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eat Chinese warlord from Joseon RAW novel - chapter 23
한때는 동지였고, 지금은 적이 된 지 오래지만.
한신은 최고의 적수였다.
이대로 이승을 하직하기에는 결말이 찝찝하다.
무슨 말이라도 남겨주길. 눈을 편히 감을 수 있도록.
과연 무표정한 사내의 입이 열렸다.
그러나 그에게서 나온 말은 천치메이를 무저갱의 수렁에 처박는 것이었다.
“없소.”
탕!
이마가 꿰뚫린 천치메이는 멍하니 하늘을 응시했다.
‘피···. 쑨원···. 혁···, 명···.’
***
이른 아침.
나는 커피를 내리며 상하이에서 온 전보를 뜯었다.
단 두글자.
– 종결.
그 말인즉슨. 상하이의 청방은 궤멸되었다.
천치메이는 사살되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팔짱을 끼고 방안을 돌았다.
과했나? 내가 과했나?
당하기 전에 쳤을 뿐이다.
하지만 그 보복이 과한 것은 사실이다.
일 개 중대에 가까운 병력이 상하이 대도시에서 군사작전을 벌였다.
게다가 피살된 자는 국민당의 선거본부장.
꼬리가 잡히지 않을 리 없다.
할 수 있는 최선은 총선거가 끝나기 전까지 최대한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지 않도록 늦추는 것.
상하이의 경호 인력은 작전이 끝남과 동시에 해산하여 각자 흩어진 채 후베이성으로 돌아온다.
그동안 나는 언론에 천치메이에 관한 허위 정보를 계속 흘린다.
천치메이는 중국의 수상한 집단이란 집단과는 죄다 관계를 맺고 있었으니, 찌라시 거리는 많다.
오늘 이후로 선거는 끝난 거나 다름없다.
국민당의 대표인 쑨원은 철도유람이나 하고 있다.
천치메이가 없는 국민당은 이번 선거에서 몰락할 거다.
그리고 당권을 잡은 쑹자오런은 국무총리가 되겠지.
이후에는 필연적으로 대총통을 들이받을 수밖에 없다.
나는 나직하게 다음 타깃을 발음해보았다.
“위안스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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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를 위하여3
한커우의 고급 요리점.
서른 명은 앉을 만큼 기다란 탁자의 상석은 리위안훙의 차지였다.
우리의 부총통 각하께서는 대인의 풍모로 굽실거리는 당선자들을 다독이며 덕담을 해주었다.
나와 쑹자오런은 멀찍이 떨어져 나와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우리 각하도 이젠 완연히 거물 냄새가 나네요.”
“네.”
쑹자오런은 간단히 대답하곤 다시 입을 다물었다.
평소 수다스러운 그와는 어울리지 않는 모습.
게다가 오늘 자리가 무엇인가. 공화당의 선거 승리를 축하하는 자리가 아닌가.
선거본부장이었던 쑹자오런은 승리의 일등 공신이다.
리위안훙의 바로 옆에서 같이 축하받으며 함께 기뻐해야 할 터인데.
어딘가 얼이 빠진 사람처럼 소주만 들이킨다.
나는 그런 쑹자오런을 내버려 두었다.
잠자코 안주나 집어 먹었다. 이 집 제육 잘하네.
문득 쑹자오런이 중얼거렸다.
“도독님의 솜씨입니까?”
“제육이요?”
“···.”
쑹자오런은 젓가락으로 고기를 집어 올리는 내 모습을 빤히 보다가 다시 말했다.
“상하이요.”
“예.”
“그럼 언론에서 떠들어대는 적대 폭력조직이 앙심을 품었느니, 무슨 종교단체에서 돈을 빼먹었느니 하는 말들은 다 근거 없는 헛소리군요.”
“헛소리는 아닐 겁니다. 다만 그들이 앙심을 품은 것까지만 사실이고 직접적으로 총칼을 들이대진 않았을 뿐이지요.”
“하긴. 도독님 말고 어느 누가 그럴 능력과 담력이 있겠습니까.”
“칭찬이지요?”
“···.”
쑹자오런은 또다시 답을 않고 입을 다물었다.
두 달에 걸쳐 치러진 전국 총선거.
