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987
약먹는 천재마법사 987화
중앙전선 경계지대(4)
“다섯 번째 군단장이라.”
비공정에서 터져 나오는 남자의 선언을 들은 레녹이 냉소했다.
“그 제안이 군단 측에서 그렇게 쉽게 나와도 되는 말이었나?”
현재 중앙전선의 일각을 다투는 초대형 군단 데드라이즈.
개중 독자적인 작전 권한과 휘하 부대를 인계받는 연합의 다섯 번째 군단장.
오직 중장급 이상의 장성에게만 인계되는 사령관의 자리를 에반에게는 이렇게 선뜻 들이미는 것인가.
그 페이샤 그리스번조차 군단장을 맡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레녹으로서는 실소를 금할 수 없는 발언.
“생판 모르는 외부인에게 군단장의 자리를 넘긴다는 것이 합리적인 결정은 아닐 텐데.”
하지만 비공정에서 울려 퍼지는 목소리는 레녹의 반문을 듣고도 태연했다.
[중요한 것은 군단을 이끌 수 있는 자질의 문제. 그대가 발칸에서 보여준 위업은 그러한 자격을 충족하고도 남지.]“…….”
[단신으로 도시를 불태운 결단력과, 그를 실행에 옮기는 무용. 그 복잡다단한 발칸에서 끝내 등대지기를 구해낸 거시적인 판단까지.]이제 남자의 목소리는 스피커가 터질 것처럼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대가 받아들인 패배가 결코 헛되지 않았음은 검증이 끝났네. 남은 것은 그대가 군단의 손을 잡는 것뿐!]“글쎄. 잘 모르겠군. 청의 눈에 몸을 담은 사이 군단과 충돌이 없던 것도 아니라서.”
레녹이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교단과 군단, 연맹을 가리지 않고 죽여왔지. 이제 와서 모두 없던 일로 돌릴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그럴 수는 없겠지. 하지만 바로 그것이야말로 본 군단이 지금껏 중앙전선에서 존속해 온 이유일세.]“…….”
[필요한 재능과 능력을 지녔다면, 비록 적장이라 해도 능히 군단의 깃발 아래 들이는 것. 사소한 원한이야말로 대의를 추구하는 데 있어서 방해물에 불과할 터!]현대의 군인이 아니라, 중세의 무사를 보는 듯한 단호하고 타협 없는 언동.
그건 애초에 데드라이즈의 근본이 민간군사기업에서 시작되어 지금의 자리에 이른 군단이기 때문이겠지.
필요한 인재나 재원이라면 설령 적이라고 해도 포섭하고 섭외하여 아군으로 만든다.
유능한 적장일수록 군단 내부에서는 높은 평가를 받으며, 반대급부로 높은 직위에 오를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본 3군단은 관문 수색대가 습득한 사교도들의 공양의식 기록을 회수하는 작전을 수행하고 있네.]비공정의 스피커 너머로 남자의 묵직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관문 수색대가 세워온 전공과는 별개로, 그것은 이번 분기 아래 외부에 유출되어서는 안 되는 정보.]“…….”
[원래라면 수색대가 관문으로 복귀하는 일을 막아야 하겠지만, 그대가 본관의 제안을 수락한다면 본관의 권한으로 작전을 전면 취소하고 사령부에 복귀할 수 있지.]레녹에게 스카우트를 제안하는 도중에도, 수색대의 안위를 인질로 잡고 회유와 압박을 번갈아 넣는다.
다소 과격하고 거친 언사를 사용하지만, 그 판단과 화법 자체는 우회적인 면모가 있는 바.
단순히 군단에 충성하는 무식한 인사거나, 한 가지 사고방식에 매몰된 사람이 아니다.
“미안하지만 이 자리에서 내 거취를 결정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레녹은 그 사실을 알면서도 미련 없이 고개를 저었다.
“청의 눈을 탈퇴한 지 얼마되지 않았어. 당장 어딘가에 소속되기보다는 중앙전선을 둘러보고 싶군.”
[그렇군. 이별의 아픔을 잊기에는 군단의 제안이 너무 빨랐던 겐가?]“……그런 의미가 아니라는 걸 알 텐데. 애초에 군단장의 직위라는 것이 이렇게 선물처럼 주고받을 수 있는 것이었던가?”
자신을 둘러싸고 부유하는 다섯 대의 비공정을 돌아본 레녹의 눈이 가라앉았다.
“내가 아는 군단은 그런 조직이 아니야. 최소한 대장급의 승인 없이는 의사 결정이 불가능한 일이지. 하지만 그럼에도 내게 제안을 건네고 있다는 것은…….”
