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reverted to being a K-drama genius RAW novel - Chapter 98
사실 함현우는 며칠 전 래원에게 기획안과 대본을 받고는 고심하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그래, 대상 수상자께서는 뭐 하시나? 대본이랑 시나리오 많이 받았지?”
원준혁도 농담으로 거들었고, 다른 배우들도 궁금해하는 얼굴로 함현우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함현우는 난감해 하며 대답을 회피했고,
이에 래원이 다시 입을 열었다.
“현우 형, 지난번에는 제가 형 손 잡아드렸잖아요. 이번에는 형이 제 손 좀 잡아 끌어주세요.”
모두가 보는 앞에서 함현우를 향해 다시 날아온 래원의 돌직구 러브콜.
래원의 얼굴은 종전과 달리 장난기 하나 없이 진심이었다.
이에 함현우의 눈빛도 진지하게 빛나며 동요하기 시작했다.
* * *
주말, 한남동의 한 이탈리안 식당.
“근데 왜 B팀 감독을 자처하신 거예요? 메인 감독이 아니라?”
강채령이 포크로 파스타를 돌돌 말면서 래원에게 물었다.
그녀가 래원에게서 차기작 소식을 듣고는 약속을 잡은 것이 오늘이었다.
“너무 욕심나는 작품이라서요.”
“대체 어떤 작품이길래?”
“으음, ‘보라’라는 30대 중반의 여인에게서 시작되는 드라마예요. 변호사인 그녀는 미국 맨해튼으로 발령을 받고서 떠나기 전, 어떤 병실에 들러요. 그곳에는 이란성 쌍둥이인 30대 형제가 코마 상태로 잠들어있죠.”
강채령은 어느새 파스타를 먹다 말고 래원의 이야기에 빠져들고 있었다.
“병실에 들어선 보라는 쌍둥이 형제 사이에 놓인 협탁 위에 책 한 권을 올려놔요. 그녀가 직접 쓴 책이죠. 그리고는 두 형제 사이에 서서 누구를 향해 말해야할 지 고민하다가 결국 그대로 가운데 서서 둘 모두를 향해 말해요.”
“뭐라고···요?”
이제는 먹던 포크를 내려둔 채로 턱을 괸 채 경청하는 강채령.
“‘요한아, 나 이제 떠나. 10년간 너를 기다렸지만, 이제는 나도 내 인생을 살아야 할 것 같아. 그래서 오직 나만이 아는 너의 이야기, 너희 두 형제의 이야기를 이 책에 적었어. 내 연락처도 남겨놨으니까 언젠가 반드시 깨어나서 꼭 연락해줘. 기다릴게. 보고 싶다, 요한아.’ 그리고는 뺨에 키스하죠. 두 형제 모두에게요.”
“요한이를 불렀는데, 왜 두 형제 모두에게 키스하는 거죠?”
강채령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질문하자
래원은 빙그레 웃으며 이야기를 마저 이었다.
“그때, 보라의 키스를 받은 두 형제 중 한 사람의 발가락이 움찔거리며 반응해요. 카메라는 그 발가락만 클로즈업했기 때문에, 그게 형 요한의 발인지 동생 유진의 발인지 나오지 않죠.”
“보라는요? 보라는 발가락 반응, 알아챘어요?”
“아뇨. 그리고 보라는 캐리어를 끌고 떠나요. 아마 공항으로, 미국 맨하튼으로 가는 길이겠죠?”
“그럼 그 책은 뭐였어요?”
“보라가 떠난 뒤, 그 책을 간호사가 발견하고는, 읽기 시작해요. 그러면서 이 드라마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거예요.”
“우와···. 벌써부터 재밌는데요?”
“하하. 더 재밌는 건 이 다음인데요? 보라가 쓴 책의 내용은 굉장히 놀라웠어요. 10년 전에 벌어진 믿지 못할 사건에 대해 서술해둔 것이었죠. 그 사건의 주인공은 10년간 코마 상태로 누워있는 두 형제, 요한과 유진이였어요.”
“10년 전에 무슨 일이 있었길래요?”
이제 강채령의 반응은 흡사 방청객 같았다.
