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rd-working billing engineer RAW novel - Chapter 253
열일하는 과금 기사 252화
* * *
문이 열리고 치즈색 고양이가 헐레벌떡 달려온다.
녀석은 내 앞에 탁 서서 동그란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폐하! 작업 다 끝냈는데 인터넷 해도 되나요?”
두근거리는 표정의 하모니를 보니, 절로 드는 생각이 있었다.
‘이 녀석…….’
나는 그녀에게 이곳이 아르데니아의 바깥세상이며 아르데니아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중급, 상급, 최상급 신들이 존재하는 세상이라는 걸 알려 주었다.
아르데니아 정도의 대륙은 수백 수천억 개도 넘게 존재하는 대우주(大宇宙)!
심지어 아르데니아가 34지구의 게임, 리벤지를 본떠 만들어졌다는 것도 알려 주었다.
인터넷을 뒤지다 우연히 알게 되는 것보다 차라리 먼저 알려 주는 게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모니는 그것을 받아들였다.
‘멘탈이나 적응력이 탈인간 수준이네 진짜.’
솔직히 이 정도면 충격적인 진실 아닌가? 특히나 아르데니아 출신인 하모니 입장에서 보면 이건 세상이 무너질 정도로 충격적인 사실이다.
지금까지 자신이 살아온 공간이 누군가가 만든 가상의 설정인데 어찌 안 그럴 수가 있는가?
하모니는 안 그랬다.
그녀는 매우 크게 놀라기는 했지만 빠르게 현실을 받아들이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 그리고 하고 싶은 일을 찾아낸 것!
난 내심을 숨긴 채 웃었다.
“야, 너 인터넷 중독이다 중독.”
“하루 24시간 중 21시간 일하고 3시간밖에 못하는데요! 노동청에 신고하면 정의신의 신관들이 잡아 갈 거예요!”
“뭐라고? 불법 체류자가 하는 말이라 잘 안 들리는데. 그리고 하루 24시간도 여기 기준이지 7시간마다 아르데니아로 가고 있잖아?”
“거기는 인터넷이 안 된다고요! 체험할 수 있는 문화의 수준 자체가 다른 데다 절 기다리는 시청자…… 야옹! 어? 뭐지? 야옹! 야옹! 어어? 야옹!”
종알대던 하모니가 당혹스러운 목소리를 낸다. 나는 상황을 파악하고는 그녀의 코를 눌렀다.
“여보세요.”
“택배입니다. 한재연 씨가 맞으신가요?”
기다리고 있던 난 반색하며 벌떡 일어났다.
“아! 네! 좌표 열어 놨습니다.”
“그럼 준비해서 들어가겠습니다.”
통화가 끝난다. 하모니가 황당해 한다.
“뭐예요. 저 여전히 전화기인 거예요?”
“급하게 바꿀 필요 없잖아. 이제 후임 왔으니 걱정할 필요 없어.”
“아니…….”
버벅거리는 하모니를 두고 응접실로 이동한다.
이번에 구매한 스마트 펫은 받아서 인증만 하면 끝이었던 체다와는 경우가 다르다. 군용으로 제작된 510억 짜리 최신형 스마트 펫이 어찌 같을 수 있겠는가?
절차대로라면 내가 직접 마탑으로 찾아가 수령해야 하는데 초월자 프리미엄으로 주어진 VVIP 서비스에 의해 배송이 온 것이다.
[외부 좌표와 연결되었습니다. 진입이 시작됩니다.]안내음에 하모니가 입을 삐죽인다.
“전 들어가 있을게요.”
“그래 잘 놀고.”
웅!
하모니가 다른 층으로 이동했을쯤 응접실 한가운데로 여러 가지 공구가 달려 있는 작업복을 입은 사내가 모습을 드러낸다. 그의 뒤에는 자기 덩치보다 커다란 가방을 멘 거인이 있었다.
‘엥? 기가스? 배송에 기가스를 쓰다니…….’
물론 신, 별, 사람, 짐승, 기계(神星人獸器)의 기가스 등급 중 최하위인 기급이지만 아이언 하트까지 단 정식판으로 보인다. 심지어 인챈트를 얼마나 많이 한 건지 느껴지는 힘이 상당하다.