미국식 양원제를 모방하여 조직된 국회는, 중의원 596명과 참의원 274명을 선출했다.
결과는 공화당의 압승.
의석의 총수는 870석.
공화당은 478석을 차지하여 과반이 넘는 의석을 차지하였다.
국민당은 199석.
민주당은 48석.
통일당은 22석 순이었다.
이 시점에 중국 전역에서 가장 주목받는 사람은 공화당의 승리를 이끈 젊은 정치가, 쑹자오런이었다.
상하이에서 벌어진 불우의 사고로 빛이 바래기는 했지만, 토론회에서도 중화민국의 미래를 훌륭하게 제시하였다고 평가받았다.
하지만 그 촉망받는 정치인은 지금 소란의 중심에서 멀리 비켜 나와서 풀 죽은 채 앉아있다.
쑹자오런이 또다시 소주를 한잔 털어 넘겼다.
무언가 결심한 듯 그가 입을 열었다.
“꼭 그렇게까지 했어야 됐습니까? 피에는 피라니, 오직 그 길밖에는 없었던 겁니까?”
“아니요. 다른 길은 언제나 있지요.”
“그렇다면 왜···?”
“왜 했냐고요? 그럼 왜 하면 안 됩니까?”
“그게 무슨! 천치메이는 동맹회의 창립멤버였습니다. 비록 혁명으로 가는 길에 견해 충돌이 있긴 했지만, 그것이 그토록 비참하게 죽어야 할 이유는 되지 않습니다.”
쑹자오런의 얼굴이 한껏 일그러져있었다.
나는 그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천천히 말했다.
“쑹자오런, 정신 똑바로 차리시오. 우리는 지금 헌법에 기초한 공화국을 건설하려는 거요. 그 말인즉슨 아직 건설되지 않았다는 거지. 우리는 성곽도 없는 벌판에서 야전 중이오. 후퇴할 게 아니라면 보이는 적은 바로 사살하는 것이 교범이오.”
“그래도 협상으로 풀 수도 있었을 텐데···.”
“쑹자오런!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와놓고도 배부른 소리를 하는 거냐? 중화민국에 헌법과 의회가 들어서고, 체제가 안정되어 사람들 개개인에 공화주의의 의식이 자라나기 전까지 우리를 지켜주는 것은 총과 칼뿐이다. 그때까지는 한치도 마음을 놓을 수 없어. 네가 택한 길에 책임을 져라. 혁명의 길은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이미 지나간 결과를 곱씹을 여유 따윈 없다. 그 종착까지는 모두 전쟁터라 생각해라.”
쑹자오런은 말없이 한참동안 있다가 술잔에 침을 크게 뱉었다.
그리곤 묵묵히 말했다.
“이제 술이 좀 깨는군요.”
시간은 이미 새벽.
소란스럽게 떠들던 의원들이 리위안훙을 필두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장소를 옮겨 뒤풀이를 이어 나갈 모양이었다.
썰물처럼 의원들이 빠져나가자 요리점이 금세 조용해졌다.
이제 정국은 새로운 페이즈에 접어들었다.
베이징의 정치는 의회와 행정부의 대결로 펼쳐질 거다.
나는 쑹자오런에게 다시 말했다.
“베이징에 돌아가면 예전처럼은 되지 않을 겁니다.”
“무슨 말입니까?”
“이번 선거에서 공화당은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대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그간 국민당을 향해있던 위안스카이의 눈초리는 공화당으로 향할 겁니다. 견제를 받겠지요.”
“저는 법률과 절차에 따라 행동할 뿐입니다.”
“의회가 구성되었으니 다음에는 정식 헌법을 제정하고 정식 대총통을 뽑아야겠지요. 위안스카이는 분명 대총통 선거를 재촉해올 겁니다. 그대로 응해주세요.”
쑹자오런이 의아한 표정이 되었다.
“헌법과 대총통, 어느 쪽이 먼저인지는 꽤나 중요한 문제입니다. 위안스카이가 정식 대총통 자리에 먼저 오르면 의회와 약법을 무력화시키려 시도할 수도 있습니다.”
“예. 그걸 기다리는 겁니다.”
“그게 무슨?”
