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yeongyeon RAW novel - Chapter 400
741화 누가 그대의 마음을 불바다로 만들었는가? (2)
이번 모반은 내전이었고, 교전 쌍방은 모두 경국의 정예 부대였다. 그래서 앞서 일어난 일에 많은 이들이 등골이 오싹해지는 걸 느꼈다.
자기 진영으로 돌아간 반군은 상처부터 치료했다. 그리고 원망과 복수심이 일어 더 강력한 공격을 퍼부을 준비를 했다.
한편 성벽 꼭대기에 있는 금군의 표정에는 복잡한 심기가 드러나 있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검은색 옷을 입고 있는 사람에게, 그러니까 성벽 꼭대기에 냉랭하게 서 있는 작은 범 대인에게 감히 다가가지 못했다.
탄내가 나는 가운데 아직 잔불이 남아 있었다.
황궁 앞쪽에서는 여전히 무언가가 타고 있었다. 주황색의 황궁 담벼락과 성벽의 푸른색 벽돌도 불에 타 인두질이라도 해놓은 것 같은 흔적이 생겼다. 얼핏 보면, 아름답고 장엄한 황궁에 누군가가 칼로 마구잡이로 상처를 내놓은 것만 같았다.
1 황자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 있다가 천천히 성벽 위에 있는 금군을 잠시 천천히 훑어보았다. 그런 후 결의에 찬 차분한 목소리로 사방에 대고 말했다.
“이건 전쟁이다! 기억하라! 성벽 아래 있는 건 반역자들이다! 만약 저들이 황궁으로 쳐들어오도록 내버려 둔다면, 우리 경국은 그 즉시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이요, 백성들은 다시는 해를 보지 못할 것이다. 하여 우리는 분골쇄신해야 한다! 성 아래에 있는 게 뭐라 생각하느냐! 바로 적이다!”
1 황자가 음성을 더 높여 소리쳤다.
“너희들은 모두 나를 따른 자들이다. 서역에서 돌아온 장병이란 말이다. 우리가 왜 들판에서 그 고생을 하며 싸운 것이냐? 모든 건 경국을 위해서였다. 저 적들은 우리 경국의 근간을 무너뜨리려 하고 있다. 그러니 저들은 그냥 금수다! 하여 그대들에게 명하노니, 저들은 반드시 처치해야 할 반역자이며 적이니 적으로서만 대하라! 모든 건 경국을 위해서다! 하늘에 계신 황제 폐하께서 지금 너희들을 굽어보고 계신다!”
절대 열정에 차서 한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사령관의 입을 통해 나온 말이다 보니 생각지도 못하게 부하들에게는 위안의 말이 되었다.
성벽 위의 금군이 눈을 반짝이기 시작했고, 그들에게서는 더 이상 아까와 같은 암담함이나 망연자실함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경국을 위해서다!”
황성 위에 있는 모든 이들이 외치기 시작했다. 범한 곁에 서 있던 3 황자도 예외는 아니다. 범한에게 꼼짝도 못 하게 제제 받고 있는 황태후의 눈에서만 조소와 비참함이 스칠 뿐이었다.
바로 이때, 무거운 발걸음 소리가 성벽 꼭대기까지 들려왔다. 한 무리의 내관들이 감찰원 관원의 감독 아래 검은색 관 세 개를 매고 힘겹게 성벽 꼭대기로 걸어 올라오고 있었다. 내관들이 몇 차례 ‘끄응’ 소리를 내며 관을 성벽 위에 힘겹게 내려놓았다.
사람들이 의아하게 여기며 관 세 개를 바라보았다.
범한이 살포시 3 황자의 손을 잡아 이끌어 1 황자 뒤에 섰다. 그런 후 주변 금군 병사들, 대신들, 감찰원 부하들을 향해 나지막하게 말했다.
“우리는 황제 폐하의 신하입니다. 그러니 황제 폐하의 유조를 받들어 저 반역자들의 음모를 저지해야 합니다. 성공하든 실패하든 우리는 단 한 발짝도 물러나지 않을 것입니다.”
1 황자의 표정이 엄숙해졌다. 그리고 범한의 말을 이어받아서 말했다.
“여기에 관 세 개가 있다. 나, 승평, 안지의 것이다. 만약 황궁이 함락된다면, 우리 세 사람은 이곳에서 죽을 것이다. 부황에게 효도하고, 경국에 충성을 다 바치기 위해서다.”
1 황자가 사람들을 잠시 훑어보고는 천천히 말을 이어 갔다.
“황궁을 사수하려는데, 모두 자신 있는가?”
