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riter in the Corner of the Room RAW novel - Chapter 91
91. 일본 여행. (4).
아리무라 노아의 가이드는 생각보다 괜찮았다.
혼혈이지만 일본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인지 그녀는 현지인이 아니면 찾기 어려운 명소까지 데려다주었다.
그리고 그녀가 직접 차를 운전해 주었기에 이동도 편안했다.
다만 문제는 틈만 나면 대본에 관해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작가님은 이 부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기, 대본 얘기는 나중에 해도.”
“어···. 그럼 무슨 얘기를 아! 한국 얘기 좀 해주세요.”
“한국 얘기라면···.”
“한국 배우들이나 아니면 작가님 얘기?”
“궁금하신 거 물어보세요. 제가 얘기해드릴 수 있는 부분이면 얘기해 드리겠습니다.”
“여자친구는 있으세요?”
“아뇨. 없습니다.”
“아···.”
첫 질문부터 막혀버린 아리무라 노아였다.
이후에는 그냥 한국에서 친한 배우들의 이야기와 너튜브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지나 이제 관광도 지겨워진 김시우가 처음으로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이제 슬슬 영화 준비하죠?”
“네! 그럼 캐스팅은 어떤 식으로 할까요? 아무래도 작가님께서는 일본 배우를 잘 모르시니까 저희가 리스트를 짜서 보여드릴까요? 아니면 오디션? 그것도 아니면···.”
아리무라 노아는 이제 시작할 수 있다는 사실에 흥분하며 말을 쏟아내듯이 했다.
“번역은 잘 되었나요?”
“당연하죠. 한 달 동안 저희가 놀러 다닐 때 저희 회사직원들은 일을 했으니까요. 벌써 혹시 몰라 오디션 포스터도 다 준비해 두었다고요.”
“대단하시네요.”
“그래서 작가님은 어떻게 하셨으면 좋겠어요?”
“오디션도 나쁘진 않지만 아무래도 중요한 역할은 인증된 배우들이 하는 게 안전하긴 하니까요.”
“그럼···.”
“배우 리스트를 작성해서 오디션을 보죠. 시간도 줄일 겸.”
“알겠습니다.”
아리무라 노아는 바로 기획팀을 거쳐 제작팀으로 넘어가 배우 리스트를 작성하기 바빴다.
***
김시우가 일본에 온 지도 3개월이 넘었다.
그는 이제 슬슬 한국이 그리워졌다.
맛있는 일본 음식, 이색적인 일본 풍경도 3개월이면 질리기 시작했다.
“후아아암. 피곤하다. 그나저나···. 아이돌이 1,800만을 달성할 줄은 몰랐는데···.”
김시우가 일본에 간 사이 ‘아이돌’이 1,800만을 넘기며 한국의 영화기록을 갈아치워 버렸다.
정세연의 인기가 더해진 결과인 게 분명했다.
“아무튼 대단해. 박웅덕 감독님은 또 상을 받겠어.”
그리고 최연소 기록을 갈아치운 김시우도 상을 받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다만 대한민국에서 작가상은 그렇게 좋은 대우를 받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지이이잉.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타이밍에 맞춰 정세연의 전화가 걸려 왔다.
“네, 세연 씨.”
-아직 일본이세요?
“네···.”
-그래요? 잘 됐다. 저희 ‘아이돌’팀 1위 기념으로 여행 일본으로 가기로 했어요.
“네?”
갑작스러운 소식에 김시우가 누워있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왜 그렇게 놀라요? 일본에서 여자친구라도 사귀셨나 봐요?
“아니, 그런 건 아닌데···. 설마 저 때문에 일본으로 오시는 건가요?”
-네!
정세연은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박 감독님이 각오하라고 하시던데···. 자기한테 귀찮은 거 다 떠넘기고 놀러 갔다고···.
“하아···. 일단 알겠어요.”
-그런데 작가님! 일본 어디에 계시나요?
“오사카에 있어요.”
-알겠습니다. 자세한 일정 잡히면 전화할게요.
통화를 마치자 이번엔 또 홍수연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어 수연아.”
-오빠! 저희 일본으로 여행 간대요.
“들었어···. 방금.”
-앗! 제가 제일 먼저 알려드리고 싶었는데···.
“아무튼 일본에서 만나겠네···. 하하.”
-그러니까요.
이후 홍수연의 전화 이외에도 여러 사람에게 전화가 왔고 김시우는 온종일 똑같은 소식을 들어야 했다.
“전화만 받았는데 벌써 오후네···. 왜 연예인이 연락을 잘 안 보는지 알겠다.”
배우들과 스태프들의 전화만 받아도 이렇게 시간이 많이 지났는데 유명 연예인들이 팬과 소통하려면 얼마나 시간이 걸리고 힘이 들지 알게 된 김시우였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고, ‘아이돌’팀이 일본에 도착했다.
