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has become the older brother of the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107
107화. 오라버니가 응원하는 편이 내 편 (1)
인어는 가족이 없다. 오로지 협력 관계가 있을 뿐이다.
모든 인어는 지능을 갖는 어느 순간, 버려진다. 강한 자는 살아남고, 약한 자는 죽는다.
그렇게 갓 태어난 인어는 본능에 따라 마수와 짐승을 사냥해 가며 살아남았다. 태생부터 강한 종자였기에 가능했다.
괴물의 모습을 빌려 태어난 뒤, 필요에 따라 인간의 모습으로 변할 수도 있었다.
그는 아주 처음부터 알았다.
“나는……. 강하다……. 다른 인어와 달라…….”
어린 인어는 자라나며 점점 더 강해졌다. 다른 인어와 교류하며 자신이 선대 인어 왕의 출생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그러나 그다지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형제들은 어디에나 있었고, 어디에도 없었다.
살아 있는 형제보다 죽은 형제가 더 많았기 때문에, 그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기억할 필요도 없었다.
뿔뿔이 흩어져 사는 것이 익숙한 인어들. 그럼에도 그들이 연합을 이루어 싸우고, 가끔 협력하는 이유는 단 하나.
성수 엘세노테였다.
어린 인어는 다른 인어를 모두 제치고, 성유물을 손에 넣어 성전에 갈 수 있는 권한을 얻었다. 이 또한 그가 강하다는 증거였다.
아무리 강해도 어린애는 어린애. 인어의 성전에 방문한 인어는 호기심으로 가득했다.
“엘세노테 님. 오늘도 주무시고 계신가요? 엘세노테 님, 엘세노테 님은 저와 겨루지 않으시나요?”
그는 틈만 나면 성전에 들락거리며 엘세노테를 찾았다.
깊은 바닷속 아무도 찾지 못하는 곳. 영겁의 시간을 인내한 가리비의 주변에는 진주가 가득 쌓여 있었다. 바다를 지탱하는 마력의 근원이었다.
거대한 가리비는 어린 인어를 반기지도, 쫓아내지도 않았다. 그저 조용히 옆에 있어 줄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로운 진주를 뱉어내며 가리비는 신탁 아닌 신탁을 내렸다.
[범고래 무리가 온다. 그들과 함께하라.]“엘세노테 님!”
웅장하지만 부드러운 음성이었다. 수백 개의 파란 눈동자가 어린 인어를 다정한 시선으로 탐색했다.
[너는 특별하다. 다른 인어에게는 없는 감정을 배울 것이다.]“감정? 좋은 건가요? 강해지는 건가요?”
[약해지는 동시에 강해질 것이다. 모든 것은 너에게 달려 있다.]“저라면 강해질 수 있어요! 강해질 거예요! 그래서 이 바다의 모든 물고기와 싸울 거예요! 제가 그 누구보다 낫다는 걸 보여드릴게요!”
그때까지도 이름이 없었던 어린 인어에게, 엘세노테는 ‘엔비’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질투하는 아이야, 너의 가장 큰 적은 너 자신. 스스로를 다스려야 할 것이다.]그리고 얼마 후.
엘세노테의 말대로, 엔비의 영역에 범고래 무리가 찾아왔다.
평소였다면 그들의 대장과 싸웠을 엔비였으나, 엘세노테의 당부를 되새긴 엔비는 범고래를 받아들였다.
범고래 무리 또한 거부하지 않았다. 그들은 마치 엔비가 올 줄 알았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그를 받아들였다. 싸움을 좋아하지만 현명한 족속들이었다.
엔비는 범고래에게 영역을 누빌 수 있는 권한을 선사했고, 범고래는 그 대가로 여유로운 삶을 함께해 주었다.
그들과 함께 생활하며 엔비의 마력은 그를 범고래와 가까운 모습으로 점점 변화시켰다.
범고래를 따라 바다를 종횡무진하며 인어는 가족을 배웠다. 세상에 가족이라는 협력 관계가 있다는 것을 배웠다.
“범고래는 인어와 달라. 인어처럼 마구잡이로 싸우지만, 싸우는 이유가 있어. 가족 때문이야. 그런데 나는…….”
나만 가족이 없어.
엔비는 자신에게는 가족이 없다는 사실 또한 배워야 했다.
범고래 무리는 엔비를 받아들였지만, 어디까지나 힘과 마력에 굴종한 것이었다. 그를 정성껏 길러낸 것은 엔비 자신이었다. 엘세노테를 향한 본능적인 충성심과 다른 존재보다 더 사랑받겠다는 욕심이 엔비를 만들었다.
