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236
236화
진심으로 통하는 길 (4)
“그때는 연기로 세상에 나를 증명하는데 몸이 달아올라서. 작품을 하는데, 온 신경이 집중되어 있었어요. 그런 상황에서 집에 자주 들어가지도 않던 내가 손이 많이 가는 아이를 잘 돌볼 리가 없었죠.”
“아내 분이 고생하셨겠네요.”
“많이 고생했죠. 일에 미쳐 있는 나더러 딸에게도 좀 더 관심을 주라고 애원할 정도로요.”
“그래서 달라지셨나요?”
“……그 후로 집에 돌아오면 제일 먼저 보는 얼굴이 바로 레오니였습니다.”
담담하게 말을 잇던 디에고의 눈이 점점 젖어 들었다.
“노력했습니다. 내가 원체 무뚝뚝해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고, 옆에 한참을 앉아서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고. 그게 다였지만요. 그런데 그마저도 낮에 해주지 못하고 밤에 돌아와서 피곤한 몸으로 하니 아이한테 미안했죠. 그런데 그 미안함을 갚기도 전에, 아이가 갑자기 그렇게……”
코 먹는 소리를 내던 그가 태주를 힐끔거렸다.
“그때야 깨달았어요. 나는 연기만큼이나 레오니를 사랑했다는 걸. 나는 그걸… 너무 늦게 깨달았습니다.”
그런 아빠를 레오니가 빤히 바라보자.
이중협이 레오니를 번쩍 안아 들어 디에고와 눈을 맞춰주었다.
[자, 네 아빠가 말하는 진심이야. 잘 들어봐.]마치 레오니를 본 듯, 디에고의 검은 눈에서 한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런 그에게 태주가 넌지시 말했다.
“딸에게 직접 말했으면 더 좋았겠지만. 당신 마음에 딸이 늘 있었잖아요, 그렇죠?”
그 말에 디에고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 마음속에는 늘 레오니가 있었어요.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연기를 사랑하는 만큼이나 따님을 사랑하셨죠?”
“당연하죠. 나는 연기를 사랑하는 것만큼이나. 아니, 그 이상으로… 우리 레오니를 사랑했습니다. 아이 앞에서는 쑥스러워 이 말을 미처 못 한 게 그리 후회되지만…….”
아빠가 자신보다 연기를 더 좋아한다고 확신했던 레오니.
아빠의 진심을 확인받고 싶다던 레오니.
아빠의 말을 유심히 듣고 있던 아이의 입꼬리가 씰룩이던 순간.
태주는 처음으로 아이의 얼굴에서 환한 미소를 보았다.
[아빠가 레오니… 레오니를 사랑한대! 들었지, 태주 오빠, 들었지?]방방 뛰어다니며 확인받으려는 레오니에게 태주는 몇 번이고 동의해 주었다.
‘내가 뭐랬어, 아빠가 널 사랑한다고 했지?’
[흥흥, 아빠가 레오니를 사랑한대! 연기 보다 더 사랑한대!!]사랑을 확인받고 싶었던 아이의 순수한 마음이 보상받는 순간.
그녀에게서 나온 환한 빛이 주변을 가득 메웠다.
* * *
집에서 티비로 동물 영상을 보던 레오니.
쌍둥이 남동생들은 동네 친구의 생일파티에 갔는데 레오니는 혼자서 집에 이렇게 남아 있다.
시끌벅적한 곳을 안 좋아하는 특성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녀를 좋아하지 않는 친구들이 불편했기에.
그런 딸을 보던 엄마는 그녀의 옆에 앉아서 딸을 끌어안았다.
“레오니, 혼자서 뭐해?”
“레오니는 티비 봐.”
자기 몸에 닿는 감촉이 불편했던 레오니는 슬쩍 엄마의 품에서 빠져나왔다.
그런 딸을 안쓰럽게 바라보던 엄마가 제안했다.
“그럼, 아빠 나온 영화 볼래?”
“……아빠?”
“응, 아빠가 저번에 찍은 영화 있잖아. 거기 레오니가 좋아하는 고양이도 나와.”
“그럼 볼래.”
아이의 관심이 불타오르자 엄마는 서둘러 OTT 채널을 켜 영화를 재생했다.
조용한 시골을 배경으로 한 영화는 아빠와 딸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였다.
티비 속 디에고의 모습이 나올 때마다 레오니의 눈이 반짝였다.
하지만 디에고가 어린 여자아이를 안고 활짝 웃는 모습에 레오니의 미소는 사그라들었다.
딸을 신경 쓰던 엄마는 그녀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왜 그래?”
“레오니의 아빠는 레오니한테 저렇게 웃어준 적 없는데.”
레오니의 말에 엄마가 고개를 저었다.
“무슨 소리야.”
“레오니의 아빠는 레오니를 저렇게 사랑해주지도 않았잖아. 항상 촬영장에 나가느라 바빠서.”
