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demon, go home RAW novel - Chapter 27
백엽의 경고.
일반 흑도 무사들에게는 최후통첩이나 마찬가지였다.
무림인에게 무공 폐쇄는 죽음보다 두려운 것일 수 있기에 지금 선택이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것이다.
생사신의가 소리쳤다.
“본회에 가입할 사람들은 모두 무릎을 꿇으시오. 그러지 않으면 무공 폐쇄를 피할 수 없을 것이오. 우리 회주님의 경고를 무시하고 나중에 후회하지 마시오.”
일반 흑도 무사들이 술렁였다.
하지만 아직 무릎을 꿇는 사람은 없었다.
이미 한번 선택을 통해 백여 명이 지존회에 들어왔기 때문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흑수보주가 소리쳤다.
“곽유! 네놈이 정말 무도하기 짝이 없구나. 네놈은 흑도가 아니라 필시 무림맹 간자다. 오히려 내가 경고하겠다. 지존회 무사들에게 알리겠소. 잠시 저놈에게 속아 지존회에 들어간 사람이 있다면 지금 다시 탈퇴하시오. 곧 삼만 대군이 들이닥칠 것이오. 고작 백 명 정도 되는 병력으로 감당할 수 있겠소?”
흑수보주의 말에 이번에는 지존회 무사들이 술렁였다.
이복승이 소리쳤다.
“방주께서 오시면 지존회에 몸담은 사람은 한 명도 빠짐없이 죽임을 당할 것이다.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지존회 무사 중 지금이라도 탈퇴를 할 사람은 무릎을 꿇어라. 그러면 모든 것을 용서하겠다.”
이복승마저 맞불을 놓자, 장내 분위기가 긴장감으로 가득해졌다.
백엽은 태연한 표정이었다.
생사신의와 성녀, 매영설 세 사람도 이제 전적으로 그의 결단에 맡기는 듯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팽팽한 긴장감.
아직 누구도 무릎을 꿇는 사람은 없었다.
일반 흑도 무사들과 지존회 무사들 모두 현 상황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어쩔 수 없군.”
백엽이 말을 한 바로 그때.
일반 흑도 무사들 역시 천혈방과 동정수로채 무사들처럼 픽픽 쓰러지기 시작했다.
“아니! 저런!”
단상에 있던 지휘부 고수 백여 명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와당탕.
오히려 단상에 있다가 굴러떨어지는 자가 속출했다.
멀쩡한 사람은 흑수보주, 백골문주, 사해방주 세 명뿐.
나머지는 주저앉거나 쓰러진 채로 꼼짝도 못 하고 있었다.
‘천마독의 위력이 대단하군.’
백엽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사실 그가 조금 전에 불었던 피리 속에는 천마독이 들어가 있었다.
천마독은 미량만 있어도 한 번에 수천 명을 중독시킬 수 있는데, 천마음으로 그 공략 대상을 조절할 수 있었다.
영웅회 특사단과 지존회 무사들은 멀쩡한 이유였다.
다만 천마독은 천마음으로만 퍼뜨릴 수 있고, 천마음은 천마진기로만 불 수 있었다.
천마진기는 천마신공으로 쌓을 수 있는 진기로, 백엽의 경우 선천진기를 제외한 모든 내공이 천마진기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다만 극마의 경지에 도달했기 때문에 외부인은 그 성질을 간파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대체 어쩌자는 것이냐?”
이복승이 소리쳤다.
불안감을 느낀 사균과 흑수보주, 백골문주, 사해방주 네 명이 그가 있는 곳으로 모였다.
그들이 느끼는 불안감은 자신들만 예외적으로 중독이 되지 않은 데서 비롯되었다.
처음에는 내공이 강해 중독을 면했다고 생각했으나, 곧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백엽이 그들 다섯 명을 향해 검을 들었다.
“전력을 다해야 할 것이오. 나를 이기면 살 수 있고, 그러지 못하면 죽을 것이오.”
“놈! 그럴 줄 알았다. 하지만 네놈 역시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이미 내공 소모가 극심하다는 것을 다 알고 있다.”