“위안스카이의 저력은 북양파의 군벌 세력에서 나옵니다. 그리고 그 북양군은 결코 혁명군의 두세개 사단으로 막을 수 있는 규모가 아닙니다. 북양파를 제외한 전 중국이 모두 단결해야 하지요.”
“하지만 지금처럼 찢어져서는 단결은 요원한데요.”
“그러기 위해 적이 폭주하기를 기다립니다. 위안스카이에게 의원내각제는 서두를 생각 없다고 말하십시오. 노골적인 단언은 삼가고. 천천히, 은은하게 공화국으로의 단계를 밟아나가십시오. 위안스카이는 여기서 멈출 자가 아닙니다. 결국은 공화를 부정하고 나설 테니. 그때까지는 힘을 비축합니다.”
쑹자오런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정치는 내 전문이라 생각하였는데. 이제 보니 도독님이 한 수 위인듯 하군요.”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을 읽어보셨습니까?”
“제가 그걸 왜···. 아니오.”
“방금 말씀드린 건 전쟁론의 병법입니다.”
“전쟁론이라니? 우리는 정치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전쟁은 왜?”
“정치의 최종 수단은 전쟁입니다. 우리와 위안스카이의 대결은 결국 전쟁을 통해서야 종결될 겁니다. 결국 이 싸움은 어느 진영이 전쟁 의지를 더 고취하느냐의 싸움입니다.
클라우제비츠에 따르면 전쟁은 정치성과 폭력성, 개연성으로 이루어진다.
정치성이 공화주의를 위한 큰 뜻을 품고 정부 차원에서 노력하는 거라면.
폭력성은 공화주의의 걸림돌이 되는 적들에 대한 시민들의 적대감이다.
내가 쑹자오런에게 주문한 것은 시민들의 폭력성이 고양되어 공화정이 지지를 받을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라는 것이었다.
이제 개연성이 남는다.
우연성이라고도 하는 이 특징은 클라우제비츠가 말하길 전쟁을 가장 경이롭게 만드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군대다.
그리고 이 개연성은 쑹자오런이나 다른 사람은 채울 수 없다.
후베이성의 군권을 틀어쥔 나만이 가능하다.
병사들이야 문제없다.
좋은 무기 쥐여주고 뜨신 밥 먹여주면 분란 없이 충성할 터.
장교가 말썽이다. 인재가 없다.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내 계책은 이제 곧 개교할 우창군관학교(武昌軍官學校).
신해혁명의 본산인 우창성을 기준으로 후베이성 정부 독자적으로 세운 사관학교다.
기존의 무비학당은 중앙 정부의 입김에 영향을 받는 통에 제대로 된 장교를 양성할 수 없었다.
하지만 우창군관학교는 내가 처음부터 학생 선발과 교육과정에 깊이 관여하여 북양파가 아닌 혁명파의 장교를 길러내는 것이 목적이었다.
물론 과정은 지난했다.
후베이무비학당의 분교를 설립한다는 핑계로 겨우 중앙 정부의 간섭을 떨쳐낼 수 있었다.
하지만 분교는 개뿔. 속았지?
이제 우창에서 한신의 아이들이 자라날 거다.
아이들이 성인이 되면 그때는 우리의 시간이다.
“이만 자리를 파할까요?”
쑹자오런이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단순한 동의의 표현이라기에는 똑바로 시선을 마주쳐오는 진실된 눈빛.
정치와 관련한 모든 제반사항에 자신을 믿으라는 듯 끄덕이는 느낌이었다.
***
이제 막 스무살이 된 우창 출신 청년, 두위(杜煜)는 바싹 긴장하여 정면을 응시했다.
넓디넓은 연병장에 500명의 청년이 정렬하여 있는데 분위기가 숨죽인 듯 고요하였다.
본래 어려서부터 군인이 되고 싶었던 두위.
그러나 아버지는 ‘좋은 쇠로는 못을 만들지 않고, 좋은 인재는 병사가 되지 않는다’는 옛속담을 인용하며 절대 허락하지 않았다.
몰래 입영 신청을 한 적도 있었으나 아버지에게 뒤지게 처맞고는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우창봉기 이후로 모든 것이 달라졌다.
우창은 남방으로 진격하는 진압군을 막아내는 수문 역할을 하며 혁명의 성지가 되었다.
거기에 입영을 막던 아버지의 마음이 돌아가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우창군관학교였다.