“아니야, 아빠는 엄마만큼이나 레오니를 사랑해.”
“아니야.”
확신에 찬 레오니가 엄마에게 부르짖었다.
“레오니의 아빠는 한 번도 레오니를 사랑한다고 한 적 없어. 레오니보다 연기를 더 좋아하니까.”
몇 시간이 지난 늦은 밤.
촬영 후 집에 들어온 디에고는 거실에서 꾸벅거리며 그를 기다리던 아내를 마주했다.
“나 왔어.”
디에고를 발견한 아내는 간단한 인사를 하더니, 이내 엄한 눈빛으로 당부했다.
“제발 일에 신경 쓰는 것만큼, 우리 레오니한테도 신경 좀 써 줘. 워낙에 특별한 아이잖아, 더 사랑 표현을 많이 해 줘야 한다고.”
“늘 속으로는 신경 쓰고 있었어. 요즘에 바빠서 못했을 뿐이지.”
“애들은 속으로 생각하는 것 따위 몰라. 표현해줘야 알지.”
아내의 질책에 디에고는 하품을 참으며 레오니의 침실로 향했다.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가자 레오니가 토끼 인형을 안고 잠이 든게 보였다.
디에고는 조용히 무릎을 꿇고 앉아 레오니를 바라보았다.
눈을 감고 새근새근 잠이 든 모습이 마치 천사 같았다.
평소 눈도 잘 마주치지 못하고, 자신이 끌어안으려 하면 늘 피하는 레오니는 그의 아이였지만 종종 낯섦이 있었다.
“아빠가 많이 부족해서 미안해. 아빠도 아빠가 처음이라 많이 서툴러. 마음으로는 너를 사랑하는데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자신도 모르게 내뱉은 진심에 디에고는 큼큼거렸다.
아이의 머리에 투박한 손을 얹어 쓰다듬자, 아이가 기분이 좋은 듯 미소를 짓던 순간.
용기를 얻은 디에고가 속삭였다.
“그래도 알아줘, 아빠가 우리 레오니, 많이 사랑하고 있다는 걸.”
* * *
으슥해진 시각.
남산에서 하산한 태주는 디에고를 호텔로 데려다주며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그의 앞에서 감성적인 모습을 보였다며 잠시 멋쩍어하던 디에고.
“그래도 이렇게 시원한 느낌은 처음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레오니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은 것도 이번이 처음이고.”
“그만큼 제가 편한 거죠.”
태주의 미소에 그가 덩달아 웃었다.
“그렇죠. 태주 씨가 편한 모양이에요. 그러니까 이런 속 깊은 대화도 자연스레 하게 된 거겠죠.”
태주를 바라보던 그는 불쑥 제안했다.
“혹시, 나랑 같이 미국 집으로 가서 대본 맞춰보겠어요?”
“저를 지금 집으로 초대해 주시는 겁니까?”
“네, 맞습니다.”
디에고가 어깨를 으쓱하며 대꾸했다.
“우리가 알고 지낸 지 뭐,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왠지 당신하고는 잘 맞는 것 같아서요. 원래 내가 같이 작품 찍는 배우들 우리 집에 불러서 밥 대접하는 게 취미거든요.”
“아내 분 허락도 받으셔야죠.”
“하하, 그건 이미 받았죠.”
아내 이야기에 디에고의 얼굴에는 미소가 번졌다.
“나만 혼자 한국 왔다는 것에 지금 뿔이 났거든요. 와이프가 당신이 출연한 ‘낭만 고양이’보고 팬이 됐는데. 저번에 제작사에서 잠깐 만났던 걸로는 아쉬웠는지 다시 한번 보고 싶어 했어요.”
잔뜩 신이 난 디에고가 말을 이었다.
“원래 함께 지내면서 캐릭터 구축하고, 대본 맞추며 같이 연구하기도 하잖아요. 우리도 분명 함께 시간을 보내면 작품 전체적으로 합이 잘 맞을 겁니다.”
[저런 대배우가 집에 초대까지 한다니. 디에고가 널 정말 마음에 들어 하나 보다.]‘영광이네요. 궁금하기도 하고요.’
[디에고 크루즈 같은 할리우드 스타는 그랜드한 집에 살겠지? 막 300억짜리 저택에 살 거 아냐. 와, 가보고 싶다.]이중협의 철없는 소리를 뒤로한 태주는 잔뜩 기대감에 차 있는 디에고에게 대답했다.
“저도 정말 가고 싶지만, 제가 스케줄이 꽉 차 있어서요. 나중에 저희 영화를 미국에서 촬영할 때, 그때 초대해 주세요.”
그의 말에 디에고가 멋쩍은 웃음을 터뜨렸다.
“이야, 이거 이거. 내가 잠시 잊었었네요. 한태주 씨가 한국 최고의 톱스타라는 걸!”
