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Idol Project: Hope RAW novel - Chapter 256
악개 혹은 안티 (1)
어두침침한 고시원.
밝게 빛나는 모니터 속에는 함이원의 라방 영상이 한창 재생되고 있었다. 함이원이 방긋 웃으며 뭐라고 말하는 것 같았지만, 하나도 귀에 들리지 않았다.
“아, 아니야…. 이럴 리가 없어! 말도 안 돼! 그 얼굴로 어떻게 스무 살 넘은 애가 있는 엄만데! 조작한 거 아니야?”
라방 뒤에 곧바로 올라온 무편집 영상으로 조작된 곳이 없나 다시 확인했지만, 어색한 부분은 없었다.
초조함에 물어뜯었던 손톱은 너덜너덜해진 지 오래였다.
함이원이 음악 천재니, 뭐니 하면서 과대 포장할 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한때 스쳐 지나가는 얘기로 끝날 거라고 여겼다. 대수롭지 않게 넘겼더니 그룹 내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멤버가 됐다.
하눌에서 새로운 보이그룹을 런칭한다면서 데뷔 멤버를 보여줬을 때부터 의아했다.
‘본 적 없는 얼굴이잖아? 그렇다는 건 들어온 지 얼마 안 됐다는 소린데…?’
연습생으로 들어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바로 데뷔 멤버에 포함되다니 여간해선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아무리 천재적 잠재력을 지닌 아이돌이라고 해도 이 세계는 얼렁뚱땅 데뷔할 수 있을 만큼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아이돌은 일종의 상품. 효능이 뛰어난 원재료가 있더라도 검증 없이 신제품을 낼 수는 없는 법이다.
우연히 캐스팅돼서 갑작스럽게 데뷔하는 아이돌도 수두룩하지만, 그런 멤버는 언제 어디서든 문제를 일으키게 되어 있지 않던가?
작은 연예기획사에서 잠시나마 연습생 생활을 해보면서 나름 알 만큼 안다고 생각했다. 얻어들은 풍문들은 그럴만한 근거가 있어서 나왔다고.
“내가 스폰설을 어떤 각오로 알렸는데…!”
박하에게 간접적인 피해가 갈 것을 예상하면서도 모두가 알아야만 하는 내용이었기에 눈물을 머금고 핍박받는 선구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도대체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상황일까.
“난 잘못한 게 없어. 진짜라고 생각해서 그랬을 뿐이라고!”
희망 한 점 보이지 않는 답답한 연습생 생활에 지쳐가고 있을 때, 지인의 지인이던 박하를 알게 됐다. 네 살 어린 박하는 하눌에서 인정받는 연습생 선배라고 했다.
남들은 부모의 뜻에 따라 학교와 학원을 전전할 나이에 꿈을 정해 열정을 쏟는다는 것부터 존경스러웠다. 거기에 햇살같이 밝은 성격이 더해지자 매료되지 않고는 버틸 수 없었다.
그때부터 같은 꿈을 꾸는 동료로서, 선배로서 박하를 응원해왔다. 비록 그 뒤로 자신은 연습생을 그만둬 같은 세계에서 일할 순 없게 됐지만, 박하를 응원하는 마음은 멈추지 않았다.
박하라면 좋은 멤버들과 함께 데뷔해서 인기 아이돌이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 그룹 안에서도 독보적인 존재감을 드러내는 대표 멤버가 될 거라고도.
‘그 얼굴에 입덕부터 할 테고, 본래 성격을 알게 되면 더 빠져들 수밖에 없지!’
그런데 데뷔 때부터 뭔가 꼬여가는 것 같았다. 박하가 단독으로 받았어야 했던 스포트라이트는 함이원이라는 듣보에게 넘어갔다.
앨범 타이틀부터 작곡했다면서 언플을 하는 것부터 은근히 함이원 중심으로 돌아가는 상황까지.
‘다른 멤버들도 연습만 하면 함이원 수준으로 노래 부를걸.’
박하와 같은 그룹에 속해 있는 멤버라서 그래도 좋게 좋게 생각하려고 애썼다. 그렇지만 함이원을 띄우려는 수작은 시간이 지날수록 쌓여가기만 해서 견디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
‘다들 눈치가 없나? 왜 이걸 모르는데? 누가 뒤를 봐주지 않고서야…!’
함이원은 분명히 실력에 비해 과대평가 받고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척 모든 찬양을 받는 함이원은 가증스러움 그 자체였다. 특히 자기가 예쁘다는 자각이 없는 척할 때마다 헛웃음이 나왔다.
‘자기 외모에 대해 자각이 없었다는 게 말이야 방구야? 저렇게 튀는 외모를 가져놓고? 컨셉질이 아니고서야.’
어쩌면 함이원은 이 세계에 발을 들였을 때부터 연기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뇌리를 스쳤을 때, 함이원에 대한 의구심이 폭발했다.