엔비의 감정과 범고래의 감정은 섞이지 못했다. 그들은 엔비를 두고 저들만의 감정을 나눴다. 엔비는 수많은 범고래들 사이에서 유일무이한 존재였다. 그저 혼자였다.
“엘세노테 님. 엘세노테 님의 말씀에 따라 범고래와 함께 지내고 있어요. 저는 더 강해지고 있어요. 그런데 왜…….”
엔비는 성전을 찾아 울부짖었다.
“왜 이렇게 약해진 기분이 드는 거죠?”
엘세노테는 대답하고 싶었으나 대답할 수 없었다. 그저 과묵한 척 엔비의 말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오염된 마력이 패각 안에 스미지 못하도록 입을 꾹 다물어야 했다.
성전의 힘이 약해지고 있다. 오래 지나지 않아 엔비를 비롯한 인어들도 이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엘세노테는 운명에 순응하며 눈을 감고 휴식했다.
“제가 약하기 때문에, 대답해주지 않으시는 건가요?”
가련한 인어여. 약하고 강한 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 승부욕에서 벗어날 때, 인어는 비로소 자유로워질 것이다…….
그러나 엘세노테의 목소리는 패각 밖으로 빠져나올 수 없었다.
엔비는 엘세노테의 다정한 수백 개의 눈도, 다시 볼 수 없었다.
“제가 강해진다면 그때는 대답해주시나요?”
[…….]“그렇다면 인어들의 왕이 된다면? 인어들의 왕이 된다면 대답해주시나요?”
[…….]그 무엇도 정답이 아니었으나, 엔비에게는 모든 것이 정답이었다.
“내가 약해서, 부족해서 엘세노테 님이 나를 범고래 무리에 보낸 거야. 나 말고 다른 인어가 곁에 있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하신 거야…….”
어쩌면 이미 다른 인어를 수호자로 선택하신 걸지도 몰라.
엔비의 마음은 분노와 수치로 끓어올랐다. 그가 범고래 무리에서 성장하며 배운 감정은 ‘질투’였다.
“엘세노테 님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게요.”
처음으로 이름을 지어준 존재에게, 엔비는 간절하게 매달렸다.
“강해질게요. 그러니까…….”
어린 인어는 가리비의 단단한 껍데기를 붙잡고 울었다. 눈물은 바닷물의 일부가 되어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나 엘세노테만큼은 침묵 속에서 엔비의 슬픔을 읽었다. 대답할 수는 없었지만…….
“엘세노테 님, 저를 버리지 말아 주세요. 제발…….”
그 어느 날을 기점으로 엔비는 더욱 많이, 자주, 힘껏 싸웠다. 인어, 마수, 짐승을 가리지 않고 싸워 이겼다.
바다의 마력이 약해지는 것을 느낀 이후부터는 특히 마수를 쫓아다니며 퇴치하는 데 힘썼다.
어떻게 해야 더 강한 인어가 되는지도 끊임없이 궁리했다. 다른 인어들을 족쳐가며 정보를 모았다.
“마수 헤일로를 쓰러뜨리면, 인어 왕이 될 수 있어. 바다의 마력이 혼탁해지는 것도 막을 수 있어…….”
엘세노테를 위해 차근차근 강해지고 있던 그 어느 날.
엔비의 바다에 인간이 찾아왔다.
“바다의 주인이라니. 이 넓은 바다에 주인이 있다는 말입니까?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시에라 글러토니. 고집스럽고 괴팍한 라기아가 선택한 인간.
그는 건방지기 짝이 없었다.
“세상에 주인을 부여할 수 있다면, 우리 황태자 전하만큼 적격인 분이 없죠.”
나보다 강한 자는 있을 수 없어. 엘세노테 님의 옆을 빼앗길 순 없어.
엔비의 마음에 깊은 불안함이 일렁였다.
그렇기에 그는,
“아, 혹시 이길 자신이 없습니까?”
하는 단순한 도발에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
“나으리, 그거 아세요? 인어한테는 영혼이 없대요.”
황태자와의 결투 장소로 향하던 길. 피핀이 내게 속닥거렸다.
“그건 또 무슨 헛소리야.”
“제가 책에서 봤어요.”
오늘따라 엔비가 조용하더라니, 이제는 괜히 피핀 녀석이 나서서 헛소리다. 평소였다면 같이 헛소리를 지껄여주었을 상대가 조용해서 그런지, 피핀이 나를 붙잡고 늘어졌다. 엔비는 아침부터 계속 저기압이었다.
