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has become the older brother of the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100
100화. 어린이는 체중만큼 입도 가볍다 (4)
내 눈치를 보던 호레이는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다가 결국 어색하게 웃으며 패배를 인정했다.
“알…겠습니다. 미리 연락을 넣어둘 수 있을 겁니다. 공작님께서 성수를 뵙는 데 문제가 없도록, 조치하겠습니다.”
나는 차갑게 식은 그의 손등을 찹찹 두드렸다.
“감사합니다.”
“예에…….”
“우리 교회. 올겨울에도 주교님 덕분에 따뜻~ 하겠네요.”
나의 웃음에 호레이가 어거지로 장단을 맞췄다.
나는 호탕하게, 호레이는 어색하게 웃으며 미묘한 자리는 마무리됐다.
***
바다의 수호자 엘세노테.
산의 지도자 브랙큰.
숲의 정령 페어기스.
빙하의 전사 카멜리아.
화산의 생존자 레후아.
이 다섯 마리의 성수는 세상의 균형을 맞추는 신비한 짐승으로, 각각의 영역을 지키고 있다. 인간에게 호의적인 성수도 있지만, 은둔하는 녀석들이 대부분이다. 바다의 엘세노테처럼 특정 종족에게만 모습을 드러내는 성수도 있다.
“루고사 지역을 수호하는 건…….”
눈앞에 루고사의 지도가 펼쳐져 있었다. 북쪽 산맥의 끝자락, 루고사 전체를 내려다보는 화려한 신전에 동그라미를 쳤다. 이곳에 잠들어 있는 건,
“산양의 모습을 한 브랙큰. 인간에게 우호적인 몇 안 되는 성수.”
그 성수가 지금 시름시름 앓고 있었다.
벽에 비스듬히 세워둔 라기아가 말을 걸어왔다. 무시하려다가 문득, 라기아가 엘세노테의 축복을 받은 무기라는 점을 떠올렸다. 성수에 관해서 조언을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라기아. 성수 브랙큰에 관해 알아? 루고사 지역의 산맥을 지키는 성수.”
[브랙큰이라……. 브랙큰, 브랙큰…….]라기아는 말을 끌더니 상쾌하게 대꾸했다.
[몰라!]“에라이.”
[들어는 봤지만 아는 건 없어. 엘세노테 님과 영역을 살짝 공유하고 있지만, 그 잘난 육지에서 결코 내려오는 법이 없으니 말이야.]하긴. 산맥에 성전을 두고 있는 브랙큰이 굳이 해안가에서 뻗댈 이유는 없었다. 성전에 들어앉아 있으면 인간들이 제물도 바치고 섬기고 보듬어주고 알아서 난리를 치는데 말이야.
[빙하의 전사라면 알고 있는데! 그쪽은 성격이 쾌활해서 엘세노테 님에게 애교도 자주 부리거든. 나도 과거에 본 적이 있는 성수지.]“빙하의 카멜리아는 지금 필요 없어. 내가 궁금한 건 브랙큰이야.”
나는 성전 표시에 몇 번이나 동그라미를 덧그리며 턱을 괬다.
“성자 에드먼드가 바짝 달라붙어 힘을 쓰고 있는데도 빛의 그림자가 나타난다. 성수가 왜 치료되지 않는 거지? 이해할 수 없어.”
[그쪽 성수도 상태가 여엉 아닌가 보구먼?]“그러게. 그러고 보니 엘세노테는 헤일로 때문에 기운이 어지러워졌다고 하지 않았나?”
[순서가 반대야. 엘세노테 님이 약해졌기 때문에, 헤일로 같은 마수가 날뛸 수 있게 된 거지.]라기아는 평소와 달리 꽤나 가라앉은 음성으로 대답했다.
“하긴. 이 세계에서 마력의 원천은 공통적으로 ‘생명의 대지’를 꼽고 있으니까. 비유적인 표현인지 뭔지는 몰라도.”
[그러니 엘세노테 님의 기운이 흐려지고 있는 것과, 네가 지금 들쑤시는 성수가 골골거리는 것도 무관하지 않을 거다. 뭔가 일어나고 있어. 뭔가……. 좀 재밌는 일이! 아하하하!]라기아는 호탕하게 웃었지만, 내 얼굴에서는 웃음기가 가셨다. 루고사 지역은 해안가를 포함하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산맥을 타고 전해지는 브랙큰의 기운으로 보호받았겠지만, 이제는 아니다.
“수수리 해협에서처럼 마수가 나타날 수도 있겠어.”
골치가 아파지고 있었다. 쉽게 놀러 갈 생각이었는데 일이 좀 복잡하게 돌아가는 느낌이다. 마수와의 전투를 대비해야 할지도 모른다.
내 삶에 정녕 휴가란 없는 것인가.
나는 라기아를 매만지며 물었다.
