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rd Carry Support RAW novel - Chapter (27)
인연이 이어지는 길
‘아니, 굳이 흥분할 일이 아니지.’
현은 연장자답게 조금 차분해지자고 생각했다.
우선, 이 꼬마가 누군지부터 파악해보았다.
“아이디가 타르타르라고?”
“네.”
“중학생…이야?”
“맞아요.”
“으음….”
현은 어떻게 이런 녀석이 자신보다 유트브 지식을 빠삭하게 알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대화가 길어질수록 영상에 관한 그의 지식이 고작 중학생 수준이 아니란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타르타르의 설명엔 복잡한 전문용어까지 마구 섞여있었기 때문에 가만히 이야기를 듣는 현은 가끔씩 멍해지기도 했다.
“영상 편집 같은 거 평소에도 관심 있었어?”
어느 순간 현이 툭 던진 질문에 타르타르의 얼굴이 한층 들뜬 기색으로 변했다.
“네! 아빠한테 배우기도 했고, 학교에서 동아리도 들고 있거든요!”
“그렇단 말이지.”
현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문득 이전에 들은 소문들이 머리를 스쳤다.
컨텐츠 산업.
요즘엔 유트브 동영상을 제작해 올리는 것이나 인터넷 방송만으로도 회사원 연봉의 몇 배를 벌어들이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그리고 타르타르란 녀석은 동영상 편집 분야에 약간의 노하우가 있어 보였다.
또한, 그는 마침 자신에게 마음의 빚을 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어쩌면 그 방법이 가능하지 않을까?’
현의 머릿속에 빠르게 하나의 계획이 구상되었다.
동영상 몇 개 올리는 정도라면 프로게이머처럼 자유를 빼앗길 일은 없다.
골드나 아이템을 현찰로 팔며 피눈물을 흘릴 일도 없을 것이다!
생각이 이어질수록 계획에 뼈대가 만들어지고 살이 붙었다.
‘잠깐만.’
그러던 도중 현의 계획은 하나의 걸림돌을 맞닥뜨렸다.
‘아인은 어떡하지?’
서포터의 능력은 아인과 같은 딜러 직업이 곁에 없다면 위력이 반감된다.
실제로 루이즈를 구출할 때를 빼면 자신의 곁엔 항상 아인이 머물러 있었다.
‘아인이 내 계획에 동의해 주려나?’
“무슨 이야기 하고 있어?”
“어, 어…?!”
난데없이 등 뒤에서 들려온 아인의 목소리에 놀란 현은 펄쩍 뛰어올랐다.
“뭐야, 그 동영상 재밌어 보이잖아!”
아인은 테이블 위에 홀로그램으로 띄워둔 유트브 동영상을 흥미로운 듯 살펴보았다.
화면에 담긴 것은 현과 아인이 초창기에 레오파드를 잡았던 2인 공략 영상.
“아, 맞다! 누나한테도 말하려 했어요!”
“나도 마침 할 말이 있어. 아인 잠깐 여기 앉아봐.”
“흐음, 뭔 일이야…?”
세 사람은 원탁에 둘러앉았고, 아인은 타르타르에게 영상 관련 이야기를, 현에게는 앞으로의 계획을 들을 수 있었다.
현은 천천히 시간을 들여 아인을 설득시킬 생각이었지만, 이어지는 그녀의 한 마디에 대화는 너무 빨리 끝나버리고 말았다.
“뭐야, 유트브로 돈 벌려는 거였어?”
“왜…? 별로야?”
“으음.”
아인은 자신의 모습이 담긴 영상을 다시 바라보더니 곧 흥미를 잃은 듯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모르는 사람들에게 날 보여주고 싶진 않은걸? 난 필요 없어.”
“그…래?”
아인의 말에 현은 당황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방금 전까지 신나서 세우던 계획이 무위로 흩어져 버렸기에 현의 목소리는 조금 풀이 죽어 있었다.
‘이러면 이 계획은 그냥 없던 걸로 해아 하나?’
훗-. 그 찰나, 아인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무언가 눈치 챈 것처럼 다시 입을 열었다.
“현. 혹시 돈 모자라서 그래?”
“어? 아니, 모자란 건 아니지만….”
“그럼 더 벌고 싶다는 거네?”
“뭐, 그야 누구든 그렇지. 그래도 아인 네가 싫다면 억지로 시킬 생각은 없어.”
“흐응?”
아인의 웃음기가 더 짙어졌다.
‘내가 싫어해서 안 한다고…?!’
현은 알고 있을까?
방금 내뱉은 말엔 자신은 반드시 누군가랑 함께한다는 전제가 들어 있다는 걸.
하지만 현 스스로는 말하면서 아무런 위화감을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이 정도라면… 이번만큼은 현이 원하는 걸 하게 놔둬도 괜찮겠지. 잠깐 떨어진다는 게 살짝 아쉽긴 하지만 괜찮을 거다.
아인은 자꾸 새어나오려는 웃음을 다시 집어넣고 입을 열었다.
“크흠… 정 원하면 혼자 해도 돼.”
“나 혼자?”
“어차피 우리 레벨도 다시 맞춰야 하잖아. 최근에 현만 갑자기 레벨이 높아졌으니까.”
“그러면 너는….”
“한동안 현의 레벨이나 따라잡아 두려고.”
아인의 말에 현은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
“아인, 너….”
“아참, 나 잠시 나가봐야 할 일이 있었네? 그럼 그동안 현이 하고 싶은 거 해!”
[‘아인’님이 접속을 종료했습니다!]아인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 뒤, 현은 끝마치지 못했던 말을 마저 내뱉었다.
