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reverted to being a K-drama genius RAW novel - Chapter 152
“정전인가?”
다들 웅성대는 가운데,
저 멀리 희미한 불빛이 보였다.
래원을 향해 서서히 다가오는 불빛의 정체는 바로 촛불이었다.
그리고 케이크였다.
“래원 감독님! 백상, 몬테카를로, 에미상, 서울드페 수상 축하드립니다!”
래원이 이 상들을 탄 것은 촬영 중간중간이었으나, 시간적으로도 심적으로도 여유가 없었던 팀원들은 이제야 마음 놓고 래원을 축하할 수 있었다.
래원 역시 어쨌든 일정 중간에 시상식을 다녀온 터라 신경 쓰이게 하고 싶지 않았고.
감동한 래원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데.
난데없이, 옆에 있던 임현서와 배태람 촬영 감독이 래원을 번쩍 들었다.
순식간에 남자 스텝과 배우들이 달라붙었다.
“으아악!”
래원을 헹가래 쳐주는 사람들.
래원은 처음에는 적잖이 당황스러웠으나 이내 포기하고 몸을 맡겼다.
나쁘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좋았다.
“래원 감독님! 함께해서 즐거웠습니다! 수고 많으셨어요! 우리 도 내년 시상식 투어 가즈아!”
그동안 항상 마지막 퇴근은 도래원의 몫이었다.
모두를 무사히 보내고 직접 현장을 정리해야 직성이 풀리는 래원이었으니까.
하지만 오늘은 같이 래원의 마지막 퇴근을 지켰다.
그리고 다 함께 우르르 세트장을 나서는 팀이었다.
그래서.
결국, 드라마 속 ‘골드 버튼’은 누가 따게 됐을까?
연애 유튜버 [고필우]?
경제 유튜버 [서울 주민]?
혹은, 두 명의 작은 고추 [급식 누나]와 [학식 동생]?
아니면, 늦바람이 무섭게 상승세를 보이는 [심덕분]의 ‘덕분이에요’ 채널?
스포일러를 피하고자 모든 스텝과 배우는 오늘 마지막 촬영에 앞서, 비밀 유지 서약서에 사인했더랬다.
마지막 퇴근을 하는 그들의 머리 뒤에 진한 석양이 물들어있었다.
마치 그간 수고했노라고 다독여주는 듯한 따뜻한 빛이었다.
* * *
같은 시각.
여의도 SBC의 가장 꼭대기, 사장실.
해 질 녘의 노을 속.
이곳에서는 그간 한 번도 벌어지지 않았던 진귀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배미란 사장과 황태수 국장이 언쟁을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정말 실망이야. 자네나 도 피디나⋯.”
“죄송합니다, 사장님.”
“아니, 그런 결정을 어떻게⋯ 어떻게 나랑 한 마디 상의도 없이 내릴 수가 있어? 허어, 참⋯.”
“이제 래원이한테 우리 SBC 드라마국은 우물에 불과합니다. 훨훨 날 수 있는 놈을, 선배가 돼서 우물 안에 붙잡아 둘 수 없었습니다.”
배미란은 팔짱을 끼고는 뾰로통한 얼굴로 불만을 쏟아내고 있었다.
“그래, 뭐⋯. 자네가 도 피디 아끼는 마음은 이해한다 쳐. 근데 도 피디 정말 섭섭하네. 내 얼굴 봐서라도 조금만 기다려주는 게 그렇게 힘들대?”
“⋯⋯.”
“누가 SBC에 평생 잡아두겠댔어? 내가 이 (전)국장이나 김 부국장처럼 그렇게 꽉 막힌 사람 아닌 거, 황 국장도 잘 알잖아.”
“네, 압니다.”
“그러니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한 작품! 한 작품만 더 해줄 수는 없는 거래?”
“⋯ 제가 싫습니다.”
의외의 대답.
배미란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물었다.
“⋯ 뭐? 왜?”
“이 (전)국장과 김 부국장 그리고 최지철CP, 아니 그 윗선인 ‘고 부사장님’과 ‘박 감사님’까지 래원이를 노리고 있으니까요.”
“⋯ 서울 드라마 페스티벌 결과 때문이 그러는 거야?”
“그게 신호탄이라는 거, 앞으로 더한 일들이 벌어질 거라는 거, 사장님도 잘 아시잖습니까?”
