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has become the older brother of the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201
201화. 사랑에 이유는 없다지만,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있는 법이다 (1)
“모든 것이 타버린 불모지에서도 꽃은 피는 법. 용의 허리가 척박한 땅이라고는 하지만, 삶에 의지가 있는 아이라면 분명 멋지게 자라 있을 거야. 내가 꼭 찾아줄게. 너희 가문의 숨겨진 아이!”
라스의 오렌지빛 눈동자에서 불꽃이 일렁이는 듯했다.
“아, 예.”
글러토니 가문의 피가 섞인 오로반체 가문의 사생아. 있지도 않은 사람을 찾으러 온 나는 떨떠름하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저 밝고 쾌활한 청년은 당장이라도 용족의 대륙을 샅샅이 뒤져 누구라도 찾아와 내게 들이밀 기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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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라스 마그타로스
직업 : 도우미
성격 : 분노 – 명중률이 떨어지지만 상시 공격력 상승 효과를 받습니다
특성 : 화산 – 능력을 발휘할 때 감정의 영향을 크게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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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만 이상한 줄 알았더니, 상태창도 어지간히 희한하군.’
직업이 도우미라니, 꽤 같잖은 명칭이지 않은가. 하지만 라스와 잘 어울리기는 했다. 놈은 벌써부터 배를 수리하는 데 도움을 주겠다고 나서는 중이었다. 이 선량한 행태가 삶 그 자체라면, 놈의 직업은 도우미가 맞았다.
무엇보다 의외인 건 성격이었다. 분노?
‘저런 녀석도 화를 낼까? 흠……. 꽤 정의로운 이유에서는 분노할 것 같기도 하군.’
내 나름대로 납득하며 라스를 찬찬히 살폈다.
놈은 성격을 제외하고 볼 때, 소년만화나 액션이 가미된 순정만화의 주인공처럼 보였다. 달리아보다 붉은 머리카락은 불꽃을 닮았고, 세로로 긴 동공은 이질적이지만 독특한 매력이 있었다. 제국과 다른 복식은 동양풍이 살짝 느껴지면서도 그 화려한 무늬가 어디서도 본 적 없는 것이라, 용족이란 도대체 어떤 문명을 가지고 있는 걸까 호기심이 들게 만들었다.
라스는 용족 중 신분이 가장 높은 일종의 ‘왕자님’ 같은 존재였는데, 우리 배의 가장 낮은 선원에게까지 살갑게 말을 건넸다. 달리아처럼 어린아이에게도 허리를 굽히며 인사하는 녀석은 비현실적일 정도로 햇살 같았다.
‘비중 있는 남주인공이라 그런가 성격이 꽤 극단적이란 말이지.’
배를 고치는 사람들 사이에 섞여 동분서주하는 라스를 보며, 나는 눈을 흘겼다. 타이머스와는 다른 의미로 껄끄러운 놈이었다.
냉정하지만 뒤늦게 사랑을 배우게 되는 타이머스와, 처음부터 끝까지 불꽃처럼 타오르는 라스. 둘 다 귀족에 각자 상징하는 대륙을 대표하는 남주인공인데, 성격은 상극이었다.
타이머스가 용의 허리에 직접 행차하는 걸 꺼리는 것도 라스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저렇게 오지랖 넓고 쾌활한 놈이 사사건건 간섭한다면, 타이머스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처형.”을 외치고 싶을 것이다. 한 종족의 대표를 죽일 수는 없으니 옆에 두고 보면 얼마나 속이 답답할까.
에드먼드의 인도를 내게 맡긴 이유는 아마 이 때문일 것이다.
라스와 얽히기 싫어서. 이건 게임 속에서 증명된다.
게임 후반부. 라스와 만나는 이벤트 이후 타이머스에게 말을 걸면, 타이머스의 대사에서 간혹 라스가 언급된다.
“라스 마그타로스를 만나봤나? 실속 없이 밝은 놈은 질색이야.”라든지, “빛이 밝을수록 그림자는 짙어진다. 놈을 경계하도록 해.”라든지.
‘자기가 싫다고 나한테 은근히 떠넘기고 말이야. 타이머스 녀석도 철없는 면이 있다니까.’
피핀에게 라스를 맡겨두고, 나는 에드먼드에게로 내려갔다.
에드먼드는 컴컴한 어둠 속, 작은 등불에 의지해 책을 읽고 있었다. 손목엔 마법을 쓸 수 없게 하는 수갑을 차고 있는 채로 말이다. 퍽 무거울 텐데도 잘 버티고 있다.
