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Kidding, I’m an Extra RAW novel - Chapter (333)
EP.377 꼬리치기 # 4
평소처럼 추리닝 바지를 입은 유리는 온데간데 없고 치마를 입은 유리가 거기에 있었다!
그것도 산뜻한 하얀색 테니스 스커트에 핑크색 리본 블라우스다. 말 그대로 소녀스러운 패션이라서 순간 얼굴을 못 알아볼 뻔했지만, 얼굴은 영락없는 유리 그 자체.
유리가 이런 옷을 입다니…!
“너 옷이…!”
놀라서 말이 안 나올 지경이다.
“뭐. 옷이 어떤데?”
아니나 다를까 뭐라고 말을 하니 인상을 팍 쓴 유리가 날 죽일 듯이 바라보면서 그 쏘아붙인다.
“누가 그렇게 귀엽게 입고 나오래애!”
그래서 나는 포효하듯 소리칠 수밖에 없었다.
“뭐…? 궈여워?”
“평소엔 스키니 추리닝에 후드 같은 걸 입고 다니면서 말이야! 누가 이렇게 귀여운 거 입고 나오래! 어!”
“이, 이 새끼!”
객관적으로 봤을 때 귀여운 건 팩트였다. 유리 이 녀석 이런 옷을 입을 줄도 알았군. 노출증 위험군인 시후랑은 완전히 딴판인 센스다.
“그렇게 귀엽냐?”
인상을 쓰고 있던 유리의 표정이 풀어진다.
“생각보다 잘 어울리는데.”
“허어, 그래?”
귀엽다는 말을 들으니 기분이 좋은 모양이지.
얼굴에 미소가 번져나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웃기기도 하다.
요즘 유리에 대해서 더 알게 된 게 있는데, 사실 생긴 것과는 달리 귀여운 걸 좋아한다는 점이었다.
“근데 갑자기 왜 그런 옷 입었냐고. 아예 처음 보잖아.”
“야. 패션 몰라? 나도 패션에 대해서 좀, 어? 아는 게 있다고.”
“흐흐흐, 패션 이러고 있네. 그래서 그렇게 귀여운 걸 입고 나온 거냐? 어? 아주 그냥 큐트미러야. 큐트미러.”
“아, 씨발. 계속 지랄하네.”
계속해서 큐트 드립을 치자 유리의 미소가 떨리기 시작한다. 부들부들하는 걸 보니 곧 터질 것 같은데 이건 못 참지.
“그만 좀 해, 이 새끼야. 나 귀엽다는 거 알겠으니까.”
유리가 귀여운 옷을 입고 나오다니 놀리고 싶어서 미칠 지경이다.
“아니, 근데 너무 귀엽게 입고 나온 거 아니냐고! 어떻게 유리가 이런 옷을 입지!”
“아, 그럼 새끼야!”
마침내 폭발한 유리.
“행사 가는데 진지하게 입고 와야지! 행사 때문에 힘 좀 준 거라고!”
“아니, 너에게 곰 인형 행사란 건 대체 뭐인 건데?”
“누구보다 진지하게 임해야 하는 행사지. 됐냐? 내가 괜히 이렇게 입고 나왔겠어? 시발아 행사 때문에 그런 거 아냐.”
“흐흐흐, 행사 맨날 하면 맨날 그렇게 입고 나오냐?”
“뭐?”
옷이 날개라고 이렇게 입으면 덜 무서워 보인다.
“아니, 뭐. 맨날 이렇게 입냐? 그럼?”
“어울리는데 왜. 걍 맨날 그렇게 입어라.”
“새끼… 아오! 오늘따라 아부 존나 하네!”
계속 놀리듯이 말하니 마침내 유리가 폭발했다.
“배가 시발 얼마나 고픈 거야? 이게 내 지갑을 아주 털어먹으려고.”
“오늘은 그냥 날 위해 돈 다 쓴다고 생각해라.”
“시발럼 이거.”
그래도 기분은 아주 좋아 보인다. 역시 여자애라서 칭찬에 약하다니까. 뭐 그리 좀 더 주절거리고 있으니, 유리가 갑자기 그런 말을 꺼냈다.
“아 맞다. 야. 김근철이. 이것 좀 맡아봐.”
뭘 맡아?
“뭔데?”
“보자.”
ㅡ스윽.
가방에서 향수를 꺼낸 유리가 그걸 자기 손목에 뿌렸다. 그리고는 향을 배게 한 뒤에 내 얼굴에 갖다 대는 것이 아닌가.
ㅡ화악.
상큼한 향기가 풍긴다.
“상큼한데. 향수까지 챙겨온 거냐?”
“그만큼 진지하게 임하고 있다고. 야. 화장한 건 보이냐?”
사실 아까부터 여성용 화장품 특유의 향기가 느껴지고 있어서 뭐라고 할지 알 수가 없던 참이었다.
