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lf a penny from the Golden Tiger RAW novel - Chapter 4
금호장의 반푼이 (3)
풍운검 송일현.
스물넷의 나이에 절정의 경지에 오른 후기지수로 전쟁 때, 내가 이끄는 부대의 수하로 있었는데 지금은 나의 큰 형님이라니.
예전 생각을 하며 걷다가 멀리서 보이는 접객당에 모인 수많은 인파에 잠시 걸음을 멈췄다.
“… 이게 무슨 일이냐.”
옆에 있던 강 무사도 그쪽을 한번 보곤 말했다.
“접객당원이 나서서 안내하는 걸 보니 아마 일 공자님을 뵈러 온 사람들인 것 같습니다. 강호행을 마치고 돌아왔으니 강소 일대의 사람들이 인사를 하러 온 거겠지요.”
하긴 금호장의 장남인 송일현은 스물네 살인 나이에 ‘풍운검’이라는 별호로 이름을 날려 오협(五俠) 중 한 명으로 이름이 자자했고 무엇보다 다음 대 금호장주로 거의 확정이 났으니 미리 얼굴도장을 찍으려는 거겠지.
“걸음을 옮기시지요.”
화의각(和議閣)에 도착했다.
이곳은 한 달에 한 번씩 금호장의 가족들이 모여 식사를 하는 곳으로 나에겐 그다지 좋은 기억이 있는 곳이 아니었다.
나를 데려온 강 무사는 밖에서 기다린다고 했고 안으로 들어가자 벌써 소란스러웠다.
“형님! 강호행을 마치고 돌아오신 걸 축하드립니다!”
“고맙구나. 넌 글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겠지? 이번에 회시에 응시한다고 들었다.”
“그럼요! 제가 무공은 형님의 발끝에도 따라가지 못하지만, 머리로는 형님을 능가할 테니 지켜보십시오!”
“하하하하! 그거 기대되는구나!”
송이현과 웃으며 대화를 나누던 송일현은 나를 보더니 웃던 낯을 지웠다.
“오랜만이구나.”
“네, 형님. 강호행에서 돌아오신 걸 감축드립니다.”
“독을 먹고 큰일 날 뻔했다고 들었다. 몸은 괜찮고?”
“예. 약당주께서 잘 보살펴 준 덕분에 지금은 아무렇지 않습니다.”
“그래, 알겠다.”
송일현도 송이현처럼 나를 좋아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무능한 동생에게 관심이 없다고 해야 할까?
나에게 주어진 식탁 제일 끝자리에 가서 앉으려고 하는데 송이현은 나를 보며 비웃었다.
“매일 수련을 한다고 네가 형님처럼 될 줄 아느냐? 정신을 차리고 일을 배우거라. 매일 허송세월을 보내니 사람들이 반푼이라 하는 거 아니더냐.”
송이현은 열 여덟의 나이로 금호 표국에서 여러 일을 맡으며 일을 배우는 중이었다.
대표두를 비롯해 대장궤, 총군사까지 송이현을 도와주니 성공 못 하는 일이 없었다.
어릴 적부터 누구 하나 혼을 낸 적이 없고 정화 부인의 막내아들이기에 전형적인 안하무인으로 자랐다.
그러고 보니 안하무인으로 살다가 팽씨 세가 막내 공자에게 한 대 얻어맞으며 정신을 차렸었지 아마.
“여전히 말씀이 험하십니다.”
“뭐라? 감히 서자 주제에 어디서 말대답이냐.”
어릴 적부터 송이현에게 당한 기억이 고스란히 머릿속에 있었다.
얼마나 두려우면 이 녀석은 머리가 좋은데도 머리가 나쁜 척을 해야 했고 늘 눈치를 보며 이들을 대했다.
‘참으로 힘겹게 살았구나, 어린 나이에.’
사람들이 보는 금호장은 난공불락이며, 호랑이가 사는 곳이라 하지만 정작 그 안에서 살다 보니 밖에서 보지 못한 내부가 훤히 보였다.
“어찌 말이 없는 것이냐. 이 형님이 하는 말이 들리지 않는 것이더냐?”
“옛말에 글을 가르치는 스승은 만나기 쉬워도, 사람됨을 가르치는 스승을 만나기 어렵다는 말이 있습니다. 글재주만 믿고 너무 그러지 마시지요.”
송삼현은 어릴 적부터 서책을 손에서 놓지 않은 책벌레였다.