“네가 없으면… 나 혼자 뭘 하라고…?”
아인이 떠나자 현과 타르타르 둘만 남았다.
현은 의욕에 가득 차 있던 아까의 모습과 달리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결국 먼저 이야기를 다시 꺼낸 것은 타르타르였다.
“그… 지금 동영상은 다시 내려야 할 것 같아요. 아는 사람들에게 듣기론, 상대가 초상권에 민감하면 그냥 동영상을 지우는 편이 나을 거라고 하더라고요.”
“아마 그래야겠지.”
달칵.
[해당 비공개 영상을 삭제하시겠습니까? Y/N]현은 바로 앞에서 수백만 원이 날아가는 광경에 신음을 흘리는 한편 새로운 영상 재료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후… 혼자라. 혼자인 때가 언제였더라?’
현은 기억을 되짚어 보았다.
아스리안 플레이 중에 아인과 함께하지 않은 것들을 추려내 보니 총 세 가지가 존재했다.
루이즈와 함께 한 메인 퀘스트.
곡예사 인형에게 동화했던 사냥.
그리고 초창기의 유령 몰이사냥 녹화 본은 이미 지워져 있었다.
캡슐의 저장 용량도 무한한 것은 아니기에 한 달 정도 지난 녹화 파일은 자동으로 삭제되기 때문이었다.
‘쓸 수 있는 녹화 본은 두 개로군.’
결국 남은 후보는 루이즈와 곡예사 두 개 뿐이었지만, 이것들은 공개하기 살짝 불편한 영상들이었다.
루이즈 녹화 본엔 동화가 발동하고 해제되는 광경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곡예사 영상도, 인형의 정보를 아는 유저가 본다면 충분히 ‘동화’의 존재를 추측해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냥 올려 버려?’
현은 잠깐 동화를 공개해 버릴까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건 아니야. 나중에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
동화는 서포터의 핵심 스킬이자 자신이 가진 마지막 한 수였다.
훗날, 자신이 모든 게 상관없을 만큼 강해지거나, 또 다른 비장의 스킬을 배우는 것이 아닌 한 숨겨두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동화를 사용하지 않는 서포터 영상을 찍어봤자 아무런 의미도 없을 것 또한 분명한 상황.
‘어떻게 한다…?’
현은 심각한 눈빛으로 생각에 빠졌다.
동화가 담기지 않는 동시에 퀄리티가 뛰어난 영상을 제작할 방법이 과연 존재할까?
현의 눈빛이 상당히 강렬했기에 타르타르는 무의식적으로 움츠러들었다.
“타르타르.”
다시 그의 입이 열린 것은 한참 만이었다.
“네…?”
그리고 현은 이상한 말을 시작했다.
“안심해.”
“뭘요?”
“네가 유트브에 내 영상을 올린 걸로 널 고소하진 않을게.”
“고, 고소한다고요…?!”
“아니, 안 한다니까. 그 대신 말이지….”
그것이 고소가 되는지는 현도, 타르타르도 알지 못하지만, 지금 그건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현은 인자한 웃음으로 타르타르를 안심시키며 말을 이었다.
“대신 너도 내 질문에 솔직하게 대답해 줬으면 좋겠어.”
“네… 네… 그, 그야… 물론이죠…!”
타르타르의 입이 바짝 말른 가운데 현의 질문이 시작되었다.
“자, 만약 누군가 너에게 어마어마한 비밀을 알려주면서. 절대 그 정보를 발설하지 말라고 하면… 넌 그럴 수 있겠어?”
“비밀… 이요?”
“아니, 이런 질문은 의미 없겠지.”
순간, 아주 좋은 방법을 떠올려낸 현이 묘한 웃음을 지었다.
자신에게 거짓말을 간파해 내는 스킬이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바로 동화! 상대의 감정의 떨림을 그대로 느끼는 기술이다.
물론 동화를 사용하는 즉시 해당 스킬의 정보가 공개된다는 모순이 존재했지만, 현은 간단한 방법으로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어려운 방법도 아니었잖아!’
띠링-.
찰나, 타르타르의 눈앞에 메시지 창 하나가 떠올랐다.
[플레이어 ‘현’이 당신의 영혼을 지배하고자합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Y/N]타르타르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허공을 바라보다가 조심스레 물었다.
“영혼을 지배…? 이게 뭐에요?”
“아, 그냥 동의하면 돼. 자세한 건 나중에 알려줄게.”
‘…이상한데.’
의심을 거두지 못하는 타르타르는 떨리는 손으로 메시지를 수락했다.
그러자 곧바로, 또 하나의 메시지가 추가로 나타났다.
[플레이어 ‘현’이 통제 우선권을 요청합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Y/N]“이것도 수락해요?”
“그래.”
[플레이어 ‘현’이 친구 요청을 신청했습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Y/N]“이것도요…?”
“어.”
“….“
타르타르는 수상한 계약서에 연속으로 서명당하는 기분을 느꼈지만, 결국엔 따를 수밖에 없었다.
친구등록까지 마친 현은 이제부터 귓속말로 말하기 시작했다.
「자, 이제 눈을 감아 봐.」
“눈을…요?”
「절대로 뜨지 말고,.. 그리고 너도 이제부턴 귓속말로 대답해야 돼.」
팟!
동화가 발동되는 순간, 타르타르는 자신의 몸에서 미약한 위화감을 느꼈다.
하지만 눈을 감고 있으니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당연히 상태 창을 볼 수도 없었다.
그 상태로, 현은 아까와 똑같은 질문을 시작했다.
