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has become the older brother of the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106
106화. 글러토니의 가훈은 “네 건 내 거, 내 건 내 거” (5)
“네가 손에 넣지 못한 그 많은 마수 사체들은 어떻게 됐지?”
“오키드 주교님이 전부 소각해 바다에 버렸습니다.”
“오키드와 싸웠어?”
“아뇨. 싸우지 않았습니다. 사람과 싸워도 된다는 허락은 받지 않았으니까요.”
군인과 같은 태도. 목석이 따로 없다.
“내가 허락했다면, 마수 사체를 네가 가졌을 텐데. 그렇지?”
“나으리께서 허락해주셨다면 말이죠. 하지만 괜찮습니다.”
“왜? 욕심은 부리면 안 되는 거니까?”
“네…….”
“잘했어. 피핀.”
칭찬도 잠깐.
나는 다정한 척을 집어치우고 냉랭한 눈빛으로 피핀을 내려다봤다.
“하지만 더 잘할 수 있었어.”
“……예?”
“오키드가 너보다 높은 사람이냐?”
“네?”
나는 가벼운 발재간을 멈추고 피핀의 무릎을 콱 밟았다.
“윽! 나으리?”
“오키드가 너보다 높은 사람이냐고. 묻잖아.”
“그건…….”
“대답은 ‘아니오.’야.”
나는 웃고 있었지만 웃는 게 아니었다.
“피핀. 세상은 순진하고 우직한 사람을 알아주지 않아.”
피핀은 마수를 빼앗기고도 퉁명스러운 반응을 보이는 게 전부다. 순진하고 선량하다.
내가 한때 그렇게 살았다. 친척에게 보험금을 뺏기고, 동생의 입원실을 저당 잡히고, 반지하를 전전했다.
내가 선량했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선량함은 곧 어리석음이었기 때문에.
“다음부턴 싸워라.”
“…네?”
“네가 원하는 게 있으면 쟁취해. 엔비 님을 본받아. 뺏고, 싸우고, 먹어.”
“나?”
“지금 엔비 님 얘기하는 거 아니에요.”
피핀의 동공이 흔들렸다. 나는 팔을 내려 피핀의 뺨을 두어 번 가볍게 때렸다. 피핀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눈을 끔벅였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도통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하지만…….”
그래. 피핀 네가 혼란스러워하는 것도 이해가 가. 나도 지금 그러니까.
피핀이 마수를 빼앗겼다는 사실에 왜 이렇게까지 자존심이 상할까.
왜 저 순진한 얼굴에서, 과거의 나를 겹쳐보게 되는 걸까.
‘이제 알겠다. 내가 피핀을 왜 주워 왔는지.’
피핀이 순진하기 때문에 불쌍했다. 구해주고 싶었다. 두고 볼 수 없었다.
그 마을에 두고 오면 벌어질 뻔한 일들. 타이머스가 구하러 올 때까지, 심지어는 타이머스에게까지 빼앗기고 이용당할 피핀의 삶.
내가 가져오고 싶었다. 정확히는 ‘돌려받고’ 싶었던 거겠지.
내가 잃었던 권리, 자존심, 가족을 향한 의리를.
나는 그 마을의 촌놈 피핀이 아니라, 과거의 나를 이곳에 데려온 것이다. 누이를 잃은 어리석은 ‘나’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서…….
“네 주인이 누구지?”
“나으리시죠…….”
“그래. 이 제국에서 황태자에게 덤빌 수 있는 유일한 공작가의 주인. 그게 네 주인이다.”
그게 나다. 그러니 싸워도 되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나는 피핀이 아닌, 과거의 어리숙한 나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
왜 그렇게 물러섰냐고. 왜 그렇게까지 빼앗겨야 했냐고.
이렇게까지 감정이 동요되는 걸 보면, 내가 피핀에게 정이 들긴 했나 보다.