[…….]레녹이 천천히 들고 있던 술잔을 내리며 말했다.
“당신이 그러한 절차를 무시해도 될 정도로 강력한 입지나, 명분을 가지고 온 군인이라는 뜻이겠군.”
[틀린 말은 아니로군. 본관 역시 물러설 수 없는 소명을 띠고 이 자리에 그대와 마주하고 있으니.]남자가 담담하게 수긍했다.
[그대가 본관의 제안을 두고 이렇게 시간을 끌고 있는 것처럼 말일세.]부아아앙!!
그 순간, 피난처에서 뛰쳐나온 수색대원들이 엄청난 속도로 광야 저편으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피난처에 남아 있던 민간인들을 모두 대피시킨 것일까, 아니면 이미 생존자가 남아 있지 않았던 것일까.
레녹이 알고 있는 군단의 방식이라면 답은 정해져 있겠지.
[겸허한 대처로군. 채비할 시간을 만들기 위해 본관의 말을 여기까지 듣고 있던 겐가?]“너희들은 내가 그 제안을 거부한 순간 관문 수색대를 죽이려 들 테니까.”
밤하늘에 숨어 첫 폭격을 쏟아부은 그 순간, 군단 공중강습부대는 수색대를 모두 죽여 버릴 수 있었다.
하지만 수색대를 노리는 대신 피난처를 광대하게 타격한 것 자체가, 레녹과 대화할 자리를 마련하기 위한 수단이었을 뿐.
판을 넓게 보면서도 그에 대해 일일이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타입의 지휘관이다.
상대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굉장히 전장에서 오랫동안 굴러온 베테랑이겠지.
하지만 남자는 레녹의 말을 듣고 난 뒤에 담담하게 그 대답을 부정했다.
[그 말은 틀렸군. 제안을 거절한 시점에서 손을 쓸 생각은 없었으니까.]철컥!!
비공정에서 솟구친 포구가 기울어지더니, 저 멀리서 다가오는 수색대를 정확하게 향했다.
[제안과는 상관없이 수색대는 모두 죽일 생각이었지.]“……!!”
투타타타타탕!!!
포구에서 쏟아져 나온 탄환이, 수색대가 도주하는 폐허 위로 비처럼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십수대의 비공정이 일제히 쏟아붓는 탄약이, 하늘 위로 새카만 탄막처럼 펼쳐지면서 쇄도하고.
대번에 지상에 벌집과도 같은 상흔을 빼곡하게 새겨 넣었다.
두두두두두!!!
맹렬하게 쫓아오는 포화에 수색대원들이 스로틀을 당기며 마력을 끌어올렸다.
“울프힐드!!”
“알아!!”
수색대의 선두로 튀어나온 울프힐드가 눈을 감은 채 정신을 집중한다.
[키네시스 : 안티배럴]파아앙!!
식은땀을 흘린 울프힐드가 손을 위로 뻗자, 머리 위로 투명한 역장이 펼쳐지며 탄환을 받아냈다.
염동계열 초능력. 그중에서도 탄환을 막아내는 방탄 기능을 특화시켜 만들어낸 기술.
4레벨의 초능력자인 울프힐드가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으로 발휘하기 위해 기아스로 초능력을 조정한 결과다.
순수한 정신력으로 작동하는 이능이기에, 초능력에 있어 기아스는 어느 쪽으로든 극단적으로 작동하기 마련. 울프힐드는 개중에서도 운이 좋은 케이스였다.
선두에서 울프힐드가 포화를 막는 사이, 다른 대원들이 제각기 무구를 꺼내 들었다.
철컥, 철컥!!
바이크 짐칸에서 바주카포를 꺼내 짊어진 대원들이 빠르게 장전을 마치고 방아쇠를 당겼다.
“이거나 먹어라, 새끼들아!!”
콰아아앙!!
바주카포에 명중당한 비공정 두 대가 그 충격으로 허공에서 미약하게 흔들린다.
데드라이즈에서 직접 생산하는 전쟁병기. 피해는 있을지언정, 고작 이 정도 반격만으로 쓰러질 리는 없는 것.
“거기까지.”
하지만 레녹은 바주카포에 명중당한 비공정을 향해 손을 들어 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다음부터는 내가 처리하겠다.”
[운련화(暈聯火)]화르르르륵!!
그 순간, 비공정이 피격당한 자리에서 솟구친 불길이 급격하게 크기를 부풀리기 시작했다.
마치 그 자리에서 누군가의 의지에 따라 강제로 크기와 열기를 끌어올리는 듯한 모습.