관까지 들고 나오는 이런 개 같은 수작은 모두 범한에게서 나온 작전이었다. 한데 황성을 지키는 장병 중 피가 끓지 않는 자가 누가 있겠는가.
모두가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자신 있습니다!”
* * *
범한이 이승평의 손을 이끌며 부드럽게 말했다.
“두려우냐?”
3 황자가 잠시 생각을 해 보고는 힘을 주어 고개를 내저었다.
“두렵지 않습니다! 부황의 아들이니 무서워할 리 없지 않습니까!”
“그래, 좋아.”
범한이 미소를 지으며 잠시 말없이 이승평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속으로는 기대했던 변수가 나타나지 않고 황궁이 정말로 함락되면, 자신은 셋째를 데리고 천하를 떠돌며 도망 다니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범한은 요놈이 그때 가서 자기를 욕하지만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저 멀리 반군이 다시 집합해 대열을 갖추기 시작했다.
범한의 악독한 계획에 떨어졌던 사기가 성공적으로 황궁에 대한 원망으로 바뀐 듯했다.
경국의 군대는 대부분 전쟁터에서 오랫동안 경험을 쌓았다. 이에 병졸들의 능력도 누구 하나 더 떨어진다고 말할 수 없었다. 그런 반군 병사들이 살기가 가득 담긴 눈으로 황궁을 바라보았다.
불바다는 보기에는 무시무시했지만 반군에게 미친 손실은 실제로는 그다지 크지 않았다. 범한은 눈앞에서 펼쳐진 광경을 보고 있다가 저도 모르게 가슴이 떨려 생각했다.
‘내 계산이 틀렸다면, 다음에 단계에서 내 편에 있는 사람들이 많이 죽을지도 몰라.’
그는 자신이 군무(軍務)에는 전혀 통달하지 못했음을 잘 알고 있던 터라 1 황자가 병사를 안배하고 진을 칠 때 시종일관 아무런 건의를 하지 않았다. 대신 차분하게 가만히 보고만 있으면서 도와주는 역할만 했다.
그러던 범한이 이제는 이상하리만큼 대담하게 건의를 하려 했다.
“우리에게 지금 금군이 얼마나 남았습니까?”
“2천 7백이네. 손실이 거의 없었지.”
범한이 태평방 쪽으로 귀를 기울여 보니 싸우고 죽이는 소리가 잦아들고 있었다. 그가 이맛살을 아주 살짝 찌푸렸다.
“우리가 황궁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1 황자의 날카롭게 치켜 올라간 눈썹에 흉악한 기운이 살짝 어리더니 그가 직설적으로 말했다.
“부황께서 친히 군대를 이끄신다 해도 지킬 수 없네.”
1 황자의 입가에 갑자기 자조가 스치고 지나갔다.
“적과 비교해 차이가 너무 많이 나. 부황께서 정서군을 해산하지 않으셨고, 또 내가 계속 정서군을 이끌었다면……. 아니, 정서군 3분의 1만 이끌 수 있었어도 저 아래에 있는 반군과는 결전도 치를 수 있을 것이네.”
1 황자가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하나 포기하지 않을 거네. 지더라도 그리 참담히 지지는 않을 거야. 내 수하에 있는 저들은 들판에서 오랑캐의 살을 먹고, 오랑캐의 피를 마신 이들이니까. 진씨 가문이라. 흥! 영감님은 20년간 직접 군을 끌지 않았어. 경도수비사 병사도 게을러질 대로 게을러진 상태고. 지금은 정주군 정도만…….”
범한이 중간에 말을 가로챘다.
“조금 전 이루어진 공격과 방어에서 문제점 하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무슨 문제인가?”
범한이 1 황자 귓가에 대고 몇 마디 건넸다.
“무슨 생각인 건가?”
1 황자가 눈으로 싸늘한 기운을 발사했다.
“저는 지금 도박을 하려는 겁니다…….”
범한이 고개를 숙이고 느릿느릿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수중에는 더 이상 비장의 패 같은 건 없습니다. 만약 이대로 버틴다면, 결국에는 죽는 수밖에 없지요.”
1 황자가 이맛살을 찌푸렸다.
“전투는 아이들 장난이 아니야. 그러니 자네 말이 너무 황당하군.”
범한이 씁쓸하게 웃기 시작했다.
“정말 황당하기는 하지요. 다만 이 판을 뒤집을만한 기회를 만들어야 하는데 그 방법을 찾지 못했습니다.”
범한이 고개를 돌려 검은빛을 발하고 있는 관을 쓱 보았다. 그의 눈에 점점 결의가 차올랐다. 그렇다. 범한은 아직 마지막 패를 쥐고 있었다. 하지만 다른 이들의 마지막 패가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범한도 자신의 패를 쓸 수 없는 거였다.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던 1 황자가 느닷없이 물었다.