“알지. 아는데⋯. 그럼 직장 생활, 사회생활이 다 그렇지⋯. 나도 그렇고 자네도 그거 다 겪고 이겨내서 여기까지 올라 온 거잖아. 도 피디가 나약한 사람도 아니고, 그런 거로 도망가듯 퇴사한다는 게 말이나 돼?”
“도망이 아니라, 래원이는 저랑은 다른 놈입니다. 오직 드라마밖에 모르는 놈이거든요.”
황태수의 이 말에 배미란은 입술을 꾹 깨물며 무언의 긍정을 표했다.
“정치질, 권력의 농간⋯. 이런 거로부터 계속 자유롭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지금까지 그랬듯 드라마 만드는 거에만 빠져 살 수 있게, 자기 역량을 십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고 싶었습니다.”
“⋯ 근데 그게 우리 SBC 안에서는 이제 불가능해져 버렸다?”
배미란도 이제는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네⋯. 안타깝지만 그렇게 되어 버렸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흘렀고,
먼저 이 정적을 깬 것은 배미란 사장이었다.
“그래도 아직은 때가 아니야.”
“⋯ 사장님.”
이쯤 했으면, 평소의 배미란이라면,
쿨하게 놓아주는 그림이 어울렸다.
하지만 그녀에게도 나름의 이유가 있는 듯했다.
“도 피디가 내 밑에서 딱 1개만 더. 딱 한 작품만 더 해줬으면 좋겠다. 제발⋯. 이건, 부탁이야⋯.”
왜 이렇게까지 래원이한테 매달리시지?
황태수로서는 선뜻 이해되지 않았다.
혹시 임기 때문에?
임기 전에 하나라도 더 성과를 남기고 싶어서?
전혀 가능성 없는 가설은 아니었으나,
재임한 배미란 사장의 임기는 후년까지로 아직 여유가 있었다.
때문에 그동안 다른 피디를 발굴해서 밀어주고 성과를 낼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남아있다.
“나는 포기할 수가 없다, 황 국장⋯.”
“사장님, 저도 정말 솔직한 심정으로는 같은 마음입니다. 래원이 놓아주고 싶지가 않아요. 계속 옆에서 키우고, 잘 커나가는 거 보고 싶고 그렇습니다. 하지만. 욕심인 거, 아시잖아요.”
그때.
배미란의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
황태수는 처음 보는 그 모습에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
지금에야 방송국에 여성 PD가 많아졌다지만,
배미란이 입사할 당시만 해도 선배와 동기 통틀어서 그녀가 드라마국의 유일한 여자 PD였다.
남초 사회에서 살아남아 수장 자리에 오르기까지, 절대로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 모든 세월을 이겨내는 동안 남들 앞에서 눈물을 잃어버린 배미란이었다.
“시간이 없어서 그래⋯. 나는 이제 정말로 시간이 없거든⋯.”
배미란 사장이 덧붙인 말에 황태수는 더욱더 의아해졌다.
배미란이 왜 이렇게까지 래원을 더 곁에 두고 싶어하는지, 시간이 없다는 말은 또 무슨 뜻인지 짐작조차 힘들었으니까.
K드라마 천재로 회귀했다! 143화 – 리디북스
“나를 욕해도 좋아, 황 국장.”
배미란의 저 얼굴.
고집을 절대로 꺾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일 때 나오는 특유의 표정이었다.
결국 황태수는 의아함을 감추지 못하고 물었다.
“사장님, 무슨 일 때문에 이러시는 건지 솔직하게 말씀을 해주세요.”
“⋯⋯.”
“그래야 저도 같이 머리를 맞대고 방법을 찾죠.”
“⋯ 그건 곤란해. 그러니까 이번만, 딱 이번 한 번만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도 피디 1년만 더 데리고 있자, 황 국장. 응?”
“제가 지금껏 사장님 말씀 거역한 적 없는 거 아시죠?”
“알지. 그래서 내가 이렇게 부탁하는 거잖아.”
“그런데 이번만큼은 저도 안 되겠습니다.”
“⋯⋯.”
“죄송합니다. 래원이한테 다음 차기작이 정말 중요한 시기거든요.”
“⋯⋯.”
“그 자식이 저한테 말을 다 안 해서 그렇지, 지금 국내든 해외든 래원이한테 연락 많이 갈 겁니다. 이럴 때 제대로 노를 저어야 다음 기회, 그다음 기회까지 연쇄적으로 놓치지 않을 수 있죠.”