그러니 그의 지식이 고스란히 내 머리에 있어서 전생에 상상하지 못한 말도 이렇게 할 수 있었다.
내 말을 들은 송이현은 발끈했다.
“가, 감히 나를 가르치려 들어? 네 말은 내가 사람이 아닌 짐승이라는 것이더냐!”
“저는 그저 옛 성현의 말씀을 드렸을 뿐입니다.”
“이놈!”
송이현은 오른손을 쭉 뻗어 금나수를 펼쳤다.
내 목에 손이 닿기 직전, 송이현의 손끝에 무형(無形)의 내공이 휘감기며 움직임이 멈췄다.
“그만들 하거라.”
들려오는 중후한 내공이 실린 음성에 송일현이 그곳으로 포권지례를 올렸다.
“일 공자 송일현! 아버지를 뵙습니다!”
금빛 비단 장포를 걸치고 아름다운 정화 부인의 옆에 서 있는 남성은 금호장의 장주 송우태였다.
강호에서는 ‘금검(金劍)’이라 불리며 검객으로 강동 십검의 반열에 오른 자.
이렇게 보니 옛날 생각이 나는구나.
전쟁 때, 대화를 나눴을 때는 정말 좋은 사람이었는데 자식으로서 볼 때는 영 아니구나.
“그래, 몸은?”
“괜찮습니다.”
“수고했다.”
짧은 대화지만, 이것이 송우태가 얼마나 큰 칭찬을 한 건지 기억을 통해 알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송일현의 입꼬리가 귀에 걸리기 일보 직전이니까.
스윽.
“그리고 진왕부에서 아버지께 전해드리라는 서찰입니다.”
품에 갈무리했던 서찰을 꺼내 건네주자 송우태는 상석에 앉아 서찰을 읽었다.
“한 달 후에 진왕께서 남경으로 오신다는구나.”
진왕 전하께서 온다고요?
*
개방에 있을 때, 알게 된 사실로 진왕은 금호장주와 오랜 친우사이였다.
어릴 적에 같이 북경에서 동문수학(同門受學)한 사이고 북쪽에서 기마인들과 전쟁 당시, 금호장주가 많은 도움을 주며 둘도 없는 친우사이가 됐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진왕은 진왕, 황제 폐하 다음으로 이 나라의 권력자기에 준비에 대충이라는 단어는 없어야 했다.
“이 문제는 회의에서 결정해야겠다. 우선 식사하자. 시장하구나.”
식사를 시작했고 나에게 말을 거는 사람은 없었다.
아무렴 어떤가? 지금 눈앞에 생전에 먹어보지 못했던 음식이 수두룩하거늘.
돼지, 닭, 소 등 고기가 종류별로 있어서 허겁지겁 먹어 치웠다.
맞은편에서 누님이 히죽히죽 웃으며 나를 보고 있었지만, 애써 무시했다.
이러다가 또 아버지가 큰 혼을 낼 게 분명했으니까.
“요즘에 수련한다고?”
송일현의 강호행 이야기가 주를 이루더니 갑자기 송우태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심성이 약한 송삼현이라면 당황했겠지만, 난 아니었다.
먹던 닭다리를 내려놓은 뒤, 말했다.
“예.”
“비각에 들러 이틀 동안 안에 있었다고 들었다. 그 안에서 서책이라도 봤느냐?”
“무공서를 봤습니다.”
“이미 유운검법의 기초는 다 외우지 않았느냐. 그런데 다시 읽었다?”
“유운검법은 변화에 중점을 둔 검이기에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보이는 것도 다르다 생각하여 그리하였습니다.”
내 말을 들은 송우태는 말을 잇지 못하고 가만히 나를 응시했다.
그리고 다른 이들의 눈에 보이진 않겠지만, 새로운 삶을 살기 시작하고 천무신공을 수련한 나에게 있어서 그것이 감지 됐다.
‘금검이라 하더니 내공도 금빛이구나.’
천무신공은 다른 이가 내 몸속으로 내공을 보내 훑어보는 걸 막아내는 보호 능력이 있었다.
여기서 막았다간 이상하게 여길 테니 천무신공을 일단 숨겨야겠다.
곧 내공이 내 몸을 훑는 느낌이 들었고 잠시 후, 그 느낌은 완전히 사라졌다.
“…. 또다시 내공이 늘었구나. 어찌 그 사이에 반갑자까지 내공을 올릴 수 있었던 거지?”
