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vity 10000% Catastrophic Player RAW novel - Chapter 53
* * *
색색의 산호와 말미잘, 따개비가 다닥다닥 붙은 해저 암석이 수면 위로 서서히 솟아올랐다.
촤아아―
“허, 세상에. 왜 그렇게 높은 능력치를 요구했는지 알 법하군.”
[거산(擧山)]직역하면 산을 들어 올린다는 뜻.
이름처럼 거대한 지형지물을 들어 올릴 수 있게 해주는 스킬인데, 효과가 기대한 것 이상이었다.
“이름이 좀 과장인 줄 알았는데, 이 정도면 정말 산을 통째로 뽑아 들어 올릴 수도 있겠어.”
당장 눈앞에 떠오른 해저 암석만 해도 어림잡아 10층짜리 건물에 맞먹는 크기였다.
물론, 이전에도 김포대교의 잔해를 아공간에 넣어 다니면서 이곳저곳에 써먹긴 했었지만.
그건 눈앞의 해저 암석에 비교하면 어디까지나 ‘조금 커다란 돌멩이’ 수준에 가까웠다.
한편, 서리거인 대원들이 탄 배는 난데없이 들이치는 파도에 제대로 서 있기조차 힘들었다.
이성우가 들어 올린 암석에서 엄청난 양의 물이 쏟아져, 파문을 일으킨 것.
서리거인 대원들은 균형을 잡으려 애쓰는 와중에도 어안이 벙벙했다.
그래, 백 보 양보해서 어인족을 떼거리로 하늘 높이 집어던지는 게 가능하다고 해보자.
그것도 말이 안 되지만, 아무튼.
그러나 바닷속에 잠겨 있던 해저 지형을 통째로 들어 올리는 게 말이나 되는가?
마치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법에 관한 낡은 농담을 눈앞에서 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냉장고 문을 연다, 코끼리를 넣는다, 냉장고 문을 닫는다.
해저 균열을 닫는 법?
균열이 자리 잡은 해저 암초를 꺼낸다, 균열을 부순다, 암초를 집어넣는다.
대체 지난 나날, 자신들이 목숨을 걸고 배를 몰면서 위험을 무릅썼던 건 무엇을 위해서였을까.
혼자서 이토록 간단하게 해결해버리는데.
하지만 그런 걸로 불평할 때가 아니었다.
“리! 이제 어쩔 셈이지? 우리도 뭍에 올라 전투를 준비하면 되겠나?”
마르크가 고함을 쳤다.
‘균열의 핵’을 부수면, 주변에 창궐하며 환경을 바꾸어 나가던 몬스터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강한 균열지기가 등장한다.
비록 여기까지 이르는 동안 극동 방위대 ‘서리거인’이 한 게 아무것도 없지만,
균열지기 공략에서까지 빠질 수 없는 노릇.
하지만 이성우의 대답은 간단했다.
“뭐하러? 거기서 구경이나 하고 있어.”
“그럼 우리는 여기서 손가락이나 빨고 있으라고?”
이성우는 마르크를 비롯한 서리거인 대원들을 흘긋 돌아봤다.
어차피 가세한다고 해도, 크게 도움이 될 것이 없는 전력이었다.
그러게 애초에 대원 구성에 신경 좀 쓰지.
주먹이나 쓸 줄 아는 근접 전투 특성 플레이어만 기용하니까 이럴 때 할 일이 없는 것 아닌가.
“정 심심하면, 배 뒤쪽에 떠 있는 어인족 사체에서 마정석이라도 좀 긁어모아 보든가.”
모조리 이성우가 처치한 거라 마정석의 소유권도 이성우에게 있기에, 서리거인이 채집을 맡아줄 이유는 전혀 없었다.
정말 하라는 게 아니라 귀찮게 하지 말고 얌전히 있으라는 뜻으로 던진 소리였는데,
뜻밖에도 마르크는 불쾌해하기는커녕 목청 높여 외쳤다.
“알았다! 얘들아, 그물 가져와라!”
동시에 배가 슬슬 후진하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하란다고 진짜 한다고?”
이성우는 러시아 플레이어들의 머릿속에 어떻게 되어 먹은 것인지 궁금해졌지만.
그냥 이해하는 걸 포기하기로 했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하를 보여주는······.