곧 화산에 버려질 운명이면서 태연하게 책을 읽다니, 성자는 뭐가 달라도 다르다는 걸까.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겁에 질려 있었을 텐데.
나는 에드먼드가 갇혀있는 철창의 잠금을 풀며, 가볍게 말을 걸었다.
“여유로운 모습이네? 배 위가 그렇게 소란스러웠는데, 눈치 못 챘어?”
“눈치챘어도 나갈 수 없는 몸이니 신경 쓰지 않았지. 왜? 이 구속구를 부수고 나갔으면 더 재밌었으려나?”
“타이머스는 재밌어했겠지만 나는 아냐.”
에드먼드의 팔을 잡아 일으켰다. 오래 앉아 있었던 탓에 다리가 저렸는지, 녀석은 조금 비틀거리며 멈춰 있었다.
‘에드먼드는 화산에 버려질 정도로 악독한 짓을 한 건가……?’
나는 무덤덤한 에드먼드를 보며 혼자서 괜히 마음이 복잡해졌다. 사람을 인상으로 파악하면 안 된다는 건 당연한 사실이다. 하지만 인상이 영향을 주지 않느냐면 그건 절대 아니다.
에드먼드는 악한 짓을 할 것처럼 생기지 않았다. 예를 들자면, 범죄를 다룬 TV 프로그램에서 주변 사람에게 “그런 짓을 할 사람으로는 전혀 보이지 않았어요…….”라는 평가를 들을 법한 놈이랄까?
“타이머스 황태자한테는 왜 밉보인 거야? 이러다 화산에서 통구이가 될 거라고.”
“내가 가만히 불에 타 죽을 것처럼 보여?”
에드먼드는 날씨를 물어보듯 덤덤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가 한 질문은 사실 곧 대답이었다.
가만히 불에 타 죽지는 않겠다는 소리겠지. 꿍꿍이를 숨기고 있다는 고백이기도 했다.
“무슨 짓을 할 생각이야?”
바깥으로 나가기 전, 나는 에드먼드의 어깨를 붙잡고 물었다.
“쓸데없는 짓을 할 생각이라면 그만둬. 만일 목숨을 구하고 싶다면 나한테 빌어. 타이머스를 어떻게든 설득해 볼 테니까. 혼자 이상한 짓은 하지 말라고. 테네리페를 불러들인다든지 그런 거.”
“글러토니 공작은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네. 나는 테네리페와 뜻이 달라. 그와 함께 움직였던 건 우리의 길이 중간에 같은 과정을 거쳐야 했기 때문이야. 하지만 지금은 아니지. 완전히 다른 길이야.”
“다른 길이라면…….”
테네리페는 데미안을 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 반대의 길이라면 데미안을 죽이는 일이고 그건…….
내가 하려는 짓과 같았다.
“…….”
“어떤 생각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것도 정답이 아닐 거야.”
에드먼드가 단언하듯 말했다.
“나는 어디까지나 진리를 추구하는 자. 나는 나의 본질에서 벗어난 적은 없어.”
“어려운 얘기 좋아하나 봐. 아까까지 보고 있던 책도 뭐 어려운 이야기인가?”
에드먼드는 살짝 웃으며 내게 책을 떠넘겼다. 무슨 책이지 하고 살펴봤다가, 내 눈이 가늘어졌다. 책에 찍힌 도장을 보니 우리 공작가 서고에 있어야 할 놈이었다.
세상의 대단한 진리가 담긴 책은 아니었고, 소설이었다.
“…….”
“재밌더라. 자극적이고.”
“코카가 빌려준 거야?”
한숨을 푹 쉬며 책을 내 품에 넣었다. 로맨스 소설이었는데 얼마나 많이 읽었는지 너덜너덜했다. 이렇게까지 로맨스 소설에 심취해 있는 건 내 식솔 중 코카가 유일하다.
“그 암살자 친구, 독특한 취향을 가지고 있던데.”
“순진해서 그래. 순진해서 소설의 모든 걸 현실로 받아들이는 거지.”
“그 아이에게 다른 선택지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뭐?”
“덜 순진하게 살 수 있는 선택지. 그런 게 있었다면, 나한테 책을 빌려주지도, 책을 감명 깊게 읽지도 않았겠지.”
에드먼드는 처형을 기다리는 성인처럼 눈을 감았다. 내가 문을 열었을 때, 그의 얼굴로 바깥의 빛이 환히 비쳤다. 종교 따위는 믿지 않는 나조차 경건한 기분이 들 정도로 반듯한 빛이…….