“어떤 도박을 할 셈인가?”
“황궁 문에 쌓아둔 돌을 파내야 합니다.”
범한이 고개를 들어 광장에 눌어붙어 있는 살짝 따뜻한 공기 너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2 황자 및 옆 사람과 무언가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눈 정주군 사령관 섭중에게 범한이 시선을 집중시켰다.
“언제든 돌격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저에게도 기회를 주시고요…….”
그런 후 범한이 온화하게 웃어 보였다.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해 주자고요.”
바로 이때, 2 황자와 비밀리에 의논 중인 섭중이 황성 위쪽의 눈빛을 감지했는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이상하리만치 차분하고 싸늘하게 잠시 뒤를 돌아보았다.
사방이 옅은 연무와 짙은 피비린내였다. 그리고 있는 듯 없는 듯이 나는 눌어붙은 공포의 냄새도 있었다.
경도는 이미 엉망이었고, 황궁 주변을 제외한 다른 곳에서 싸우고 목을 베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그래도 사람을 죽이는 소리가 은근히 끊이지 않고 들려오기는 했다.
2 황자가 보기 좋게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잘 보이지도 않는 황성 위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며 소리 죽여 말했다.
“저들은 지키려 해도 지키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버틸지 봐야 하는데……. 고모께서 경도 주변에 무언가를 해놓으셔서 연락책이 모두 살해당했으니, 구원병이 올 리도 없지요. 범한의 성정으로는 지금 사지에 몰렸다는 걸 알 것입니다. 그런데도 왜 이렇게 용감히 맞서는 것일까요? 만약 예전의 범한이었다면 꽁무니를 빼고 도망갔을 텐데 말입니다.”
섭중의 갑옷과 투구는 좀 낡아 암담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이 경국의 중요 인물이 살짝 반짝이는 눈빛으로 사위를 바라보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황궁 안에 사람이 저리 많은데, 어찌 도망갈 수 있겠습니까?”
일단 사태가 불리해지면, 범한이 감찰원 사람들을 데리고 도망간다는 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러면 장 공주 수하에 아무리 많은 병사가 있어도 수십만이 사는 경도에서 범한을 찾아내기란 지극히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범한이 강력한 실력을 지니고 있고 도망가는 데 일가견이 있다는 건 모두 인정하는 부분이었다.
섭중이 한참 동안 조용히 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더군다나 범한이 도망가지 않았다면 분명 믿는 구석이 있는 것입니다.”
2 황자의 낯빛이 차분해지기 시작했다. 2 황자는 고모의 생각에 따라 잠시 야심을 숨기고 태자 뒤에 서서 깃발이나 흔들고 소리나 치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속으로는 나서서 행동하고 싶어 죽을 지경이었다. 그런데 아직 대세가 정해지지 않은 터라 너무 미친 듯이 날뛸 수는 없었다. 특히 그는 태자보다는 범한의 존재를 더 두려워하고 있었다.
범한에게 공격 받은 2 황자는 실력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면에서 지대한 손해를 입었던 것이었다. 2 황자가 심호흡을 했다.
“범한 저자는 생각지도 못한 때에 비장의 패를 꺼내 들지요. 그래서 나는 저자를 얕보지 않았고…….”
2 황자가 말하고 있는데 섭중이 갑자기 냉랭하게 말허리를 끊었다.
“하나 우리로서는 더는 실력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1 황자께서 금군 수천을 이끌고 황궁을 사수하고 계시고, 감찰원도 암암리에 저분을 도와 진을 치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의 처음 예상보다 훨씬 강할 것입니다. 태평방 쪽은, 만약 반드시 완수하라는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면 계속 질질 끌어 변수가 생겼을 수도 있습니다.”
2 황자가 서서히 고개를 숙이며 속으로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했다. 이번에 진씨와 섭씨 두 가문이 연합군이 되어 황궁을 포위했다.
명목은 당연히 태자의 황위 계승을 지지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모두 알다시피, 정주 섭씨 가문은 둘째의 사람이라……. 그래서 아침부터 시작된 수차례 공세에서 섭씨 가문은 전력을 기울이지 않은 거였다.
또 주요 공격 대상인 태평방 쪽도 자신들의 실력 손실이 너무 많이 발생할 수 있어 섭중은 유난히 조심하고 있는 중이었다.
한데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반군의 공세가 연속적으로 이어지지 않는 것처럼 보였던 거였다. 그리고 이 모든 건 2 황자의 묵인하에 일어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