“두 형제는 어릴 때부터 함께 배우를 꿈꿨으나, 20대가 되자 동생 유진만 스타로 성공하고, 형 요한은 오디션만 전전하다가 연기 강사로 변변치 못한 삶을 이어가고 있었어요. 이란성 쌍둥이지만 어릴 적과 달리 변해버린 서로를 이해 못 하면서 매번 싸우고 상대를 탓하기 일쑤였죠. 그러다 한밤 중에 어머니의 집에 불의의 화재 사고가 난 거예요. 그날 밤 그 집을 방문했던 요한과 유진은 불길을 피하고자 베란다로 뛰어내려요.”
“··· 그다음은요?”
“이 사고로 어머니는 안타깝게 사망했고, 서로를 맞잡고 추락한 두 형제는 서로의 육체가 뒤엉킨 상태로 함께 땅에 떨어졌어요. 다행히 생명에 지장은 없었지만, 문제는 깨어나 보니 요한과 유진의 영혼이 바뀌어버린 거죠.”
“와···. 완전 판타지네요?”
“그들의 영혼이 바뀌었다는 걸 극 중 그 누구도 믿어주지 않아요. 단 한 사람, 일주일 전 헤어진 요한의 연인, ‘보라’ 만 빼고요.”
“아···. 그래서 보라가 전부를 알고 나중에 책을 썼구나···.”
“네. 그렇게 요한과 유진은 그간 경험해보지 못한 서로의 삶을 만끽해요. 요한은 톱스타로서 유진의 육체를 즐기고, 유진은 자유로운 요한의 육체를 누리죠. 그러다가 사건이 터져요.”
“······?”
“경찰이 그들이 겪었던 화재 사고를 재조사하다가 결국 용의자를 찾아냈어요.”
“누구···?”
“요한이요. 요한이 유력한 용의 선상에 오르죠.”
“헐. 근데 지금 요한의 몸속에는 유진이의 영혼이 들어있잖아요?”
“네. 그래서 또 그 이후에 일련의 사건들이 연쇄적으로 벌어지는, 그런 서스펜스와 휴머니즘이 뒤섞인 드라마예요.”
“재밌네요. 그러니까 맨 처음 시작할 때, 보라가 두 사람 모두의 뺨에 키스했던 건, 둘 중 누구의 몸에 진짜 요한이 들어있는지 모르기 때문이겠네요?”
“맞아요. 제 이야기 안 놓치고 잘 들으셨네요, 채령 씨?”
“와아, 소름···! 감독님이 왜 그렇게까지 욕심냈는지 이제 알 것 같아요.”
“스토리 자체도 매력적이고, 두 주인공 배우 모두 요한/유진 1인 2역을 해야 한다는 게 새로운 시도가 될 거라··· 기대가 커요. 하하.”
“저도 덩달아 기대되네요. 이젠 내 친구의 차기작이니까.”
래원의 확신에 찬 어조에
강채령이 빙긋 웃었다.
“이런 드라마라면, 시청률 잘 안 나와도 작품성에 목숨 걸어볼 수 있겠다 싶더라고요.”
“··· 그럼 목숨 걸어보세요, 감독님.”
“네?”
“물불 안 가리고 목숨 걸어도 안전하게, 제가 뒤에서 에어백이 되어 드릴 테니까요. 제가 부모 복이 있어서 그런 건 잘하거든요.”
강채령이 의미심장한 말을 던지며,
와인 잔을 내밀고는 건배를 청했다.
래원도 잔을 들어 가볍게 부딪친 후 와인을 마셨다.
래원이 원하는 대로,
를 반 사전제작으로 찍으면서 주 1회씩 길게 방영하려면 제작비가 기존 예산에서 많이 오버 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오버 되는 제작비를 충당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지금 이 순간 래원에게 든든한 에어백이 생겼기 때문이다.
* * *
“브라이트 걸스, 그다음 다음 순서입니다. 슬슬 스탠바이해주세요.”
SBC 예능국의 가요 프로그램 대기실.
지금 이곳에 브라이트 걸스가 데뷔 무대 사전 녹화를 위해 대기 중이었다.
맏언니인 노노카가 제일 마음이 약한지 사시나무 떨듯 떨고 있었고,
둘째인 이나가 노노카의 손을 잡아주며 그녀를 달랬다.
“괜찮아, 언니. 우리 그동안 연습 많이 했잖아. 그대로만 하면 돼.”
솔라는 래미와 동갑이지만 생일 순으로는 팀의 가장 막내였다.
막내답게 울상을 짓고 있었고,
그런 그녀를 래미가 안아주며 토닥이는 풍경이 펼쳐졌다.