감정의 떨림에 집중하면서!
「혹시 다른 사람의 상태 창을 보고 싶어서 몸이 근질근질한 적은 없어?」
「그런 적은 없어요.」
「넌 입이 무거운 편이야?」
「아마, 그런 편이죠?」
……
취조에 가까운 질문은 한참 동안이나 이어졌다.
‘좀 이상한데…?’
현은 의아해졌다.
수십 개의 질문을 던져도 타르타르의 감정이 한 번도 떨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동요하지 않고 거짓말을 하는 걸까? 아니면 여태껏 한 번도 거짓말을 하지 않은 걸까?
‘동화가 고장 난 건 아닐 테고.’
하지만 우연히 던진 질문 하나가 현이 지닌 모든 의문을 해결해 주었다.
「너 지금 날 괜히 찾아왔다고 생각하고 있어?」
「아….」
「응?」
「아, 아…니요…. 그렇…지는 안…하요.」
잔잔한 호수와도 같던 타르타르의 감정에 격류가 일어난 것은 그 순간이었다.
온몸을 갉아먹는 듯한 초조함을 느끼며 현은 모든 상황을 납득할 수 있었다.
‘좋아, 이 정도면 문제가 일어나진 않겠어.’
팟! 다시 동화를 해제한 뒤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눈 떠도 돼.”
“방금… 뭐였어요?”
아직도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하는 타르타르에게 현은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말해주지 않아도 곧 알게 될 거야.”
***
초보 네크로멘서의 던전.
30레벨부터 200레벨의 몬스터들이 다양하게 모여있는 사냥터다.
초보 때부터 2차 전직을 마치기 전까지 사냥터를 바꿀 필요가 없기에 이곳에서 꽤 오랫동안 죽치는 유저들도 제법 많았다.
‘좋아, 여기서 시작해 볼까.’
팟-.
갑자기 현의 모습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타르타르는 자신의 옆에 있던 사람이 없어지자 깜짝 놀라 주위를 두리번거렸지만, 곧 그마저도 불가능하게 되었다.
「가만히 좀 있어 봐라. 상태 창 좀 보게.」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누군가가 강제로 자신의 몸을 조종하고 있는 느낌.
한참 만에 타르타르는 자신에게 일어난 상황을 알아챌 수 있었다.
“설마, 제 몸속에 들어와 있는 게 형이에요?!”
「맞아. 동화라는 스킬이지. 이 스킬이 있으면 한 몸을 둘이서 조종할 수 있거든.」
“잠깐, 이건 이상하잖아요! 저는 그저 형이 플레이를 구경시켜 주겠다고 해서 따라온 거라고요!”
「그러니까, 내 플레이를 보여주려고 지금 이렇게 몸을 빌리고 있는 거잖냐?」
타르타르의 아우성은 한동안 이어졌지만 현은 애절한 목소리를 한 귀로 흘리며 상태 창을 살펴보았다.
타르타르 Lv.59 (‘현’의 영혼이 동화중입니다!)
체력 : 2065/2065
마나 : 370/370
직업 : 도적
[힘 28(+2)] [민첩 60(+129)] [생명력 30(+5)] [마력 29(+8)]「오, 스탯은 나쁘지 않은데? 그래, 도적은 민첩을 다른 스탯의 두 배로 찍는 게 정석이었지…」
동화 때문에 밸런스가 어긋나긴 했지만 타르타르의 순수 스탯은 준수한 편이었다.
현은 스킬도 마저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
도적은 특히나 스킬트리 조합이 굉장히 중요해서 자칫 잘못 찍으면 망캐가 되기 십상이었기 때문이다.
스킬목록 –
[콤보 Lv.4(+1)]-1초 내로 적에게 연속 피해를 입히면 콤보가 1씩 증가합니다. 한 번이라도 실패 시 초기화됩니다.
-콤보 수치에 따라 공격속도와 이동속도가 증가합니다.
[치명타 확률 증가 Lv.2(+1)] [치명타 피해 증가 Lv.1(+1)] [3연속 베기. Lv.0(+1)]스킬 창을 읽어나가던 현은 도중에 서서히 눈을 감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반응에 불안함을 느낀 타르타르는 조심스레 물었다.
“뭐 잘못됐나요…?”
「스킬은… 상당히 망했군.」
“왜요?”
현은 머리를 짚으며 설명했다.
「콤보 계열이랑 치명타 계열은 같이 올리는 게 아니야. 속도 계열 패시브 스킬을 올렸어야지!」
“그렇게 안 좋아요? 커뮤니티에서 찾아보고 찍은 건데….”
「그래. 그 커뮤니티는 당장 접는 게 났겠다. 아마도 거긴 정상인 놈들이 없겠어.」
타르타르는 덜컥 겁이 났다.
굉장한 고수라고 믿고 있던 사람에게 애지중지 키워온 캐릭터가 망했다는 소리를 들으면 누구라도 두려울 것이다.
「그래도 궁극기는 좀 괜찮네. 각성 퀘스트 3단계 스킬이었나?」
각성 스킬 –
[무아지경 Lv.0]-콤보에 따라 공격력이 추가로 상승합니다.
그것이 타르타르의 궁극기.
각종 미사여구 없이 한 줄로 표현될 만큼 간단한 성능이지만 컨트롤 여하에 따라 어마어마한 효율을 뽑아낼 수 있는 스킬이기도 했다.
「최대 몇 콤보까지 가봤어?」
“콤보요? 잠깐만요… 280콤보네요!”
타르타르는 어느 때보다도 자신 있게 대답했다.