“라기아. 조언 좀 해봐. 호기심이 들지만 귀찮은 일을 굳이 해야 할까?”
[하기 싫다는 말을 돌려 말하고 있구먼! 아하하하!]“그런데 완전히 손을 떼기에는 마력 성장 포션이 마음에 걸린단 말이지.”
[포션? 웬 포션?]“조언해봐.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한발 물러나서 여유를 즐길까, 아니면 좀 귀찮음을 감수해야 할까.”
라기아는 크게 진동이 울릴 정도로 웃으며 대꾸했다.
놈의 조언은 만족스러웠다.
[이기적인 선택을 해야지.]***
짙은 어둠이 내린 밤.
테네리페는 브랙큰의 성전 지붕에 앉아 꽃을 뜯었다. 장갑 위로 식물의 즙이 진물처럼 묻어났다. 꽃잎을 하나하나 뜯어내어 던지자, 옆에 누운 카나리아가 허공에 입질하며 꼬리를 흔들었다. 테이데는 테네리페의 손을 핥으며 시간을 때웠다.
“늦네.”
이윽고 성전을 밝히던 불이 꺼지고, 사제가 하나둘 나왔다. 다들 표정이 어두웠다.
“이거 원…….”
“차도가 없네요.”
“축제를 취소해야 할지도 모르겠어.”
그들의 걱정 어린 소곤거림을 엿들으며, 테네리페는 꽃을 찢었다. 테네리페는 뒤쪽으로 한 무더기의 꽃을 가지고 있었다. 뜯고, 찢을 꽃과 시간이 많았다.
테네리페의 가죽 장갑이 식물의 독으로 축축이 젖었을 무렵에서야 기다리고 있던 소년이 밖으로 나왔다. 그와 동시에 테네리페가 보냈던 사령도 일을 마쳤다. 해파리를 닮은 독의 사령은 소년을 지나쳐 지붕 위로 유유히 날아왔다.
테네리페의 보석이 반짝임과 동시에 소년이 지붕 위로 시선을 올렸다. 그는 테네리페의 갑작스러운 등장에도 놀라는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그 또한 테네리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보였다.
바람에 잘게 날리는 머리카락은 안개 낀 저녁의 밀밭처럼 차분했다. 버섯이 가득한 숲의 한구석에 다가선 것처럼 음습하고 눅눅한 기운이 서렸다. 소년이 씨익 웃자, 테네리페는 소년을 바라보며 마지막 꽃을 찢어 던진 뒤 지붕에서 뛰어내렸다.
“걱정이 많으시겠습니다, 성수가 나아지는 기미가 보이질 않으니. 성자께서도 고생이 많죠?”
“러스트 경.”
소년이 눈을 깜박이며 테네리페에게 손을 내밀었다. 테네리페는 장갑을 벗어 소년에게 던졌다. 소년은 장갑 끝에 물든 식물의 향을 맡았다. 눈을 몇 번 깜박이는 모습은 향기를 음미하는 사람처럼 여유로워 보이진 않았다. 그는 식물이 남긴 피의 흔적을 날카롭게 파헤치고 있었다.
“이걸로는 부족합니다. 더 강한 독이 아니면 안 돼요.”
“까다롭긴.”
장갑이 다시 테네리페에게 돌아왔다. 대충 뭉쳐진 장갑이 테네리페의 손에 닿자 불꽃이 일었다. 장갑은 순식간에 타버렸다. 동시에 지붕 위에서도 연기가 폴폴 올라왔다. 테이데와 카나리아가 꽃 더미에 불을 지핀 것이다.
“내 선물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직접 독을 캐면 되잖아. 매일 산이나 뒤지는 게 즐거운 일은 아니거든.”
지붕 위에 있던 테이데와 카나리아가 하울링하며 길게 울음을 뺐다.
“…저 녀석들한테는 좋은 놀이가 된 것 같지만.”
“…….”
소년, 아니 성자 에드먼드 마이셀리움이 지붕 위로 피어오르는 연기를 바라봤다. 멍하고 몽롱한 눈빛이었다.
“브랙큰은 쉽게 죽지 않아요. 신성한 생명, 대지와 함께 태어난 태초의 존재니까요. 아마 지금처럼 한다면 영원히, 영원히, 영원히 살아있겠죠.”
“우리가 아무리 독을 퍼먹여도 죽일 순 없다는 뜻이군.”
“하지만.”
에드먼드의 눈빛이 빛났다. 그가 테네리페와 눈을 맞췄다. 테네리페는 에드먼드의 표정에서 광기와 호기심을 동시에 읽어냈다. 성수와 너무 가깝게 지낸 탓인가? 에드먼드는 인간의 편도 성수의 편도 마수의 편도 아닌 기묘한 분위기를 풍겼다. 극에 달한 순수함은 사악함과 닮아 있었다.