이윽고 비공정 전체를 휘감은 화염구름이 순식간에 비공정을 활활 불태우기 시작했다.
[비상, 비상!]불에 휩싸인 비공정이 균형을 잃고 휘청이다가, 빠른 속도로 추락해 수색대의 앞에 떨어졌다.
콰아앙!!
추락한 비공정의 문짝이 박살 나며 수백 명의 군인들이 튀어나와 질주했다.
“와아아아아!!”
“군단을 위해!!”
전원이 이미 완전무장을 마치고, 육탄전을 각오한 듯 진형을 갖추는 모습.
비공정의 추락이 레녹의 개입으로 일어난 일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비정상적으로 대처 속도가 빠르다.
눈앞에서 전투준비가 끝난 3군단의 강습부대를 마주한 수색대원들이 일제히 무기를 빼 들었다.
“이런, 씨발 진짜!!”
“군단 놈들은 믿을 게 못 된다고 말했잖아!!”
“됐으니까 집중해!!”
칼을 빼어 든 울루릭이 저 멀리 황야 끝에 남겨진 레녹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외쳤다
“에반 님이 돕는 사이 활로를 뚫는다. 모두 준비해!!”
콰과광!!
바이크에 올라탄 수색대원과 데드라이즈의 군인들이 곳곳에서 거칠게 충돌한다.
격렬한 난전 속에서 칼날과 총탄이 오가며 마력이 폭발하고,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순식간에 전투에 돌입한 수색대를 바라보던 레녹이, 손에 들고 있던 술잔을 아래로 쭉 기울였다.
촤악!
남아 있던 맥주를 발아래 둥글게 흩뿌린 레녹이, 물고 있던 시가의 불똥을 튕겼다.
술 위로 시가의 불꽃이 옮겨붙으며 순식간에 발아래 불길을 피워올렸다.
[주과신륜(朱果神輪)]화르르륵!!
발아래 회전하는 불길이 더욱 거세게 타오르며, 레녹을 중심으로 화염의 기둥을 뻗어 올렸다.
밤하늘을 밝힐 만큼 붉게 빛나는 불기둥의 중심에서, 레녹이 두 손을 맞잡고 수인을 맺은 순간.
“소환술.”
쿠구구구구구!!!!
화염의 기둥 사이로 팔과 다리가 뻗어 나오고, 불기둥이 구부러져 거대한 등껍질로 화한다.
붉게 타오르는 등딱지 아래로 거북이의 머리가 튀어나와, 입을 쩍 벌리고 육중한 포효를 내뱉었다.
[으워어어어어어!!!!]느닷없이 전장 한복판에 나타난, 비공정만 한 크기의 거대한 화염거북이.
그 순간, 위협을 느낀 비공정의 포화가 일제히 방향을 돌려 수색대가 아니라 거북이를 향해 쇄도했다.
두두두두두두!!!
단단한 등껍질 위로 쏟아지는 무수한 포화와 폭격세례.
거북이가 두 눈을 느릿하게 끔벅이고, 그 배 아래 선 레녹이 연소무장을 소환해 움켜쥔 찰나.
[그웨에에에엑]입을 쩍 벌린 화천강귀가, 검붉은 용암을 목구멍 안에서 쏟아내기 시작했다.
치이이익!!
입을 타고 흘러나온 용암이 폐허 사방으로 흘러 나가며 전장을 에워싼다.
땅에 추락한 비공정을 녹여버리고, 수색대를 포위하던 군인들까지 대번에 휩쓸어 버리는 용암의 파도.
“끄아아아아!!”
“뜨거, 뜨거워……!!”
“흐악!! 흐아아악!!”
바이크에 올라탄 수색대원과, 발로 뛰는 군인들 사이에는 확연한 기동력의 차이가 존재하는 바.
땅 위로 흐르는 용암의 속도가 빠른 만큼, 기동력에서 우위에 선 수색대에게 전장이 더 유리해진다.
3군단의 군인들 역시 빠르게 진형을 벌리고 용암을 피하려 했지만, 어느새 하늘 위에서 화염을 휘감은 레녹이 떨어지며 군인들을 찍어눌렀다.
치이익!!
손에 든 거대한 점화장치를 화염방사기로 삼아, 뜨거운 불꽃을 용의 숨결처럼 숨 쉬듯이 내뿜으며.
모자라는 화력은 실시간으로 염열마법을 추가로 영창해서 보충하고 비공정의 포화를 받아낸다.
“고유마법 개시.”
염열계열 고유마법
성질변화 촉매상응
[용암인(鎔巖印)] [천붕(闡崩)]뻐어어어엉!!!