오늘따라 그 속된 말로 분내가 살살 느껴져서 시선을 둘 수가 없어.
“보여.”
“어때? 내 화장 실력이.”
“평소보다 더 예쁘단 소리를 듣고 싶은 거냐?”
“아니, 씨이이발…! 큿!”
“왜 예쁘다고 하는데 욕을 해.”
“아니야!”
돌연 고개를 돌린 유리가 흠흠 거리면서 목을 가다듬었다.
“하여간 입도 싼 새끼. 예쁘단 말을 그냥 툭툭 던지네. 이거.”
“유리야. 내가 레오나한테도 하는 말이지만, 난 예쁜 건 예쁘다고 하는 사람이야.”
“이 새끼가.”
초딩도 아니고 유치한 짓은 하지 않는다. 인정할 건 인정해야지. 나는 아름다운 건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는 낭만적인 남자란 말이다.
“됐다. 아무튼. 슬슬 가볼까?”
“그래. 근데 우리 뭐 타고 가냐?”
“버스 타면 바로 가지던데.”
“고.”
그렇게 나는 유리와 함께 버스정류장으로 이동했다.
“근데 유리야. 거기 무슨 곰 인형 모양 정찰 봇 같은 것도 판매한다는데.”
“곰 인형 스킨만 씌운 거잖아.”
“아니 뭐 그렇긴 한데.”
그런 건 다 전문 장비 같은 거다.
드론보다 조금 진보한 형태의 물건이라고 할까. 임무를 수행할 때 골목이나 좁은 곳에 작은 공처럼 생긴 정찰봇을 던져 놓으면 그게 알아서 탐색하면서 화면을 보내주는 형식.
있으면 좋을 것 같긴 해.
“아직은 딱히 필요 없을 것 같은데. 애초에 임무 지역 아니면 쓸 수도 없고 말이야. 이상한 데 관심 가지지 말고, 어? 나랑 인형이나 보자고.”
“이제 칼보단 곰 인형 파가 되었구나. 유리야.”
“둘 다 모으지 뭐.”
기다리고 있으니 버스가 왔다. 자연스럽게 유리랑 같이 뒤쪽에 있는 2인석으로 갔다.
“안으로 들어가.”
“오, 새끼. 남자라고 바깥에 앉는 거냐?”
“바깥쪽이 내릴 때 더 편하잖아.”
“뒷말은, 뒷말은 집어넣어라, 좀!”
“아.”
아무튼 같이 앉았다.
“흠.”
아니, 근데.
유리랑 딱 붙어서 앉아서 그런가. 오늘 힘을 빡 주고 온 유리의 향기가 구체적으로 느껴지기 시작한다.
화장품 분내부터 시작해서… 상큼한 향수 향까지. 내가 후각이 그렇게 민감한 사람은 아닌데 오늘따라 또 신경 쓰이네.
“어깨 좀 접어, 이 새끼야. 존나 커서 불편하잖아.”
“이걸 어떻게 접어.”
내 어깨는 절찬리에 유리의 자리를 침범 중이다. 미안하지만 이건 유리가 감당해야 한다.
“좀 감당해라. 무려 이 김근철과 같이 앉는 중이니까.”
“이 새끼 진짜 자뻑질 개오져.”
“자뻑이 아니라 그냥 당연한 자신감이지.”
“지랄아.”
나는 내가 자뻑한다고 전혀 생각하지 않아.
뭐 그렇게 유리랑 같이 앉아서 행사장으로 이동한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했지만 놀러 가는 것인 만큼 일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괴수나 전투니 하는 건 잊고 쉬어야 하니까.
근데.
“아, 시발 존나 불편해.”
ㅡ스윽.
돌연 유리가 불편하다면서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유리야 무거워.”
“진짜 한 번만 더 깝치면 죽인다.”
“넹.”
“좀 기댄다?”
“어.”
아니, 근데 샴푸도 좋은 거 쓰는지 포근한 향기가 올라오기 시작한다. 진짜 행사에 진심이라니까… 괜히 거기에 신경 쓰면 유리가 부끄러워할 테니 가만히 있는 게 좋을 것 같다.
“좀 졸린데. 유리야. 도착하면 깨워줘.”
“그러던가.”
절로 눈이 감긴다.
*
*
*
정류장에서 내리니 벌써부터 사람이 많이 보인다.
“캬! 여기냐?”
다들 행사에 참여하려고 온 사람들인 모양이다. 오늘 행사는 저기에 있는 커다란 문화센터 안에서 진행이 된다고 한다.
안에서 이런저런 곰 인형 등을 판매하고 뭐 하고 한다는데, 건물 큰 거 보니까 확실히 기대가 좀 되긴 한다.
“히야. 이거 생각보다 규모가 큰 것 같은데.”