한양은행이 자금을 대고 한양병공창에서 무기를 조달받는.
태생부터 금수저를 타고나 망하려야 망할 수가 없는.
입학과 동시에 출세가 보장된 명문사관학교.
게다가 학교장은 바로 그 한신이다.
일본육사를 수석으로 졸업한 천재!
한커우 전투의 영웅!
임시직이라고는 하지만, 잠깐이라도 한신이 교장으로 있는 학교에 다닐 수 있다는 것이 두위는 영광스러울 뿐이었다.
“오, 오신다.”
“야, 저거 봐···.”
생도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두위도 보았다.
따가닥. 따가닥.
바람에 백마의 갈기가 휘날렸다.
흔히 보기 힘든 명마임이 틀림없으나 두위의 시선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말을 타고 들어오는 한신 교장님은 정말로 고사 속의 영웅호걸처럼 보였다.
결코 서두르지 않고 느릿느릿 들어오는 걸음걸이. 안장 위에 사뿐히 드리워진 망토도 기가 막혔다.
여유롭게 사열(査閱)하는데, 어째서 단순히 고개를 돌리는 행동도 멋있게 느껴지는지 두위는 알 수 없었다.
자신보다 고작 몇살 많을 뿐이었지만 이미 범접할 수 없는 대영웅처럼 생각되었다.
“우와아!”
누군가 함성을 질렀다.
금세 전염되어 연병장이 떠나갈듯한 함성이 울려 퍼졌다.
교관들이 제지하려 했으나 교장님은 그런 교관들을 다시 제지했다.
마치 환호성을 즐기는 것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조용.”
단상에 오른 한신 교장님이 한마디 하자 곧바로 연병장이 침묵에 잠겼다.
“나는 한신이다. 후베이성의 도독에 있지만, 오늘은 이곳에는 학교장으로 왔다. 너희들을 보기 위해.”
“우와아아!”
다시 또 환호성.
한신 교장님이 손을 들었다. 함성이 잦아들었다.
“너희들이 무슨 마음을 먹고 우창군관학교에 입학하였는지 나는 모르며, 알 필요도 없다. 대신 중요한 것은 따로 있지. 오늘부로 우창의 1기생이 되는 이상, 너희들에게는 오직 한 가지만이 중요하다. 바로 절대적인 충성이다!”
“와아아악!”
“절대복종하겠습니다!”
“한신 장군님께 충성!”
다시 조용히 하라는 신호.
“뭔가 잘못 생각하고 있구나. 충성은 내게 하는 것이 아니다. 공화주의를 아느냐?”
이번에는 연병장이 고요하였다.
“기억해라. 공화는 국가이며 개인이다. 자유이며 복종이다! 공공선이며 민법이다! 언제나 스스로 판단하고 사고해라! 네 마음의 덕에 충성해라! 이상이다.”
교장 선생님의 훈화 말씀이야 짧으면 짧을수록 좋은 게 인지상정이지만.
이번만큼은 다르다는 게 두위의 생각이었다.
공화인지 뭔지는 그저 알쏭달쏭한 얘기일 뿐이었으나 교장님의 음성을 더 듣고 싶었다. 위엄을 더 느끼고 싶었다.
그러나 한신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말을 끌고 경내를 떠나버렸다.
교장님이 사라진 쪽을 쳐다보던 두위는 마음이 한껏 부풀어 얼른 교육에 들어가고 싶었다.
자신이 군인이 되고 싶었던 건 그저 총을 든 모습이 멋있어 보였기 때문.
국가니 자유니 하는 건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다.
하지만 입학식 날 교장님의 말씀은 두위의 가슴속에서 알 수 없는 불씨를 피워올렸고.
그 불씨는 다음 날부터 졸라게 굴려지면서도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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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끝낼 전쟁 (수정)
창밖으로 에메랄드빛 바다가 넘실거렸다.
홍콩에서 보내는 안온한 오후.
아래층에서 어머니의 음성이 들렸다.
“신아! 밥 먹어라!”
“네~.”
언제나 부하들에 둘러싸여 근엄한 척 눈이나 부라리다가 집안의 귀요미가 된 이 기분.
나쁘지 않아. 실은 맘에 들어.
2년 만의 휴가.