반갑자의 내공이라 하자 모두 놀란 표정으로 변했다.
지금 송일현의 내공도 반갑자에 살짝 못 미치는 데 열넷의 아이가 반갑자의 내공을 가졌다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운이 좋았습니다.”
“운이라.”
송우태의 시선은 나에게 꽂혔고 등에 살짝 식은땀이 났다.
여기 더 있다가 체하겠다.
“소인은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장주님.”
아버지가 아니라 장주님이라는 호칭을 쓰자 누님은 속상한 듯 표정을 찡그렸고 정화부인과 송이현은 피식 실소를 터트렸다. 송일현은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고.
“그리하거라.”
송우태도 마지막에는 시선을 거두며 대답했다.
얼른 가서 소월이한테 만두나 쪄달라고 해야겠다.
*
며칠 후, 송삼현이 지내는 전각에서 제일 가까운 소연무장 앞에선 송삼현의 호위무사인 강승유가 벽에 기대어 있었다.
“공자님은 어찌하고 혼자 나와 있느냐.”
그는 바닥에 있는 돌을 차다가 갑자기 들린 목소리에 깜짝 놀랐다.
“당주님을 뵙습니다!”
말을 건 사람은 자신의 직속상사인 호법당주 이윤이었다.
“공자님이 수련하는데 호위무사라는 놈이 밖에서 뭘 하는 거야. 안에서 공자님이 혹시라도 다치지는 않으시나 지켜봐야 할 것 아니냐.”
“그것이···. 공자님이 수련할 때는 누구도 연무장 안으로 들어오지 말라고 하셔서···.”
“뭐라?”
“저도 안 된다고 했지만, 한 달 전부터 공자님께서 수련할 때는 소월이 조차 들어오지 못하게 하십니다.”
이윤은 어이가 없었다.
어릴 적부터 공자들의 무예를 가르쳐왔던 그의 기억 속에 삼 공자의 무재는 다른 형제들에 비해 평범했다.
더구나 몸이 약해 무인으로 성장할 수 없는 체질이었고 머리도 뛰어나지 않아 후계 구도에서 밀려 일찌감치 가문의 관심 밖에 놓였다.
‘아무도 들어오지 말라고 했다라.’
아무 관심이 없는 공자라 해도 금호장의 직계니 함부로 말을 어길 순 없었다.
그때였다.
“승유야. 잠시 들어오거라.”
담 너머로 송삼현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강승유는 곧바로 대답했다.
“네! 공자님!”
강승유가 연무장 안으로 들어가자 그 뒤를 따라 이윤도 들어갔다.
그러자 느껴지는 묘한 기운.
‘…. 이게 대체.’
그의 시선은 연무장 바닥에 고정됐다.
청강석으로 만들어진 바닥에 방금 새겨진 검흔이 있었다.
그 검흔은 자신이 젊은 시절 송우태와 같이 강호를 주유할 때 봤던 유운검법의 초식들이었다.
“어? 호법당주님, 여기까지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 장주님께서 공자님의 수련을 지켜보라 하셨습니다. 하지만···. 제가 지켜볼 단계는 이미 지나신 것 같군요. 일류의 경지에 오르신 걸 감축드립니다. 삼 공자님.”
경지는 크게 삼류 -> 이류 -> 일류 –> 절정 -> 초절정 -> 화경 -> 현경으로 나뉘었다.
‘내가 일류라.’
고작 열네 살의 몸으로 오른 일류 무인의 경지.
전생에 올랐던 화경의 경지에 비교하면 미약한 수준이지만, 크나큰 발전이었다.
‘적어도 약관까지 초절정의 경지에 올라야 한다.’
송삼현은 손에 쥔 검을 검집에 넣었고 호법당주에게 포권지례를 올렸다.
“호법당주의 축하라니 정말 기쁩니다. 다만, 굳이 장주님의 이름을 댈 필요는 없습니다. 저에게 관심이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으니까요.”
“그것이 아닙니다. 공자님. 장주님께서는···.”
이윤이 말을 이으려고 했지만, 송삼현은 강승유에게서 물을 받아들고 벌컥벌컥 들이켰다.
“됐습니다.”
말을 끊고 강승유에게 말했다.
“저자에 나갈 것이니 준비하거라.”
말을 한 뒤에 곧바로 안으로 들어갔고 이윤은 고개를 떨궜다.
‘… 부자 사이가 이토록 멀어졌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