이복승이 노성을 터뜨렸다.
나머지 네 명 모두 대결이 불가피함을 깨닫고 이복승과 함께 병풍처럼 백엽을 에워쌌다.
“굳이 우리를 죽이려는 이유가 무엇이냐?”
이복승이 물었다.
백엽이 담담히 말했다.
“그것은 그대들이 수장이기 때문이오. 무림에서 수장은 어쩔 수 없이 책임을 져야 하는 경우가 있는 것이오. 그대들은 수없이 많은 양민을 학살했고, 이를 뉘우친 적도 없소.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소. 다만 그대들 역시 무림인이기에 나와 정정당당히 실력으로 겨룰 기회를 준 것이오. 그것이 그대들이 중독을 피한 이유요.”
“흥! 개소리하지 마라! 네놈 뜻대로 되지는 않을 것이다. 어서 저놈을 죽입시다. 합공을 가하면 쉽게 패하지 않을 것이오. 방주께서 오실 때까지만 버티면 되니 힘을 냅시다.”
이복승의 말과 함께 그를 포함한 다섯 고수가 일제히 합공을 가했다.
쏴아아.
슈우욱.
각자의 병장기들이 파공성을 일으키며 백엽을 향해 쏟아졌다.
죽음의 위기에서 펼쳐지는 그들의 무공.
그것은 평상시보다 몇 배의 위력이 담겨 있었다.
백엽조차 흠칫할 정도였다.
오죽하면 생사신의와 성녀가 합세하려고 했을까.
하지만 그보다 앞서 백엽의 검이 원호를 그렸다.
순간 금빛이 흐르는 동심원 모양의 검강이 생겨났다.
검강이 폭발적으로 부풀어 오르며 무섭게 회전한 것은 그 직후였다.
이복승, 사균 등의 공격이 도달했으나 그 회오리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크윽!”
“으윽!”
금빛 회오리에 휩쓸린 다섯 명의 고수들의 몸이 갈기갈기 찢겨나갔다.
피보라와 함께 수천 조각으로 나뉜 육편들이 허공에 치솟았다가 우수수 떨어졌다.
혈우(血雨)였다.
그것은 공포의 다른 이름이기도 했다.
영웅회와 지존회 무사들조차 소름이 끼쳐 환호성도 지르지 못하고 있을 때.
백엽이 다시 피리를 불었다.
삘리리리.
이번에는 다른 곡조였다.
그 순간 쓰러져 있던 삼천 무사들이 일제히 피를 토하며 정신을 잃었다.
“으윽!”
“크윽!”
생사신의와 성녀, 백여희 등이 그들을 보니 한 명도 빠짐없이 무공 폐쇄가 되어 있었다.
비록 목숨은 구했지만 전투력을 상실한 것이다.
“백 소저께서는 지금 바로 영웅보로 가서 전면전에 대비해 전투태세를 갖추도록 하시오.”
“네. 회주님.”
백여희가 고개를 숙였다.
절대신위 앞에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다만 질문 하나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영웅회가 위기에 처하면 도움을 주실 건가요?”
“물론이오. 각자 가는 길이 다르지만 천혈방과 동정수로채는 이제 공동의 적이 되었으니 당분간 협력하도록 합시다.”
“감사해요. 그럼 명대로 가보겠습니다.”
백여희, 악완 등 특사단 무사들이 포권으로 예를 표한 후 서둘러 떠났다.
특사단이 사라지자, 백엽이 지존회 무사들을 향해 말했다.
“신의와 선자, 그리고 설이는 본회 무사들을 이끌고 지존장원으로 가 있으시오.”
“사부님은 안 가시나요?”
“나는 아직 할 일이 있다.”
“설마 삼만이 넘는 적들과 혼자서 싸울 생각은 아니시겠지요?”
“물론이다. 하지만 이대로 가면 놈들이 곧바로 영웅보로 진격할 가능성이 크다. 어떤 식이든 최대한 시간을 끌어야 한다. 이 일은 나 혼자만으로 충분하니 모두 지존장원에서 대기하도록 하시오. 장원 주위에 결계를 쳐놨으니 적의 공격은 걱정하지 않아도 좋을 것이오. 어서 가시오. 시간이 얼마 없소.”
