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Demon Return to Home RAW novel - Chapter (84)
비밀 통로는 생각보다 길었다.
가도 가도 끝이 없다고나 할까.
백엽이 앞장서서 천여 명의 포로들을 데리고 나아갔지만, 반시진이 넘도록 길은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계속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지금 와서 돌아간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었다.
간수들을 비롯한 무림맹 무사들이 지금쯤 금마광장에 진입했을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아직 이렇다 할 장애물은 보이지 않았다.
혹여 기관이라도 있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지금까지는 길고 긴 통로만이 있을 뿐이었다.
다만 통로의 방향으로 봐서 출구는 아무래도 무림맹 총단 뒤편에 있는 와룡곡(臥龍谷)과 이어지는 것 같았다.
와룡곡은 무림맹 뒤편을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와룡산(臥龍山)에 있는 계곡으로, 정기적으로 와룡대 대원들이 수련하는 곳이기도 했다.
물론 와룡곡 자체가 천연 요새로 적의 침입을 막는 데도 유리했다.
계곡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협로로 되어 있어 그 길만 막으면 되기 때문이었다.
‘원래 이 비밀 통로를 만든 이유가 죄수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무림맹 전체 무사들을 위해서였구나. 예상대로 와룡곡과 연결되는 것이 맞는다면 그곳을 제2의 거점으로 삼고 항거하려는 목적인 것 같군. 하기야 무사들이 뿔뿔이 흩어져 버리면 다시 모으기가 거의 불가능해지지.’
백엽이 눈을 빛내며 앞으로 계속 나아갔다.
생각 같아서는 혼자서라도 경공을 펼쳐 좀 더 빨리 가보고 싶었지만 뒤따르는 포로들 때문에 그럴 수도 없었다.
백엽 바로 뒤에서 따르던 장로 전붕이 물었다.
“통로가 너무 길군요. 놈들이 쫓아오지 않을까요?”
백엽이 천마령을 보여준 후 존칭을 사용하기 시작한 그였다.
백엽이 담담히 말했다.
“지금쯤 무림맹 놈들도 천마광장에 진입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서둘러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먼저 앞으로 가서 출구를 살펴보고 올까 하는데, 그때까지 전 장로께서 무사들을 인솔해주시겠습니까?”
“네. 그게 좋겠군요.”
전붕이 말을 한 바로 그때.
굉음과 함께 뭔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게다가 그 소리는 앞뒤 양쪽에서 한꺼번에 들렸다.
천마신교 무사들이 당황한 것은 물론이었다.
포로 신분에서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마음의 안정을 찾지 못한 그들이었다.
백엽이 기파로 탐지하려 할 때.
다시 한번 우르릉 소리와 함께 동굴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동굴이 무너진다!”
“피해야 한다!”
동굴 천장에서 돌가루가 떨어지고 벽에서 흙더미가 흘러내리자 무사들이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다시 거대한 굉음과 함께 통로 앞부분이 그대로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십장 거리 앞에 있던 길이 완전히 막혀버린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무사들 뒤쪽에 있던 통로마저도 그대로 무너져 버려 졸지에 통로 속에 갇힌 신세가 되고 말았다.
“아차! 만통선생 그자가 기관을 발동시켰구나.”
백엽이 탄식했다.
백엽으로서는 설사 만통선생이 금마광장으로 들어온다고 해도 무사들과 함께 자신들을 추적해오리라고 생각했다. 한데 이렇게 통로 전체를 봉쇄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만통선생과 간수장이 알고 있던 기관에 대한 정보의 깊이가 달랐다.
간수장은 비밀 통로를 열 수 있는 방법만 알고 있었던데 반해, 만통선생은 그 폐쇄방법까지 알고 있었던 것이다.
백엽으로서는 어쩔 수 없었던 부분이긴 하지만, 극히 당황스러운 것도 사실이었다.
천마수호대 출신 이민봉이 물었다.
“무영객님! 설마 우리가 갇힌 겁니까?”
“그런 것 같군요. 만통선생이 천마광장에 진입한 후 곧바로 봉쇄 기관을 발동한 것 같습니다. 이대로라면 우리가 있는 곳도 무너질 가능성이 큽니다.”
백엽의 말에 무사들의 동요는 극에 달했다.
하지만 앞뒤로 통로가 막힌 터라 도주할 곳도 없었다.
그나마 통로 벽에 야명석이 박혀 있어 망정이지 어둠 속이었다면 벌써 미쳐버리는 사람이 나올 것이었다.
