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has become the older brother of the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11
11화. 상사도 산타도 속마음을 꿰뚫어 보며 먹고 산다 (6)
달리아는 내게 억지로 책을 떠넘겼다. 무뚝뚝한 얼굴에 미소 한 점 띠지 않은 게 퍽 무서웠다. 앞으로 하게 될 사령술보다 동생 교육이 더 고될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도대체 자기 몸통만 한 책을 어떻게 들고 온 거야? 책 표지에는 크고 섬뜩한 글씨체로 마수 도감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 옆에는 ‘어린이용’이라고 적힌 종이가 알량하게 붙어 흐느적거렸다.
“꼬마 아가씨가 착각하나 본데, 이 오라버니는 놀러 가는 게 아니야.”
널 위해 사람 하나 묻으러 가는 거지.
“하지만 이렇게까지 부탁하니 선물은 신중하게 생각해서 골라오겠어. 네 생각과 조금 다를지도 모르겠지만 최대한…….”
달리아의 무뚝뚝한 얼굴에서 나는 일말의 기대감도 찾아볼 수 없었다. 보고 있자니 조금 맥이 빠지는 기분이 든다.
“최대한 알록달록한 도마뱀을 구해볼 테니까. 너는 얌전히 저택에서 기다리는 거야. 이 밤에 혼자 돌아다니지 말고. 알았어?”
“예.”
“완전 고집쟁이야.”
지독하게 고집이 센 부분도, 어쩐지 내 ‘동생’을 떠올리게 했다. 달리아에게 잘해주는 것이 부족한 오빠로서 내가 속죄할 수 있는 길처럼 느껴졌다.
달리아는 표정 변화가 적어서, 내 반응에 만족했는지 아닌지 알아보기 어려웠다.
“달리아, 너는 앞으로 어린애답게 웃는 법을 배워야겠다. 애들은 미리미리 웃어둬야 해. 나이가 들면 들수록 헛웃음 지을 일만 늘어나니까.”
“공작님, 아직 다섯 살밖에 되지 않은 아가씨에게 무슨 말씀을……. 게다가 도련님도 아직 어리신걸요.”
달리아가 무언가 더 말할 듯 우물쭈물하는데, 저 뒤에서 후다다닥 엄청난 속도로 뮤리엘이 달려왔다. 중년의 유모가 낼 수 있는 속도가 아니었다. 카리스마 특성이라는 건 혹시 달리기에도 발휘되는 걸까.
“아가씨! 방에서 주무시는 줄로만 알았는데! 문단속을 단단히 해뒀는데 어떻게 나오신 거죠?”
“창문으로…….”
“예에? 일단 이리 오세요!”
속절없이 끌려가는 달리아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한 다음, 나는 마차에 올랐다. 그리고 달리아가 준 마수 도감을 살펴봤다.
마수 도감에는 시종들이 달리아의 동심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역력했다. 끔찍한 괴물들의 그림은 어딘가 묘하게 지워져 있었고, 설명 부분에는 새로운 종이가 붙어 있었다.
달리아가 갖고 싶어 하는 살육에 미친 용은, 개중에서도 가장 극악무도한 생김새에 지독한 파괴력을 지닌 괴물이었다.
이 나이대 애들은 원래 공룡에 열광하곤 하니까 뭐, 그런 느낌인 거겠지? 판타지 세계의 티라노사우루스인 거겠지?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거겠지?
나는 마수 도감을 덮어버렸다.
“그나저나 마수를 선물로 달라니. 달리아 아가씨는 독특하시네요. 마수 도감을 좋아하는 어린이는 처음 봐요.”
단델이 마수 도감을 기웃거리며 해맑게 말했다. 나는 단델의 머리 위 하트를 손으로 잡아 뽀갤 수 있나 생각하다가, 창으로 시선을 돌렸다.
괜찮겠지. 공룡은 어린이의 영원한 아이돌이니까…….
***
길들일 수 없는 마수가 들끓는 야생. 제국의 손이 닿지 않는 숲의 가장자리에도 사람은 살아간다. 사람들을 지키고, 마수에게 복수하기 위해 슬로스 용병단이 탄생했다.
누구나 용병을 고용해 마수로부터 보호받아야 한다는 정의로움으로 뭉친, 일종의 자경단에 가까운 집단이었다.
슬로스 용병단은 재야에 묻힌 인재를 신분에 상관없이 흡수하며 빠르게 성장했다. 마수에게서 떨어지는 부산물은 귀족의 사치품으로 팔려나갔다.
현재 슬로스 용병단은 아마추어 상단을 겸비해 그 부피를 더욱더 키워나가는 중이다.
슬로스 용병단에서도 검사 카쿠는 대단하기로 유명했다.