단순한 성격이니 황태자와의 결투를 마냥 좋아할 줄 알았는데.
비장한 자세에 더불어 왠지 모를 음울함도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평소와 다른 정도가 아니다.
완전히 다른 사람, 아니 다른 인어 같다.
‘그래도 완전한 바보는 아니라는 건가.’
이번 승부는 누가 이기든 내게 유리했다. 엔비에게는 당연히 불리한 게임이었다.
어떤 방향으로든 놈은 인어 왕의 꿈에서 크게 멀어지게 될 테니까.
하지만 의심스러운 점도 있었다. 지금까지의 행동거지를 살펴볼 때, 엔비의 목표가 꼭 ‘인어들의 왕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워낙 단순한 녀석이니 복잡한 계획을 세우고 있을 가능성은 낮아. 하지만 인어 왕이 되겠다고 강력하게 나서지 않는 걸 보면, 속셈이 따로 있는 게 분명해.’
그저 자존감이 낮을 뿐인가? 하는 짓을 보면 그렇게 보이지도 않는데.
엔비의 태도는 내게 갑자기 수수께끼를 던져준 것처럼 혼란스러웠다.
“그래서 너는 어떻게 생각하는데?”
“예?”
나는 앞장서 걸어가는 엔비의 뒤통수를 노려보며, 피핀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냐고. 인어의 영혼.”
“글쎄요.”
피핀이 대답하기 전, 내 손을 붙잡고 쫑쫑 걸어오던 달리아가 불쑥 달려 나갔다.
“달리아!”
달리아는 데이지의 손을 잡고 엔비에게 매달렸다. 아직 어리지만, 엔비의 기분이 좋지 않다는 걸 눈치채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데이지도 달리아와 함께 엔비에게 어리광을 부렸다.
엔비는 활기차게 두 사람과 놀아주는 대신, 팔을 내려 두 어린아이를 안아 들었다. 기분이 가라앉아 있어도 아이들에게 화풀이는 하지 않는 모습이다.
아이들은 엔비의 조용한 다정함을 읽어냈는지, 투정을 부리지 않고 얌전히 매달려 갔다.
피핀도 나와 다르지 않았다. 피핀이야말로 엔비의 지금 이런 모습이 낯설 것이다.
내가 엔비를 죽이라고 명령한 것도 잊고, 잘만 놀고 있는 피핀이었다. 공작성에서 엔비와 가장 친한 사람을 꼽자면 피핀이 아닐까?
“저는 말이죠…….”
피핀은 나와 보폭을 맞춰 걸으며, 꽤나 진중한 목소리를 냈다.
“책이 틀린 말을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그래.”
“하지만 책이 모든 걸 알고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아요.”
무슨 말인가 싶어 피핀을 쳐다봤다. 놈은 엔비의 뒤통수가 뚫릴 정도로 매섭게 눈을 뜨고 있었다.
“저놈에게는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영혼.”
“그래…….”
나도 피핀을 따라 엔비의 뒤통수를 빤히 바라봤다. 뒤통수만 보고 있는다고 뭔가 알게 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쳐다봤다.
지금 엔비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번 싸움에서, 놈은 영혼이라도 건 걸까?
“인어한테 영혼 있으면 좋겠네. 없으면 아깝잖아.”
또 모르는 일이다. 엔비가 죽어 사령이 된다면, 내가 친히 거둬줄지도.
황태자에게 처참히 패배하러 가는 뒷모습을 보며, 나는 괜히 양심이 아파왔다.
내 선택을 후회한다거나, 엔비가 이길 수 있게 도와준다거나 그럴 생각은 없었다.
그저 내가 좀 더 나빠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 엔비에게 정이 든 게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렇게 애매한 죄책감이 들지 않았겠지.
그러나 죄책감만큼 가볍고 알량하고 허무한 감정이 없다. 죄책감은 자기연민과 닮아있다. 나는 패배를 앞둔 엔비가 아닌, 놈을 패배로 이끈 나의 처지를 불쌍하게 여기는 것이다.
그러니 감정을 죽이고, 지금보다 더 명석해져야 한다.
“나으리, 지금 미안하시죠?”
그런 내 속내를 읽어버렸는지, 피핀이 평소의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돌아왔다.
“내가 뭐가 미안해?”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어요.”
“뭘? 네가 뭘 아는데? 마수 말고는 아는 것도 관심도 없으면서.”
“나으리 표정만 봐도 알아요, 이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