“와! 실내에서 소환할 수 있다더니 진짜구나. 빌딩인 거 같은데 층고가 15미터?”
모습을 드러낸 사내가 놀랍다는 듯 중얼거린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그의 얼굴이 매우 익숙하다.
‘뭐지? 유명인인가? 아니 유명인이 택배 배달을 올 리가 없는데. 아니면 지인? 친척?’
이럴 때가 종종 있다. 아르데니아에서 보내는 시간이 터무니없이 길어져 34지구에서는 보름 전에 만난 사람이 내게는 몇 년 전, 심하면 십수 년 전의 인연이 되기 때문.
다행히 내 기억력이 나쁜 편이 아니라 이내 녀석의 이름을 떠올릴 수 있었다.
“세한! 너 세한이니?”
“하하하! 강철거인 마탑의 새로운 파도! 지난달에 5클래스에 도달한 천재 마법사 한세한입니다!”
녀석은 내가 편의점 알바를 할 때 전타임을 뛰었던 알바생이었다. 싹싹하고 성격도 좋아 나와도 제법 친했던 녀석이다.
나는 녀석의 어깨를 치며 웃었다.
“와! 이 자식 4클래스 찍은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5클래스야?”
“아니 그게 형이 할 소리예요? 물론 열심히하시는 거야 알고 있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초월자라뇨! 형이 뉴스에 나올 때마다 무슨 몰카 하는 줄 알았어요!”
세한이 녀석은 내 앞에서도 별로 주눅이 드는 기색이 없었다. 하기야 25살에 5클래스 상위 마법사라면 수준 높기로 유명한 34지구의 마법사 중에서도 0.01% 안쪽의 천재다.
‘0.01%라고 해도 55만 명이나 되겠지만.’
그러나 녀석에게 제대로 된 스승도, 후원해 줄 가문도 없었다는 걸 생각하면 실로 놀라운 결과.
실제로 녀석의 얼굴에는 스스로의 힘으로 돈을 벌고 공부해 원하던 목표를 달성했다는 자부심이 담겨 있다.
“하하! 주력이라고 하면 차크라인데…….”
“아니 글쎄 제가 만든 극소 마법진이…….”
우리는 응접실의 테이블에 앉아 한참을 떠들었다. 예전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34지구에서의 내 일정은 너무나 바빠서 밥조차 아르데니아로 넘어가 먹기 일쑤였으니까.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나는 이제 지구에서도 쉬는 일이 많았고, 심지어 영화를 보거나 게임을 하는 것으로 소일하기도 했다.
결국 거의 몇 시간이고 떠들고서야 본론이 나온다.
“그나저나 내 스마트 펫을 강철거인 마탑에서 만든 거야?”
내 물음에 장시간의 대화로 제법 편해진 말투로 세한이 설명한다.
“강철계의 아이언 팩토리에서 생산된 하드웨어에 우리가 주문을 입힌 거지. 간만에 큰 건이라 탑주님을 비롯해 마탑원 대부분이 철야를 했다니까! 중요 스펠들이야 다 있어도 그걸 커스텀대로 짜는 건 보통 일이 아니라서.”
그렇게 말한 세한이 손을 휘두른다. 가벼운 소매틱에 마력이 반응하고 응접실 한편에서 가만히 대기하고 있던 거인이 등에 메고 있던 가방을 바닥에 쏟아 낸다.
촤르륵!
액화된 금속이 마치 슬라임처럼 바닥에 쏟아진다. 그것은 바닥에서 쇳소리를 내더니 이내 높이가 8미터가 넘는 거대한 구조물로 변했다.
우웅-!
이내 구조물에서 강대한 마력이 뿜어지자 공간이 갈라지고-
팟!
그 안에서 커다란 덩치의 백호(白虎)가 모습을 드러낸다.
