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has become the older brother of the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202
202화. 사랑에 이유는 없다지만,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있는 법이다 (2)
본래 설정상 라스는 아네모네에게 한눈에 반한다. 하지만 지금의 아네모네는 게임의 이벤트가 일어나는 시점보다 한참 과거. 아네모네는 너무 어렸다.
그러니 나이를 먹지 않는 라스에게 또래로 느껴지는 건 아네모네가 아닌 소이 블렛이다.
“아무튼! 용의 허리는 대단한 곳이라는 거지.”
라스는 소이의 눈치를 살피며 연신 헛기침을 했다. 누가 봐도 떨려 하는 모습이었다.
‘소이를 데려온 게 천운이었어. 이렇게 쉽게 사랑에 빠져준다니…….’
내가 굳이 아네모네와 라스가 얽히지 않도록 손을 쓸 필요도 없었다.
‘원래 이야기대로였다면…….’
라스는 사실 타이머스를 공략하다가 만날 수 있는 캐릭터였다. 게임의 후반부에나 등장하는 캐릭터로, 마치 타이머스와 잘될 것처럼 이야기를 진행시키다가 ‘용과의 조우’ 이벤트가 뜨면 공략 대상을 바꾸는 형식이다.
은둔자의 땅을 정벌하기 위해 출발한 아네모네와 타이머스. 두 사람은 돌연 돌풍을 만나게 되고, 위험에 빠진 두 사람을 라스가 구해주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라스는 기지를 발휘해 위기를 모면하는 아네모네에게 홀딱 빠지는데, 그 과정은 개연성이 없는 것으로 유명하다. 워낙 구성이 쉬운 게임이라 플레이하는 동안 인터넷 게시판을 거의 보지 않았는데, 라스가 등장했을 때는 조금 검색이 필요했다.
스스로 납득할 수가 없었거든.
‘둘이 방금 만났잖아? 뭘 했다고 갑자기 왜 사랑에 빠지지?’
이 게임 ‘잠들지 않는 정원의 꽃’은 인기가 지지리도 없었는지, 유저의 반응이 거의 없었다. 그나마 찾아봤을 때 나온 반응 중 하나가 ‘라스의 과거를 알면 조금은 이해가 간다’라는 말이었다. 이외에는 다 라스가 너무 가볍다는 욕이었고.
타이머스를 공략하다가 라스로 공략 대상을 갈아타면, 라스의 비하인드를 알 수 있게 된다. 라스는 용의 후계자였으나 타이머스와 달리 그 지위가 위태로웠다.
타이머스는 타고난 카리스마와 천부적인 재능으로 제국을 휘어잡았는데, 반면 라스는 정적이 수십 명, 아니 수십 마리나 있었다.
각자 자신의 자존심이 확고한 용들은 자기 위에 귀족적인 존재가 있는 걸 납득하지 않았다. 게다가 부모 자식 간의 정도 없어서, 라스는 정령들 손에 자라며 부모의 사랑을 거의 받지 못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하는데, 정령들의 정신머리가 다 코카와 비슷했는지, 라스에게 ‘그럼에도 진정한 사랑은 있다’고 가르친 것이다. 순수했던 어린 용은 자신을 사랑해줄 존재를 찾기 시작했고…….
당연히 용족 가운데에는 라스에게 정을 나눠줄 존재가 없었다. 다들 제멋에 빠져 살기 바빴거든. 라스가 인간을 비롯한 엘프나 드워프 등 용족이 아닌 이종족에게 관심을 갖게 된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이런 배경을 뒤에 안고 만난 첫 번째 또래 인간 여자가 바로 아네모네.
라스는 아네모네에게 밑도 끝도 없이 사랑에 빠져서 일단 프러포즈부터 던지고 본다.
‘소이도 곧 터무니없는 프러포즈를 받게 되겠지.’
라스의 머릿속에는 아마 지금쯤 소이와 함께하는 여생이 파노라마로 흘러가고 있을 터. 이 사실을 모르는 소이는 그저 지역 안내를 받는 관광객처럼 들떠 있을 뿐이다.
나는 라스에 관해서는 타이머스만큼 적개심이 강하지 않았다. 라스는 달리아와의 접점이 그렇게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라스도 달리아를 구박하기는 하는데, 말로 귀에서 피가 날 때까지 훈계를 하는 정도였다.
‘라스가 아네모네에게 반하지 않고, 지금처럼 소이에게 푹 빠진 채 지낸다면…….’