운이 좋았던 것도 있었지만 도적 중에서 250콤보 달성 업적을 깬 유저는 상위 1퍼센트에 불과했기에 약간의 자부심도 가지고 있었다.
「흐음…」
그럼에도 현은 미적지근한 반응이다.
「혹시 최대 콤보 제한 있다는 사실 알고 있어?」
“그런 게 있어요?!”
「어… 콤보가 무한으로 쌓인다면 도적이 제일 사기 직업이겠지.」
현의 내뱉기 시작한 말은 타르타르가 전혀 알지 못하던 내용들이었다.
「콤보 시스템엔 생각보다 제약이 많아. 예를 들면… 특정 구역을 이동하면 콤보가 초기화된다던지, 공격하는 대상이 50미터 내에 있어야 한다던지… 대부분 꼼수들은 이미 다 막혀 있지… 이런 걸 모르고 플레이 해 오진 않았을 테지만.」
“몇 개는 알았는데… 방금 말한 것들은 전혀 몰랐어요!”
천진난만하게 대답하는 타르타르를 보며 현은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느꼈다.
「뭐, 동영상만 잘 뽑으면 그만이니까 시스템은 몰라도 상관없으려나.」
현은 성큼성큼 걸어 던전의 입구로 다가갔다.
타르타르는 이제 조금은 현을 믿고 자신의 몸을 맘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고 있었다.
초보 네크로멘서의 던전.
이름만 들으면 저랩 사냥터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실상은 초보가 들어갔다가 죽기 딱 좋은 사냥터였다.
초입에 등장하는 것은 30레벨 근처의 해골이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몬스터들이 점점 강력해지기 때문이다.
중반에 등장하는 50레벨의 베테랑 해골, 해골 궁수!
후반까지 가면 군데군데 섞여 마법을 날려 오는 70레벨의 해골 메이지들까지!
만약 중간보스 직전까지 도달한다면 100레벨이 넘는 언데드의 대군까지 조우할 수 있었다.
유저들은 초중반, 길어야 중반의 메이지들 구역까지만 사냥을 시도하는 실정이다.
가끔 랭커를 낀 파티들 몇몇이 중간보스 직전 구역에서 사냥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것은 아주 드문 경우였다.
그리고 패치 이후인 지금, 대부분의 유저는 각자의 세력 퀘스트를 하러 떠났고, 사냥터는 텅텅 비어진 상태였다.
“던전에 혼자 가는 건가요?”
「왜?」
“아뇨… 사제라도 같이 있으면 좋지 않을까 해서요.”
「어차피 여긴 다 잡몹들이야. 힐 받을 필요도 없거든.」
자신이라면 파티 없이 던전에 들어가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테지만, 현의 말투가 너무 당당했기에 타르타르는 그냥 입을 다물었다.
초반부의 난이도는 쉬웠다.
30레벨 정도의 해골바가지가 한두 마리씩 흩어져 있을 뿐.
현은 타르타르의 무기를 꺼내들었다.
양손에 각각 40센티 정도 되는 쌍검.
「무기는 매직 등급인가? 너도 별로 돈이 없구나.」
“그것도 꽤 비싼 건데요?”
「…돈 벌면 현질해서 무기부터 장만하는 편이 좋을지도 모르겠군.」
쌍검은 현에게 익숙한 무기였다.
아스라 시절 현의 초기 직업이 바로 도적이었으니까.
게임 후반에 가서 결국 장검 한 자루로 바꾸긴 했지만 200레벨 근처까지는 타르타르와 마찬가지로 쌍검이 주력 무기였다.
휙- 휘릭-.
현은 양손에 들린 쌍검을 자유자재로 놀려 해골 무리들을 유린했다.
고작 30레벨 몬스터들은 아무리 많아도 위협이 되지 않았다.
수십 번의 섬광이 찰나에 번쩍였다!
‘괜찮은 느낌인데?’
직접 움직여서 쌍검을 다루는 것은 오늘이 처음일 텐데도 마치 수년간 해왔던 익숙한 기분이 들었다.
그것은 자신도 모르는 새에 아스라와 아스리안의 미세한 차이를 적응했다는 뜻.
[치명타! 153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치명타! 144의 피해를 입혔습니다!]4콤보, 5콤보, 6콤보.
현이 쌍검을 놀리며 지나갈 때마다 해골 무더기가 쌓이고, 잠시 후 빛으로 사라졌다.
베고, 휘감고, 찌르고, 다시 벤다!
공격은 끊이지 않고 물 흐르듯 계속 이어졌다.
[콤보 Lv.4(+1)]-콤보 수치에 따라 공격속도와 이동속도가 증가합니다.
스킬 덕분에 타르타르의 움직임엔 점점 가속이 붙기 시작하더니 곧 멈추었다.
주위의 적들을 모두 쓰러뜨렸기 때문이었다.
현이 한쪽 구역을 전부 정리했을 때 콤보 수는 180까지 도달해 있었다.
“와….”
타르타르는 현이 해골을 학살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절로 나오는 감탄을 숨기지 못했다.
내 캐릭터가 이렇게까지 움직일 수가 있구나.
자신은 다른 사람들의 플레이를 보는 것을 좋아해 유트브에서 랭커들의 동영상까지 자주 찾아봤지만 이토록 깔끔하게 쌍검을 사용하는 유저는 본 적이 없었다.
“됐어요! 이거 바로 편집해서 올리면 되겠다!”
「뭔 소리야?」
“동영상 다 찍었으니까 던전 나가자고요.”
들뜬 타르타르의 목소리에 현은 고개를 갸웃할 뿐이었다.