그는 용병단에서 독보적인 활약을 보이다가 잠적한 은둔 고수다.
엄청난 완력과 빼어난 실력을 다 갖춘 마수 토벌의 귀재. 그는 한때 슬로스 용병단의 상징 같은 존재였다.
그러나 영웅도 퇴근이 필요한 법. 거듭되는 전투에 질린 그는 작은 산골 마을로 잠적해 들어온다. 그리고 버려진 소년 피핀을 만난다. 고아인 피핀은 카쿠를 지극히 따르며, 후에 그의 수제자로서 검술과 무술을 배워 황태자를 보필하는 용사가 된다.
용사 피핀, 잠꽃의 남주인공 중 하나.
남주인공으로서 피핀은 크게 성장하다 못해 마수의 씨를 말리는 인물이었다. 게임 속에서 보자면 황태자 다음가는 실력자다.
애송이일 때 싹을 잘라야 한다.
나의 계획을 모르는 단델은 소풍이라도 온 듯 설레발을 쳤다.
“슬로스 용병단이라니 너무 떨려요. 마수 토벌에서 크게 활약한 영웅들이 있는 곳이잖아요.”
“우선 나는 마을에 들러 묵을 곳을 정하고, 마을 사람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살펴보고 싶어.”
피핀 녀석이 어디에 숨어 있는지 확인해야 하니까.
“용병단에 가는 건 다음 순서야. 우리가 가는 지역은 수도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어떻게 운영되는지 잘 알려지지 않았어. 튼튼한 나무는 가지 끝까지 양분을 전해줘서 이파리를 피워내는 법이야. 아무리 보잘것없는 마을이라도 내가 공작인 이상 내 책임이지.”
“와아아, 역시 공작님이세요. 공작령 끄트머리에 사는 사람들에게도 관심을 가져주시다니.”
[♥♥♥]순진한 단델의 호감도가 살짝 오르는 게 보였다. 하트 한 개가 추가로 깜박이는 걸 보며, 모르는 척했다. 좋은 게 좋은 거지……. 가끔은 모르는 게 약이다.
마차는 한나절을 달렸다. 워낙 구석에 있는 마을이라 들어가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하룻밤은 야영이 필수였다.
다행히 마차가 널찍했기에 잠을 자기에 부족함은 없었다. 공작인 나는 마차 안에서 호화롭게 숙식하고, 마부와 단델은 모닥불을 피우며 마차를 지킬 예정이었다.
“공작님은 마차 안에서 쉬고 계세요. 금방 야영 준비를 마치겠습니다.”
“아, 그럼 난 잠시 산책을 좀 할게. 근처에 있을 테니 굳이 찾을 필요 없어. 귀찮으니까.”
“네! 해가 지기 전에 돌아오십시오!”
단델과 마부가 야영장을 꾸리는 사이, 나는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근처에 수풀이 우거진 호수가 있어 몸을 숨기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사령술사로서 마법을 연습해볼 기회였다.
이내 나는 일행의 시야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호숫가는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 나무와 풀이 제멋대로 우거져 있었다. 낯선 생물들이 기척을 내며 내 주위를 배회하다가 사사삭 달아났다. 해가 뉘엿뉘엿 지는 타이밍이라 조금 섬찟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정도면 내가 무슨 마법을 시험해보든, 남들 눈에 띄는 일은 없을 것이다.
우선 지난번에 한 번 사용해 본 마법부터 다시 연습해볼까?
“불꽃놀이!”
상태창과 기억을 헤집어가며 마법을 시전했다. 그러자 내 눈앞에 나타난 건, 시커먼 연기였다. 먹구름보다 음침한 연기 속에서 창백한 전류가 치직치직 불타다가 사라졌다.
“어? 내가 기억하는 마법이랑 너무 다른데? 그때는 좀 더…….”
뭔가 이상하다. 나는 몇 번이고 불꽃놀이를 사용했다. 그러나 결과는 같았다.
장례식장에서 본 화려하고 아름다운 이펙트는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 생일 파티를 부숴버리러 찾아온 저승사자의 트림 같은 연기만 뿜어져 나왔다.
누가 봐도 사령술사의 스킬이었다. 사령술사라면 이 정도 시커먼 스킬은 써야 면이 서겠다 싶을 정도로 어두컴컴한 이펙트다.
“이걸 장례식에서 그대로 썼다면…….”
오한이 들었다. 팔이 서늘해지는 것 같아 싹싹 문질렀다. 장례식에서 이런 저승사자 트림을 선보였다간 악마로 몰렸거나 바로 입지가 좁아졌을 것이다. 주교를 매수하기는커녕 밉보여서 뇌물을 바쳐가며 빌빌 기었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오만한 판단이었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으나 다행히 위험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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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오만 – 상시 방어력 하락 효과를 받지만, 호감도를 빠르게 올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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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따라 상태창의 성격 설명이 거슬린다.