“우리가 연봉 파격적으로 높여주고, 성과급도 지급하고, 편성이나 다른 모든 편의 사항과 지원을 아끼지 않으면?”
“⋯⋯.”
“도 피디 차기작이 뭐든,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쏟아부어 줄 수 있어!”
“그러면 사내에 래원이를 호시탐탐 노리는 세력들이 가만히 보고만 있을까요?”
배미란은 더이상 반박한 말을 찾지 못했는지 눈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얼굴에는 실망이 가득했다.
“지금이 래원이가 자기 클래스를 달리 할 수 있는 기회라는 거 누구나 아는데⋯. 이 업계를 누구보다 잘 아는 저나 사장님이 래원이 발목 잡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황태수의 뜻을 꺾지 못한 배미란.
“죄송합니다. 못난 국장의 처음이자 마지막 객기라고 생각해주십시오.”
황태수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허리를 깊게 숙여 인사했다.
사장실에 혼자 남겨진 배미란.
창밖 세상은 어느덧 땅거미가 어둑어둑 내려앉았다.
배미란은 그저 그 자리에 우두커니 앉아 불과 몇 달 전의 봄을 떠올렸다.
벚꽃이 지던 그 계절.
배미란은 어쩌면 인생의 마지막이 될 벚꽃을 보내며 두 가지를 깨달았다.
하나는, 딸 민세라의 도 피디를 향한 마음이었고
둘째는,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것이었다.
‘담도암 4기입니다.’
으레 정기적으로 받던 건강검진을 결과를 들으러 갔다가 추가로 CT를 찍게 됐고, 그렇게 알게 됐다. 몸에 암세포가 자라고 있다는 소식을 말이다.
‘담도는 간에서 분비한 담즙을 내보내는 통로입니다. 몸 깊숙이 있어서 발견이 어렵고, 발견 후에는⋯ 송구한 말씀이지만 보통은 예후가 좋지 않습니다.’
가만히 돌이켜보면 증상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언젠가부터 기름진 것을 먹으면 소화가 잘 안 됐고 오른쪽 옆구리에 통증이 있었더랬다.
의사 말에 따르면 정확히는, 오른쪽 윗배 통증.
‘과거에 낚시랑 민물고기 회를 즐기셨다고요?’
그날 의사는 배미란을 앞에 두고 차분한 목소리로 몇 가지 문진을 하다가,
‘담도암의 발병원인은 아직 명확하게 밝혀진 바가 없습니다만, 배미란 환자분의 과거 병력을 살펴보면 특별한 이상 소견이 없기에, 지금으로써는 민물고기를 통한 간디스토마 감염이 가장 유력한 발병원인으로 사료됩니다.’
담도암 4기 중에서도 진행이 많이 된 상태라고 솔직히 말해주었다.
병원에서 해줄 수 있는 것은 사실상 없었다.
권하지는 않으나 환자가 원한다면,
치료 효과는 지극히 낮으면서 회당 몇백만원을 호가하는 항암제를 투여해줄 수 있다고 했고,
통증이 심해지면 마약성 진통제도 처방 가능하다고 했다.
항암 치료를 하면 겉으로 티가 많이 날 거다.
동정하는 눈길을 받는 건 죽기보다 싫었다.
마지막까지 당당하고 싶었다.
배미란은 고통 속에서 헛된 희망을 붙잡고 있기보다는, 그 시간을 자신의 지난날을 정리하는 시간으로 삼기로 했다.
가장 눈에 밟히는 것은 민세라였다.
“그래도 세라랑 많이 친해진 건 다행이야. 영원히 엄마 소리는 못 들을 줄 알았는데⋯.”
배미란이 민세라에게 ‘엄마’ 소리를 들은 건 3년 전부터였다.
민세라의 변화는 ‘문걸즈’ 활동이 끝나고 배우가 되면서부터, 아니 더 정확하게는 도래원과 함께 작업하면서부터 시작됐다.
때문에, 배미란에게 그간 래원은 유능한 피디이기 전에, 딸 민세라와 자신을 연결해준 매개체였다.
그래서 그런 래원을 조금 더 데리고 있으면서 남은 시간 동안 민세라를 끝까지 서포트 하고 싶었다.