“하지만······.”
매영설와 생사신의, 성녀 세 사람이 안색을 굳혔다.
백엽이 휴식도 취하지 않고 적진에 남아 삼만 병력을 맞이한다고 하니 걱정이 앞서는 것이다.
성녀가 품속에서 단약 하나를 꺼냈다.
“이것을 드시도록 하세요.”
“아! 이것은?”
백엽이 깜짝 놀랐다.
성녀가 내민 은은한 백색 빛이 나는 영단의 정체를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성력의 결정체라 할 수 있는 천마성수(天魔聖水)를 얼린 것이었다.
성녀가 매일 수행을 통해 만드는 천마성수의 양이 매우 적다는 것을 알고 있는 백엽으로서는 놀랄만도 했다.
“이 귀한 것을?”
“아무 말씀 말고 드세요. 그러지 않으시면 가지 않겠습니다.”
“고맙소.”
백엽이 성녀가 보는 앞에서 성녀단(聖女丹)을 복용했다.
“이제 가보시오. 놈들이 가까이 왔소.”
“네.”
생사신의, 성녀, 매영설을 비롯한 지존회 무사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인 후 천혈방 악양지부를 떠나갔다.
백엽은 묵묵히 그들을 바라볼 뿐이었다.
* * *
천혈방주 상효통(桑哮通).
삼만 무사를 거느리고 천혈방 악양지부에 도착한 그는 눈앞의 광경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이천 명의 수적을 이끌고 온 동정수왕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도 그럴 것이 두 사람을 환영해야 할 삼천 무사들이 모두 무공 폐쇄가 되어 있었다.
곧바로 무공을 잃고 무기력하게 앉아 있는 무사들에게 자초지종을 듣게 되었다.
“지존회주 곽유? 이 모든 게 그놈 짓이란 말인가?”
“네. 방주님. 놈이 푼 독에 중독되어 그만······.”
아직 회복이 덜 되어 거동도 하기 힘든 천혈방 무사 한 명이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상효통이 옆에 있는 동정수왕에게 물었다.
“수왕. 어떻게 생각하시오? 귀 수채의 피해 역시 본방과 다를 것 없구려.”
“지존회주라는 그놈의 무공이 엄청난 것 같소. 아무리 살상 범위가 큰 독공이라고 해도 이 많은 사람을 중독시키려면 보통 내공으로는 어림도 없소.”
“나 또한 같은 생각이오. 마교의 공격을 우려해 화산파와 형산파 놈들이 철군했다는 소식을 듣고 좋아했건만, 이런 예상치 못한 강적을 만나다니. 천혈선생(天血先生)! 어떻게 했으면 좋겠소? 지금 당장 지존회주라는 그놈을 찾아 복수해야 하지 않겠소?”
상효통이 천혈방 총군사를 맡고 있는 천혈선생을 쳐다봤다.
그는 지략이 뛰어나 상효통이 거금을 들여 영입한 인물이었다.
이번 작전 역시 그의 머리에서 나온 바 있었다.
“방주님. 지금 바로 모든 무사를 이끌고 영웅회를 쳐야 합니다.”
“영웅보로 가자는 말이오?”
“네. 놈들의 병력은 이천 명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화산파와 형산파 놈들이 오기 전에 초토화한다면 악양 무림을 장악할 수 있을 겁니다.”
“지존회주라는 놈은? 혹시라도 우리 배후를 치지 않겠소?”
“그건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놈이 자신 있었다면 도주하지 않고 이곳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을 겁니다. 분명 극심한 내공 소모로 최소한 하루 이상 운기조식이 필요할 겁니다. 게다가 지금 놈의 소굴도 모르는 상황입니다. 복수는 영웅회부터 궤멸시킨 후 해도 늦지 않습니다. 그러지 않고 지체하다가 만약 마교 놈들이 철수한다면 화산파와 형산파 놈들이 다시 개입하려 할 겁니다.”