“한 번 실수한 것뿐이야. 오만한 성격이라니 말도 안 돼. 다음부터 실수는 없어.”
좀 더 내 마법에 대해 치밀하게 알면 문제없을 것이다.
“마법 스승을 구한다면, 일반적인 기술도 사용할 수 있을 텐데.”
게임 속에서 시에라가 허접한 마법을 배운 이유를 이제 알 것 같았다. 어쩐지 급에 안 어울리는 마법 학교나 뒷골목을 어슬렁거리며 스승을 찾아다니더라니. 사령술사 마법을 쓰기 껄끄러웠기 때문이었다.
마법 스승은 언제 찾아? 귀찮다. 하지만 이것도 잘 먹고 잘살기 위한 노력이다.
“이번엔 제대로 잘살아 볼 생각이잖아! 노력하는 것도 재능이다! 나는 재능이 있는 사람이야!”
스스로를 다독이며, 나는 가장 중요한 스킬을 열어보기로 했다.
바로 [죽음의 문], 그리고 [사령 소환].
음침한 마법, 남들 안 볼 때 쓰면 되는 게 아닌가.
“지금껏 전전한 직업이 수십 개인데, 사령술사 하나 더 추가하는 건 문제도 아니지.”
나는 자세를 바로 하며 천천히 커맨드를 사용했다.
“죽음의 문!”
팔에 알 수 없는 감각이 모였다. 이내 눈앞이 조금 컴컴해지는 거 같았고, 눈앞에 길이 보였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어떻게 움직여야 죽음의 문을 열 수 있는지, 어느 방향으로 힘을 흘려보내야 귀신을 홀릴 수 있는지.
허공을 찢는 듯 팔로 반원을 그렸다. 나의 행동에 맞춰 허공에 검게 불타는 궤적이 그려졌다. 불꽃놀이를 사용할 때보다 침울하고 차가운 기운이 온몸을 감쌌다.
곧 궤적을 따라 검게 녹슨 듯한 강철의 문이 나타났다. 옅은 빛이 푸르게 점멸하며 문에 새겨진 문양대로 길을 만들었다.
“이게 죽음의 문…….”
-이라기보다 맨홀 같아…….
창백한 맨홀에서는 음울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확실히 죽음의 문이라 불릴 만한 위용이다.
크기나 모양을 생각하면 확실히 맨홀 같지만, 그래도 이름이 죽음의 문이니까 뭔가 대단한 게 숨겨져 있을 것이다. 죽음의 문이니까. 그냥 문도 아니고, 앞에 ‘죽음’이 붙어 있으니까.
사령은 영혼이니까 이 정도 문은 통과하거나 압축 포장해서 나온 다음에 커진다든가 자기만의 방법이 있을 것이다.
내가 원래 살던 세계에서는 말이야, 공포영화의 귀신도 조그만 구식 텔레비전을 잘도 통과해 나왔다. 이 세계의 귀신도 그래야 한다.
제발, 시에라. 아무리 네가 보잘것없는 겁쟁이 허수아비 공작이었어도, 사령술 능력만큼은 괜찮았다고 말해줘!
“사령 소환.”
나는 죽음의 맨홀에 손을 가져갔다. 나의 생기가 문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기묘한 감각이 찾아왔다. 그에 반응하듯 문틈 사이로 검은 아우라가 피어오르며 치지이익- 소리를 냈다.
“…….”
그러나 맨홀, 아니 죽음의 문은 열릴 생각도 하지 않았다. 대신 ‘삐롱’ 하는 경박한 소리가 내 시선을 끌었다. 상태창이었다.
[소환할 수 있는 사령이 없습니다.]순간 핑하고 어지럼증이 돌았다.
사령을 소환하지 못한다는 말이 어이없어서이기도 했지만, 마력 소모가 큰 탓이었다. 긴장이 풀리는 동시에 죽음의 문이 파삭 부서져 사라졌다.
별것 아닌 맨홀 뚜껑 불러내는 데 이렇게 힘이 들다니.
다리가 후들거려 털썩 풀밭에 주저앉았다. 어질어질한 머리를 붙잡고 상태창을 확인했다. 문제는 단박에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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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눈 : 떠도는 사령을 볼 수 있습니다.
-죽음의 문 : 죽음의 문을 소환합니다.
-포획 : 떠돌이 사령을 붙잡아 사역마로 만듭니다.
-사령 소환 : 죽음의 문을 소환해 사령을 불러들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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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획. 이 한 단어가 나를 굳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