“초월급 스마트 펫. 레전드 타이거 B타입이야. 주재료는 오리하르콘이고 슈퍼 미스릴을 이용한 매직 스토어가 장착되어 있어. 마나 배터리는 무려 드래곤 하트 조각을 가공해 만들어졌고 무엇보다 시간당 10만 포인트의 뇌전 마나를 생산해 내는 라이트닝 하트가 있지. 용신족의 수염을 모방해 만든 체모는 극강의 방어력과 항마력을 가지고 있는데 이게 정말 놀라운 건 최신 기술 아스트랄 네트워크에 접속할 수 있는 특수 단자의 증폭기 역할도 한다는 거야! 내장한 저장 공간은 즉발식 인벤토리가 15킬로그램. 오픈식 인벤토리가 2톤이야! 이 모든 기능을 하나로 엮어 내는 술식무장 [레전드 타이거]에 들어가는 게럴트가 100만 포인트나 되지!”
세한이 잔뜩 흥분해 주르륵 늘어놓는다. 녀석이 황홀한 표정으로 백호를 보고 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멋지네.”
“그렇지? 이건 진짜 명작이야. 당장 전쟁터에 끌고 가도, 저 우주 변방에 고립되어도 이 녀석만 있으면 어떻게든 수가 나올 정도야. 형이 34지구의 초월자니까 이 가격에 살 수 있는 거지 외부에 팔 때에는 1,500억은 된다고 하더라고! 게다가 형이 끌고 다닐 거라고 하니까 학장님이 예산을 더 써서 출력을 10%나 더 올리고 안정성을 높이는 궁극마법을 8개나 더 걸었어.”
터벅.
구조물 안쪽에 서 있던 백호가 성큼 걸어 밖으로 나온다.
체장이 5미터 10센티, 체고는 170센티나 된다. 어지간한 호랑이보다 훨씬 커 타고 다닐 수도 있을 정도!
‘와. 짐작은 했지만 진짜 크군.’
이 녀석을 끌고 다니려면 대중교통은 포기해야 할 정도다. 500억 짜리 스마트 펫을 살 수 있는 사람이 대중교통을 타고 다닐 리야 있겠냐만.
“중량 5.3톤이던데 불편함은 없겠어?”
“왜 안 묻나 했어.”
씩 웃은 세한이 휘익 하고 휘파람을 불자 백호가 응접실 한편에 있던 대나무를 타고 올라갔다. 난데없는 재난에 대나무가 훅 휘었지만, 놀랍게도 그 커다란 덩치가 올라가 있음에도 결국 부러지지 않았다.
“중력 제어 기능이 담겨 있어. 그뿐이 아니지.”
웅!
어지간한 소형차만 하던 백호가 한순간에 고양이 크기로 변한다.
“소형화. 다만 이건 어쩔 수 없을 때만 써 줘. 이건 일종의 안전모드라서 기능의 대부분이 잠기거든. 에너지 소모도 너무 커서 저 상태에서는 배터리가 완충되는 데 200시간이나 걸려. 인급 라이트닝 하트라면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그건 배보다 배꼽이라.”
나는 세한의 도움으로 백호에 사용자 등록을 했다. 군용이었기에 체다 때보다 훨씬 복잡한 과정.
세한은 모든 과정을 마치고 손을 흔들었다.
“오랜만에 봐서 좋았어! 언제 한번 같이 밥이나 먹자!”
“그래. 나도 반가웠다.”
녀석을 내보내자 응접실 문이 열리며 하모니가 들어온다.
“그게 새로운 스마트 펫이에요? 엄청 크네요…….”
“비싼 녀석이지. 흠. 말 나온 김에 한 번 깃들어 볼래?”
“네? 너무 크고 안 귀여운데…….”
하모니는 아무래도 내키지 않는 모양이었지만 내가 고개를 까닥이자 두 눈을 감았다.
그리고.
“어! 됐.”
팟!
잠시 성공하나 싶더니 삽시간에 체다의 몸으로 돌아온다.
“실패야?”
“네.”
“똑같은 스마트 펫인데 왜지? 설마 항마력 때문인가?”
하긴 잘 생각해 보면 일반형인 체다와 군용인 백호는 저항력의 수준이 다르다. 궁극마법을 때려도 버틸 녀석인데 쉽게 빙의 될 수는 없는 게 오히려 당연한 일.