그때부터 함이원 주변을 샅샅이 살폈다. 하지만 얼마나 철저하게 숨겼는지 이렇다 할 정보가 없었다.
‘…얘는 친한 사람도 없어?’
함이원의 친구나 친척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접근해서 정보를 얻어보려고 했지만, 다 가짜 친구, 가짜 동창, 가짜 친척뿐이었다.
그나마 어릴 적 사진은 떠돌아서 그럴 리는 없겠지만,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사람이라고 생각할 만큼 과거가 잘 드러나지 않았다.
평범한 방법으로는 밝혀낼 수 없을 것 같다는 직감 아닌 직감이 들었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거나, 혹은 인생을 걸거나. 둘 중 하나의 선택이었다. 그리고 고등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못하고 알바를 전전하는 사람이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한정되어 있었다.
알바를 최소한으로 하면서 함이원의 주변을 맴돌았다. 그러면서 저절로 알게 된 인간들이 있었다.
사생, 그리고 파파라치.
하루, 이틀…. 처음엔 서로를 모른 척하며 지냈지만, 익숙해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사생이나 파파라치나 순 악질이었지만, 그래도 배울만한 점은 존재했다.
미친 수준의 집요함.
어떤 사생이 테오라 숙소에 침입했다가 잡혀가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줄기차게 보이던 얼굴이 보이지 않는 걸로 봐서 누군지 대충 짐작이 갔다.
‘간도 크지. 법 무서운 줄 모르네.’
사생의 숙소 침입 사건으로 테오라가 새로운 숙소로 이사하면서 보안이 강화되기도 했지만, 그들은 어떻게든 접근할 방법을 찾아냈다.
물론 빌라 단지 입구 앞에서 기다려야 한다는 식으로 접근이 훨씬 까다로워졌다지만 어디에나 빈틈은 있는 법이었다.
그 시기였다. 자신에게 갑작스럽게 다가와서 손을 내민 정체불명의 여성을 만난 건.
깔끔한 정장 바지에 흰 셔츠, 낮은 구두. 잔머리 없이 긴 머리를 하나로 묶은 그 여자는 뜬금없이 말을 걸어왔다.
“함이원이 테오라 탈퇴했으면 좋겠죠?”
“……!”
누구에게도 말한 적 없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은 박하를 좋아하는 팬으로만 보이도록 하나하나 신경 썼다. 비계를 대나무숲처럼 사용해 답답한 마음을 꺼낸 적은 있지만, 그마저도 빙빙 돌린 푸념에 불과했다.
“아닌데요. 이상한 말 지껄이지 말고 가세요.”
아무렇지도 않게 부정해봤지만, 그 여자는 벌써 뒷조사를 끝냈다는 듯이 신상 명세를 줄줄 읊었다.
“다 들켰으니까 거짓말 그만 하세요. 피차 시간 낭비하는 건 싫을 텐데. 그리고 들어보고 판단해도 늦지 않잖아요?”
사회생활을 많이 해봤을 것 같은 여자 어른. 교묘한 언변에 넘어가 듣게 된 제안은 확실히 유혹적이었다.
“…제가 얻은 자료를 공유만 해주면 된다고요? 뭐라고 불러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그 쪽한테는 무슨 이득이 있는데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는 말은 믿지 않는다. 그럴 바엔 돈을 길바닥에 뿌리고 싶다는 충동을 믿고 말지.
“임 비서라고 불러요. 그 이유가 결정하는 데 필요할까요? 당신은 함이원을 따라다니면서 무슨 자료를 얻든지 그걸 전달해주면 돼요. 그 자료가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는 제가 판단할 테니까 빠짐없이 보내요.”
혹시 임 비서라는 저 여자가 모시는 사람이 함이원 극성팬일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처음 했던 질문을 떠올려 보면 그럴 리는 없었다. 게다가 사생이 제공하는 자료로도 넘칠 텐데 굳이 여기까지 찾아올 필요는 없었다.
“…어디에 쓸 건지 말해줄 생각은 없겠죠?”
“알고 있으면서 묻는 건 나쁜 버릇이에요.”
함이원을 따라다니고 조사하면서 얻는 자료라고 해봐야 고작 사진과 동영상이 고작이었다. 팬카페나 커뮤니티, SNS에 이것저것 적어 올려도 억울하게 사생 취급이나 수두룩하게 받고 한 줌의 공감만 얻는 딱 그 정도.
알바 시간에도 늦기 일쑤라 알바도 짤리기 직전이었다. 생활비가 빠듯하다 못해 사채라도 알아봐야 하나 고민하던 시기였다. 이게 웬 떡인가 싶었지만, 이 제안을 냉큼 받으면 안 된다는 것쯤은 알았다.
웃는 가면을 흔들림 없이 쓰고 있는 여자의 표정으로 흥정을 해보려던 속셈이 읽혔다는 걸 느꼈지만, 임 비서라는 여자는 의외로 흔쾌히 조건을 상향시켜줬다.