정말 가슴이 웅장해지는 나라가 이곳이니까.
‘게다가 알아서 마정석을 긁어모아 바치겠다는데 마다할 이유도 없고.’
루팅은 러시아인들에게 맡겨놓고, 이성우는 눈앞의 균열에 집중하기로 했다.
빌딩만 한 해저 암석이 모습을 드러냈음에도 아직 균열은 육안으로 식별되지 않고 있었으니까.
‘마기 계측기가 없었더라면, 이 암석을 헤집으면서 또 한참 헤맸겠군.’
이성우는 계측기의 모니터와 눈앞의 암석을 대강 눈대중해서, 적당한 지점을 향해 대룡거검을 집어던졌다.
콰앙―! 쩌저적······
해저 암석의 아래쪽 절반이 부서져 도로 바다로 떨어져 내리고······.
그 자리에 검붉은 핏빛 광채가 드러났다.
균열이었다.
“크기가······ 남산 터널에 생겼던 것보다 훨씬 크군.”
그만큼 발생한 지 오래되었다는 이야기이고, 그 말인즉슨 저쪽과 이쪽 차원 사이에 생긴 틈이 그만큼 크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건 당연히, 그만큼 강한 놈이 등장하리라는 의미다.
남산에 등장했던 ‘아다만티움 땅거북’과는 격이 다른 존재가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좋아.’
그놈은 이성우가 목표로 하는 물건을 떨어뜨려 줄 것이다.
이성우가 균열의 위쪽에 붙은 암석도 부숴서 떼어내는데,
저만치 아래의 수면에서 무언가가 얼굴을 내밀고 외쳤다.
“게르게륵! 멍청한 놈이 문을 부순다!”
“그분께서 오신다!”
“아에기르! 경배하라, 경배하라!”
앞서 이성우가 벌인 기이한 학살을 보고 도망쳤던 어인족이 다시 떼로 몰려와,
이성우가 균열을 부수려는 모습을 구경하고 있었다.
“오, 균열을 지키는 놈을 숭배하는가 보지?”
이성우가 어인의 말로 대꾸하자, 어인들이 당황한 표정으로 외쳤다.
“인간 놈이 우리 말을 한다!”
“인간은 눈치가 빨라! 문을 부수지 않을 거야!”
“큰일났다, 그분께서 분노하실 거야!”
이성우는 무심히 대답했다.
“걱정마라. 나도 너희 주인에게 볼일이 있거든.”
겁에 질린 듯 몸을 떨던 어인들이 다시 왁자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인간! 멍청해!”
“문을 부순다! 그분이 오신다!”
“경배하라!”
이성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고는,
균열이 박혀 있는 반쪽짜리 해저 암석을 향해 손을 뻗었다.
[중력 역전] 그리고 [중력 강타].쿠구구구······!
20배에 달하는 뒤집힌 중력의 힘에, 해저 암석은 빠르게 위로 솟구치기 시작했다.
“어어!”
“문이 사라진다!”
“괜찮아! 다시 떨어질 거야!”
어인족들이 당황하는 와중에 나름 똑똑한 놈이 외쳤지만, 그것도 반만 맞는 말이었다.
저 높은 허공에서 떨어지는 건, 균열이 아니라 놈들이 숭배하는 바다거인 아에기르일 테니까.
위로 솟구친 암석이 특성의 통제 범위에서 벗어나는 걸 느끼는 순간,
이성우는 이미 손에 쥐고 있던 대룡거검을 크게 휘두르며 집어던졌다.
부우웅―
콰앙!
바람을 가르며 날아가던 대룡거검은, 균열과 해저 암석을 정확히 들이받았고.
『‘균열의 핵’을 파괴했습니다.』
균열 파괴를 알리는 시스템 메시지와 함께,
상공에서 우레 같은 외침이 터져 나왔다.
―나, 바다의 지배자 아에기르를 불러낸 자 누구인가!
이곳, 우루프 섬 균열의 수호자.
바다거인 아에기르의 등장이었다.
거인이란 이름에 걸맞게, 동이 터 밝아오던 하늘을 캄캄하게 만든 거대한 실루엣.
과연, 수많은 어인족의 숭배를 받을 정도의 위엄이 느껴지는 존재였다.