굉장히 수월하게 라스와 달리아의 연결고리를 끊어낼 수 있다. 아네모네는 달리아와 같은 초월자라고 하지만, 소이는 반쪽짜리 성녀였다. 가난한 성녀는 달리아가 굳이 질투까지 하며 괴롭히는 상대가 될 수 없을 것이다.
‘이대로 둘이 잘되면, 나한테 이득인 거 아냐?’
빙하의 성녀와 화산의 성자라니. 왠지 안 어울리는 듯 어울리지 않는가.
그래. 두 사람을 이어주자. 둘이 좋아하게 되는 상황을 만드는 거야!
나 혼자서는 그런 분위기를 조성하기 어려울 게 뻔했다. 그러니 여기 전문가…라고 할지, 로맨스에 미쳐 있는 사람의 도움을 받도록 하자.
“코카. 코카, 이리 와 봐.”
안 그래도 로맨스 소설을 읽고 있던 코카가 책을 덮고 내게 다가왔다. 나는 달리아를 피핀에게 넘겨버리고, 코카의 어깨를 팔로 감싼 뒤 구석으로 향했다.
“무슨 책 읽고 있었어?”
“흡. 공작님도 보시겠어요? 죽을병에 걸린 영애와 먼 여정을 떠나야 하는 용사의 사랑 이야기를 읽고 있었어요. 정말, 정말……. 너무 슬퍼요……. 둘이 소꿉친구인데, 그 사실을 아는 건 사랑을 방해하는 귀족 도련님뿐이에요. 흡…….”
책에 어지간히 몰입해 있던 코카가 훌쩍거렸다. 나는 여분의 손수건을 꺼내 코카에게 들이밀었다. 코카는 눈물을 톡톡 닦으면서 내게 물었다.
“그런데 왜 부르셨어요? 죽일 사람이라도 생기셨나요? 여기 있는 분들하고는 다 친한 줄 알았는데. 아……! 에드먼드 경을 죽이는 거군요? 그런 거라면 지금 빨리 죽이고 올게요.”
“아냐, 아냐 아냐. 그런 게 아냐…….”
나는 코카의 어깨를 다독이며 감정을 잡았다. 바보들을 구슬려 이용해 먹다 보니 이상한 연기 실력이 늘어간다.
“후……. 이런 이야기를 터놓을 수 있는 건 너뿐이라서.”
“저, 저뿐이라고요? 제가, 제가 그런 가치가 있는 사람인가요?”
코카가 눈을 반짝였다. 시작이 좋았다.
“너도 알겠지만, 이번 일은 글러토니 공작가의 사생아를 찾기 위한 여정이잖아?”
물론 거짓말이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그렇게 알고 있다.
“그렇죠. 알고 있습니다.”
“내가 예상하는 바가 있어. 그 녀석은 남자애일 거야.”
“아! 그렇군요. 그렇군요…….”
“코카. 너도 알겠지만, 나는 아직 약혼자도 없고 후계자는 당연히 없어. 열여섯이잖아. 그런데 갑자기 달리아보다 나이가 많은, 어쩌면 나보다 나이가 많은 남자애가 글러토니 공작가에 들어온다고 생각해 봐.”
“…헉! 공작님과 달리아 아가씨의 권력을 탐낼지도 몰라요.”
“그래……. 불행하게도 우리는 가족이면서 서로를 견제해야 할 거야. 하지만 나는 반쪽짜리 형제보다, 나의 사랑스러운 달리아에게 내 모든 걸 물려주고 싶어. 내 마음 알지?”
“그럼요. 무슨 마음인지 알아요. 이게 바로 가족애라는 거죠……. 책에서 봤어요. 정말, 가족애를 다룬 어떤 소설도 정말 눈물 났는데, 서고의 구석에 있는…….”
“그래서 말이야.”
나는 감정에 심취한 코카의 말을 끊어냈다.
“소이 블렛이 우리를 따라온 건, 그 남자애 때문이기도 해.”
“예?”
“소이는 나쁜 녀석은 아니지만, 돈과 권력에 굶주려 있어. 그래서 참여한 거야. 글러토니 가문의 사생아와 결혼해 한몫 챙기려 한 거지.”
“허어어억!”
코카가 입을 틀어막으며 크게 놀랐다. 그 순간 나는, 진심으로 충격받은 눈동자를 보며 ‘얘는 공작성 밖에 두면 한 시간 안에 전 재산을 다 잃겠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었다.
아무튼.
“나도 동의한 바야. 두 사람에게 큰돈을 얹어주고 멀리 나가 살게 할 생각이었지. 하지만 지금, 나는 흔들리고 있어.”