“지금부터 허락해주마. 하고 싶은 대로 해. 마수가 갖고 싶다면 가져. 죽이고 싶다면 죽여. 네 뒤에 누가 있다고 생각해?”
“나으리가 계시죠……?”
“그래. 잘 아네. 융통성을 길러. 욕심을 부려보란 말이야.”
“욕심…….”
내가 나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욕심부리자.’
그래. 이기적으로 살자.
내가 원하는 것들을 더 이상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내 사람이 손해 보는 꼴도.
더 이상 두고 보지 않을 것이다.
“평소엔 내 말도 안 듣고, 재잘재잘 불평불만도 많으면서. 왜 이럴 땐 바보처럼 굴어. 주인님 속상하게.”
“죄송합니다.”
“알면 내 얼굴에 먹칠하지 마.”
나는 테이블 위의 과자를 하나 더 집어, 피핀의 입에 욱여넣었다. 피핀은 뭣도 모른 채 과자를 받아먹었다.
“웁, 우음?”
“맛있냐?”
피핀은 오묘한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맛없나 보다. 나는 애처로운 눈빛을 무시했다.
“그래. 맛있게 먹어.”
“웝…….”
“빼앗긴 마수는 내가 황태자한테 청구할 테니까. 집에 가서 선물 보따리 챙길 생각이나 해.”
피핀이 뻑뻑한 과자를 억지로 씹어 넘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그래. 감사해야지.”
잠자코 우리 대화를 듣고 있던 엔비가 불쑥 손을 들었다.
“시에라, 시에라!”
“네. 말씀하세요.”
“나도 마음대로 해도 돼?”
“이미 마음대로 하고 계시잖아요.”
“그건 그래! 아하하하!”
피핀이 미친놈 보듯 엔비를 노려보다가 어깨를 밀쳤다.
“나는 나으리의 호위 기사니까 허락받는 거고. 너는 밥벌레잖아.”
“밥벌레! 밥벌레가 뭔지 보고 싶다! 바다에도 벌레가 있지. 싸울 가치는 없는 놈들이지만.”
“이런 생선 대가리…….”
“생선 대가리라니! 너는… 내가 놀리지 않기로 결심한 걸 감사히 여겨야 한다.”
엔비와 피핀이 평소처럼 싱거운 말싸움을 벌이는 것을 구경하며,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참. 그리고 엔비 님.”
“응!”
“내일 결투 하나 하시죠.”
“오오!”
엔비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시에라! 나랑 싸울 마음이 든 거야? 너, 혹시 강하냐?”
“저 말고. 상대가 따로 있습니다.”
호기심 어린 눈동자가 나를 향했다. 나는 과자를 두 동강 내며 웃어 보였다.
“타이머스 황태자와, 다시 한번 붙어보세요.”
“황태자라면……. 그때 그 노란 친구 말이지? 마력이 대단했던!”
“네. 그 친구요. 그 노랗고 강한 친구.”
“오오오!”
엔비가 신이 난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좋아! 그때 제대로 싸우지 못해서 아쉬웠는데! 이곳에 오니 좋은 일만 생기는구나!”
“엔비 님이 좋아하시니 저도 기쁘네요.”
나는 웃고 있었지만, 이 싸움의 ‘패배’를 예상하고 있었다.
배 위는 타이머스가 실력을 발휘하기에 불리한 공간이었다. 핸디캡이 없는 순수 전투력으로 따진다면, 타이머스가 엔비보다 한 수 위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나는 말해줄 생각이 없었다.
엔비는 싸움을 좋아할 뿐이고, 타이머스는 내게 이용될 뿐이고.
나는 손해 볼 게 없다. 내가 손에 쥘 것은 오로지 이득뿐.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뭔데?”
나는 속셈을 숨기며 다정한 척 웃었다.
“엘세노테의 성전에 갈 수 있게 해주는 성유물.”
“…….”
엔비의 표정이 묘하게 굳어졌다.
“패배의 대가로, 엘세노테의 피리를 거십시오.”
