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reverted to being a K-drama genius RAW novel - Chapter 99
래원은 맥주 한 캔을 따서 시원하게 들이켰다.
“래미도 이제 내년이면 성인이야. 언제까지고 내 동생으로 품고 살 수는 없지. 이번 생에는 래미도 잘 돼야지. 내가 어떻게 찾아준 꿈인데···.”
래원은 입이 심심해져서 감자칩 한 봉을 안주로 까고는 소파에 앉았다.
맥주를 마시며 오늘 봤던 래미의 데뷔 무대를 떠올렸다.
분명 성공적인 무대였으나, 웬일인지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엄마 아빠가 보셨으면 참 좋아하셨을 텐데···.”
야밤에 혼자 술을 마시니 괜스레 센치해졌다.
그리고 나니 그다음은 민세라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래원이 기억하는 과거의 민세라는,
대중들에 의해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후
끝내 자살로 생을 마감했던 안타까운 인물이었다.
“그래서 할 때, [노미령] 역할에 유독 민세라가 떠올랐었지.”
하지만 래원이 이번 생에 새로 알게 된 정보에 의하면, 민세라의 죽음 뒤에는 대중들의 악플 뿐만 아니라
친엄마 배미란 사장에 대한 배신감과 상처도 있었던 것 같았다.
“민세라는 그때보다 훨씬 단단해졌고 강해졌어. 배미란과 관계도 좋아진 데다가, 악플에도 내성이 생겼으니까 큰일은 없을 거야. 그렇게 믿고 옆에서 지켜봐야지.”
민세라가 자살하지 않는다면,
래원이 황태수와 틀어질 일도 생기지 않을 것이었다.
래원은 몸을 일으켜 냉장고에서 맥주를 한 캔 더 꺼냈다.
“황태수 선배가 지금에야 나한테 최고의 조력자지만, 과거에는 말도 못 하게 나를 싫어했지···. 어휴, 그것도 이젠 다 추억이네?”
그때 황태수가 래원을 눈엣가시처럼 여겼던 이유는,
래원이 지금처럼 일을 잘하지 못해서 그런 것도 있었고, 민세라 자살 사건 당시 황태수에게 대들었던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었다.
그때 당시 황태수는 민세라가 자살한 현장에서 휴대폰을 빼돌렸다.
이를 안 래원이 대들었던 것이고.
그 이후 래원은 황태수의 눈 밖에 나서 몇 년간 조연출과 B팀만 전전했더랬다.
“돌이켜보면, 황태수 선배가 그때 왜 그랬는지 이해는 가. 배미란 사장이 사주했던 거겠지. 민세라가 숨겨둔 딸이었다는 게 밝혀질까 봐···. 배 사장은 지금의 가정을 지켜야 했고, 검사장 출신 남편 출셋길도 막히면 안 되니까 그랬을 거고.”
래원은 남은 맥주를 한 번에 들이켜고는 캔을 꽉 쥐어 찌그러뜨렸다.
알고 보면 모든 비극에는 이유가 있다.
그리고 지금의 래원에게는 과거의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게 할 힘이 있었다.
* * *
[ 브라이트 걸스, 실력도 미모도 400% 완충하고 나왔어요! ] [ 섹시한 애 옆에, 청순한 애, 옆에 귀여운 애, 옆에 예쁜 애 – ‘브잇걸’ 4인 4색 매력 발산 ]ㄴ 엔딩요정 피카좌로 입덕!
ㄴㄴ 솔직히 말해봐에서도 캐리했지ㅋ
ㄴ 리보좌가 막내아니고 맏언니인 거 실화?
ㄴㄴ ㅇㅇ 막내는 숏컷좌임
ㄴ 금발좌는 혼혈 맞음?
ㄴㄴ ㅇㅇ 어머니가 스위스인이래
ㄴㄴ 금발 섞인 갈색 머리 존예
ㄴㄴ 눈동자도 완전 오묘함
ㄴ 브잇걸 떡상 가즈아!!!
ㄴ 너무 눈부셔서 선글라스 껴야함ㅋ
브라이트 걸스가 데뷔한 지 한 달.
이제 래원의 하루는 침대에서 눈을 뜨자마자 휴대폰으로 ‘브라이트 걸스’와 ‘도래미’를 검색해보는 것으로 시작됐다.
다행히 반응은 긍정적으로 뜨거웠고,
덕분에 요즘 래원은 매일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다.
