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Beyond Fantasy Smartphones RAW novel - Chapter 10
검을 뽑아든 릭이 소녀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기습을 원하는 것이 아니었기에, 발걸음 소리를 굳이 숨기지는 않았다.
수풀사이로 울려퍼지는 릭의 발걸음 소리에, 허공을 응시하던 소녀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다.
수백 걸음은 되어보이던 거리가 순식간에 줄어들었다.
날렵한 발걸음으로 소녀의 앞에 도착한 릭은 고작 몇발자국을 남겨두고서 다리를 멈춰세웠다.
“……클라우드의 수사관?”
릭을 발견한 소녀가 한차례 그를 훑어보면서 말했다.
릭의 제복을 보고서 그의 정체를 알아챈 것이다.
소녀의 시선이 단정한 제복과 그의 손에 들려있는 검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클라우드의 제복을 입고서 검을 뽑아들고 있는 상태다.
릭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었다.
“너는 이곳에서 생활하고 있는건가?”
“당신이 관심을 가질만한 일은 아닌 것 같네요.”
릭의 질문을 들은 소녀의 눈에 경계심이 피어올랐다.
심상치 않은 반응이었다.
클라우드의 수사관인 자신을 경계하고 있다.
릭은 직감적으로 눈앞의 소녀가 무엇인가 숨기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네가 이 근처에 있던 마을에 수작을 부린게 아니라면, 순순히 조사에 협조하는 편이 좋을거다.”
“마을에 무슨 문제라도 생겼나요?”
“그래. 몇개의 마을 주민들이 통째로 사라졌지. 아무런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서 말이야.”
마을이 통째로 사라졌다는 이야기에는 그녀조차 놀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일까.
릭이 마주하고 있던 소녀가 의아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순진해보이는 모습만 봐서는 아무런 관련이 없어보이는 것처럼 느껴진다.
허나 상대는 위험한 산속에서 홀로 살아가고 있는 인물이었다.
동굴 안에서 보이는 바게트의 모습을 보건데, 딱히 배를 곯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산속에서 살아간다기에는 지나치게 윤택한 모습이다.
릭은 눈앞에 있는 소녀를 향한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마을이 통째로 사라졌다니, 신기한 일이네요.”
“생각보다 무덤덤한 반응이군. 그런데 아가씨, 뒤에 있는 빵은 대체 어디에서 난거지?”
“뒤에 있는 빵? 아, 은총을 이야기하는 건가요.”
“은총……?”
“위대하신 분께서 저에게 내려주신 식사거든요.”
위대하신 분. 그리고 은총.
어느쪽이든 오해의 소지는 충분한 말이었다.
릭은 자신이 마주하고 있는 소녀가 누군가의 사제라는 것을 확신했다.
옷차림이나 단어선택을 보건데 성지 출신의 사제는 아니었다.
더군다나 성지의 고위사제라고 하더라도 빵을 내려받는 것은 무언가 이상했다.
오히려 악신과의 연결고리가 의심스러운 모습이었다.
“위대하신 분? 누구를 말하는거지?”
“한낱 인간이 그분의 이름을 어떻게 부르겠어요.”
“……그 위대하신 분이 마을 사람들을 데려갔을 가능성은 없나?”
마지막 질문은 반쯤 농담에 가까운 것이었다.
물론 질문을 하는 릭조차도 의미있는 대답이 돌아올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허나 릭의 눈앞에 있는 소녀는 릭의 예상보다도 더 특이한 인물이었다.
그녀는 애틋한 얼굴이 되어 릭의 질문에 대답했다.
“그건 저도 잘 모르겠네요. 하지만 만약 그분께서 데려가셨다고 한다면, 원래 있어야 하는 곳으로 돌아가는거니 그 사람들도 행복하지 않으려나요.”
“단단히 미쳤군.”
“말을 좀 가려서 하는 편이 좋겠네요. 천벌을 받을지도 모르거든요.”
눈앞의 소녀는 정상이 아니다.
그 사실을 직시하게 된 순간, 릭은 들고 있던 검을 소녀를 향해 겨누었다.
더 이상의 심문은 의미가 없는 행위였다.
그녀는 명백하게 악신을 모시고 있는 사람이다.
지금 이 자리에서 소녀를 처단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더 많은 피해가 생겨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아무래도 그 위대하다는 작자가 사람들을 데려간 모양이군.”
“지금 이게 무슨 짓인가요.”
자신을 향해 겨누어진 검을 본 소녀가 물었다.