그러나 하모니의 의견은 달랐다.
“아뇨 잠시 성공했었어요. 중요한 건 항마력이나 뭐 그런 게 아니라…… 폐하의 ‘소유’이냐, 아니냐 하는 문제인 모양이에요.”
“그럼 왜 튕겨 나온 거야? 이건 확실하게 내 건데.”
무려 500억이나 주고 산 내 물건!
하모니가 설명한다.
“뭔가…… 시간이 모자란 것 같아요. 친밀도? 소유율? 정확히 어떤 느낌인지 설명하기 어려운데…….”
“쉽게 말해 좀 더 오래 데리고 다녀야 한다는 건가.”
고개를 끄덕인다. 어차피 급한 문제는 아니었다. 하모니는 체다의 몸이 가진 기능조차 제대로 쓰지 못하는 상황이 아닌가? 스마트 펫 주제에 전화도 못 걸 정도인데 백호의 몸을 차지해 봐야 기능 중 태반을 못 쓰게 될 것이다.
“크르르르…….”
그때 백호가 낮게 으르렁거린다. 묵직한 저주파에 하모니가 깜짝 놀란다.
“폐, 폐하! 저 녀석이!”
호들갑 떠는 하모니를 무시하고 백호의 코를 누른다.
“여보세요?”
“아 형! 깜빡하고 말 안 했는데 지금부터 12시간 동안은 레전드 타이거를 전투에 쓰시면 안 돼요! 이왕이면 가만히 둬서 라이트닝 하트에서 생산된 마나가 배터리를 완충하고 모든 부품과 술식무장을 완전 활성화시키게 두는 게 좋아요.”
“뭐 어려울 거 없지. 내가 싸울 일이 뭐 있겠어?”
내 말에 백호의 표정이 묘해진다. 아무래도 건너편의 사람을 모사하는 듯하다.
“엥? 싸우지 않을 거면 왜 군용 스마트 펫을 사요?”
황당해 하던 목소리가 이내 잦아든다.
“아…… 갑자기 몬스터가 사라지는 거 때문에 그렇겠구나. 갑자기 일이 사라졌을 테니.”
‘몬스터가 사라져?’
이해할 수 없는 말. 그러나 내가 되묻기도 전에 세한이 알아서 납득하고 말한다.
“하여튼 12시간은 그냥 둬요! 마탑 평가는 무조건 5점 주시고요! 그럼!”
“통화가 종료되었습니다.”
나는 입을 다문 백호를 잠시 바라보았다.
“……몬스터가 사라지다니 이게 뭔 말이야?”
나는 즉시 백호의 옆구리를 터치했다. 털들이 좌르륵 늘어서며 커다란 디스플레이가 되었다.
체다 때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크기의 디스플레이를 터치해 뉴스들을 확인한다.
볼드//[멈춰 버린 몬스터 등장? 조사 결과 전 우주적인 현상.] [있던 몬스터도 하나둘 사라져 간다? 스피커 언론사 曰 ‘소멸이 아니라 숨어드는 것.’] [습격을 멈추고 지성체를 피하기 시작한 몬스터. 그 이유는?]//
뉴스들을 둘러보니 이틀 전부터 몬스터의 등장과 습격이 완전히 멈춰 버렸다고 한다.
“……뭐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물론 몬스터가 나오든 나오지 않든 34지구는 평안하겠지만…… 몬스터를 만들어 내는 [그녀]의 목적이 전혀 달성되지 않았는데 습격이 멈춘다는 건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설마, 황제 클래스 제작에 들어갔나?”
그런 무서운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게임 속 세상에서조차 중급 초월자를 만들지 못하는데 어찌 현실에서 그런 일이 가능하겠는가?
하지만 현실에서의 습격이 멈춘 게 사실이라면.
“뭐지? 대체…….”
눈을 가늘게 뜬다.
경제적 자유를 얻어 평온해진 내 삶과 상관없이, 내 인지 밖에서 큰 수레바퀴가 굴러 가는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