대기실 구석의 소파에는 목에 사원증을 건 래원이 앉아있었다.
근무 시간 중에 짬을 내서 래미의 데뷔 무대를 응원하러 온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방해가 될까 멀찍이서 지켜보는 중이었다.
그때,
대기실 안으로 누군가가 들어왔다.
치렁치렁 허리까지 긴 웨이브 머리를 찰랑거리며 선글라스를 벗는 여인.
민세라였다.
“엇! 언니이!!”
“세라 언니!”
네 명의 브라이트 걸스 멤버가 민세라를 발견하고는 달려들었다.
민세라는 넷을 토닥토닥 두드려주며 같은 소속사 선배답게 응원해주었다.
“와줘서 고마워요!”
“당연히 와야지. 우리 동생들 데뷔 무대인데!”
“힝, 언니이이!!” “세라 언니 최고!”
“크하하. 잘하고 와.”
래원의 눈에 비친 민세라는 전보다 여유가 생긴 듯 보였다.
처음 만났을 때와 같이,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세우고서 웅크린 채 자기 자신만 보호하려 안달 났던 그때의 그녀는, 이제 온데간데 사라진 것 같았다.
시간이 되자,
네 명의 멤버와 스텝들이 모두 손을 맞댔다.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우리는, 브라이트! 브라이트! 브라이트 걸스!”
기합이 잔뜩 들어간 파이팅 콜을 마친 후,
“오빠, 나 잘 하고 올게!”
래미를 비롯한 브라이트 걸스 멤버들이 래원과 회사 직원들에게 인사를 하고는 무대를 하러 나갔다.
대부분의 스텝들과 직원들은 객석에서 모니터하기 위함인지 따라 나갔고,
나머지 소수의 인원만이 대기실에 남았다.
그 중에는 래원과 민세라도 있었다.
래원은 소파 옆의 벽에 걸린 모니터 TV의 빈 화면을 멍하니 보다가,
다가오는 민세라의 인기척을 느끼고는 먼저 물었다.
“오랜만이에요, 세라 씨. 잘 지냈어요?”
“네. 감독님도 잘 지내셨죠? 종종 소식 들었어요. 시상식이랑 드라마.”
“저도 영화 잘 됐다는 소식 들었습니다. 축하드려요. 역시 배우 몸값 오르는 건 순식간이에요. 하하.”
“한순간의 거품일 수도 있죠. ··· 저도 축하드려요. 래미, 데뷔해서 기쁘시겠어요?”
“네. 사실 기쁨 반 걱정 반이에요. 오늘 와줘서 고마워요. 래미가 세라 씨를 정말 좋아하거든요.”
“저 실은, 오늘 여기 래원 감독님 만나러 온 거였어요. 래미 데뷔 무대라 분명히 오실 거라고 생각했어요.”
“··· 저를요?”
“네, 감독님한테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
“저, 캐스팅해 주세요. 보라 역할 너무 하고 싶어요.”
민세라의 말에 래원은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지금 이 거대한 운명의 수레바퀴를 막거나 굴릴 수 있는 것은 오직 도래원 뿐이었으니까.
K드라마 천재로 회귀했다! 96화 – 리디북스
“아직 보라 역할은 캐스팅 시작 전인데···. 빠르시네요, 세라 씨. 벌써 대본도 보셨어요?”
“네. 완전 제 취향이더라고요.”
래원은 그 출처가 어디인지 빤히 알 수 있었기에 굳이 캐묻지 않았다.
래원이 즉답을 회피하고 머뭇거리자 민세라가 그녀답지 않게 줄줄 말을 이었다.
“저 이번 영화 잘 되면서 인지도도 높아졌고, 연기도 많이 늘었어요.”
“하하하. 그럼요. 알죠.”
“아, 그렇다고 개런티를 높게 요구하겠다는 건 아니고요. 많이 안 올려주셔도 돼요. 작품이랑 역할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하려는 거니까요. 그리고···.”
“······?”
“래원 감독님이랑 꼭 다시 작업해보고 싶기도 했고요.
래원은 민세라의 고집을 꺾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았다.
‘더는 과거의 민세라가 아니잖아. 그리고 그때 이 작품에는 내가 없었지만, 이번에는 내가 이렇게 버티고 있을 거고.’
생각을 정리한 래원은 씨익 웃으며 흔쾌히 답했다.