1913년은 조용히 지나갔다.
알아채지 못할 만큼 은밀한 기동이었다.
제헌의회에서 치러진 대총통 선거는 위안스카이가 당선되었다. 부총통은 리위안훙이었다.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 등 주요 열강들은 위안스카이를 두 팔 들고 환영했다.
정식으로 출범한 북양 정부가 아편 전쟁 이래 청이 맺은 불평등 조약들을 그대로 이어받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청나라와의 관계성을 부정하고 조약을 거부할 수도 있겠지만.
힘이 없는 상태에서 강짜를 부려봤자 먹혀들어 갈 리 없으니 고분고분 순종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기는 했다.
제헌의회의 총리는 쑹자오런이 되었다.
쑹자오런과 위안스카이는 겉으로는 곧잘 원만하게 지내는 것 같았다.
헌법 제정은 자꾸만 미뤄졌고 대총통은 재정과 외교 등에 있어 끊임없이 권리를 요구해왔다.
내각 회의에서는 하하호호 덕담이 오갔지만, 모두가 알고 있었다.
소리장도(笑裏藏刀)의 베이징 정치라는 걸.
제헌의회든, 북양 정부든 서로 간만 보며 먼저 움직이지 못하는 이유는 명확했다.
위안스카이의 북양군이 강력하다고는 하지만 그 영향력은 베이징 주변의 몇 개 성에 한하여 작용할 뿐.
화중남의 군사령관들은 자체적인 권력을 틀어쥐고 명목상으로만 중앙에 복종할 뿐이었다.
물론 각자 하나하나씩 떼놓고 보면 북양군의 1개 사단도 제대로 상대하지 못할 성(省)이 부지기수였으나.
자칫 잘못 건드려 그들이 연합이라도 하기 시작하면 골치 아프니 북양 정부에서도 눈치를 봐야 했다.
가장 큰 문제는 세금.
슬금슬금 중간에서 착복하는 지방 정부가 있는가 하면.
광둥성같이 돈이 없다며 배 째라는 식으로 나오는 곳도 있었다.
세수의 격감은, 당금 최대의 현안이었으니.
의회와 정부 구분 없이 어느 쪽이든 문제 해결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나의 경우로 말하자면, 후베이성은 상대적으로 북양파의 입김이 센 탓에 세금 납입을 패스하기는 어려웠다.
물론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조세 따위는 관심의 대상이 아닌 것에 가까웠다.
그깟 세금 얼마나 한다고. 후베이성은 근대화의 첨병으로 증기기관차처럼 폭주하고 있었으니.
1,900만 위안의 자본으로 출발한 한양은행은 공격적으로 투자를 감행하여 어느새 그 세 배에 가까운 돈을 굴렸으며.
한야평공사의 시뻘겋게 달아오른 용광로는 연신 철강을 쏟아냈다.
무엇보다 고무적인 일은 노동 계급이 자라나기 시작했다는 것.
한양은행의 지원을 받은 기업은 중공업에 한정되지 않았다.
오히려 경공업 분야에서 셀 수 없이 많은 개인 사업자들이 빵빵한 지원을 받고 시장에 뛰어들었다.
허허벌판이었던 평야에 방직공장들이 들어섰고.
장강 근처에는 제분공장들이 가득했다.
근대식 공장의 산업집약도는 무시무시해서 본격적으로 공장이 가동되기 시작하자 인력을 갈아 마시기 시작했다.
중국에서 사람이 없어 근로자를 구하지 못하는 상황이 올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는데.
그런데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자연스레 이촌향도 현상이 발생하여 근처의 안후이성과 허난성 등지에서 농민공(農民工)들이 대거 쏟아져 들어왔다.
고향을 떠나 후베이성에 정착한 농민공들은 기존 지역 사회의 전통에서 자유로웠다.
오직 관심 있는 것은 자신의 권익과 노동에 따른 임금 뿐이었다.
나는 의회에서 입안한 노동법을 철칙으로 엄수하도록 지시했다.
그러나 노동쟁의는 생각보다 많이 일어나지 않았는데.
우한 산업단지의 풍부한 유동성은 노동자들로 하여금 쟁의 따위에 시간을 버리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그 사이에 한 푼이라도 더 버는 게 이득이라는 인식이 만연하였다.