「응? 지금 동영상 찍으러 가는 중이었잖아?」
“네?”
「내가 서포터 짓만 오래 하다 보니 무기를 쓸 일이 없어서 말이지… 동영상이 멋지게 뽑혀야 할 텐데 말이야.」
현은 잠깐 머리를 긁적이고는 성큼성큼 걸어 계속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자신의 몸과 통제권을 모두 넘겨준 타르타르는 현이 움직이는 대로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계속 걸어 깊숙한 곳까지 들어섰다.
현은 던전을 배회하는 40레벨의 해골들도 아무렇지도 않게 처리하며 나아갔다.
이미 한 번 본 움직임인데도 다시 볼 때마다 타르타르의 입에선 감탄이 새어나왔다.
지금 적들 사이사이를 누비는 캐릭터가 자신이 맞나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그 모든 장면들은 타르타르의 녹화 기록소에 차곡차곡 저장되는 중이었다.
“형, 엄청 좋아요! 이거, 조금만 편집해도 멋질 것 같아요!”
“아… 여기서 이런 식으로 공격을 연결시킬 수도 있구나….”
“잠깐 안 쉬어도 되요? 이렇게 계속 싸우기만 하면 힘들 것 같은데….”
현은 자꾸만 중얼거리는 타르타르를 혼자 떠들게 놔둔 채 눈앞의 적에만 집중했다.
솔직히 말하면, 계속되는 전투에 흥이 돋은 상태였다.
‘손맛 진짜 죽이는데…?’
아인에게 동화하여 근접 마법사를 체험하는 것도 나쁘진 않았지만 자신이 원래 좋아하는 싸움은 이토록 스타일리쉬한 전투였다.
생각하기도 전에 몸이 먼저 움직이는 바로 그 느낌!
아스리안에서 도적은 처음일 텐데도 전작에서 사용하던 도적의 고난이도 무빙들이 하나 둘씩 기억났고, 그대로 따라 움직이게 되었다.
전투에 취한 현이 단검을 멈추었을 때는 근처의 해골들이 모두 경험치로 변한 뒤였다.
‘오늘 컨디션이 괜찮군.’
어느 순간, 지하로 향하는 계단이 나타났다.
현은 망설임 없이 그곳의 통로를 따라 내려갔다.
바로 던전의 다음 구역이었다.
“야, 이제부터 찍으면 되겠다. 녹화기능 켜져 있는지 잘 확인해 두고. 시작할 테니까.”
귓속말로 하는 것도 귀찮은지 현은 이제 타르타르의 목소리를 빌려서 말하고 있었다.
제법 귀여운 티가 나는 타르타르의 목소리도 현이 사용하니 기묘하기 그지없었다.
음색은 차이가 없지만 분위기만 놓고 보면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이쪽 길은 안 가는 게 좋을 텐데요….”
계단을 내려가던 도중 타르타르가 불안한 듯 입을 열어왔다.
“여기 구역은 파티로도 잘 안 가요… 몬스터 수가 너무 많아서 잠깐만 늦어져도 포위당해서 죽는다는데, 하물며 도적 혼자서는….”
“알고 있어.”
현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지금 내려가는 계단은 던전의 ‘코어’라 불리는 장소로써 몬스터가 가장 빨리 리젠되는 장소.
즉, 던전의 가장 위험지역 중 한 군데였다.
문득 예전의 일이 기억났다.
코어에서 하루 종일 사냥하고, 밥 먹고, 다시 사냥하고, 밥 먹고의 반복이었지.
그 때 자신의 직업이 바로 도적이었다.
현이 판단하기로 이곳이 타르타르와 같은 ‘콤보 계열’의 도적이 날뛰기 가장 적합한 장소였다.
“이 형만 믿고 있으면 알아서 해 줄 테니까, 잘 찍고나 있으라고.”
타르타르가 다음 구역에 도달한 것은 잠시 뒤였다.
내려오자마자 발견한 몬스터는 50레벨짜리 해골 병사 한 마리.
타르타르는 일단 안심했다.
현은 곧장 코어로 향하는 대신 따로 떨어진 한 마리를 노리듯 다가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곧 그 안심은 순식간에 의문으로 뒤바뀌었다.
“응?!”
현은 양손의 무기를 도로 집어넣었다.
그리고 나선 난데없이 주먹으로 해골을 마구 패는 것이 아닌가?!
“무기 없으면 데미지 안 들어가요…?”
“들어가고 있어.”
현은 마치 복싱 선수처럼 요리조리 해골의 칼질을 피하며 녀석을 벽의 구석으로 몰아넣는 중이었다.
그의 말대로 데미지는 적지만 분명히 조금씩 피해를 입히고는 있었다.
[5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3의 피해를 입혔습니다!]“콤보작 하는 중이라고.”
“그거… 안 될 텐데.”
타르타르는 자신의 몸을 조종하는 현을 미심쩍은 눈으로 지켜보았다.
자신도 그것을 똑같이 시도해 보았기에 어떤 결과가 나올 것인지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데미지를 낮춰 콤보를 높이려는 꼼수다.
그 방법이 가능하다면 모든 도적들이 수백 콤보씩 쌓아올리는 업적을 전부 달성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처럼 쉽지 않다.
250콤보 업적을 클리어한 도적 유저가 전체의 1퍼센트도 되지 않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었다.
“저도 그거 해봤는걸요?”
하지만 현은 타르타르의 말을 무시하고 해골을 두드려 패는 데만 열중하고 있을 뿐.
25콤보, 26콤보, 27콤보….