아직까지도 순진한 척을 하는 모습이라니.
릭은 그 모습에 구역질이 나올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온갖 맹수가 수시로 출몰하는 산맥에서 홀로 살아가고 있는 소녀다.
당연하지만 평범과는 거리가 먼 존재였다.
인간의 탈을 뒤집어쓰고 움직인다 한들, 그 본질이 악신의 사제라는 점은 변하지 않았다.
“무슨 짓이냐고 물었나? 악신을 움직여 그 많은 사람들을 집어삼켜놓고 뻔뻔하게 구는군.”
“……역시.”
“역시?”
“당신같은 사람들이 있는 세상은 사라지는게 나을 것 같아요.”
차가운 눈빛으로 내뱉은 소녀의 말이 끝난 직후.
릭은 하늘에서 느껴지는 거대한 위압감을 주시했다.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직감할 수 있다.
인지를 초월한 무언가가 그를 노리고 움직이고 있었다.
노리는 것은 머리.
릭은 반사적으로 검을 들어올려 머리를 보호했다.
카앙—!
공격을 쳐낸 손아귀에서 묵직한 떨림이 전해져온다.
갑작스럽게 쏟아진 공격을 막아낸 릭은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
그 모습도 형체도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몸을 짓누르는 압박감은 확실한 실체를 가지고 있었다.
눈앞의 소녀가 무언가 수작을 부렸다.
그 사실을 직감한 릭이 소녀를 향해 곧장 달려들었다.
“수작을 부리도록 놔두지는 않겠다!”
가벼운 발걸음이 순식간에 소녀와의 거리를 좁혔다.
다섯 걸음. 네 걸음.
——그리고 세 걸음.
재빠르게 줄어든 거리에 릭이 검을 휘두르려는 찰나.
그는 다시 위압감을 느끼고 검을 들어올렸다.
카앙!
검에서 느껴지는 묵직한 충격과 함께, 반사적으로 릭의 몸이 몇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말했잖아요. 무례하게 굴면 천벌을 받을거라고.”
책을 끌어안은 소녀가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수작을 부려놓고서 방관하는 시늉이라니.
으득.
여유로워보이는 소녀의 모습에 이를 악문 릭이 자세를 고쳐잡았다.
이런식으로 상대에게 주도권을 빼앗겨서야 전투가 불리해질 뿐이다.
자세를 갖춘 릭은 다시 소녀를 향해 달려가려고 했다.
릭의 머리 위에서 모이기 시작한 어마무시한 양의 마력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공격마법이 온다.’
겉으로 보기에는 저위계의 단순한 마법이었다.
그러나 마법을 사용하기 위해 모인 마력의 양이 범상치 않은 수준이었다.
마법의 범위에서 벗어나기에는 늦었다.
남아있는 선택지가 방어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릭은 전신의 마력을 끌어올려 공격을 견딜 준비를 했다.
콰릉!
진동하는 우레와 함께 강한 벼락이 릭의 몸을 꿰뚫었다.
내장이 타오르는 듯한 격통에 릭이 비명을 내질렀다.
“크윽……!”
마력을 끌어올려 충격량을 줄였음에도 이 정도 위력이다.
몇차례 더 직격당한다면 목숨이 위험할 정도였다.
릭은 전신에서 전해져오는 통증을 억누르면서 상황을 분석했다.
상대는 원거리에서 마력을 쏟아부을 수 있다.
거리가 벌어지면 틀림없이 일방적으로 상대의 공격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어떻게든 눈앞에 있는 소녀와의 거리를 줄여야만 했다.
‘릭 스와일. 정신차려라.’
릭은 스스로를 다독이며 다시 자세를 잡았다.
가만히 있으면 적에게 공격당한다.
가까이 달라붙기 위해서는 상대의 원거리 공격을 돌파해야만 했다.
단순한 돌진만으로는 저지당하기 쉽다.
악신의 사제를 상대할 전략을 수립한 릭이 검을 들고 앞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후우…….”
타다다다닥—.
가벼운 몸놀림과 함께 릭의 신형이 앞을 향해 움직인다.
릭이 변칙적인 움직임을 보이며 나아가는 와중에도, 릭을 향해 쏟아지는 마법은 멈추지 않았다.
콰릉! 콰르릉!
연달아 울려퍼지는 우레소리와 함께 릭이 지나친 자리에 벼락이 떨어졌다.
위협적인 벼락이라고 해봤자, 맞지 않으면 의미가 없는 것이었다.