그런 존재가 자신의 무대인 바다 위에 현신했다면,
해상 한정 무위를 견줄 자가 없는 폭풍왕 이외에는 대적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
바다 위였다면, 말이다.
아에기르는 파괴된 균열에서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우렁차게 꾸짖은 게 무색하게,
자신이 까마득한 상공에 있다는 걸 깨닫고서 꼴사납게 버둥대기 시작했다.
―이, 이게 어떻게 된 게야! 분명히 ‘틈’은 바닷속에 뚫고 있었을 텐데?
하지만 그 이유를 궁금해하고 있을 여유 따윈 없었다.
그의 육중한 몸은 중력을 거스르지 못하고 아래로, 아래로 추락하고 있었으니까.
―으아아! 개고생을 해서 넘어왔는데, 이렇게―
원통함과 분노가 뒤범벅된 외침은 끝을 맺지 못했다.
꽈아아앙―!
그 순간에 지상에 충돌했으니까.
“그, 그분께서······?”
“아니야, 아닐 거야.”
“······히익!”
상황을 부정하던 어인족들은 이성우의 눈이 자신들에게로 향하는 걸 보고,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이미 균열도 닫고, 균열지기도 처치한 마당에 저런 잔챙이까지 일일이 쫓을 필요는 없다.
균열이 닫혀 마기의 공급이 끊어진 이상,
놈들은 오래가지 않아 알아서들 죽음을 맞을 운명이니까.
그때, 열심히 마정석을 채취하던 서리거인 대원들이 배를 몰아 이성우에게로 다가왔다.
“무슨 일입니까? 방금 엄청난 소리가······.”
김병훈이 상황을 물어왔으나,
이성우는 섬 쪽을 가리키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기다란 형상의 우루프 섬을 침대 삼아 누워 있었다.
언뜻 보면 잠을 자는 듯한 모습이었다.
물론, 영영 깨어나지 못할 영원한 잠이겠지만.
“거인······ 진짜 거인이잖아.”
서리거인 대원들이 멍하니 그곳을 바라보는 와중에 세르게이가 이성우를 향해 중얼거렸다.
“거인 살해자······.”
처음 사할린에 내렸을 땐 불신과 비웃음이,
그 뒤엔 인정이 담겼던 러시아 플레이어들의 눈빛에······ 이제는 두려움이 담겼다.
“······그, 리? 저 거인도 우리가 해체할까?”
마르크가 손을 들고 해체를 자원했다.
* * *
어차피 거인의 사체를 바리바리 싸갈 것도 아니었기에 이성우의 전리품 회수는 금세 끝났다.
혹시 메인 퀘스트와 관련된, [타르타로스의 열쇠 조각]이 나와주진 않았을까.
기대를 품고 우루프 섬 전역을 비행하며 샅샅이 살폈지만, 열쇠 조각은 발견할 수 없었다.
‘현재까지 모은 열쇠 조각은 두 개. 하나만 더 모으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데, 어디서 구할 수 있을지 정보가 없다.’
하나는 남산 터널 균열을 봉합한 뒤 얻었고, 다른 하나는 인천 소래습지 게이트의 베스페라에게서 얻었다.
둘 다 공통점은 악마의 수작과 관련된 곳이었다는 건데.
‘어차피 악마들과는 앞으로 계속 부딪쳐야 하니, 조급할 것 없다.’
어차피 한동안은, 김포에 다시금 펼쳐질 제2차 냉룡 웨이브의 방어를 준비해야 한다.
‘독정’을 완전 흡수해, 독성 면역을 얻었다곤 해도.
여전히 냉룡은 만만찮은 상대일 터.
‘하지만 이 물건이 있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지금, 이성우의 손에는 에메랄드와 사파이어 중간쯤의 영롱한 푸른빛을 발하는 창이 들려 있었다.
바다거인 아에기르가 떨어뜨린, 또 하나의 전설급 아이템.
『아이템 정보』
이름 : 아에기르의 삼지창
등급 : 전설
효과 : 격류 손아귀, 얼음 폭풍, 물/냉기 저항 75%
-신과 거인의 혼혈로 태어난, 차가운 바다의 지배자를 상징하는 창. 거대한 몸집으로 파도를 일으키고, 입김을 뿜어 눈보라를 만들어내던 반신의 힘이 담겼다. 바다에서 이 창에 맞서고자 하는 자는 세 줄기의 상흔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이걸 손에 넣게 되다니. 운도 좋군.’