“일본이다!”
일본을 처음 와본 사람들은 신기한 듯 고개를 두리번거렸고, 홍수연은 유독 신나 했다.
마치 어린아이처럼 말이다.
“우리 이제 어디로 가요?”
“일단 호텔에 갔다가. 놀아야지!”
“우와아아아.”
“자! 이제 얼른 김시우 불러. 그 녀석 오랫동안 일본에 있었으니 잘 알겠지.”
“네!”
박웅덕의 말에 홍수연이 김시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빠! 어디쯤이세요?”
-어···. 거의 다 왔어. 저기 보이네.
잠시 후 사람들의 앞에 대형 버스 2대가 멈추어 섰다.
“안녕하세요.”
그리고 대형 버스 안에서 김시우가 내리며 인사를 건넸다.
“오! 김시우···.”
“안녕하세요.”
“작가님. 오랜만이에요.”
사람들은 저마다 김시우에게 인사를 건넸고, 홍수연은 달려가 김시우를 껴안았다.
“오빠, 오랜만이에요.”
“3개월밖에 안 되었는데?”
“원래는 최소 일주일에 3번을 봤잖아요.”
“그건 그렇지···. 그보다 이제 좀 놓아줄래? 사람들이 쳐다보는데?”
“앗! 죄송해요.”
홍수연이 당황하며 포옹을 풀자 그다음엔 박준호가 껴안았다.
“작가님. 보고 싶었습니다.”
“아니, 준호씨.”
“왜요. 수연이는 되고? 저는 안 되는 건가요?”
“하아···. 아닙니다. 하십시오.”
이후 박준호를 지나 노년 배우들, 스태프들, 박웅덕 감독까지 포옹을 마치고 마지막으로 정세연이 기다리고 있었다.
“다들 더위라도 먹은 건가요? 저한테 왜 이러시는 건데요···.”
“글쎄요. 작가님하고 포옹하고 싶었나 보죠.”
정세연마저 김시우를 안아준 다음 버스에 올라탔다.
“뭔가 시작부터 불안하다···.”
버스를 타고 호텔에 도착하자 사람들은 각자의 방으로 이동해 짐을 풀었고, 예약한 식당으로 이동했다.
“자! 여러분 오늘 다들 즐길 준비 되셨죠?”
“네~.”
박웅덕의 말에 사람들이 단체로 대답했다.
이후 모습은 예상하는 대로 대환장 파티였다.
첫 해외여행에 설렌 홍수연도 한껏 취했고, 박웅덕은 일본 술에 질 수 없다며 엄청난 속도로 해치우고 있었다.
“정말 아수라장이네···.”
“그래서, 기분은 좀 풀렸어요?”
“설마···.”
“네, 다 들었어요. 지영 언니한테.”
“이것 참···.”
김시우는 속마음을 들켜 조금 창피한 기분이 들었다.
“지금은 그냥 뭐 전보다는 많이 괜찮아졌어요.”
“다행이네요. 그보다 술은 왜 이렇게 안 드세요? 이 자리의 주인공인데.”
“제가요? 주인공은 세연 씨겠죠.”
“어허! 다들 작가님이 일본에 있어서 일본으로 날아온 거잖아요. 그럼 작가님이 주인공이죠. 얼른 드세요.”
정세연이 김시우의 술잔에 술을 가득 따랐고, 김시우는 어쩔 수 없이 술을 삼켰다.
그렇게 2시간 정도가 흐르자 이제 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다들 만취한 상태가 되었고, 이것은 곧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는 뜻이었다.
“자···. 이제 슬슬 갑시다.”
한 스태프의 말에 정신이 있는 사람들이 만취한 사람들을 하나둘 데리고 호텔로 향했다.
그리고 김시우도 자신의 숙소로 향하는데···. 누군가 그의 손을 잡았다.
“오빠!”
“어?”
술에 취해 일찍이 쓰러져 있던 홍수연이 다시 일어난 것이었다.
“어디 가요!”
“어? 작가님! 어디 가요!”
“어? 김 작가! 어디가!”
홍수연을 시작으로 정세연, 박웅덕이 연달아 김시우를 붙잡았다.
“아니···. 집에 가야죠. 자 봐요! 다들 호텔로 가잖아요.”
“어라? 정말이네?”
“에이, 그렇다고 우리까지 갈 필요는 없잖아? 자! 2차 갈 사람?”
박웅덕의 외침에 술에 취했던 사람들도 정신이 번쩍 들었는지 비틀거리면서도 빠르게 술집을 벗어나 호텔로 돌아갔다.