재빠른 몸놀림으로 벼락을 피해낸 릭이 온몸에 마력을 두르고 소녀를 향해 돌진했다.
“이만 죽어라—!”
순식간에 가까이 달라붙은 릭의 검이 소녀를 노리고 휘둘러진다.
마법서를 든 소녀는 아무런 대응조차 준비하지 않은 상태였다.
릭은 자신의 일격이 소녀를 베어낼 것이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를 지켜보던 소녀의 입술이 움직이기 전까지는 말이다.
“……배리어.”
카가가가각!
날카롭게 휘둘러진 검격이 배리어의 표면을 스치고 지나갔다.
마력이 담긴 검이 스쳐지나간 배리어의 표면에는 커다란 균열이 생겨났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배리어의 모습에 당황하는 것도 잠시.
릭은 다시 자세를 잡고 검을 휘두르려고 했다.
다시 한 번 검을 휘두른다면 눈앞의 배리어를 파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릭의 머리위에서 떨어진 벼락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커허어어억……!”
콰릉!
하늘에서 떨어진 벼락에 릭의 몸이 움찔거렸다.
벼락에 맞은 릭은 마력을 끌어올려 다음 공격을 막아내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릭을 지켜보던 악신은 그것을 용인하지 않았다.
콰릉! 콰르르릉!
검을 든 릭의 머리위로 수차례 더 벼락이 떨어졌다.
연달아 내려꽂힌 벼락에 릭의 몸이 경련을 일으켰다.
“컥… 커허억…….”
푸욱.
릭의 손아귀에서 떨어진 검이 바닥을 파고들었다.
검을 놓친 릭은 눈을 까뒤집은 채로 자리에 쓰러졌다.
허나 릭에게 향하고 있는 악신의 분노는 쓰러진 자에게도 자비가 없었다.
콰릉! 콰아앙!
마른 하늘에서 쉴새없이 벼락이 내려쳤다.
자신의 몸을 연달아 두드리는 뇌격에 릭의 의식이 서서히 희미해져가기 시작했다.
흩어져가는 의식에 릭이 자신의 마지막을 직감하고 앞을 올려다 본 순간.
그의 눈에 비치는 소녀는 경외심에 가득 차있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 * * * * *
클라우드. 센티리어스 지부.
2급 수사관인 허스 알레미어는 자신의 앞에 놓여있는 종이를 보며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악신의 흔적을 찾는다며 3급 수사관인 릭이 지부를 나섰던 것이 어느덧 열흘 전의 일이다.
그러나 조사를 나섰던 릭은 아직까지도 지부에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마을 근처에서 아무런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허스에게 도움이라도 요청하러 왔을테지만, 돌아온 것은 릭이 아니라 한장의 보고서 뿐이었다.
“릭 스와일…….”
허스는 눈앞에 놓여있는 종이의 내용을 다시 한 번 읽어보았다.
릭 스와일. 실종.
그가 사용하던 말이 인근 마을에서 발견되었음.
클라우드의 수사관이 정기적인 보고시한을 넘긴데다가, 사용하던 말까지 다른 곳에 내버려두고 사라졌다.
틀림없이 무언가 변고가 생긴 것이다.
사라진 후배를 떠올린 허스가 손에 쥔 보고서를 움켜쥐었다.
“악신… 악신이라.”
아무런 흔적조차 남기지 않은 채로, 마을 네개의 주민들이 통째로 사라졌다.
처음 릭에게 보고를 들었을 당시에는 믿기가 어려웠던 내용이었다.
무슨 짓을 해야 주민들이 아무런 흔적조차 없이 사라진다는 말인가.
분명 릭이 조사를 꼼꼼하게 하지 못했으리라는 판단이었다.
허나, 그 보고를 올렸던 릭 수사관마저 지금은 흔적없이 사라진 상태였다.
“…….”
이 근처에 무언가 있다.
그 사실을 직감한 허스가 자신의 입술을 곱씹었다.
사람을 흔적없이 없애버릴 수 있는 존재.
그리고 마을 하나를 소리소문없이 지워버릴 수 있는 존재.
그런 존재가 근처에 머물고 있는 것이었다.
“성지쪽에 자문을 구해야겠군.”
허스는 종이 한장을 꺼내들고서, 마른 펜에 잉크를 찍어발랐다.
스윽. 종이를 반듯하게 펼친 허스가 종이 위에 편지를 적기 시작했다.
상대는 평범한 범죄자와는 궤가 다른 존재였다.
그리고 악신을 상대하는 것에는 그에 걸맞는 전문가가 필요한 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