“좋습니다. 다만 제가 메인 감독이 아니라서요. 권한이 없어요. 윤지협 피디님, 옥 작가님이랑 이야기해보고 회신 드릴게요. 우리 작품이랑 절 좋게 봐줘서 고마워요, 세라 씨.”
“··· 긍정적인 회신 기대해도 되는 거죠, 감독님? 기다릴게요.”
이윽고,
대기실 모니터 화면 속 무대에 브라이트 걸스가 들어와 있었다.
“어? 이제 시작하나 보네요.”
래원은 모니터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브라이트 걸스의 데뷔 곡명은 였다.
나의, 비밀 친구! ♪♬
내 안에 너를 위한 ♪♬
자그마한 방이 있어 ♪♬
메인 보컬인 노노카의 시원한 고음을 시작으로 그들의 무대가 시작됐다.
전체적으로 상큼한 분위기의 미들 템포 댄스곡이었다.
노노카, 이나, 솔라 그리고 래미까지
넷의 비주얼은 누구 하나 빠지는 것 없이 훌륭했다.
우리나라 3대 아이돌 기획사로 손꼽히는 원더빅 엔터테인먼트에서
문걸즈의 활동 종료 이후, 가히 야심 차게 내놓은 걸 그룹이라 할 만했다.
“긴장한 거 같긴 한데, 첫 무대치고 잘 하네···.”
“댄스 합도 딱딱 잘 맞아요. 저렇게 하려고 얼마 연습을 많이 했겠어요···.”
래원과 민세라가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로 중얼거렸다.
모니터 속 브라이트 걸스는 살랑살랑 춤을 추다가도, 절도 있는 고난도 댄스를 선보이기도 했다.
그 안의 시간은 오직 ♪♬
너를 위해서 흘러가 ♪♬
그리고 마지막,
엔딩 요정은 도래미였다.
너는 나의, 비밀 친구! ♪♬
래미가 트레이드 마크가 되어버린 인디언 보조개를 만들며, 카메라를 향해 환히 웃었다.
짝짝짝짝짝—
대기실 안에 있는 이들이 박수를 쳤다.
곧이어,
박현만 대표와 직원들 그리고 브라이트 걸스 멤버들이 대기실로 돌아왔다.
스텝들이 준비했던 폭죽을 터뜨리며,
데뷔 무대를 무사히 마친 것을 축하했고
래원과 민세라는 흐뭇한 얼굴로 멀찍이 서서 이 진풍경을 구경했다.
도래미가 래원을 발견하고는 손을 흔들었고,
래원은 엄지를 지켜 들어 보였다.
래미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축하받고, 아이돌 가수로서 자기 일을 하는 모습은,
드라마 현장에서 보던 래미와는 또 달랐다.
이를 지켜보는 래원의 가슴 속에서도 뜨거운 무언가가 일었다.
“어떻게 보셨어요?”
어느새 박현만 대표가 래원의 옆에 다가오더니 물었다.
“너무 잘 봤습니다. 대표님, 수고 많으셨어요. 우리 래미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래원이 박현만 대표의 손을 맞잡고 꾸벅 인사를 했다.
자식을 맡기는 부모의 마음이 된 듯 말이다.
* * *
래원은 다시 드라마국으로 돌아와 일을 마무리한 후,
이제는 래미가 없는 집으로 퇴근했다.
래미는 며칠 전부터 브라이트 걸스 멤버들과 원더빅 근처의 숙소에서 생활하기 시작했다.
래미가 없으니,
래원은 야근해도 마음이 불편하지 않았고
반찬 신경 쓸 일도 없었다.
띡.띡.띡.띡.띠릭-
“아, 이제는 조심히 누를 필요 없구나. 습관 됐네.”
늦게 들어와도 현관 번호키를 조심스레 누르지 않아도 되었다.
래미가 없어서,
집안은 쥐죽은 듯이 조용했고
래원은 이렇게 아무도 없는 어두운 빈집에 혼자 들어와야 했다.
“강아지라도 입양해야 하나···.”
래미의 빈자리는 생각보다 컸고 쓸쓸했다.
하지만 이 또한 익숙해지리라.
지금의 두 번째 삶으로 돌아오기 전,
래원은 훨씬 더 긴 시간을 홀로 오피스텔에서 살았더랬다.
“새삼스레 왜 이러냐.”
어느새 래미와의 삶에 익숙해져 버린 래원이었다.
치익— 탁!
씻고 나온 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