“나는 다른 선택지가 궁금해. 우리에게 더 나은 선택지가 있었던 건 아닐까. 계속 뒤를 돌아보는 거야.”
그렇게 말한 뒤, 에드먼드가 먼저 걸음을 옮겼다.
“저 녀석이 바로 그 죄인이로군.”
밝고 화창하기만 한 라스의 얼굴에 그림자가 졌다. 에드먼드는 사납게 이글거리는 라스의 시선을 피하지 않으며 미미하게 웃었다.
“에드먼드 마이셀리움. 루고사의 성수, 브랙큰 님을 모시는 성수입니다.”
“너는 이미 성자의 자격을 박탈당했을 텐데?”
“서류로는 끊을 수 없는 인연이 있다는 것을 믿습니다.”
“너는 화산의 성전에 유폐될 거다. 성자면서 자기가 지켜야 하는 성수를 오히려 다치게 하다니. 그런 악한 행동은 용서할 수 없어!”
라스는 당장이라도 용으로 변신할 듯, 유난히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냈다.
“죄를 지어놓고 그렇게 뻔뻔한 태도라니……!”
“말싸움은 길어져봤자 좋을 게 없을 겁니다. 용의 허리에는 언제 갈 거죠? 내가 회개하는 걸 보고 나서야 만족해서 날개를 펼칠 건가? 오래 걸릴 텐데.”
에드먼드가 라스의 심기를 살살 긁기 시작했다.
“에드먼드, 그만둬. 라스 님도 더 신경 쓰지 마시죠. 입씨름을 하는 것보다, 할 일을 하는 게 더 중요하니까요.”
내가 중간에 중재를 하고 나서자, 그제서야 라스가 조금 진정되는 기미를 보였다.
놈은 따뜻하고 살갑지만, 불처럼 변덕스러운 면이 있어서 제 맘에 들지 않는 상대에게는 쉽게 화를 냈다. 그런 다혈질 성격을 다듬어주는 게 여주인공 아네모네의 역할이었는데…….
“아하하하하! 여기서 싸우는 거야? 아, 싸움 구경 재밌겠는데.”
“대장, 그런 말이 어딨어요.”
“왜? 아까까지는 내가 싸우면서 실컷 남들 좋은 구경시켜줬는데. 이번엔 나도 구경할 게 있어야지.”
지금의 여주인공이 저 꼴이니.
‘라스의 연애는 내가 굳이 방해하지 않아도 알아서 망할 것 같군.’
하늘 저 너머에서 한 무리의 용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남은 이야기는 용의 허리에 가서 마저 하도록 하자고.”
라스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
아무리 용족의 지도자라지만, 용이 용을 타고 가도 되는 걸까?
커다란 용들은 각자 다리에 쪽배 크기의 바구니를 달고 날아왔다. 용족 중에서도 날지 못하는 용족이 이용하는 이동 수단이었다. 굳이 따지자면 택시에 비유할 수 있겠다.
나는 라스가 용으로 변해 날아갈 줄 알았는데, 놈은 우리와 함께 ‘택시’에 올라탔다. 왜 그런가 했더니, 입이 근질근질했는지 용의 허리를 설명해주기 위해서였다.
“화산은 용의 허리 가장 중심에 있어. 그 거대한 화산은 레후아 님의 일부라고 할 수도 있지.”
“아아~.”
라스의 설명을 착실히 듣는 건, 우리 중에 소이뿐이었다.
아네모네와 아젤은 작은 칼로 나무를 깎으며 놀았고, 피핀은 도를 닦는 승려처럼 눈을 감은 채 멀미를 참았다. 코카는 언제 챙겨왔는지 로맨스 소설을 읽으며 훌쩍였으며, 나는 그런 모두를 구경하며 달리아에게 밟히고 있었다.
“헤헤. 바람 분다!”
“달리아. 달리아, 내려와. 오라버니 배를 밟으면 어떡해. 내려와. 치마 내리고. 어허. 달리아. 달리아!”
문득 양심의 가책을 느꼈는지 아네모네가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말이야. 라스라는 녀석, 좀 외롭지 않을까? 얘기를 들어주는 게 소이뿐인데?”
“외롭긴. 오히려 즐기고 있을걸.”
나는 택시(?)에 감도는 이상한 기류를 느끼고 있었기에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소이를 보는 라스의 눈에서 하트가 튀어나올 것만 같다.
그렇다. 라스는 속칭 ‘금사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