하지만 천장에서 떨어지는 돌먼지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일각도 되지 못해 동굴이 완전히 무너져 버려 이곳에 있는 사람 모두가 죽게 될 것이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믿을 사람은 단연 백엽뿐이었다.
무사들 모두가 그의 입만 쳐다봤다.
다행히 백엽은 금세 침착성을 회복하고 있었다.
백엽이 말했다.
“다들 동요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일단 동굴이 무너지는 것부터 막아보겠습니다.”
백엽이 두 손을 들어 올렸다.
순간, 그의 두 손바닥에서 금빛 광채가 우러나와 통로 전체를 비췄다.
물론 아직 개방된 곳만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효과는 확실했다.
돌먼지와 흙들이 서서히 줄어들면서 어느 순간 흔들림마저 사라졌다.
와아아.
무사들이 함성을 질렀다.
앞뒤 통로가 막혔다는 두려움은 여전했지만, 당장 동굴 전체가 무너져 압사당할 우려는 덜어냈기 때문이었다.
“휴우!”
무리했는지 백엽이 심호흡을 한 후 가부좌하고 앉았다.
“괜찮으십니까?”
전붕의 물음에 백엽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여러분도 앉아서 운기조식을 하십시오. 당분간 큰 문제는 없을 테니 천천히 이곳을 나갈 방법을 생각해보도록 하지요.”
“네.”
안 그래도 피로가 극심했던 천마신교 무사들이 일제히 주저앉아 휴식을 취하기 시작했다.
개중에는 운기조식을 하는 무사들도 있었으나, 대부분 그냥 쉬었다.
비록 내공이 회복되었다고는 하나 아직 다들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절망스러운 현실이 자각되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물과 음식이 전혀 없는 이곳에서 계속 버틸 수 없기 때문이었다.
“물도 물이지만 사방이 꽉 막혀 공기도 갈수록 부족해질 겁니다.”
이민봉의 말에 무사들 모두가 다시 한번 안색을 굳혔다.
기분 탓인지 벌써 숨을 가쁘게 쉬는 사람도 있었다.
전붕이 말했다.
“무영객께서 탈출 방법을 생각 중이시니 다들 조용히 있으시오.”
“알겠습니다.”
“네.”
무사들이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백엽은 눈을 감고 아무 말도 없었다.
물론 그는 이 모든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곳을 나가는 것으로 수하들을 말로써 달랠 여유가 없었다.
지금 그가 떠올리고 있는 것은 죽은 간수장의 기억이었다. 혹여 비밀 통로 기관과 관련한 다른 내용이 없는지 살펴보는 중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처음에 떠오르지 않았던 기억 하나가 생각났다.
그것은 간수장과 만통선생 두 사람의 대화로, 주요 기억을 우선으로 파악하는 천마초혼술의 특징상 바로 생각나지 않았던 내용이었다.
‘그래, 간수장이 비밀 통로 봉쇄와 관련해 질문한 적이 있었구나. 으음, 만통선생의 대답에 의하면 통로 안에 또 다른 통로가 있다고 했다. 혹시라도 자신들이 갇혔을 경우를 대비해 만들어둔 제2의 비밀 통로라 할 수 있겠군. 동굴 벽면을 살펴보면 뭔가를 알아낼 수도 있을 것이다.’
백엽이 눈을 뜨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좋은 방도가 생각났습니까?”
전붕의 물음에 백엽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동굴 벽에 새 기관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들 벽에서 조금 떨어져 앉으십시오.”
“명을 받들겠습니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천마신교 무사들이 일제히 벽에서 떨어졌다.
피곤 때문에 벽에 등을 기대고 있었던 사람이 많았는데, 기꺼이 백엽의 명을 이행한 것이었다.
백엽이 다시 두 손을 뻗었다.
순간, 금빛 광채가 우러나와 동굴 벽면을 감싸기 시작했다.
백엽은 기파 감지를 통해 벽 뒤에 다른 물질이 있는지 확인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아무 특이점도 없었다.
백엽이 실망하고 탐지를 중단하려던 찰나.
그의 눈이 반짝였다.
한쪽 구석 벽 뒤에서 미세하지만 움직임이 포착된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움직임이 있다는 것은 공간이 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공간은 곧 제2의 비밀 통로일 가능성이 크다. 그곳을 발견해 뚫게 되면 굳이 기관 작동을 할 필요도 없게 되는 것이지.’
백엽이 신중한 표정으로 예의 그 벽 앞으로 갔다.
벽에 오른 손바닥을 대니 확실히 공간이 느껴졌다.
백엽이 내공을 실어 벽을 그대로 밀어버린 것은 바로 그 직후였다.
