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has become the older brother of the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128
128화. 돈은 쓰라고 있는 것 (1)
예상했던 부탁 중 가장 불편한 부탁이 튀어나왔다. 데지데리움이 찾는 ‘폭풍의 주인’이란 분명 아네모네일 것이다. 안 그래도 강한 그 멧돼지가 폭풍의 용까지 부리게 된다면…….
“폭풍의 주인은 왜 만나고 싶은 건데? 세계정복, 뭐 그런 무시무시한 걸 원하는 건 아니지……?”
나는 제발 아니길 바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데지데리움은 달리아가 붙여놓은 우스꽝스러운 통역기를 단 채, 어찌 보면 사악하다 느껴지는 웃음을 지었다.
[그가 내 주인에 합당한지 실력을 겨뤄보고 싶다.]아네모네와 싸워보고 싶다고?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희소식이었다.
“좋아! 만나게 해주지!”
“나으리! 정말요? 드워프를 찾으러 간다고요?”
아네모네가 아무리 강해봤자, 용과 싸워 이길 수 있을 리가 없다. 폭풍의 용이 그 괴물 같은 캐릭터를 직접 쓰러뜨려 주겠다는데 거절할 이유가 있을까.
“우선, 드워프부터 찾고. 폭풍의 주인인지 멧돼지인지 잡으러 가자. 어때.”
데지데리움과 나는 눈싸움을 하듯 강렬하게 시선을 맞부딪치다가 서로 웃어젖혔다.
재주는 용이 부리고 나는 이득만 챙기면 될 일이었다.
***
데지데리움의 말을 들어본 결과. 드워프가 사는 곳은 여기서부터 아주 멀리 떨어진 곳이었다. 지도의 장식처럼 그려진 거대한 산맥의 귀퉁이에 드워프의 보금자리로 가는 입구가 있는 모양이었다.
마차를 타고 갈 거리는 아니었다. 길고 지난한 여정이 될 터였다. 가려면 데지데리움을 타고 가야 했다. 데지데리움은 흔쾌히 탈것이 되어주겠다고 약속했는데, 문제는 피핀이었다.
“저는……. 저는…….”
피핀은 몸부림을 치며 괴로워했다. 드워프를 찾아가고는 싶은데, 멀미를 도저히 견딜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며칠 동안 날아야 하는 만큼, 멀미를 하는 피핀에게는 무리한 여정이 될 터였다. 피핀은 30분에 한 번씩 구토를 하려 들 테고, 그런 놈을 달래느라 내 진은 쭉 빠지겠지.
“너는 가지 않는 게 좋겠다.”
“하지만…….”
“멀미하지 않을 자신 있어? 한 번 타면, 반나절이고 하룻밤이고 용 위에 있어야 할 텐데?”
“…….”
한참을 고민하던 피핀은 기권했다. 멀미가 무섭긴 한 모양이었다.
“피핀이 못 간다면…….”
이번 여정에 많은 일행을 데려갈 수는 없었다. 데지데리움은 애당초 탈것이 아니니, 많은 사람을 태우고 이동할 수 없다. 더군다나 헤일로의 머리뼈까지 가져가야 하는 상황이다. 일행은 적을수록 좋았다.
가는 길이 위험할 수도 있으니, 혼자 가고 싶지는 않고.
“코카. 나랑 같이 어디 좀 가자.”
며칠 만에 보는 코카는 부쩍 안색이 좋아져 있었다. 호위 임무가 없는 평소에는 알베르토를 도와 이런저런 잡무를 도맡아 하는 모양이었다.
“아, 공작님! 외출하시나요? 마침 알베르토 집사장님이 주신 임무를 마쳤습니다.”
코카는 알베르토가 탐내는 인재였다. 글도 읽을 줄 알았고, 계산에도 빠삭했다.
세상 물정 모르는 피핀보다는, 코카를 데려가는 게 확실히 유리할 것이다.
“어디로 가시려는 거죠? 집사장님께 잠시 자리를 비운다고 말씀드리고 오겠습니다.”
“별 건 아니고. 피핀이 쓸 무기를 사려고.”
“무기 말씀이신가요……? 하긴……. 지금 피핀 경은 아무거나 집히는 대로 쓰고 계시죠…….”
“말 나온 김에, 지금 갈까? 바쁜 일 없지? 있어도 상관없지만.”
나는 코카를 끌고 데지데리움이 있는 곳까지 갔다. 코카는 잠자코 따라오다가, 내가 정원의 으슥한 뒷골목으로 향하자 의아해하기 시작했다.
“무기를 사러 가신다면서 공작성 뒤로 왜…….”
“사러 갈 거야. 그냥 조용히 따라와.”
이내 피핀이 작업실로 쓰는 오두막이 나오고, 그 너머 데지데리움의 거대한 등지느러미가 모습을 드러냈다. 초록색이 감도는 용은 얼핏 보기엔 정원의 일부 같았다. 그러나 데지데리움이 몸을 쭉 폈을 때, 코카는 내 어깨를 붙잡고 벌벌 떨었다.