“왜요? 공작님께서 소이 영애께 마음을 빼앗기고 있나요?”
“아니. 그런 게 아냐. 나의 양심이, 이 양심이 흔들리고 있다 이 말이야.”
나는 코카의 턱을 잡고, 소이와 라스를 보게 만들었다. 라스의 이야기가 질렸는지 소이의 눈은 살짝 공허했고, 어른스럽기 짝이 없는 스위트피는 입을 벌린 채 잠들어 있었다.
“보여?”
“예. 보입니다.”
“라스와 소이는 지금 사랑에 빠졌어.”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사실을 날조하기 시작했다. 여기부터 본론이었다.
“허어어어어…….”
순진한 코카는 또 속아 넘어갔다. 아네모네였다면 콧방귀를 뀌었을 것이고, 피핀이었어도 ‘헤’ 하고 웃고 말았을 이야기인데 말이다.
“첫눈에 반한 게 분명해. 보여? 라스의 얼굴이 붉어져 있는 거.”
“보여요……!”
“소이도 봐. 넋을 놓고 있잖아. 라스에게 푹 빠져서 그런 거야.”
“아, 확실히……. 넋을 놓고 계신 것처럼 보여요.”
나는 마른세수를 하며 정말 양심의 가책이라도 느끼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내 욕심에, 사랑에 빠진 두 소년 소녀를 무시하고 강압적인 결혼을 하게 한다니. 그게 옳은 일일까?”
“공작님……!”
“코카 너는 어떻게 생각해? 나의 마음은 이미 기울어 있어. 저 둘을 봐. 얼마나 잘 어울리는 커플이니.”
“…….”
코카는 소이와 라스는 유심히 살펴보며,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공작님 말씀이 보통 옳으니까…….” 하고 중얼거렸다.
“코카 암브리아. 나는 두 사람의 사랑을 응원하고 싶어.”
“허어어……! 공작님! 그랬다가 사생아가 달리아 아가씨의 입지를 위협하면 어떻게 해요!”
“그건, 내가 있는 힘을 다해 막겠어. 너도 도와줄 거잖아, 그렇지? 코카, 너는 내 호위 기사잖아. 내가 선택한 호위 기사 말이야.”
코카는 자신이 얼마나 쓸모 있는 사람인지 인정받는 걸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 중요하게 생각한다 정도로 표현해도 괜찮은 걸까?
오로반체 후작 밑에서 쓸모없는 놈들이 죽어가는 가운데, 자신을 증명해 보이는 것은 생존의 문제였다. 코카는 내가 자신을 필요로 하는지 여부에 병적으로 집착하는 면이 있었고, 나는 그 점을 긍정적으로 이용할 생각이었다. 긍정적으로.
“제가……! 공작님 곁에서……!”
“그래. 넌 나한테 꼭 필요한 호위 기사야. 그러니 이번에도 날 도와줘. 내 신념을 위해서.”
“제가……!”
그래서 결론이 어떻게 되냐면,
“라스와 소이가 맺어질 수 있도록 우리가 도와주자. 있는 힘껏.”
“네!”
이렇게 된다.
***
화산의 성수 레후아는 용의 허리를 지키는 거대한 신룡이다. 그는 용 그 자체였다. 용족이 인간과 용 그 사이 어딘가를 허우적거리는 모습이라면, 레후아는 위엄 있는 용 그 자체였다. 그가 움직이면 용의 허리라는 대륙이 흔들릴 정도로 거대했고, 그의 날개 밑에는 화산재와 뜨거운 태양을 피해 마을이 생겨났다.
그런 전설적인 존재의 척추 위, 가장 높게 솟은 곳이 성전이자 라스의 집이었다.
분노의 전당이라고도 불리는 그곳은 라스의 수하들이 지키고 있는 요새인 동시에, 황실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라스 마그타로스 님의 귀환이다!”
용족 전사들이 날개를 퍼덕이며 우리를 맞이했다. 라스는 모두의 환대를 받으며, 우리를 전당으로 안내했다.
“우와, 이런 건 처음 봐…….”
“저걸 장물아비에게 팔면 얼마를 받을 수 있을까요?”
처음 보는 광경에 아네모네와 아젤, 이 두 도둑은 설레는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들뜬 아네모네가 라스에게 달려가려 할 때, 코카가 그녀를 막아섰다.
왜냐? 라스 옆에 있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한 사람뿐. 바로바로, 그와 사랑에 빠질 예정인 소이 블렛.
소이 이외의 사람은 라스에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은근슬쩍 막는 것이 오늘 코카의 역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