브라이트 걸스는 연이은 무대와 라디오 스케줄을 소화하며, 홍보에 박차를 가했다.
덕분에 하루 한 번 영상 통화하기도 힘들었지만, 래원은 동생 래미의 신난 목소리와 방긋 웃는 얼굴을 보는 것이 좋았다.
– 오빠! 우리 팬클럽 이름도 정해졌어.
“뭔데?”
– 선글라스! 브라이트 걸스가 눈부셔서 팬들은 선글라스래. 헤헤. 웃기지?
“어, 재밌다. 나도 선글라스 해야겠네.”
– 으헤헤헤.
“밥 잘 챙겨 먹지? 다이어트 그만해.”
– 웅, 요새는 잘 먹고 다녀. 스케줄이 많아서 살이 저절로 빠진다.
“오빠가 응원한다, 래미야!”
– 웅, 이제 끊어야겠다. 오빠, 좋은 하루 보내!
화려한 아이돌 메이크업을 예쁘게 한, 화면 속 래미를 보고 있자니,
래원은 문득 지난 삶의 래미가 떠올랐다.
래미에 대한 죄책감에 편히 죽을 수도 없었던 그 과거 말이다.
그때와는 전혀 다른 삶이 두 남매 앞에 펼쳐지고 있었기에,
래원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출근길에 나섰다.
* * *
바이탈 사인 모니터가 삐.삐.삐— 규칙적으로 울리는 가운데,
“정신이 드세요? 장요한 환자, 제 말 들리세요?”
요한(유진), 눈을 깜박이다가 뜬다.
동시에 화면도 깜박깜박 이다가 밝아지면 낯선 천장이다.
“형은..요? 형은 괜찮아요?”
“정신 차리세요, 요한 씨. 열흘 만에 눈 뜨신 거예요. 화재 사고, 기억하시죠? 두 분 다 이 정도로 멀쩡하신 건 기적입니다, 장요한 씨.”
“⋯ 저는, 유진인데요. 장유진?”
상황 파악이 안 되어 멍한 요한(유진)의 얼굴에서,
바이탈 모니터 효과음 삐— 하고 아웃되며,
2부 엔딩!
.
.
.
짝짝짝짝짝-
SBC의 대회의실에는
드라마 의 상견례와 대본 리딩의 끝을 알리는 박수가 울렸다.
그 어느 때보다 순조롭게 진행된 캐스팅이었다.
이란성 쌍둥이 형 [요한]에 함현우,
동생 [유진]에 장모건,
그리고 변호사이자 요한의 연인 [보라] 역에 민세라까지.
1순위 배우들이 모두 오케이를 해준 덕에 빠르게 성사될 수 있었다.
상석에 앉은 윤지협 PD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배우 분들 수고 많으셨습니다. 우리 드라마는 반 사전제작으로 촬영 예정이고요, 9월 중순에 주 1회씩 12부작으로 방영됩니다. 요일은 미정이고요, 편당 90분 편성으로 결정됐습니다.”
따로 떨어져 앉은 래원은,
대회의실에 모인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신영진 촬영감독이 래원과 눈이 마주치자 씨익 웃어주었다.
오랜만에 함께 하기로 한 신영진 촬영 감독.
굵직한 드라마와 영화를 오가며 내로라하는 감독들의 러브콜을 받는 베테랑으로, 머지않아 오스카에서 아카데미 촬영 감독상을 받게 된다.
이번 생에 래원의 조연출 시절부터 입봉작까지 함께했던 감독이기도 했다.
이번에도 윤지협이 아니라 래원의 러브콜을 받고 한달음에 달려온 사람이었다.
그 밖의 조연 배우들과, 조명 감독, 미술 감독, 의상과 분장 팀 등등.
내로라하는 스텝들이 한자리에 모여있었다.
‘지금은 내가 자처해서 B팀 감독 자리에 앉아있지만, 는 결국 내 드라마가 될 거니까, 여기 있는 사람들은 전부 내 배우, 내 스텝들이다.’
래원은 상견례 현장을 둘러보며 다시금 다짐했다.
‘내 드라마, 내 배우들, 내 스텝들은 내가 지켜야지.’
래원의 눈빛에는 확신이 어려있었다.
이미 머릿속에 계획이 전부 서 있었으니까.
K드라마 천재로 회귀했다! 97화 – 리디북스
* * *
– – –
SBC 미니시리즈
제작: SBC, 보라뱀 미디어
대본: 옥영임
연출: 윤지협, 도래원
책임 프로듀서: 황태수
투자: 천하 일보, JC푸드
– – –
SBC 드라마국의 한 회의실.