민세라가 차기작은 또 도래원과 할 거라고 선언 아닌 선언을 했으니까.
우두커니 생각에 잠겼던 배미란은, 휴대폰을 꺼내 들어 민세라에게 전화를 걸었다.
– 어, 엄마?
“딸, 뭐해?”
– 나 촬영장. 지금 쉬는 시간이야.
“딸⋯.”
– 응?
“엄마가 전에 했던 말 기억해?”
– 무슨 말?
“시간은 영원하지 않다는 말.”
– 아아, 나랑 여행 가자고 했던 거?
“어머, 기억하네!”
– 당연하지.
당시 배미란은 ‘시간은 영원하지 않으니 딱 두 가지는 챙기면서 살아. 건강,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말을 민세라에게 했더랬다.
배미란이 그때 강조점을 두었던 것은 ‘건강’ 이었으나,
민세라는 ‘사랑하는 사람’에 방점을 찍고 알아들었다.
‘딸인 자기와의 관계를 미처 잘 챙기지 못해서 후회 중이다.’라는 뜻으로 알아들었더랬다.
그래서 같이 여행 가자는 엄마의 노력을 들어주고 싶었다.
“너 지금 영화 끝내고 바로 출발하는 거다? 어디 갈지 미리 생각해둬.”
– 응. 회사에도 이야기해놨어. 영화 끝나고 잠깐 쉬었다가 도래원 감독 차기작 들어갈 거라고.
“도 감독 차기작 떴어? 무슨 작품인데?”
– 나야 모르지. 엄마도 모르잖아?
“어. 나도 모르지. 근데 모르면서 회사에 이야기해뒀다고?”
– 우리 회사가 지금 제작하고 있잖아. 내가 미리 말해뒀으니까 무슨 작품이 됐든 힘써 주겠지.
“하하하. 그래, 알겠어. 엄마도 힘 써 볼게.”
– 어엇. 엄마 나가야 해! 슛 들어간대!
“그래. 촬영도 좋지만 건강 챙기면서 하고!”
– 알겠어. 나중에 봐! 엄마도 가고 싶은 곳 톡으로 보내줘.
배미란은 난생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딸과의 여행 계획에, 소풍 가는 어린아이처럼 설레면서도 가슴이 아려왔다.
* * *
이후, 금요일과 토요일을 분기점으로 2주의 시간이 흘렀다.
금토 드라마 은 9화에서 12화까지 방영되면서,
시청률은 어느덧 20% 돌파를 앞두고 있었다.
마지막 카메오인 함현우까지 공개되면서 12화 시청률에 이바지했던 것이 컸다.
예능 드라마인 만큼, 일종의 ‘게스트’ 격이라고 할 수 있는 ‘카메오 출연’이 여느 드라마와는 달리 드라마의 완성도와 홍보에 기여하는 바가 상당했기 때문이다.
ㄴ 함현우 저 얼굴로 모쏠이라고요? 작감님들아, 현실감 너무 떨어지는데요?
ㄴ 갓직히 길가에서 ‘아아’만 쪽쪽 빨고 있어도 여자들이 붙을 듯ㅎㅎ
ㄴㄴ ㄹㅇ.. 저 얼굴이면 고필우가 안 도와줘도 될 거 같은데ㅋㅋ
ㄴ 와핰ㅋㅋㅋ 분장 미쳤닼ㅋㅋ 저 잘생긴 얼굴을 못 생기게 만들려고 얼마나 힘들었을까?
ㄴㄴ 분장팀 고생하셨네!
ㄴ 안경만 벗었는데 함현우!
ㄴ 으악! 비지엠이랑 연출 완전 순정만화 컨셉ㅋㅋ
ㄴ 작감이 약 빨았네ㅋㅋ 완전 웃겨ㅋㅋ
12화 드라마 토크톡 채팅방 반응은 각양각색으로 흥미로웠다.
그리고 다음 주 13화에는 브라이트 걸스가 [심덕분]과 함께 한 번 더 출연 예정이었다.
그간 래미와 노노카의 보컬 유닛 은 소위 말하는 중박을 넘어서 대박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래원은 이것이 너무나 기쁘고 흡족했지만 동시에 섭섭하고 싫은 마음도 공존했다.
“동생이 잘 되니 좋긴 한데, 너무 바빠져서 연락이 힘든 건 별로다.”
래미의 얼굴을 못 보는 건 고사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