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has become the older brother of the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23
23화. 반려동물의 식탐을 말릴 수 있는 건 주인뿐 (6)
나는 카쿠에게 턱짓하며 물었다.
“용병단인가? 왜 다들 여기 널브러져 있지?”
카쿠는 긴장한 티를 숨기지 않으며 오히려 반문했다.
“공작님 옆에 그 괴물. 뭡니까?”
“내 질문이 안 들려? 내가 물어보잖아. 이것들 뭐냐고.”
“…슬로스 용병단입니다. 마수와 사투하다가 큰 부상을 입었습니다. 돌아가서 치료해야 합니다.”
“부상을 왜 입었는데?”
카쿠가 고개를 들며 깜짝 놀란 듯한 표정을 지었다. 카쿠와의 대화가 묘하게 번거롭다고 느껴져, 내 표정은 딱딱하게 굳었다.
“사람이 다쳤습니다. 공작님께서는 동요하지 않는군요. 부상자를 구하기보다, 그 이유부터 물으시기까지 하고.”
“자네는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것 같아. 이 상황에서 같잖은 정의감을 자랑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지? 마수까지 때려잡을 정도로 힘센 용병이라서 귀족한테 마음대로 해도 되는 삶을 살아왔나 본데…….”
나는 보란 듯이 죽음의 문을 쓰다듬었다. 이 녀석 배가 불러 기분이 좋은지, 오늘따라 살갑게 달라붙는다.
“나한테는 굶주린 괴물이 있어. 연약한 자네를 ‘앙’ 하고 잡아먹으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배고프다. 그런데 나 사람은 안 먹느으으읍!]놈의 턱을 위아래로 꽉 잡아 누르며 나는 미소지었다.
“배고프다고? 그래, 그래. 내가 네 맘 다 알아.”
[나 배고파? 맞아! 나는 배고프다!]다행히 죽음의 문은 타조에 필적하는 지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 내가 너희 모두 정원아귀의 식사로 바치기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
용병단장이 킬킬킬킬 웃더니, 입에 고인 피를 바닥에 퉷- 뱉어냈다. 그의 입가에 경박한 미소가 걸렸다.
“생긴 대로 앙칼지게 굴기는. 우리가 왜 다쳤냐고? 보면 모르겠어? 마수에게 당한 거지. 젠장…….”
“그 마수가 여기 어떻게 나타났는지가 궁금해. 네놈이 불러냈나? 마법을 썼나?”
“이봐, 도련님. 내가 마법이나 쓰는 약골처럼 보여? 지금 팔을 한 짝 잃었지만, 명색이 슬로스 용병단의 단장이라고. 마수를 불러내는 사술은 머리 쓰는 약골들이나 하는 짓이지. 그런데…….”
용병단장이 눈을 번들거리며 몸을 뒤틀었다.
“그런데 그 새끼는 약골이 아니었단 말이야!”
“흐음. 배후가 있다는 말인가?”
“아하하하하하하!
몸을 심하게 움직이는 탓인지 기침과 피가 경련과 함께 터져 나왔다. 그럼에도 웃음은 멈추지 않았다. 쓰러져 있던 용병 하나가, 바닥을 기어오며 카쿠의 발목을 잡고 매달렸다.
“카쿠, 카쿠 단장 살려줘. 살려줘, 우리는 단장과 부단장의 말을 들은 것뿐이잖아. 살려줘……! 그놈은 괴물이야, 괴물!”
“네놈이 데려왔잖아! 큰돈을 벌 수 있다고 한 건 카쿠 네놈이었잖아! 우리는 네 말만 믿고 그 미친놈을 데려왔는데! 돈을 벌 수 있댔지 이렇게 될 거라곤 말하지 않았어! 다 네놈 탓이야!”
의식이 있는 용병단원들은 모두 흐느끼는 소리를 내며 카쿠를 찾았다. 카쿠의 얼굴은 일그러지다 못해 붉게 달아올랐다. 눈물을 참고 있는 듯 보이기도 했다.
또 다른 용병단원이 다리를 잃은 채, 팔에 몸을 의지하며 소리쳤다.
“너 혼자 착한 척 마을로 기어들어가면 다인 줄 알아? 마수 때문에 사람을 죽였으면서, 언제까지 착한 척할 수 있다고 생각한 거야! 고아 남매를 돌보면서 가족 놀이는 재밌었나?”
이어지는 말에 카쿠는 완전히 무너졌다.
“어차피 그놈들 부모는 네가 죽였는데!”
카쿠는 그 말을 뱉은 용병을 두들겨 팼다. 용병은 죽었는지 기절했는지 조용해졌다.
“이제야 알겠군. 너와 피핀이 왜 그렇게 마을 내에서 무시 받아야 했는지. 요컨대, 마수를 불러들이는 계획은 자네가 세웠고, 일이 커지는 것 같으니 도망쳤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마을에 들어앉아, 마수를 처리하는 잡일을 해냈다는 건가. 잡은 마수는 세금처럼 촌장에게 바쳤고.”