유리가 기지개를 켜면서 주변을 살핀다. 아주 그냥 씨익 웃고 있는 게 크게 기대를 하고 있는 모양.
이게 또 곰 인형이 인기 많은 세상이라니 신기하다.
“야, 야. 저기서 줄 서면 된대. 가자.”
“여기서부턴 유리 니가 안내해라.”
“잘 따라오기나 해.”
바로 유리를 따라서 줄을 서러 갔다.
“사람 많은 거 보니까 여기서 좀 기다려야겠는데.”
“딱히 오래 걸릴 것 같진 않은데… 야. 가방 좀 들어라. 아까부터 가방 들어준단 소리를 안 해. 이 건방진 녀석이.”
“아! 짬 때리지 말라고!”
“뭘 짬을 때려!”
시발 가방 짬 맞았어.
나는 어쩔 수 없이 유리의 귀엽고 작은 가방을 들어줬다.
진짜 가오 다 털리네.
“남자가 이런 거 들고 있으면 가오 상한다고!”
“가오고 지랄이고 안 들면 뒤져.”
“맨날 뒤진데.”
“크크크, 아니. 귀엽기만 하구만? 들고 있어. 큐트 근철새끼야.”
이 녀석 아까 놀린 걸 마음에 두고 있었군.
“이걸 주머니에 넣을 수도 없고…”
내 가오가 실시간으로 소모되고 있다.
뭐 그런 상태로 기다리고 있으니 줄이 줄어들었고, 우리는 곧 티켓을 살 수 있었다. 산 다음에는 안으로 입장.
“와.”
들어가자마자 감탄이 나온다.
제법 넓은 홀 안에 이런저런 부스가 다수 설치되어 있었는데, 그 모든 부스에 온갖 종류의 곰 인형이 들어차 있는 상태다.
그것도 아주 다양한 종류.
“호오.”
유리가 눈을 빛내면서 턱을 쓴다.
“야! 빨리 가자!”
“아니, 초딩이야? 뭘 빨리 가. 저기서부터 구경하면 되겠구만.”
“야. 김근철이. 지금 저 인형을 갈망하는 내 마음이 안 보여? 잔말 말고 따라와!”
“귀여운 가방을 들고 달리는 거구의 남성이라니…!”
어쩔 수 없다!
유리랑 붙어 다니면서 최대한 이 가방이 유리의 것이라고 무언의 어필을 하는 수밖에!
ㅡ파앗!
적당히 뛰던 유리가 첫 번째 부스 앞에서 멈춰 선다.
“야. 여기.”
“어.”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여기 부스에도 다수의 곰 인형이 전시되어 있었다. 뭐 모자 쓴 녀석. 신발 신은 녀석. 그리고 데포르메 된 녀석까지.
하나같이 잘 만들어져 있고 귀엽다.
퀄리티를 보니 곰 인형에 진심 같다는 느낌.
“흐응.”
유리가 무릎을 살짝 굽히곤 자기 무릎에 양손을 얹은 채 인형들을 구경한다. 자연히 내 쪽으로 엉덩이가 내밀어지게 됐는데… 이거 가방으로 엉덩이 쪽을 가려줘야 하나?
“뭐 고를 거냐?”
괜히 신경 쓰기 뭐 해서 유리에게 물었다. 보니까 저 뒤에 인형 상자가 있다. 바로 판매도 하는 모양이지.
“아, 이거 고민되는데.”
“사실 유리 니 재력이면 다 살 수 있을 듯.”
“돈 있다고 다 사면 의미가 있냐? 내 마음에 쏙 드는 것만 골라가야지.”
“흐흐흐, 그런 것치곤 눈이 빛나고 있는데.”
“안 되겠다. 일단 싹 다 둘러보고 골라야겠어.”
“그러다 품절되면 어쩌려고.”
“아, 그러네. 그래도 일단 다른 거 보러 가자!”
유리가 힘차게 소리쳤고, 나는 다시 유리를 따라갔다.
하여간 곰 인형 좋아한다니까.
웃는 모습 보니까 귀엽긴 해.
“야, 시발! 이거 존나 귀여운데?”
곧 유리가 군복을 입은 곰 인형 진열대 앞에서 멈춰 섰다. 근데 시발이라니?
“유리야. 너무 강한 말은 쓰지 마.”
“뭐?”
“저기 꼬꼬마들도 곰 인형 보고 있는데 무서워하잖아. 저거 봐. 벌써 유리 너 보고 오줌 지리면서 주저앉은 애가.”
“뒤졋.”
반사적으로 로우킥을 날리려던 유리가 멈칫한다.
“아 뭐. 그런 공간이니까. 오늘은 비속어 사용 좀 자제해 볼까?”
“진짜 놀랍다.”
유리에게 이런 날이 온다는 게.
인형 때문에 욕도 안 하는 우유리라니 이게 말이 되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