돈이 썩어나는 사람을 모시고 있는 걸까? 아니면 자기 돈이 아니라서일까?
“…이 돈이면 너도나도 하겠다고 할 텐데 하필이면 왜 저죠?”
“다른 사람들은 필사적이지 않으니까요.”
“제가, 필사적이라고요…?”
태양처럼 빛나는 박하가 원래 받아야 했던 대우를 받게 만들어주고 싶었다. 그게 정의였다.
필사적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대가 없는 헌신이 남들 눈엔 그렇게 보일 듯도 싶었다.
“일상까지 포기하면서 누군가를 집요하게 파헤치는 일, 아무나 하진 않죠.”
선악을 따지지 않고 담백하게 평가하는 말에 그제야 마음이 편해졌다. 하던 일을 계속 진행하면서 자료를 전달해주기만 하면 된다. 간단한 행동으로 얻는 대가는 달콤할 것이다.
계약서 따위는 없어서 증거는 남지 않을 테니 더 안심이었다. 자료와 정보를 얻었을 때 연락할 수 있는 이메일 주소와 휴대폰 번호를 알려준 후 여자는 홀연히 사라졌다.
백일몽을 꿨나 싶었지만, 다행히 자료를 전달할 때마다 꼬박꼬박 계좌에 돈이 들어왔다. 매번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이야…?”
어쨌거나 돈만 제때 주면 불만은 없었다.
그렇게 지내던 와중, 함이원이 개인 광고를 찍는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평범한 브랜드 광고도 아니라 무려 S사의 광고라는 소식이었다.
“다들 눈이 삔 게 분명해! 함이원이 S사 광고 찍을 급이나 돼?”
천재라고 계속해서 치켜세워 주니까 대중까지 세뇌당한 게 틀림없었다. 줏대 없기는….
당연히 직접 찾아가 광고를 찍는 함이원을 두 눈 똑똑히 뜨고 지켜볼 작정이었다.
구경꾼인 척 주위를 살피는 과정에서 광고를 제작, 대행한 회사가 ‘더연 네트웍스’라는 사실을 얻어듣게 됐다.
더연 네트웍스, 분명히 어디서 본 적 있는 회사명이었다.
“아…!”
테오라 데뷔 광고를 맡았던 그 광고사였다. 획기적인 광고라고 아이돌 팬덤에서 말이 나오기도 했고, 잘 나온 광고라 개인적으로 알아보기도 했었다.
기억이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다시 검색해보니 ‘더연 네트웍스’가 맞았다.
여기까지는 단순한 우연으로 치부했다. 더연 네트웍스 정도의 이름있는 광고사라면 자주 만난다고 해도 이상하진 않으니까.
카메라를 숨겨 몰래 촬영하면서 주위를 눈치껏 살폈다. 함이원을 보러 온 사생들과 팬, 일반인이 뒤섞여 위장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그러던 중, 한 여자가 스탭들 사이로 걸어 들어갔다. 바다가 갈라지듯 자연스럽게 길을 만드는 걸 보니 관계자인 듯했다.
“…대표님!”
“쉿. 조용히 들렀다 가고 싶으니까 도와줄래요?”
한 회사의 대표치고는 굉장히 젊고 예뻤다. 아마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회사가 아닐까.
그 여대표가 함이원 근처로 살금살금 다가갈 때부터 등줄기를 연결하는 신경이 짜릿하게 달아오르는 것 같았다. 처음 보는 사이거나 친분 없는 사무적인 관계라면 절대 저런 행동을 할 수 없다!
‘뭔가 있어. 뭔가 있다고…!’
카메라 렌즈를 조정해서 둘의 모습을 열심히 찍었다. 뭐라고 하는지 들리지 않는 건 아쉽지만, 충분히 파괴력 넘치는 영상이 찍혔다고 확신했다.
‘저 여자가 함이원의 스폰서라면?’
만약, 데뷔 초반부터 함이원이 스폰을 받고 있었다면 아귀가 맞다. 더연 네트웍스가 테오라 데뷔 광고를 맡은 것도, 함이원이 갑자기 S사 개인 광고를 받게 된 것도 스폰의 힘이 들어갔다고 하면 전부 이해가 된다.
자료를 임 비서에게 전달한 후 참지 못하고 자주 상주하는 커뮤니티에 글부터 올렸다. 어그로부터 끌고 나서 폭탄을 터뜨릴 작정이었다.
그런데 반응이 예상과는 달랐다. 그간 낚시에 수도 없이 당한 사람들은 증거 없는 텍스트라면서 망상은 일기장에나 쓰라는 댓글까지 달았다.
자존심이 상했다.
“이게 얼마나 귀한 정보인 줄도 모르고! 그래, 직접 봐야만 믿겠다는 거지?”
영상을 투척하고 온갖 추문에 휩싸일 함이원을 상상하며 낄낄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