원래대로라면 러시아가 따로 원조 요청을 보낸 노르웨이의 폭풍왕의 손에 들어갔어야 할 아이템.
파도와 눈보라를 제어하는 만큼, 폭풍왕에게 딱 어울리는 물건이지만.
이번에는 이성우의 소유가 되었다.
‘폭풍왕에겐 좀 미안한 일이지만, 그래도 이건 내가 가져가는 게 낫다. 나를 위해서나, 그 친구를 위해서나.’
본래 파도와 폭풍을 제어할 수 있는 S급 플레이어인데다, 그 능력을 강화하는 전설급 무기까지 얻게 된 폭풍왕은.
분명 해상의 전신으로 세계적인 맹위를 떨치게 된다.
그러나 강점이 명확하다는 바로 그 점이 도리어 약점이 되었으니······.
육지에선 별반 힘을 쓰지 못하는 플레이어가 되고 말았다는 게 두고두고 그의 발목을 잡았다.
‘결국 노르웨이를 비롯한 노르딕 5국이 죄다 얼음으로 뒤덮일 때도 무력하기만 했지.’
아무리 대중에게 추앙받고, 플레이어들이 경외하는 S급이라도 결코 무적은 아닌 셈이다.
‘어쩌면 이번 회차에 [아에기르의 삼지창]을 놓친 게 그에겐 오히려 행운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뭐,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면 삼지창 대신 충고 한 마디 정도는 건네줄 의향이 있었지만.
아직까지 폭풍왕은 현장에 도착하지 않았다.
이성우가 섬에 도착한 지 30분 만에 공략을 끝내버린 탓이었다.
“이성우 플레이어? 이제 다시 항구로 모실까요? 아까 급하게 공항에도 연락해둬서, 지금 출발하면 이륙 일정이 맞을 겁니다.”
이성우가 턱짓으로 우루프 섬을 가리켰다.
“아직 정리가 다 안 끝난 것 같은데, 괜찮습니까?”
“예에, 뭐. 저 거대한 사체를 당장 치울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아마 시간이 한참 걸릴 겁니다.”
“제가 사할린까지 옮겨드릴까요?”
김병훈이 두 손을 내저었다.
“이미 큰 도움 받았습니다. 뒷일은 저희가 처리하겠습니다. 어차피······ 섬의 지도도 새로 그려야 할 것 같거든요.”
섬을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던 김병훈이 말을 이었다.
“참, 부산물은 감정 기관에서 감정가 나오는 대로 처리해드리겠습니다. 부대 비용 탓에 수수료가 좀 발생할 것 같은데······ 8% 괜찮으십니까?”
저 커다란 거인 사체를 알아서 처리해주는데 8%면 나쁘지 않지.
문제는 러시아의 일 처리를 믿을 수 있느냐다.
“10% 쳐 드리겠습니다. 대신 투명하게 부탁드립니다.”
김병훈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물론입니다. 믿고 맡겨주시죠. 참, 통화(通貨)는 어떤 걸로?”
예전 같았으면 달러가 최고지만, 상급 게이트 하나에 국운이 왔다 갔다 하는 지금은 현물이 최고였다.
“20%는 은이나 미스릴, 나머지는 마정석으로 부탁합니다.”
한반도를 사자(死者)의 물결로 뒤덮었던 ‘악령술사’.
놈과의 일전을 위해선 항마력을 지닌 은과 미스릴을 모아둘 필요가 있었다.
물론 그에 대비해 성요한을 비롯한 신성 계열 플레이어를 다수 모아놓은 상황이지만,
그건 길드의 전력.
이성우 본인도 언데드 군세를 휩쓸만 한 수단을 갖추는 게 필요했다.
“은 말입니까? 알겠습니다.”
김병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돌아가죠.”
우루프 섬에 서리거인 대원들을 일부 남겨놓고, 배가 사할린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쯤 지났을까.
동쪽 먼바다에서부터 새카만 먹구름의 폭풍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김병훈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폭풍왕이 도착한 모양이군요.”
잠시 우루프 섬에 머무르던 폭풍이,
이쪽을 향해 똑바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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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폭풍왕 로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