자신이 마치 격투가 직업이라도 되는 양 스텝까지 밟으며 해골에게 주먹을 날려댔다.
‘좋아, 잘 되고 있어.’
현은 무아지경에 빠진 듯 주먹을 지르는 데만 열중했다.
누가 옆에서 보았다면 타르타르가 도적이라고 상상조차 못했을 것이다.
아니, 어떤 직업인지 감조차 잡히지 않아 어리둥절했을 것이 틀림없었다.
현이 두 자루의 단검을 다시 꺼내든 것은 콤보의 수치가 50에 가까워졌을 때였다.
딱 50콤보로 해골을 쓰러트리는 동시!
위와 같은 메시지가 떠올랐다.
바로, 꼼수 방지 시스템.
적은 피해량으로 일반 몬스터를 계속 타격하다 보면 결국 이렇게 한계가 찾아온다.
아스라부터 존재하던 이 시스템을 현이 모를 리가 없었다.
‘지금!’
미리부터 50콤보에 도달하는 타이밍을 재고 있던 현은 바닥에 굴러다니는 돌멩이를 던져 저 멀리 있는 해골 병사에게 집어던졌다.
돌멩이는 일직선으로 날아가더니 또 다른 해골 병사의 이마를 톡 하고 두들겼다.
[51콤보! 2의 피해를 입혔습니다!]메시지가 떠오르기 무섭게 현은 재차 돌진했다.
다음의 해골을 주먹으로 구타하며 벽의 구석으로 밀어 넣기 시작했다.
신기에 가깝게 콤보를 이어가는 현의 모습에 타르타르의 입이 벌어졌다.
“방금 시간 계산한 거예요?”
현은 타르타르의 물음에 답하지 않고 해골을 패는 데만 집중했다.
타르타르는 잠시 후 직접 보는 것으로 자신의 물음에 대답을 얻을 수 있었다.
100콤보 직전 현은 순간적으로 무기를 스위칭해 쌍검을 장착하고.
[99콤보! 치명타! 235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100콤보! 치명타! 241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더 이상 동일한 대상에게 콤보를 획득할 수 없습니다!]100콤보를 달성하는 동시에 번개 같은 움직임으로 다음 목표를 뛰어나갔다.
물론 도중에 돌멩이 하나를 던지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 모든 동작들은 한 동작처럼 자연스럽게 이어졌고, 콤보도 함께 이어졌다.
‘세상에….’
타르타르의 입이 벌어졌다.
아직 본격적인 전투는 시작도 하지 않았지만 섬세하게 콤보를 쌓아올리는 모습만으로 벌써부터 소름이 돋았다.
자신의 직업이기 때문에 이 컨트롤의 난이도가 얼마나 높은지 알 수 있다.
‘이런 게 가능하다고..?’
영점 몇 초 단위까지, 모든 움직임이 딱딱 맞물려 돌아간다.
하나라도 실수하면 콤보가 깨져버릴 텐데도, 현은 정말로 찰나의 시간까지 활용하여 모든 그림을 그려 내고 있었다.
237콤보, 238콤보, 239콤보.
타르타르는 곧 한 가지 사실을 더 깨달았다.
무빙과 타이밍 같은 피지컬 요소에만 감탄하느라 처음에는 눈치 채지 못했던 사실이었다.
‘설마 동선까지 다 봐둔 거야?’
던전의 코어 근처는 해골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오기에 풀 파티로도 정신없이 싸워야 하는 사냥터였다.
자칫 동선을 잘못 잡은 파티가 언데드 무리의 시선을 끌어 순식간에 전멸하는 일도 빈번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현은 언제나 한 마리의 해골과만 교전하고 있었다.
그렇다, 현의 움직임은 타르타르의 생각보다 훨씬 정교했다.
게다가 아직 현이 알려주지 않은 사실도 있었으니.
[같은 종류의 몬스터를 규칙적인 방식으로 쓰러뜨렸습니다.] [앞으로 5분간 ‘해골 병사’에게 콤보를 획득할 수 없습니다!]5마리째의 해골 병사를 쓰러뜨리는 순간, 새로운 메시지가 떠올랐다.
그렇다, 아스리안의 콤보 제약은 타르타르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다양하다.
이처럼 한 종류 몬스터 전체에 콤보 제한이 걸리는 것도 타르타르가 전혀 모르던 시스템이었다.
‘좋아, 다음.’
현은 미리부터 전체적인 그림을 그려 두었기에 잠시도 고민하지 않고 바로바로 움직일 수 있었다.
휙- 카앙!
힘껏 던진 초보용 단검이 ‘해골 전사’의 뼈다귀에 명중했다.
다시 떨어진 무기를 주워들곤 주먹으로 녀석을 마구 때렸다.
[280콤보! 3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281콤보! 2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신기록! 콤보 기록을 경신중입니다!]도중에 타르타르가 세웠던 기록도 깨져나갔다.
이제 타르타르는 보이는 광경에 압도되어서 그저 숨죽이고 지켜보고 있었다.
아까는 ‘해골 병사’로, 지금은 ‘해골 전사’를 타겟으로.
현의 콤보작은 마치 끝없이 이어질 것만 같았다.
[300콤보! 업적, 숙련된 정찰병을 달성하였습니다!] [400콤보! 업적, 무기 베테랑을 달성하였습니다!]도적 스킬인 ‘콤보’는 수치가 높아질수록 속도 버프가 강화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즉, 사냥을 하다 보면 공격속도가 빨라지고, 콤보가 빠르게 올라가고, 다시 공격속도가 빨라지는 순환이 일어나게 된다.
바로 지금 현의 모습이 그랬다.