막내 조연출들이 연출부 회의를 준비하며,
수정 기획안과 수정 대본에 위와 같은 표지를 붙이고는 빈자리에 올려놓았다.
이윽고 황태수 책임프로듀서, 메인 연출 윤지협 PD, B팀 도래원 PD, 메인 조연출 유찬 PD가 들이닥치며 연출부 회의가 시작됐다.
윤지협이 돌연 질문을 던졌다.
“근데 태수 형, 제작비 충당이 어떻게 된 거야? 기존 예산보다 오버 된 거 충당했으니 반 사전제작에 주 1회 방영으로 픽스된 걸 거 아냐?”
“투자사가 따로 더 붙었어.”
원래는 SBC와, 옥영임 작가를 데리고 있는 보라뱀 미디어가 합작으로 제작하며 제작비를 쉐어하기로 했었다.
하지만 불과 지난주에 천하 일보와 JC푸드의 자본 투입이 추가로 결정된 후, 버짓이 대폭 늘어날 수 있었다.
윤지협이 기획안 표지에 적힌 이것을 확인하고는 되물었다.
“천하 일보랑 JC푸드요?”
“어. 우리 드라마를 관심 있게 봤다나 봐.”
“의외네요. 천하 일보는 드라마에 직접 투자한 건 처음인 거 같은데···. JC푸드? 이쪽은 JC그룹이 도 피디 ‘소철않’에 250억 쐈던 인연으로 우리 작품을 알게 된 건가요, 선배?”
“지협아, 뭘 그렇게 꼬치꼬치 따지냐. 출처가 어찌 됐든 더러운 돈만 아니면 우리 입장에서 무조건 감사합니다, 하는 거지. 회의나 시작해.”
황태수가 래원의 눈치를 슬쩍 보고는 윤지협에게 핀잔을 주었고,
이에 윤지협은 궁금증을 억지로 삼킬 수밖에 없었다.
한편, 래원은 와인 친구 강채령 생각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다시 살고 볼 일이다. 내가 그 유명한 강채령의 도움을 다 받게 되네?’
강채령이 지금은 그저 언론 재벌 집 막내딸, 드라마 광이지만
장차 엔터테인먼트계의 큰 손이 될 인물이었으니까.
“A팀, B팀 촬영 스케줄 확인해주세요.”
래원은 유찬이 내민 일정표를 받아들며 다시 회의에 집중했다.
그런데, 래원의 눈에 이상한 오류가 하나 눈에 띄었다.
“어? 찬아, 이거 A팀, B팀이 바뀐 거 아니냐? 3월 7일 자 오후랑 밤 촬영 봐봐.”
회의실 모두가 해당 일자 스케줄을 살폈다.
“그러네, 찬이가 실수했네.”
“어? 스케줄러랑 저 사이에 뭔가 착오가 있었나 봐요. 연락을 다시···”
“연락 주기 전에 우리 선에서 먼저 정리하는 게 빠를 거 같아요. 그렇지 유찬아? 한 팀이 오후, 밤 종일 야외 촬영 나가고, 다른 한 팀이 세트장 촬영 나가면 클리어한 거잖아?”
“네···.”
윤지협이 메인 연출답게 효율적으로 상황을 정리하려 했고,
생각해둔 바가 있던 래원은 그간의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선배, 제가 야외 촬영 나갈게요.”
“어?”
래원의 갑작스러운 의견 피력에 윤지협이 반사적으로 반문했고,
유찬이 눈치 없게 되물었다.
“래원이 형 집, 이번 셋트장 근처잖아?”
“찬아 그게 뭔 상관이냐. 촬영이 무슨 동네 마실도 아니고. ··· 그냥 윤 선배 몸도 아직 회복 중인 거 같고, 저도 촬영 초반에 체력 있을 때 힘든 씬들 많이 찍어두고 싶어서요.”
이것이 거짓말은 아니었지만 래원의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래원이 1부 대본에서 가장 욕심이 났던 15씬이, 3월 7일 야외 촬영에 배정되어 있기 때문.
15씬은 대본 리딩 때부터 배우들 감정 처리가 마음에 걸렸으나, 그 당시 래원은 메인 연출이 아니기에 월권을 할 수 없어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넘어갔더랬다.
‘촬영 현장에서 내가 손 봐야지.’
