣은 의미.
어긋난 운명 속에서 피어난 모순된 인과.
블랙컨슈머 프로젝트의 관계자, 아르스노바의 귀족, 쿤다라의 장생종, 알카이드.
그들 모두가 피해갈 수 없던 절대적인 [금제]에, 이 배신자는 묶여 있지 않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