“그건…….”
놈의 기세가 단숨에 사그라들었다. 엘세노테의 피리는 한 번의 싸움을 위해 걸 만한 물건이 아니었다.
인어왕이 되기 위한 필수품이자, 엔비의 자랑일 테니까.
“다른 조건은 없나? 엘세노테 님의 피리는…….”
엔비가 세차게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그건 내가 얻은 영광스러운 전리품이야. 쉽게 넘겨줄 순 없다. 엘세노테 님에게 인정받았다는 증거라고!”
멍청이. 역시 단순한 엔비다. 내가 엘세노테의 피리를 어떻게 알고 있는지 궁금하지도 않나 보네.
“엘세노테 님의 피리만큼은 절대 안 돼.”
엔비는 단호한 태도를 보였다.
뭐 이 정도는 예상했다. 보통 물건이 아니니까.
처음부터 엔비가 쉽게 설득되리라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쪽도 할 말은 있다고.
“바다에서 빈손으로 건너온 당신에게, 전리품으로 내걸 수 있는 물건은 많지 않습니다.”
“……그건.”
“저를 따라 육지로 온 이유. 강자와 싸우고 싶다. 새로운 경험을 하고 싶다. 이거 아닙니까? 그 기회를 포기하시려고요?”
“…….”
“지금까지 놀고먹기 위해 육지에 있었던 겁니까? 인어 왕의 자리까지 노렸던 당신이?”
나의 목소리는 절로 능글맞아졌다.
“저는 기회를 드리는 겁니다.”
“기회라고……?”
엔비의 눈에 고민이 서렸다. 그 나름대로 인생을 건 도박에 전 재산을 배팅하는 기분이리라.
“승리하면 난 뭘 얻을 수 있지?”
“뭘 원하십니까? 상대는 제국… 아니. 인간계의 지도자입니다. 바라시는 건 뭐든지 얻을 수 있죠.”
어차피 공수표였다.
‘엔비 넌, 타이머스에게 이길 수 없어.’
이길 수 없는 정도가 아니다. 격차가 상당할 것이다.
타이머스는 강하다. 그는 세계관이 밀어주는 강자였다. 체계적인 훈련과 천부적인 재능으로 점철된 괴물.
마구잡이로 싸워온 바다 양아치는 몇 번을 덤벼도 승산이 없다.
‘그러니 이번 결투는 중요해. 타이머스가 얼마나 강한지 알아보는 지표가 될 테니까.’
한참 고민하던 엔비에게, 나는 미끼를 던졌다.
“무엇을 받아야 할지 고민되신다면, 제가 결정해드릴까요?”
“시에라, 네가?”
“엘세노테 힘이 약해진 지금, 마수 헤일로가 바다 위에서 날뛰고 있습니다. 이건 바다에서 온 엔비 님이 더 잘 아시겠죠.”
“그래. 그건 왜……?”
나는 엔비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목소리를 더 낮췄다.
“엔비 님 혼자서는 헤일로를 쓰러뜨릴 수 없었을 겁니다. 제 말, 맞습니까?”
“…….”
싸움을 좋아하는 엔비가, 피리를 그저 장식용으로 들고 다녔을 리가 없다.
엘세노테의 피리를 이용하면 엘세노테의 성전으로 갈 수 있다. 힘이 약해진 엘세노테는 기꺼이, 또 다른 성유물인 진주를 내어줬을 터. 엘세노테의 진주는 소모품으로, 한두 개가 아니다.
엔비는 진주를 이용해 언제든 몇 번이든 헤일로를 불러냈을 것이다.
바다의 어머니, 엘세노테를 구하기 위해서.
‘하지만 패배했을 것이다.’
당연한 얘기였다. 엔비가 헤일로를 물리쳤다면, 엔비의 손에는 헤일로를 쓰러뜨려 얻을 수 있는 왕의 증표가 들려 있었겠지.