[500콤보! 업적, 용병 마스터를 달성하였습니다!] [앞으로 5분간 ‘해골 전사’에게 콤보를 획득할 수 없습니다!]‘그 다음!’
현의 시선이 재빨리 다른 녀석을 타겟으로 잡았다.
이번엔 해골 경계병!
770콤보, 771콤보, 772콤보.
계속해서 올라가는 수치를 지켜보는 타르타르는 오싹한 정도를 넘어 두려움까지 느꼈다.
‘언제까지 계속되는 거지?’
마치 자신이, 자신이 아닌 듯한 느낌.
어느새 동영상을 찍고 있다는 것도 잊을 만큼 한 명의 관객이 되어 있었다.
[1000콤보! 치명타! 792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앞으로 5분간 ‘해골 경비병’에게 콤보를 획득할 수 없습니다!] [업적, 광란의 연격을 달성하였습니다!] [민첩이 1 증가합니다!]‘1천 콤보는 실제로 처음 봤어!’
타르타르는 컨트롤 연습을 위해 유트브에서 유명한 도적 랭커들의 동영상을 찾아보곤 했지만 이토록 간단하게 네 자리 수의 콤보에 도달할 수 있다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몇몇 랭커들의 1000콤보를 넘어선 영상이 존재하기는 한다.
하지만 그들의 플레이는 깔끔하다기보단 처절하다고 표현해야 하리라.
반면, 현의 플레이는 얼핏 본다면 자신도 따라할 수 있을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물론, 직접 해보면 절대로 못 따라하겠지…?’
그리고 타르타르가 또 하나 깨달은 것.
1천 콤보가 넘어가는 순간부터 콤보를 유지하는 것이 더욱 힘들어진다는 사실이었다.
[속도가 너무 빨라 주체할 수 없습니다!] [이후, 0.8초 내의 공격만 콤보로 인정됩니다!]현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였다.
달려가면서 들고 있던 무기를 던졌다.
카앙-!
[1001콤보! 53의 피해를 입혔습니다!]‘해골 메이지’에게 정확히 명중한 단검이 공중으로 튕겨 올랐다.
이어서 현은 순식간에 거리를 좁혔다.
허공의 단검을 낚아채고 양 손으로 세 번을 내리 베었다.
[치명타! 803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573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치명타! 803의 피해를 입혔습니다!]해골 메이지가 잿더미로 돌아가는 순간부터 전투가 시작되었다.
던전의 코어, 언데드들의 리젠이 가장 활발한 장소가 바로 전장이었다.
한가운데 뛰어드는 동시에 대놓고 어그로를 끄니 사방의 언데드들이 귀곡성을 울려대며 달려들기 시작했다.
“웃…!”
눈앞에 보이는 지옥의 풍경에 타르타르의 기가 질렸다.
수십 수백 마리가 우글거리는 언데드 대군.
마물과의 전쟁에서 살아남은 최후의 인간이 이런 기분과 같지 않을까.
“후우….”
현은 심호흡을 한 번 내쉬고 빠르게 움직였다.
수없이 다가오는 해골의 군세를 베고, 또 베고, 다시 찌른다!
언데드를 상대하는데 있어서 화려한 잔기술은 필요가 없다.
상처입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적들은 콤보를 쌓아올리기 더없이 좋은 재료들이다.
‘둘러싸이는 것만 주의하면 돼.’
우우웅-.
어느새 타르타르의 발치에는 푸른빛의 오오라가 퍼져나가고 있었다.
서포터 스킬, 무력화의 파장의 발동 이펙트!
그 영향에 노출된 적들의 방어력은 전부 0으로 고정되었다.
엘리트 몬스터들이 섞여 있다 한들 잡몹과 다를 게 없다는 뜻이었다.
[1157콤보! 703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1158콤보! 치명타! 1053의 피해를 입혔습니다!]속도가 빨라지고 적이 많아지자 콤보 역시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갔다.
새로운 업적 메시지가 계속해서 떠올랐다.
현에게는, 축척된 소수점이 반올림되어 나타났다.
[민첩이 2 증가합니다!]“허어….”
타르타르의 입에서 절로 얼빠진 소리가 흘러나왔다.
좀처럼 시선을 따라갈 수가 없었다.
1초에 몇 번이나 움직임의 방향이 바뀌는 걸까?
순식간에 시야가 휙-휙- 변하니 멀미가 날 것만 같았다.
어지러운 화면을 계속 지켜보긴 힘들었지만 화면 상단부의 콤보 수치만은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콤보가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올라가고 있다.
타르타르의 가슴 속에 의문이 생겼다.
어떻게 이토록 빠르게 콤보를 올릴 수 있는 걸까?
‘아…! 그렇구나!’
한참 만에 깨달았다.
콤보의 스노우볼링 효과!
비탈을 구르는 눈덩이는 시간이 갈수록 더욱 빠르게 몸집을 불려간다.
콤보를 올리는 것도 그와 다르지 않았다.
1000콤보가 넘어간 지금, 타르타르의 수준으로는 제어가 불가능할 속도에 다다랐다.
하지만 제어할 수만 있다면 걷잡을 수 없이 계속해서 빨라질 수밖에 없었다.
[2000콤보! 업적, 무의식 속의 연격을 달성하였습니다!] [속도를… 의식하기가 어렵습니다!] [이후, 0.7초 내의 공격만 콤보로 인정됩니다!]언데드의 무리는 쓰러지고, 쓰러지며 빛으로 산화해 가지만 아무리 쓰러뜨려도 계속해서 리젠되었다.
이것이 바로 코어가 무서운 이유다.