콰콰쾅 하는 폭음과 함께 벽이 무너지며 돌먼지가 일었다.
무사들이 깜짝 놀라며 그곳을 쳐다봤다.
백엽이 그들을 진정시켰다.
“다들 잠시 기다립시오.”
“네.”
“네.”
무사들이 일제히 대답하며 자기 자리를 지켰다.
얼마 후 먼지가 걷히자 통로 하나가 나타났다.
기존 통로보다 좁았지만 두 세 명이 한꺼번에 지나갈 수 있었다.
“인원이 많으니 질서 있게 저를 따라오십시오.”
백엽이 다시 앞장섰다.
그 뒤를 전붕, 이민봉 등 천마신교 무사 천여 명이 뒤따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다시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새 비밀 통로 역시 끝이 없었다.
이러다가 낙양 밖으로 나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다만 시간이 지날수록 통로는 넓어져 무사들이 지나가기가 훨씬 편해졌다.
그러던 어느 순간.
굉음과 함께 앞쪽에서 무언가가 굴러오기 시작했다.
바닥에 경사가 있었는데, 그 경사면을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한데 그것은 바로 바위가 아닌가.
공 모양의 바위는 실로 거대했으며 속도 역시 계속 빨라졌다.
이대로면 무사들 모두 바위에 깔려 압사당할 가능성이 컸다.
백엽이 무명신장을 날린 것은 바로 그때였다.
콰콰콰쾅.
엄청난 폭음과 함께 바위가 산산조각 부서졌다.
거의 가루가 되어 통로를 지나가는 데 큰 무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곧이어 다른 바위들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십여 개였다.
백엽이 당황하지 않고 역시 장풍으로 바위를 파괴했다.
콰콰콰쾅.
하지만 바위는 계속 나타났고 결국 백여 개의 바위를 파괴한 후에야 멈췄다. 그 모든 바위를 파괴한 백엽이 그제야 한숨을 돌렸다.
하지만 상당한 내공 소모가 있었던 게 사실이었다.
‘보통 바위가 아니었다. 내력 소모가 생각보다 크구나. 회복하려면 운기조식이 필요한데, 그럴 시간도 없고 일단 전진할 수밖에 없겠군.’
백엽이 눈을 빛내며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무사들 역시 긴장한 표정으로 뒤따랐다.
그렇게 다시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통로 앞을 가로막은 거대한 철문 하나가 나타났다.
“어쩌면 이게 마지막 장애물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백엽의 말에 무사들이 웅성거렸다.
드디어 이곳을 나갈 수 있다는 생각에 다들 기대하는 표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 중에는 수십 년 동안 금마옥에 갇힌 사람도 있었다.
백엽 역시 그들의 심정을 이해하는 듯 마지막까지 신중한 표정이었다.
‘제2의 비밀 통로를 기관 작동 없이 통과하고 있어서 이런 철문이 가로막고 있는 것 같군. 두께도 두께지만 보통 철문이 아니다.’
백엽이 철문에 손을 대고 내공을 실어 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어려울 것으로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반응이 전혀 없을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곧바로 알 수 있었다.
철문의 특이한 재질이 외부 압력을 분산시켰기 때문이었다.
힘이 분산되면 제아무리 강한 내공이라도 약해지게 마련이었다.
백엽이 난감해할 때.
철문을 건드려서인지 동굴 전체가 다시 무너지기 시작했다.
백엽이 급히 이전과 마찬가지로 금빛 광채를 뿜어내 진정을 시키려 했으나, 이번에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이대로라면 일각도 못되어 완전히 통로가 붕괴할 가능성이 컸다.
‘큰일이구나. 지존검으로 시험을 해봐야겠다.’
백엽이 지존검을 뽑아 철문을 향해 내리쳤다.
단순히 내리친 것으로 보이나 엄청난 검강이 동시에 발출되어 그 위력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콰콰콰쾅.
폭음과 함께 철문에 균열이 생기더니 그대로 부서지고 말았다.
그 순간 부서진 철문 뒤에서 강렬한 빛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언뜻 보니 밖은 이름 모를 계곡이었다.
와룡곡은 아니고 다른 계곡 같았는데, 지금 그것을 확인할 시간이 없었다.
동굴이 무너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백엽이 소리쳤다.
“모두 밖으로 나갑시다!”
와아아.
함성과 함께 천마신교 무사들이 일제히 비밀 통로 밖으로 나왔다.
백엽을 비롯해 모든 무사가 나왔을 때.
굉음과 함께 동굴 전체가 무너졌다.
우르르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