지지부진하던 철도 사업도 막힌 혈이 뚫렸다.
국민당의 선거 몰락 이후 쑨원은 철도부에서 외채를 끌어다 쓸 권리를 요구하였다.
자신이 외국에서 차관을 들여오면 북양 정부가 대신 보증을 서달라는 다소 해괴한 논리였다.
위안스카이는 일언지하에 거절하였다.
나아가 이용 가치가 없어졌다고 판단했는지 쑨원을 철로 총판 자리에서 해임해 버렸다.
철도 사업은 교통부로 이관되었고 쑨원은 일본으로 도피하듯 떠났다.
자금난에 시달리던 교통부는 자금을 마련한 지방 정부에 우선하여 철도 건설에 들어가겠다고 선언했다.
그 첫 순서는 단연 후베이성.
기존 베이징과 한커우를 잇는 징한철도.
한커우와 광저우를 잇는 웨한철도에 이어.
우한을 시작점으로 난징과 난창, 시안. 세 개 경로에 한꺼번에 철도가 건설되기 시작했다.
역시 돈이 최고다. 안되는 게 없다.
완성된 철로는 공장 지대의 상품을 중국 전역으로 수송할 것이다.
아래층에 내려가니 이미 아버지와 여동생은 젓가락을 놀리고 있었다.
간단한 소면과 만두 몇 개. 소박한 상차림.
“식기 전에 얼른 먹으렴.”
“네.”
소면을 떠서 입에 넣자마자 고소함이 입가를 가득 채운다.
어머니의 손맛이 살아있는, 어릴 적부터 먹어왔던 익숙한 식사다.
돈으로 안되는 게 요기잉네.
“일은 어떠니? 힘들진 않니?”
“적성에 맞아서 괜찮아요.”
“그럼 다행이구.”
어머니와 대화를 나누는 동안 순식간에 자기 그릇을 비운 여동생이 탐욕스러운 눈으로 내 소면을 넘봤다.
“먹고 싶냐?”
“응!”
“어~, 안돼.”
“치. 다른 오빠들은 동생이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다 사주든데.”
“누가 보면 굶은 줄 알겠네.”
여동생은 콧방귀를 뀌며 만두를 집어 먹었다.
“너 학교 공부는 어떠냐?”
“알아서 뭐 하게.”
“이제 네 진로도 생각해야지.”
“웃겨. 오빠가 우리 아빠야?”
진짜 아빠는 이미 세 젓가락에 소면을 완료하고 만두 한 개를 집어 든 채 식탁을 벗어난 후였다.
나는 입가의 웃음기를 지우고 진지하게 물었다.
“진짜 제대로. 너 뭐 하고 싶은데?”
“음···. 몰라.”
“대학 안 가?”
여동생의 눈이 동그래졌다.
“여자가 대학에 어떻게 가.”
“왜 못가.”
“진짜? 나 대학 보내줄 거야?”
“네가 가겠다면.”
“···.”
여동생이 고민하는 듯 어머니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어머니가 편안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가고 싶으면 가렴.”
“근데 대학에 가게 되면 집에서 떨어져 있어야 할 텐데···.”
“신이가 집을 떠난 것이 열여덟이었으니까, 서시가 올해 꼭 나이가 같네. 혼자서도 충분히 잘 지낼 수 있는 나이라고 생각해.”
“그래도 저 없으면 엄마랑 아빠가 심심하잖아요.”
“얘는, 무슨 소리 하니. 엄마랑 아빠는 너희들 열심히 공부하고 꿈을 이루는 게 최고의 행복이야.”
“진짜요?”
“그럼.”
여동생의 얼굴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마음을 놓은 듯 재잘거렸다.
“근데 홍콩대는 여학생 안 받는데. 여자가 진학하려면 베이징이나 난징에 있는 사범대학 쪽을 알아봐야 된데.”
“벌써 알아봤나 보네.”
“응, 다 알아봤어.”
“그럼 가고 싶은 거냐?”
“웅!”
나는 준비해둔 편지지와 펜을 꺼냈다.
“이게 뭐야?”
“대학 진학을 알아볼 거면 자기소개서를 써야지. 네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비전과 포부를 가졌는지, 얼마나 학교 공부에 충실할 것인지 빽빽하게 적어.”