흐르는 용암 위에서 솟구친 거대한 용암의 주먹이 내리 찍히며 팔을 가로로 휘저었다.
용암으로 만들어진 거인의 팔이 지상을 휩쓸자, 피하지 못한 군인들의 몸이 용암에 푹 잠겼다.
치이이익!!
[우오오오오오!!!]화염거북이가 포효하며 몸을 비틀자, 등껍질이 쩍쩍 갈라지며 그 사이로 불꽃이 폭죽처럼 하늘 위로 솟구쳤다.
쉴 새 없이 폭격을 내리붓는 비공정의 배면에 불꽃이 정면으로 직격.
무수한 폭발을 터뜨리면서 아직 멀쩡한 비공정들까지도 흔들어 균형을 무너뜨리고.
퍼버버벙!!
지상에서는 데드라이즈의 육군부대를 압도적으로 학살하며 길을 열어젖혔다.
소환수가 판을 깔고 하늘을 점유하며, 수색대가 길을 열고 레녹이 적을 일소한다.
군단이 일방적으로 시작했던 전투의 판도가 순식간에 뒤집히며 균형을 바꾸기 시작한 순간.
[사교도들이 진행한 공양의식에 대한 기록은 본 군단의 입장에서 반드시 회수해야 하는 블랙박스.]무겁게 가라앉은 남자의 목소리가 비공정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졌다.
[이는 울티마 얼럿의 승인 아래 확정된 사실로, 본 작전에서 최우선순위에 해당하는 목표일세.]“……블랙박스라고?”
[그대가 본관의 제안을 거절한 시점에서, 남은 것은 작전 목표를 완전무결하게 달성하는 것뿐.]휘오오오….!!
레녹의 머리 위에 떠 있는 비공정에서, 순간 무언가의 기척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것이 느껴진다.
[일이 이렇게 된 것에 대해서는 유감을 표하지.]“에반 님!!”
끼익!!
능숙하게 바이크를 기울여 멈춰선 울루릭이 전선의 반대편을 가리켰다.
“저쪽으로 길을 뚫겠습니다. 저희가 먼저 움직일 테니……!!!”
“아니. 계속 움직여!!”
레녹이 소리치며 용암 일부를 조작해 장막처럼 드리운 순간.
[고정비행모드 변환. 사출구 개방. 탄환 적재 완료.]두 사람의 머리 위에 떠 있던 비공정에서 기계적인 안내음이 울려 퍼졌다.
[로버트 로베라이드 중장이 강하합니다. 충격에 대비하십시오.]“……!!!”
레녹의 말을 들은 울루릭이 이를 악물고 다시 바이크 속도를 높인 직후.
비공정 아래쪽에서 떨어진 무언가가 엄청난 속도로 지상에 충돌했다.
콰아아아아아앙!!!
머리 위를 보호하던 용암장막을 대번에 터뜨리고, 지반을 짓뭉개며 강렬한 충격파를 흩뿌렸다.
불길과 용암이 치솟는 전장 전역을 가로지른 파문이, 대지를 타고 팔방으로 뻗어 나갔다.
레녹조차도 그 충격의 여파에 일순 마력을 끌어올려 몸을 보호해야 했을 정도.
쿠구구구!!!!
용암과 비공정의 잔해가 뒤섞인 크레이터 아래서, 두꺼운 갑주를 입은 무언가 몸을 일으켜 세웠다.
치이이익……!!
철컥!!!
몸을 움직일 때마다, 갑주의 이음새 사이로 강렬한 증기가 새어나온다.
갑주 안에 응어리진 출력을 통제하지 못해서, 강제로 열기를 배출해 움직이는 듯한 기괴한 모습.
온몸에서 뿜어내는 증기를 드리우고, 천천히 걸어 나온 거대한 인영이 묵직한 목소리를 토해냈다.
“아르스노바가 멸망한 뒤에도 관문 수색대는 임무에 힘쓰며 맡은 바 소명을 다해왔지.”
쿠우웅!!
발을 내딛는 순간 지축이 흔들리며 금이 가는 듯한 착각이 느껴진다.
어깨에 자신의 몸보다도 더욱 거대한 금속 케이스를 짊어진 중년의 남성.
몸의 형상보다 훨씬 큰 갑주를 입은 그 모습은 터질 것처럼 압도적인 밀도감이 느껴진다.
“훌륭한 군인들을 죽이게 되어 유감이군. 하나 그 의지는 군단이 이어받을 것이다.”
무표정한 레녹과, 딱딱하게 굳어버린 수색대원들의 앞에 선 남자가 바위처럼 단단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데드라이즈 3군단장, 이 로버트 로베라이드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