“…….”
“피핀도 아나? 이 사실을.”
“피핀은 모릅니다.”
“포이베도 몰랐던 모양인데.”
“포이베를, 아십니까?”
나는 카쿠를 보며 상냥하게 웃었다.
“자네는 피핀을 참 아낀다고 들었는데. 내 입은 무거워질 수도, 가벼워질 수도 있어. 자네의 태도에 따라서.”
보란 듯이 죽음의 문을 쓰다듬었다. 죽음의 문은 내게 몸을 기대며 알량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카쿠는 나와 죽음의 문을 응시하다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죽음의 문에 대해 함구하겠다는 뜻이었다.
그때였다.
쿠구구구구!
땅을 울리는 굉음이 시작됐다. 목소리는 들리지 않아도, 누가 내는 소리인지는 알 만했다. 피핀이다.
피핀이 여기서 멈추지 않고 달려갔다는 뜻은, 저쪽에도 마수가 있다는 소리겠지.
가장 강한 마수가, 용병단의 정원아귀가 소화하지 못할 정도로 거대한 마수가 저곳에 있었다.
카쿠는 용병단장의 멱살을 붙잡아 흔들었다. 힘이 빠진 몸뚱이는 흡사 솜인형처럼 매가리가 없었다.
“저 안쪽에 놈이 있나? 그놈이 뭘 불러낸 거야? 피핀은? 피핀이 저기로 갔나? 왜 말리지 않았어!”
카쿠의 목소리는 완전한 아버지의 것이었다. 아들을 걱정하며 절규하는, 평범한 아버지.
“하하하하! 가족놀이를 하다가 완전히 미쳤군그래. 왜, 놈이 진짜 아들이라도 되는 것 같아? 피핀도 이제 곧 먹힐 거다! 정원아귀가 터져버렸어. 그 괴짜가 말도 안 되는 괴물을 불러들였다고. 시발, 돈 푼 좀 벌겠다고 하다가, 우리 모두 뒈지게 생겼네! 아하하하하!”
“내가 말했잖아! 그만두라고! 감당하지 못할 짓이라고!”
“그놈을 끌어들인 건 자네야, 카쿠 단장. 우리를 버리고 도망치고, 나한테 단장 자리를 떠맡긴 것도, 카쿠 자네지.”
용병단장의 실성한 웃음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숲에 흐르는 기류가 달라졌다.
거대한 마력의 흐름이 이쪽을 덮쳐오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흐름뿐만이 아니었다. 공기가 진동했고, 나무가 분주하게 흔들렸다. 새카만 어둠이 숲 저편에서부터 폭발하듯 부풀어 올랐다.
어느새 하늘은 완전히 새카만 형체에 가려져, 가느다란 빛줄기 몇 가닥만 남겼다.
비관적인 신음소리가 가시덩굴처럼 모두의 발목을 휘감았다. 누가 어떤 말을 내뱉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한낱 존재를 압도하는, 상위의 존재 앞에서 모든 발버둥은 무의미했다.
“저건……. 말도 안 돼…….”
“우린 이제 도망칠 수조차 없어.”
“하하하하하하하!”
마기 따위가 아니었다. 그보다 무겁고, 차갑고, 거대한 것이 세상을 채웠다.
괴물의 날개는 하늘에 남은 빛을 모두 앗아갔다. 펄럭이는 바람이 폭풍처럼 대지를 휩쓸었다. 가까스로 버티고 서서, 나는 괴물의 모습을 똑똑히 눈에 담았다. 경외와 공포, 한편으로는 허탈함이 느껴졌다. 눈을 떼지 못하는 건 호기심 때문이 아니었다.
그저 압도되었기 때문에, 고개를 돌릴 수조차 없었다.
괴물이 아가리를 벌리자 울퉁불퉁한 이빨 사이사이로 벌건 체액이 흘렀다. 눈알은 정원아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흉흉했고, 거친 비늘에는 전기가 감도는 듯 찌릿찌릿한 빛이 흘렀다.
두 번째 쌍의 날개가 펼쳐지고, 대가리와 몸통, 꼬리를 잇는 곡선이 웅장하게 휘어졌다. 꼬리 끝이 땅에 떨어지며 지진을 일으켰다.
귀를 찢다 못해, 인간의 귀로는 완전히 들을 수도 없는 놈의 포효에 나는 웃었다. 황당할 정도로 대단한 광경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달리아는, 조그만 달리아는 공포를 모르고 그저 좋아할 것만 같다는 묘한 생각을 했다.
“레크로파다스.”
거대한 괴물의 아가리 너머 도사리고 있는 목구멍은 그저 암흑이었다.
살육에 미친 환각의 용.
“달리아의, 꿈 도마뱀…….”