그렇게 술집에 남은 사람은 박웅덕과 정세연 그리고 홍수연의 손에 잡힌 김시우와 홍수연뿐이었다.
“준호씨···. 이렇게 도망을 가네···.”
그 와중에 박준호는 김시우의 눈빛을 외면한 채 그 누구보다 빠르게 술집에서 사라졌다.
“자! 그럼 2차는 어디로 갈까?”
“국물 요리 있는 곳으로요!”
“저는 샐러드!”
“저는 집에 가고 싶은데요.”
“어?”
김시우의 말에 모두가 김시우를 바라보았다.
마치 들어선 안 될 것을 들은 사람들처럼 말이다.
“집? 김 작가. 일본에 집 샀어?”
“아니, 그 집이 아니라.”
“아무튼 사는 집이 있다는 거잖아? 좋아! 2차는 김 작가네 집이다.”
갑자기 2차 회식 장소가 김시우가 머무는 숙소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자세히 생각해보니 나쁘지 않은 것 같기도 했다.
‘그래, 차라리 숙소에서 마시면 잠이라도 바로 잘 수 있지···.’
가게에서 또 술을 마시고 호텔에 데려다주는 것보단 숙소에서 바로 자는 것이 훨씬 좋은 것 같았다.
“그럼, 안주랑 술이랑 사서 가시죠.”
그렇게 술과 안주를 들고 숙소에 도착했는데···.
예상하지 못한 변수가 생겨났다.
“작가님! 오셨어요?”
아리무라 노아가 현관에 마중을 나온 것이었다.
10분 전.
며칠 전 김시우에게 오늘 약속이 있다는 연락을 받은 아리무라 노아는 그가 술을 많이 마시고 올 것을 대비해 숙소에서 라멘을 준비 중이었다.
띡띡띡띡.
전자 도어락의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리자 현관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마주친 사람은 김시우가 아닌···.
술에 취한 정세연이었다.
“누구세요?”
“어라?”
정세연이 아리무라 노아를 보며 당황했고, 아리무라 노아도 정세연을 보고 당황했다.
그 사이 김시우가 들어와 아리무라 노아를 보았고, 김시우는 아리무라 노아에게 왜 이곳에 있는지 물었다.
“노아 씨? 아니, 오늘 지인들이랑 회식한다고 말씀드렸는데···. 왜 여기에···.”
“그···. 술 많이 드셨을 것 같아서 해장으로 라멘을 준비 중이었는데···. 이분들은···.”
“뭐야? 김 작가. 정말 일본에서 살림을 차린 거였어?”
이어 그 모습을 본 박웅덕이 오랜만에 놀란 모습을 보였다.
“아···. 안돼.”
홍수연은 눈가가 촉촉해지기 시작했고, 김시우는 서둘러 해명하기 시작했다.
“치···. 친구예요. 친한 친구. 이쪽은 일본 배우 아리무라 노아 씨예요.”
김시우가 아리무라 노아를 소개하며 서둘러 그녀에게 윙크를 하자 김시우의 신호를 알아챈 아리무라 노아가 김시우의 장단에 맞췄다.
“안녕하세요. 아리무라 노아입니다. 일본에서는 배우로 활동 중이에요.”
“배우? 아! 어디서 본 거 같은데···.”
“저도요···.”
아리무라 노아가 배우인 것을 이야기하자 다들 어디선가 본 듯한 표정을 지었다.
분위기가 가라앉은 틈을 타 김시우가 서둘러 사람들을 숙소 안으로 안내했다.
“자자. 일단 안으로 들어갑시다.”
“흐음···. 어디서 봤는데···.”
모두가 숙소 안으로 들어와 자리를 잡고 앉자 무언가 생각난 듯 박웅덕이 먼저 외쳤다.
“아! ‘너의 운명은’?”
‘너의 운명은’은 아리무라 노아가 주연으로 나온 영화였는데, 일본을 포함해 한국에서도 성공적인 결과를 보여준 영화였다.
“어머···. 설마 박웅덕 감독님. 알아봐 주시니 영광입니다.”
아리무라 노아는 그들을 보자마자 누구인지 알았다.
다만 김시우의 지인이 ‘아이돌’의 배우와 감독일 줄은 생각지도 못한 아리무라 노아였다.
지인이라고 하길래 그냥 일반인 친구들이라고 생각했었다.
“괜찮으면 술자리에 제가 껴도 될까요?”
“오. 좋지.”
박웅덕의 허락이 떨어지자 여자들은 이내 서로를 견제하는 눈빛으로 변했다.
‘이거···. 왠지 더 피곤해질 거 같은데···?’
생각 없는 사람 한 명, 이상한 눈빛을 한 여자 세 명 사이에서 김시우 혼자 걱정이 한가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