“고, 공작님! 저게, 저게 뭔가요!”
“저거라니. 용이야. 타이머스 전하께서 맡기신 손님이니까 정중히 대해야 한다?”
“용이요? 용이 왜 이런 곳에……!”
코카는 데지데리움 앞에 나서고 싶어 하지 않았지만, 내가 끌고 가니 못 이기는 척 따라왔다.
[새로운 인간이로구나.]데지데리움이 코카를 구경하기 위해 몸을 길게 늘였다. 코카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내 뒤로 숨었다.
“서, 설마…….”
코카는 울먹이는 목소리에 가깝게 내 귓가에 속삭였다.
“저 용을 죽인 뒤에 그 전리품으로 무기를 만드실 건가요?”
참으로 모순적인 감정을 담은 음성이 귀를 간질였다.
겁에 질려 있는 듯하지만, 코카의 목소리에는 오싹한 살기가 담겨 있었다.
“죽일까요……?”
마치 내가 ‘죽이라’ 명령하면, 정말 죽일 수 있다는 듯한 태도였다.
“손님이라니까.”
나는 코카를 데리고 데지데리움의 앞으로 나아갔다. 코카는 쭈뼛거리더니, 마치 귀족을 만난 듯 용에게 고상하게 인사했다.
데지데리움은 인간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했고, 이해할 생각도 없었다. 그는 다짜고짜 킁킁거리며 코카의 냄새를 맡았다. 콧바람이 어찌나 센지 코카의 머리가 나부낄 정도였다.
“바, 반갑습니다?”
코카가 데지데리움과 인사하는 동안, 피핀이 헤일로의 머리뼈를 가져왔다. 뿐만 아니라 데지데리움을 타고 갈 때 쓸 만한 안장과 고삐도 만들어왔다.
“마수 가죽으로 만들어봤어요. 재단이 예쁘게 되지는 않았지만, 쓸 만할 거예요. 이번에 가져온 마수 가죽은 제가 만져본 가죽 중에서 최고였어요.”
자랑스럽게 말하는 피핀은 어째서인지 입맛을 다시는 것처럼 보였다. 마수에 미친 녀석다웠다. 어쩌면 저 녀석, 남들이 보지 않는 사이에 마수 고기도 먹었을지 모르겠다. 나한테도 마수 고기를 요리해 준 녀석인데 오죽할까. 배탈이나 나지 않으면 다행이지. 저런 놈이 어울리지 않게 멀미라니.
“알베르토한테는 네가 말해줘. 잠시 다녀올 곳이 있다고.”
피핀에게 언질을 주며 데지데리움 위에 안장을 얹었다. 피핀은 내 말을 듣더니 미간 일그러뜨리며 고개를 마구 저었다.
“설마 아직 말씀 안 하셨어요? 집사장님이 걱정하실 텐데요?”
“그러니까 걱정 안 하게 네가 잘 말해줘.”
“제가 어떻게 잘 말해요! 저더러 대신 혼나라는 뜻이잖아요!”
“네가 이제야 말이 통하는구나.”
피핀의 머리를 가볍게 헝클인 나는 가방을 챙겨 멘 뒤 데지데리움 위에 올라탔다. 코카도 엉거주춤 내 뒤에 앉았다.
[인간은 무척 신기한 생물이야. 용의 등에 타고 다닐 생각을 하다니.]“마음이 바뀐 건 아니지? 우리를 드워프가 있는 곳까지 데려다준다며.”
[그런 게 아니다. 그저 인간이 신기할 뿐이야. 짧은 팔다리를 열심히 움직이며 산다는 건 경이로운 일이지.]“아 그래…….”
피핀은 데지데리움의 위에 몇 가지 짐을 더 실어주었다.
“나으리가 없는 동안 아가씨가 심심해하시겠네요.”
“피핀, 달리아도 잘 부탁해.”
“그건 걱정 마세요.”
[이제 출발하겠다. 폭풍보다 빠르게!]짧은 당부가 끝나기 무섭게 데지데리움은 날개를 활짝 펼치더니 솟구치듯 날아올랐다. 중력을 거스르는 스릴을 즐기며 고삐를 바짝 쥐었다. 뒤에 앉은 코카가 새처럼 높은 소리로 비명을 질렀다.
“공작님! 우리! 무기 사러 가는 거! 맞죠!”
“꽉 잡아!”
“아아아아아!”
코카의 비명은 바람을 가르는 소리에 점점 아득해져만 갔다.
“기절하면 안 돼! 떨어지니까!”
그 소리에 번쩍 정신이 들었는지, 코카가 나를 꽉 붙들었다. 어찌나 세게 잡는지 몸이 반으로 접히는 기분이 들었다. 암살자 아니랄까 봐 이럴 때 기습공격이냐고!