***
속칭 ‘미연시’ 은, 어둠 속에서도 빛을 잃지 않는 꽃처럼 빛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내 해석이 아니다. 게임 타이틀에 그렇게 인쇄돼 있었다.
여주인공을 제외하고 그곳에서 가장 빛나는 사람을 꼽자면, 당연히 황태자였다. 황태자 타이머스는 그 어떤 칭호로도 충분히 설명할 수 없는 검술의 천재이자, 뛰어난 영웅이었다. 날 때부터 잘생겼고, 어린 시절부터 영특했으며, 성장하고는 빛을 발했다.
누구도 황태자의 위엄에 흠집을 낼 수 없었으며, 냉정하고 견고한 그 마음의 벽을 무너뜨린 자가 없었다.
황태자 또래의 귀족 자제들은 모두 비교 대상이었다. 아니, 황태자를 빛나게 하기 위한 장작에 불과했다. 명예와 자존심에 불을 질러 까맣게 온몸을 태워야만 했다.
어린 시에라는 그렇게 희생됐다.
글러토니 공작가의 후계자는 황태자의 명성을 갈고 닦아줄 고급 장작이었다.
검술도, 지식도, 승마도, 유희도, 그 무엇도 황태자에게 이길 수 없었다. 황실과 알력다툼을 벌이던 글러토니 공작은 숯검댕이가 된 아들을 경멸했다. 황태자가 빛날수록 시에라는 불행해졌다.
어느 순간부터 소꿉친구라는 이름의 폭력은 당연해졌다. 황태자의 태도는 갈수록 거만해졌다. 시에라를 일부러 따라와 모욕을 주는 일도 적지 않았다. 그 영특한 악마는 남을 깔아뭉개며 우위를 점하는 기쁨을, 어린 나이에 체득해버린 것이다.
시에라는 갈수록 소심해졌고, 몸을 사렸다. 자신에게 붙은 불이 꺼질 때까지 참으려 했다.
버티다 보면 돌파구가 나오리라 믿었다.
황태자의 명성을 더 화끈하게 불태워줄, 희대의 용사, 피핀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황태자에게 충성을 맹세한 호위 기사 피핀은 갖은 마수 토벌에서 공을 세우고, 황태자에게 공을 돌리며, 절대 꺼지지 않는 불씨를 자처했다.
시에라는 감히 용사에게 맞설 수 없었다. 시에라는 약했다. 그의 어린 새싹은 타이머스 황태자에게 짓밟혀 남아나지 않았으니.
아름다운 달리아마저 치욕을 겪었다. 황비 후보에 올랐으나, 서민 여주인공에게 밀려난 것이다. 원래라면 서민은 황비 후보에도 오를 수 없었다. 달리아가 황비가 되는 것은, 정해진 수순이었다. 그런데, 타이머스는 그저-
‘시에라 글러토니가 꼴보기 싫어서. 내가 언제까지 그 한심한 낯짝을 참아줘야 하지?’
이딴 하찮은 이유로 달리아를 박대했다.
항의하기 위해 황태자궁을 찾았을 때, 시에라 글러토니 공작에게 축객령을 내린 것이 용사 피핀이었다.
주인을 닮아 거만해진 눈빛으로, 감히 공작 영애를 무시하고, 공작을 내쫓았다.
어리숙한 공자, 모자란 후계자, 능력 없는 공작 시에라 글러토니는 오늘에야 비로소, 나의 영혼을 제 몸에 품고 복수할 때를 만났다.
피핀이 없다면, 황태자는 향기 없는 꽃이고, 날개 없는 말벌이었다.
오늘 피핀이 죽어준다면…!
“레크로파다스. 살육에 미친 용. 마수 도감의 허접한 그림과는 차원이 달라.”
피핀이 아무리 대단하다 할지라도, 저 괴물을 물리치고 승전보를 울리는 건 불가능했다. 나로서는 손 놓고 승리를 기다리면 되는 일이다.
나의 승리였다. 아주 손쉬운 승리.
“피핀은 죽을 수밖에 없어. 저런 걸 어떻게 이겨…….”
그러니 이제 마을로 도망쳐서, 카쿠가 피핀의 사체를 끌고 오기만을 기다리면 돼.
도망가자. 어서 도망가야 하는데…….
“왜 이렇게 찜찜하지?”
하하, 하하하하-
허탈한 웃음이 터져 나와 입을 막았다.
왜지? 너무 쉽게 이겨서 불안했나?
그럴 수 있다. 행운이란 원래 믿기 어려운 일이니까.
“하하하하…….”
아니야. 아니잖아.
그런 게 아니라는 건, 나 스스로가 잘 알고 있다.
이건 알량한 죄책감이었다.
마수 고기를 담아 수레를 끌고 온 그 멍청한 얼굴이 떠올라서 발걸음을 뗄 수 없는 것이다. 마수 도감을 보며 누이를 그리워하던 그 순진함이 한심해서 나는…….
“이제 와서, 피핀을 살리고 싶어지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