그 누구도 래원의 제안에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그래. 그렇게 정리하자. B팀이 야외 촬영가. 내가 셋트장 분량 찍을게.”
* * *
타앙-!
배미란 사장의 레이업 샷.
골프공이 햇살을 가르며 상공을 날더니
저 멀리에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며 안착했다.
“굿샷! 굿샷! 사장님 오늘 기세가 엄청나신데요? 이러시면 긴장되는데···.”
황태수가 사회생활 목소리 톤으로 호들갑을 떨었고,
그 옆에서 래원도 세차게 박수를 쳤다.
세 사람은 필드를 걸어 카트에 올라타며
다음 홀로 이동했다.
“내가 도 피디랑도 라운딩하고 싶어서 황 부장한테 부탁했을 때는, 분명 골린이라고 들었는데?”
“하하. 네, 그땐 그랬습니다.”
“근데 언제 이렇게 늘었어? 도 피디 대체 못 하는 게 뭐야?”
“하하하. 과찬이세요. 사장님 따라잡으려면 아직 한참 모자랍니다.”
“당연하지. 내가 몇 년을 쳤는데.”
라며 미소 짓는 배미란.
그녀는 오늘따라 유독 기분이 좋아 보였다.
“ 그거 나도 대본 재밌게 봤어. 기획안 때부터 괜찮다고 황 부장이 자랑에 자랑을 하더라고. 내 선에도 신경 많이 쓰고 싶은 작품이야. 이번에도 잘 해봐, 도 피디.”
“네, 열심히 준비하겠습니다.”
“근데 왜 B팀이야? 차라리 공동 연출로 들어가는 게 더 모양새가 좋지 않나? 보나 마나 도 피디가 보통의 B팀 감독 이상의 몫을 해낼 게 분명한데···.”
“아닙니다. 원래 윤지협 선배 작품인데, 제가 넣어달라고 조른 거예요. 선배랑 하면서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지금 래원에게는 공동 연출보다 더 큰 그림이 있었으니까 이렇게 반응할 수 있었다.
허나 배미란 이를 자기 식대로 긍정적으로 해석하며 빙긋 웃었다.
‘실력도 출중한데, 인성도 겸비했다? 세라가 대본까지 빼달라고 하면서 도 피디랑 계속 작업하고 싶어하는 이유가 있었네.’
배미란은 래원 자체도 마음에 들었지만, 민세라 때문에라도 래원을 계속 곁에 두고 싶었다.
그래서 슬쩍 본론을 꺼냈다.
“민세라는 어때? 여주로서 괜찮아?”
“[보라]역이 기본적으로 새침해야 하는 캐릭터인데 이미지도 맞고, 연기도 전에 ‘레장여’ 같이 했을 때보다 많이 늘었더라고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배우입니다.”
래원은 배미란의 의도를 간파하고는 즉답을 늘어놓았다.
배미란의 미소가 더 커지며 함박웃음이 됐고,
“그래? 내가 보기에도 요즘 아이돌 출신 여배우 중에 제일 괜찮은 것 같아.”
“네, 연기에 대한 열의가 아주 대단합니다. 대본 리딩 때도 대사 일부를 이미 외워왔더라고요.”
그녀의 의중을 아는 황태수도 한마디 거들었다.
“민세라. 이번에 도 피디가 디렉팅으로 잘 만들어봐봐. 전에 류소현 잘 키웠듯이.”
“더 신경 쓰겠습니다. 근데 류소현이랑 비교하기에는 이미 이번 영화 이후로 민세라의 클래스가 달라졌어요. 본인도 의욕 넘치고, 제가 보기에도 지금보다 더 잘 될 수 있을 것 같은 배우이긴 합니다.”
래원의 말에 배미란의 양쪽 입꼬리가 더욱더 올라가더니 내려올 줄을 몰랐다.
지금 그녀의 얼굴은 민세라와 사적인 관계거나 그녀의 엄청난 팬이 아니면 나올 수 없는 표정이었다.
‘확실히 과거와는 다른 양상으로 흘러가는 것 같다.’
래원도 덩달아 입꼬리가 올라갔다.
‘지금 삶에서 민세라가 전에 먼저 배미란한테 손을 내밀었고, 그걸 계기로 배미란도 변하기 시작했어. 하지만 과거에는 배 사장이 이렇게까지 민세라를 신경 쓰지 않았을 거야. 그러니 민세라도 계속 어긋났던 걸 거고, 결국에는 그런 사단까지 났던 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