“흠, 자기소개서라.”
“그리고 쓸 때는 영어로 써라.”
“영어로?”
궁금해하던 여동생은 문득 깨달았는지 입을 헤 벌렸다.
“나 외국 가는 거야?”
“그래. 이왕 가려면 제대로 배워야지. 영국이든 미국이든 둘 중에 선택해.”
“나 미국.”
“영국이 낫지 않냐. 홍콩 시민권이 있으면 진학하기 편할 텐데.”
“음···. 홍콩에 사는 영국인들만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워낙 당한 게 많아서 영국엔 별로 가고 싶지 않네.”
하긴.
근데 미국도 별다를 건 없을 텐데.
잠깐 고민이 들었으나 이내 마음을 접었다.
한서시는 보기완 다르게 마음이 강한 아이다.
그깟 인종 차별쯤은 극복할 수 있으리라.
“그래. 내가 한 번 알아볼게. 혹시 가고 싶은 대학이 있으면 미리 말해라.”
“오빠가 어떻게 알아봐? 연줄 있어?”
“그거 몰라? 여섯 다리만 거치면 세계인이 모두 연결된다는 거. 나 정도 위치가 되면 건너 건너 꼬맹이 하나 대학 입학시켜주는 건 일도 아니야.”
“아싸!”
연줄을 이야기하며 나는 머리속에서 쑹아이링을 떠올리고 있었다.
미국의 웨슬리언 여자대학교를 졸업한 보기드문 이 시대 보기 드문 지성.
그녀의 동생들이 줄줄이 같은 학교를 다니고 있으니 부탁하면 여동생도 가능하리라.
먼 타지지만 같은 중국인이 있으면 생활도 어느정도 편할 터.
신나서 유학 준비에 들어간 동생을 두고 온갖 충고를 늘어놓았다.
듣는 둥 마는 둥, 짐 정리를 한답시고 집안을 뛰어다니는 동생을 지켜보다 밖으로 나왔다.
어느덧 석양이 저물고 있었다.
곧장 삼합회의 쫄병들이 뒤따라 붙었다.
나는 그들의 호위를 받으며 페리를 탔다. 목적지는 침사추이의 삼합회 본부였다.
용두와는 육사에서 돌아왔을 때 사업 보고 이후 처음 만나는 것이었다.
백색의 정장을 깔끔하게 차려입은 용두는 날 보자마자 뻣뻣하게 몸이 굳었다.
이내 깍듯이 고개를 숙였다.
“장군님, 어서 오십시오.”
“에이, 우리 마스터. 왜 그러세요.”
“온 천하에 장군님의 위명이 휘날립니다. 삼합회는 장군님이 베푸신 은혜덕에 다시 없을 전성기를 맞았으니 마스터 된 자로서 마땅히 감사를 표해야지요.”
“뭐 작정했슈? 됐고 평소처럼 합시다. 나는 온종일 부하들에게 둘러싸여 대접받는 사람이야요. 어린 시절의 추억이 깃든 이곳에서는 좀 편하게 있고 싶네요.”
“아, 예. 그럼 편하게.”
용두는 말과는 달리 무척 불편한 자세로 소파앞에서 엉거주춤 서 있었다.
바지에 똥이라도 쌌나 생각하는데 내게 상석을 양보하는 자세란걸 깨달았다.
나는 무시하고 상석의 오른쪽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마스터. 우리 편하게 하자니까? 이 기회에 말 놓읍시다. 항상 궁금했던 거, 몇살이요? 본명은 뭐요?”
“그건 아무도 모르는 비밀인데···.”
“말하기 싫음 말고.”
“장군님께만 알려드리지요. 회의 다른 녀석들에게는 비밀입니다.”
“오키.”
“1885년생입니다.”
나보다 다섯 살 형.
아직 서른도 안 됐다.
“와 진짜 어렸구나.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하여간 나이는 비밀입니다. 다른 녀석들이 알면 우습게 볼지 모르니까.”
“네. 그러죠. 그 보다 말 놓으라니까요, 마스터?”
“정말 말 놓습니까?”
“예.”
한때 까마득히 높은 곳에 있는 것처럼 보였던 삼합회의 드래곤마스터가 내게 쩔쩔매는 모습을 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