“으음, 일리가 있소. 만약 우리가 단숨에 영웅회를 궤멸시키면 화산파와 형산파 역시 지원 계획을 철회할 것이오. 자기들 본산 방어하기에도 바쁠 테니까.”
“그렇습니다. 마교의 움직임은 가변적이라 일시 물러나도 언제든 재빠르게 공격을 가해올 수 있지요. 결정을 내리시지요. 한시가 급합니다. 혼자서 삼천 명의 무공을 폐쇄한 그 지존회주라는 놈의 무력은 우리 무사 만 명 정도와 맞먹을 거로 판단됩니다. 한 마디로 천마와 버금가는 놈이라는 말이지요. 하지만 영웅회가 궤멸하면 외부 지원이 더는 없을 터. 그때는 인해전술로 놈을 공략할 수 있을 겁니다. 어서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으음, 수왕의 의견은 어떻소?”
“좋은 생각이오. 하지만 우리 동정수로채는 영웅회 공격보다는 지존회주 그놈의 거처부터 파악하겠소. 어떻게 생각하시오?”
동정수왕의 말에 상효통이 천혈선생을 쳐다봤다.
천혈선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좋겠네요. 지존회주 그놈의 행방을 파악해두는 것도 시급한 일이긴 합니다.”
“좋소. 한데 무공을 잃은 무사들은 어떻게 처리하면 좋겠소?”
상효통이 인상을 찌푸렸다.
무공을 잃은 수하들의 처리가 마음에 걸린 것이다.
천혈선생이 무심히 말했다.
“방규대로 처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방규대로 하면 어떻게 되오?”
“무공을 잃은 경우 평상시라면 방에서 내보내면 되나 전장에 임했을 때는 폐기가 원칙입니다.”
“으음, 하기야 저 꼴로 밖에 나가면 본방의 체면이 곤두박질할 것이오. 기밀이 새나갈 수도 있고. 수왕의 생각은 어떻소?”
“본 수채의 율법 또한 마찬가지요. 무공을 잃은 놈들을 어디에 쓰겠소? 차라리 숨통을 끊어주는 게 좋을 듯하오.”
“알겠소.”
상효통이 여전히 쓰러져 있는 삼천 무사들을 쳐다봤다.
천마독은 서서히 풀리고 있었으나 무공 폐쇄로 인한 충격 때문에 여전히 거동이 불편했다.
자신들을 죽이겠다는 이야기를 들은 그들이 경악한 것은 물론이었다.
“방주님! 살려주십시오!”
“채주님! 제발!”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삼천 무사들이 애원했다.
하지만 상효통은 무심했다.
“명을 전한다. 쓸모없는 놈은 우리의 수치다. 어서 죽여라!”
동정수왕 역시 명을 내렸다.
“모두 죽여라!”
“존명!”
“존명!”
천혈방과 동정수로채 무사들이 대답과 함께 쓰러져 있는 삼천 무사들을 죽이기 시작했다.
푹푹푹!
삼만이 넘는 병력이라 그런지 삼천 명을 죽이는데 시간이 얼마 걸리지도 않았다.
얼마 후 대량학살이 마무리되자 상효통이 소리쳤다.
“천혈방 무사들은 들어라. 지금 바로 영웅보로 가서 영웅회 놈들을 한 놈도 빠짐없이 죽일 것이다. 모두 출발하라!”
와아아아.
엄청난 함성과 함께 천혈방 삼만 무사들이 연무장을 빠져나가려 했다.
그들이 출동하게 되면 남은 동정수로채 무사들 역시 지존회 무사들의 거처를 파악하기 위해 움직일 것이었다.
그때였다.
난데없는 피리 소리가 연무장 전체에 울리기 시작했다.
조금 전 피리 소리에 당했다는 보고를 들었던지라 무사들의 안색이 굳어졌다.
“지존회주 그놈인가?”
상효통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상효통이 내공을 끌어올려 소리쳤다.
“어서 나타나지 못하겠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