그때 그 마수 토벌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타이머스가 긴장하며 헤일로를 찾았을 리가 없다.
엔비는 패배한 것이다. 헤일로와의 싸움에서.
“…시에라. 네가 감히 나를 무시하는구나.”
엔비의 송곳니가 날카로워지며 입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도발에 넘어간 범고래의 흰자위가 검게 변해갔다.
피핀이 검에 손을 대며 긴장할 정도로 무시무시한 광경이었지만, 나는 꿋꿋이 웃었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 법이니까.
“인간에게 헤일로를 떠넘기세요.”
“그게 무슨 뜻이지?”
“황태자와 싸워 엔비 님이 이기신다면, 인간들이 헤일로 그 괴물을 대신 물리쳐 드리겠다는 말입니다.”
나는 이긴다.
그 어떤 도박에서든.
“그때의 약속을 기억하십니까? 바다 위에서. 엔비 님은 제게 헤일로를 잡을 수 있는 권리를 약속하셨죠.”
“할 수 있으면 해 봐. 헤일로를 불러내려면 엘세노테 님의 진주가, 그분의 허락이 필요해.”
엔비가 씩씩거리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엘세노테 님은 인간 따위가 함부로 만날 수 있는 분이 아니다.”
“그 말은 즉, 처음부터 엔비 님은 저에게 헤일로를 넘길 생각이 없었다는 거겠죠.”
“…….”
정곡을 찔린 엔비가 침묵했다.
역시나.
엔비는 마수 토벌 당시, 내게 헤일로를 넘겨준다고 했으면서도 소극적인 반응을 보였다. 엘세노테의 진주는 줄 수 있지만, 엘세노테와 만나게 해줄 수는 없다는 둥 까다롭게 굴었지.
그건 결국 내가 헤일로를 불러내지 못하게 하려는 수작에 불과했다.
하지만 나는 멍청한 엔비의 머리 꼭대기에 서 있다. 결국 이 판은 내가 원하는 대로 흐를 것이다.
“엘세노테 님을 생각해 보십시오. 헤일로 때문에 성력이 약해져 고통받는 엘세노테 님을.”
“…말이 안 돼. 내가 이기면 헤일로를 나 대신 물리쳐 준다고? 나보다 약한 자가 어떻게 헤일로에게 대항한다는 거냐!”
“상대는 타이머스 황태자입니다. 그는 모든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전력도, 전략도.”
나는 마지막 쐐기를 박았다.
“당신은 인어 왕이 아니지만, 황태자는 인간들의 왕이거든요.”
“…….”
엔비는 으르렁거리는 것을 멈추고, 다시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
1초, 2초, 3초.
고민은 길지 않았다.
“알겠다.”
엔비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이긴다면 너희 인간의 힘을 동원해 헤일로를 쓰러뜨려다오. 내가 진다면, 엘세노테의 피리를 넘기겠다.”
엔비는 꽤나 비장하게 중얼거렸다.
“내가 인간에게조차 진다면, 엘세노테 님을 뵐 자격 또한 없다는 뜻이다.”
그렇지. 이렇게 나오셔야지.
“엘세노테 님을 위해서 싸우겠다.”
“그 깊은 정성, 엘세노테 님도 알아주실 겁니다.”
엔비는 나의 함정에 완전히 빠졌다.
엔비가 이겨도, 져도 승리는 내 것이었다. 어차피 그에게 걸린 상품은 조삼모사. 엔비에게 떨어지는 보상은 이 싸움 그 자체다.
“타이머스 전하에게도 이렇게 전해두겠습니다.”
결투에 걸 상품이 정해지자마자, 멀리 던져둔 라기아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아하하하하하하! 이거 일이 웃기게 돌아가잖아? 우리 아기 고래가 이렇게 어리석을 줄이야! 아하하핫!]객실은 라기아의 잔인한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
[시에라 글러토니. 악마가 따로 없구나!]최고의 칭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