몹들이 리젠되는 속도보다 빠르게 해치우지 못하면 끊임없이 나타나는 적들에게 둘러싸여 결국엔 잡아먹히는 것이었다.
우우우우우-.
음산한 귀곡성이 던전 전체에 메아리치더니, 쿠득- 쿠드드득- 땅속으로부터 수백 마리의 조그만 해골들이 솟아올랐다.
‘해골 난쟁이들이네.’
새로운 적들의 정체를 파악한 현이 쓴웃음을 지었다.
겉보기엔 귀여운 외모를 가지고 있지만 녀석들은 사실 이 던전에서 가장 악랄한 놈들이다.
다른 언데드들보다 날렵하고, 겁이 없는 데다, 수십 마리씩 달려드니까.
한마디로, 녀석들은 언데드 던전의 피라냐들!
현은 개떼처럼 달려드는 수백 마리의 해골들을 마주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재밌는데?’
화아아아-.
2천 콤보가 넘어가는 순간부터 타르타르의 양손에 찬란한 광채가 뿜어 나오고 있었다.
도적 패시브 궁극기, 무아지경.
콤보에 따라 데미지가 증가하는 그 스킬이 잔뜩 탄력을 받아 화려한 이펙트를 내뿜기 시작했던 것이다.
2천 콤보를 넘어섰고, 무력화의 파장까지 중첩된 지금 단검의 데미지는 얼마만큼 증폭되었을 것인가.
‘좋아, 다 한 방이다!’
타르타르의 양손에 칼자루가 번쩍였다.
은빛의 폭풍이 휘몰아치자 몇 초 만에 수십 마리의 해골 난장이들이 나가떨어지며 시스템 메시지들이 쏟아져 내렸다.
[1338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치명타! 1912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치명타! 1848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치명타! 1859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1295의 피해를 입혔습니다!]한 방에 한 놈씩!
그 움직임은 화려한 액션 영화를 배속으로 돌린 듯한 광경이었다.
코어의 근처가 풀 파티로도 사냥이 버거운 이유는 단 하나.
죽여도, 죽여도,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물량을 버텨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진형이 무너지고, 마나가 고갈되다 보면 파티는 자연스레 말라 죽는다.
그런데도 지금 타르타르는 혼자서 언데드 대군을 오히려 밀어붙이고 있었다.
바꿔 말하면, 혼자서도 풀 파티의 화력에 밀리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슈슉- 슈슈슉-.
눈앞의 적들과 교전하던 도중 화살이 날아들었다.
현은 정신없이 싸우던 와중에도 새롭게 나타난 후방의 적들을 포착해 냈다.
‘원거리 몹들인가?’
곧바로 움직임에 변화를 주었다.
짧고 빠르게, 그리고 불규칙한 무빙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지그재그로, 앞뒤로 끊임없이 움직이며 한시도 제자리에 머물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
단숨에 해골 궁수들이 밀집된 장소로 뛰어들었다.
두 자루의 쌍검이 번쩍였다.
눈앞의 녀석을 베고, 다시 찌르자 해골 궁수는 빛으로 화해 흩어졌다.
2방 컷!
65레벨의 해골 궁수는 원래 이토록 쉽게 죽을 몬스터가 아니지만 콤보의 효과로 데미지가 열 배 이상 증폭된 지금, 치명타를 터뜨리면 한 방에 소멸하기도 했다.
촤라라락-.
두 개의 칼이 춤추듯 난도질하자 타르타르가 지나가는 길에 해골 궁수들의 사망 이펙트가 무더기로 쏟아졌다.
‘슬슬, 3천 콤보로군.’
현이 언데드 무리에서 날뛰던 것을 멈춘 것은 새로운 메시지가 떠올랐을 때였다.
저 멀리서 해골 메이지들이 다가오는 모습을 흘겨보고는 재빨리 결정을 내렸다.
‘빠져야겠어.’
곧바로 방향을 전환하고 냅다 도망가기 시작했다.
도중에 최소한의 타격으로 콤보를 유지하면서.
섬광과도 같던 타르타르의 움직임은 어느 순간 슬로우라도 걸린 듯 확 느려졌다.
콤보가 깨지며 모든 속도가 초기화되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때는 몬스터가 없는 안전한 장소까지 도달한 뒤였다.
“어… 어….”
타르타르는 입을 벌린 채 이상한 신음만 흘렸다.
현은 피식 웃으며 설명했다.
갑자기 전투를 그만둔 이유를 궁금해 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지금 네 스펙으로는 3천 콤보 이상까지 안정적으로 갈 수가 없거든. 공격속도나 이동속도 관련 패시브를 배워 두었다면 상황이 달랐겠지만. 그게 아니면 0.6초는 좀 유지하기 힘들지.”
하지만 타르타르에게 현의 설명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겨우 상황을 정리한 뒤에 물었다.
“이거… 동영상 진짜 올려도 되요?”
“갑자기 무슨 소리야? 여태껏 그거 올리려고 온 거 아니었어?”
“그, 그렇죠! 하지만….”
타르타르는 고민에 빠졌다.
예전에 자신이 히든 네임드 보스의 정보를 만천하에 공개한 결과 전 길드원들에게 무진장 욕을 먹었던 사건이 아직도 머릿속에 생생했다.
“이 동영상을 올리면 형의 방법이 전부 공개되는 거 아닐까 해서요… 고작 돈 조금 때문에.”
“뭐야, 겨우 그런 거였냐?”
어느새 동화를 해제하여 타르타르의 몸에서 빠져나온 현은 씨익- 기분 나쁜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