“야! 날 죽일 셈이냐! 숨 막혀!”
“저도, 저도 숨 막혀요!”
“그런 뜻이 아니라!”
이번 여정도 어째 순탄치만은 않을 것 같다.
***
공작성이 손바닥만큼 작아 보일 때쯤, 데지데리움은 수평으로 날기 시작했다. 코카한테 목 졸려 죽기 일보 직전이었던 나는 그제야 간신히 숨을 쉴 수 있게 됐다. 코카는 여전히 나를 하늘이 내려준 동아줄처럼 붙잡고 있었지만, 출발할 때보다는 편안해 보였다.
“코카, 기절한 거 아니지?”
“이제 괜찮습니다. 킁!”
콧물을 훌쩍거리며, 코카는 애써 괜찮은 척했다. 시간이 지나면 좀 더 괜찮아질 것이다. 적응력 하나만큼은 끝내주는 녀석이니까.
“최대한 빨리 다녀올 생각이야. 자주 멈추지 않고 날아갈 텐데. 몇 시간이나 굶을 수 있어?”
“아, 알겠습니다! 저는 일주일 정도는 물 없이도 버틸 수 있어요. 훈련을 받았으니까…….”
“아……?”
길어봐야 한나절 정도를 생각했는데, 일주일이라니. 코카라면 물 없이 일주일을 버틴 이후에도 적들을 쓱쓱 베어버릴 수 있을 듯했다. 이런 녀석을 적으로 두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쪼록 빨리 다녀왔으면 좋겠어요.”
“그래도 너, 멀미는 안 하는구나?”
“멀미요? 네, 네…….”
“그럼 됐어.”
비행은 순조로웠다. 아래로 보이는 풍경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웠다. 게임 속 지도를 보는 것 같았지만, 그에 비할 수 없이 생생했다. 저 멀리 화려한 황궁의 윤곽도 어렴풋이 눈에 들어왔다.
“데지데리움, 황궁 근처로는 가지 않는 게 좋겠어. 타이머스가 너를 황궁에서 떨어뜨려 놓는 이유가 있을 테니까.”
[황궁이라면 인간의 저 거대한 둥지 말이지?]“둥지……. 둥지이기는 하지.”
데지데리움은 내 말대로 몸을 틀었다. 황궁이 시야에서 점점 멀어졌다. 우리는 숲을 가로지르며 날아갔다.
“공작님, 공작님.”
잠자코 있어 졸고 있는 줄 알았던 코카가 말을 붙였다. 코카는 조금 불안한 듯, 경계심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누군가 우리를 보고 있는 것 같아요.”
“뭐? 말도 안 되는 소리 하긴. 자다 깬 거야?”
우리는 허공 위에 있었고 아래는 사람의 흔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숲이었다.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나무가 빼곡히 자란 숲. 새라면 또 모를까, 이렇게 높이 있는 우리를 알아볼 존재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하는 건 나 혼자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까마귀의 영역을 지나가는 모양이군. 나 또한 불길한 시선을 느꼈다.]“여긴 평범한 숲처럼 보이는데…….”
[서쪽 숲은 까마귀의 영역이다. 까마귀는 교활하고 탐욕스럽지. 얽히지 않는 게 좋아.]데지데리움의 말에 나는 내가 받은 세 까마귀 사령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나의 까마귀들도 동네를 어슬렁거리는 보통 까마귀가 아니라 ‘서쪽 숲의 까마귀’였다.
“서쪽 숲의 까마귀는 뭔가 특별한 게 있어? 성격이 나쁜 거 말고.”
[나는 그들에 관해서 잘 알지 못한다. 그들이 무리 지어 다니며 세상을 염탐한다는 것만 알지. 그들에게 왕이 있다는 것도.]“까마귀들의 왕이라……. 거대한 까마귀이려나?”
[얽히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그들은 어리석은 자들에게서 많은 것을 가져가니까.]데지데리움은 쏜살같이 날아 서쪽 숲을 금세 가로질렀다. 수많은 풍경을 지나치며, 우리는 점점 어떤 산맥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촘촘하던 나무도 듬성듬성해졌고, 황폐한 바위로 가득한 지역이 나왔다. 하브수크트 산맥이었다.
‘게임에서 종종 마수가 나타난다고 했던 산맥이야. 비중이 큰 지역은 아니었지.’
하브수크트 산맥에 이르러 우리는 이곳만 넘어간 뒤 잠시 쉬었다 가기로 했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으로 가득한 곳이라, 오랫동안 자리 잡고 쉬기에 적절하지는 않았다. 잠도 아껴가며 날아가기를 하루하고도 반.
데지데리움 위에서 꾸벅꾸벅 조는 데에도 익숙해질 무렵이었다.
끝없이 이어지던 바위의 행렬 끝에는 눈부신 광물의 계곡이 펼쳐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