* * *
동 시각, 드림액터스.
밤늦은 시각임에도 대표실에는 불이 환하게 켜져 있다.
오늘 종일 분노와 인고의 시간을 보낸 장희재가 모니터를 마주하고 있다.
화면에는 오늘 스타뉴스에서 단독으로 내보낸 기사가 크게 떠 있었다.
몇 번이고 기사를 보던 그는 결국 분을 못 참고 길길이 날뛰었다.
“이게 뭔 개망신이야!”
모든 것이 화가 나서 미칠 것 같았다.
디에고 크루즈가 그의 영화가 아닌 ‘나의 미래’를 선택한 것도.
한태주가 디에고와 엮여 위상이 한껏 높아졌다는 것도.
“이게 다 아웃패치 때문이야.”
디에고 크루즈의 거절은 조용히 지나갈 수 있었다.
기사화만 안 되었더라도.
그런데 조삼식의 섣부른 기사 때문에 자신만 망신당한 꼴이 되었다.
“미친 놈의 아웃패치!”
분노에 가득 찬 그는 시간이 지날수록 화가 가라앉기는커녕, 더욱 차오르기만 했다.
결국, 그는 충동적으로 휴대폰을 들어 조삼식에게 전화를 걸었다.
화가 단단히 난 그는 상대가 전화를 받자마자 마구 퍼부었다.
“너 이 새끼야, 너 때문에 내가 무슨 개망신을 당한 줄 알아? 내가 당장 너 고소하고….”
그 말에 조삼식이 대뜸 뱉은 말.
-그러면 저도 킵하고 있던 특종 풀어야겠는데요. 좀 타격이 클 텐데, 괜찮으시겠어요?
“……뭐?”
수화기 너머 조삼식이 태연하게 말했다.
-한태주 씨와 한 여성이 둘이서 다정한 포즈로 셀카를 찍은 사진인데, 제법 타격이 클 겁니다.
그 말에 장희재가 잠시 멈칫했다.
아무리 그가 한태주를 싫어한다고 한들 그는 아직 드림액터스의 배우였다.
가장 큰 캐시카우였기에, 그를 어떻게든 자신의 품으로 되돌려 놓을 방법을 궁리 중이었다.
장희재는 짐짓 엄격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조 기자, 신중히 행동해요. 저번에도 한태주 건으로 우리 쪽에 소송 걸린 적 있잖아요?”
-이번에 한태주 씨, 재계약 어떻게든 하셔야 하지 않나요? 잡고 싶으시잖아요. 계약 기간 끝나고 이대로 다른 쪽으로 이적하는 거, 두고 보실 건가요?
“하고 싶은 말이 뭡니까?”
-조작된 열애설로 기가 꺾인 연예인을 대표님이 다시 품에 안는 건, 식은 죽 먹기죠. 제가 이번에 터트릴 열애설로 한태주를 완벽히 요리해 보이겠습니다.
그의 말에 장희재가 침묵을 지켰다.
하지만 둘 다 알고 있었다.
그 침묵은 긍정의 뜻이라는 걸.
한참을 생각하던 장희재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한태주를 무너뜨릴 사진은 확실히 있는 겁니까? 확실해야 해요. 그놈이 발뺌할 수 없도록. 요즘 대중들은 눈치가 빨라서 웬만큼 해서는 안 속는다고요.”
-확실한 사진이 있습니다. 성공할 수밖에 없어요.
“…알아서 잘해주실 거라 믿겠습니다. 나는 한태주가 기세등등한 꼴을 더 이상 못 보겠으니까.”
장희재의 거듭된 부탁에 조삼식이 대꾸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열애설 범벅이 된 톱스타는 그 가치가 떨어진다는 거, 대표님도 아시잖아요. 그러면 대표님께서 의도하신 대로 일이 잘 풀릴 겁니다, 다시 한태주를 품에 안으실 수 있을 거라고요.
후후거리는 기분 나쁜 웃음소리와 함께 조삼식이 덧붙였다.
-원래 갈 곳 없는 개는 주인한테 돌아가는 법이잖아요?
* * *
전화를 끊은 후.
조삼식은 만족스러운 미소로 마우스를 달칵거렸다.
그가 얼마 전에 해커에게서 돈을 받고 산 사진들이 주르륵 나열되어 있었다.
캡모자를 깊숙이 눌러쓰고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남자가 한 여자와 셀카를 찍는 장면이었다.
얼굴이나 실루엣이 한태주와 무척 흡사해 보이자, 조삼식이 씩 웃었다.
“이제 재료는 준비되었고, 내가 잘 버무리면 되겠군.”
조삼식이 야비한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절대로 이번 작전은 실패할 리 없어.”
하지만 그는 미처 모르고 있었다.
그가 회심의 카드로 준비한 사진이, 한태주의 비밀병기가 될 수 있다는 걸.
귀신 보는 배우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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