“브랙큰이 제게 묘한 이야기를 하더군요. 죽음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기억이 끊기고 겹쳐서 출구를 찾을 수 없는 어두운 숲을 이루고 있다고. 생명의 대지에서 생명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세상이 엉켜 있다고…….”
에드먼드는 자신의 두 손을 내려다보며 어깨를 들썩거렸다. 표정은 없었지만 즐거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시간이 단절됐다가 다시 시작되고, 다시 시작되고, 또다시 시작되는 건 아닐까요? 사실 성수의 영원함은 유한한 게 아닐까요?”
테네리페의 표정이 단숨에 어두워졌다. 멀리 테이데와 카나리아가 자세를 고쳐 이쪽을 바라보며 으르렁거리기 시작했다. 테네리페의 옷에 붙은 여러 장신구에 음산하고 밝은 불이 비쳤다.
그는 에드먼드의 표정과 행동, 손가락의 사소한 움직임까지 날카롭게 탐색하며 물었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
“성수를 죽일 수 있을지도 몰라요. 확실하게.”
에드먼드가 지붕 위로 피어오르는 연기를 구경했다. 그 앞에 긴장한 채 이를 드러낸 늑대는 보이지 않는 듯, 한 줌의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너무 신기하지 않나요? 모두가 영원하다고 말하는 대지가 사실은 팬케이크처럼 몇 번이나 뒤집어졌을지도 모른다니.”
“…….”
“팬케이크. 하하. 팬케이크라니. 하하하하…….”
에드먼드는 혼자 알 수 없는 지점에서 웃더니 테네리페를 툭 쳤다. 테네리페는 그의 손이 닿은 부분을 털어내며 노골적으로 불쾌해했다.
“그래서 성수를 죽일 수 있는 방법이 뭔데?”
“모릅니다. 그저 성수도 죽을 수 있다는 걸 알았을 뿐이죠. 인간이 죽일 수 있는지는 몰라요. 팬케이크처럼 대지가 뒤집힐 때 죽는 건지, 때가 되면 죽는 건지. 아니면 뱀처럼 허물을 벗었다 깨어나는 걸 죽었다고 표현하는 건지도.”
“성자 주제에 아는 게 없군.”
“그러면 그쪽은, 사령술사 주제에 성자한테 알고 싶어 하는 게 너무 많네요.”
에드먼드와 테네리페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에드먼드는 테네리페보다 작고 가녀렸지만, 겁을 먹은 기색은 없었다. 그는 테네리페 너머의 무엇을 탐색하려 드는 듯했다.
그러다가 불쑥, “아.” 하는 감탄사를 내뱉었다.
“시간이 됐어요.”
불 꺼진 성전 안에서 사령이 우르르 빠져나왔다. 테네리페가 명령한 임무를 마친 것이다. 성수의 생명력을 흩트려 놓고 그의 영역을 더럽힐 것. 사령의 본질에 어울리는 명령이 아닐 수 없었다.
“당분간은 이걸로 괜찮겠죠. 당신은 독을 더 알아보세요. 저도 제 나름대로 브랙큰의 성력을 뺏을 테니.”
“…미친놈.”
테네리페는 이죽거리며 한발 물러섰다. 팔짱을 끼고 에드먼드를 위아래로 훑어본 테네리페가 미심쩍다는 듯 물었다.
“넌 왜 날 돕는 거지? 내 손에 죽기 싫어서인가? 성자라면 성수와 긴밀한 관계일 텐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가.”
“이해?”
에드먼드는 오히려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기울였다.
“왜 저를 이해하려 하시죠?”
“…….”
“저는 당신을 돕는 게 아닙니다. 학자로서 답을 찾고 있을 뿐이에요.”
에드먼드가 가슴에 손을 얹고 성전을 바라봤다. 그가 성자라는 것이 밝혀지고 평생 살아온 공간이었다. 브랙큰은 에드먼드의 삶에서 저주이면서 축복이었다. 동반자였지만 주박이었다.
그러니 이 모든 것에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을 성전에 가둔 모든 원리에 대한 질문을.
“교회가 가르치는 것처럼, 생명의 대지는 영원할까요? 저는 궁금합니다.”
성전 안에서 브랙큰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에드먼드를 부르는 소리였다.
“태초에 심연의 악마와 생명의 대지가 있다고 했습니다. 심연의 악마는 왜 성수를 살려뒀을까요? 지금은 왜 모습을 감췄을까요? 궁금해라…….”
에드먼드는 테네리페를 지나쳐 성전으로 향했다. 그의 발걸음에는 죄책감도 걱정도 무엇도 없었다.
그는 테네리페와 완전히 멀어지기 전,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려 물었다.
“…방금 한 가지가 더 궁금해졌어요. 러스트 경은 왜 이런 일을 하십니까?”
테네리페가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
“…….”
유치해. 에드먼드는 혼자 중얼거리며 성전 안으로 모습을 감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