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s First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27
천하제일 시한부 (27)
남궁세가.
무림은 수많은 문파와 세가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은 사파와, 정파로 나뉘어 서로의 신념 아래 서로를 대적한다.
남궁세가는 그중에서도 세가들의 우두머리이자, 검가로 유명한 명문 중의 명문이었다.
남궁제일검은 곧 안휘제일검이요, 안휘제일검은 곧 창천제일검이란 이름 아래 영광스런 검성의 별호를 부여받는다.
‘그만큼 검을 잘 쓰긴 하지.’
그래, 인정한다.
남궁세가의 검술은 확실히 매섭고 흠잡을 데 없이 깔끔했으니까.
하지만 저놈.
“개차반.”
남궁진성은 그런 남궁세가의 명성에 먹칠하는 아주 또라이 중에 개 또라이로 유명했다.
“하하!”
저것 봐라.
욕을 처먹고도 자랑스레 처 웃는 저 꼬라지를.
“내 이름이 확실히 유명하긴 한가 봐? 이런 거지새끼들도 내 이름을 다 아는 걸 보면.”
아아, 좀 이상한 데에 꽂혔구나.
난 한심한 표정으로 손짓을 까딱거렸다.
“가라. 오늘은 기분이 좋은 날이라 내 특별히 선심 쓰마.”
더군다나 적을 만들면 안 된다.
내가 있을 때야 상관없지만, 나는 곧 죽는다.
내가 죽고 난 뒤에 서희가 마음 놓고 편하게 살게 해 주려면 적을 늘려선 안 된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이놈!”
호위 무사가 검을 반쯤 뽑았다.
마치 눈에서 불꽃이라도 튈듯한 모양새였다.
“에헤이, 그만, 그만.”
남궁진성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호위 무사를 말렸다.
그가 날 바라보며 재밌다는 듯 씩 웃었다.
“조금 전까지는 장난이었는데, 이젠 좀 달라졌어.”
“아, 희롱이 장난이었다고? 역시 천둥벌거숭이.”
난 엄지를 치켜세워 주었다.
“장난으로 보이나?”
“꺄악!!”
남궁진성은 갑작스레 서희의 머리채를 우악스럽게 움켜쥐었다.
서희의 고개가 힘껏 뒤로 젖혀졌다.
“이 계집은 내가 잘 데리고 놀다가 처참히 찢어 죽여 주마.”
“…….”
할 말이 나오지 않았다.
명색이 정파의…… 그것도 세가 중 으뜸이라 치는 남궁세가다.
그곳의 방계였어도 발칵 뒤집힐 만한 발언인데, 하물며 남궁진성은 직계다.
또 그런 말을 스스럼없이 뱉는다.
“저놈을 죽여라.”
“오, 오라비…… 꺅!”
남궁진성은 그대로 서희의 머리채를 쥐고 힘껏 끌어당겼다.
이내 호위 무사가 똥 씹은 표정으로 날 에워쌌다.
“이건 선 넘었어.”
적을 만들지 않으려 했다.
문제는 내가 만든 게 아니다.
시작은 저놈이다.
“그간 남궁이 하던 짓을 봐서 마지막 아량을 베푼다.”
말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섰다.
호위 무사들의 자세가 낮아졌다.
내가 수상한 움직임이라도 보이는 순간, 즉각 검을 뽑기 위한 최상의 발도세였다.
“손 놔라.”
문제는 허점이 너무도 많다는 것.
“네 누이를 찾고 싶으면 직접 찾으러 오던가.”
남궁진성은 여유롭게 서희를 끌고 걸음을 옮겼다.
서희의 일그러진 표정이 뇌리에 틀어박혔다.
‘그래, 아량은 무슨.’
완벽히 잘못 생각했다.
그냥 다 죽여 버렸어야 했는데, ‘그날’…… 그때 말이다.
콰직!
나도 모르게 살기가 새어 나왔다.
농도 짙은 살기에 호위 무사들의 안색이 순식간에 사색이 됐다.
“이…… 무슨……!”
“크윽! 내, 내기가…….”
내력이 끌어 올려지지 않을 것이다.
“이미 너희들은 내 간격 안에 들어와 있으니까.”
가볍게 허리를 틀었다.
동시에 바로 면전에 서 있던 호위 무사의 면상을 그대로 찍어 내렸다.
투콰아앙!!
피를 흩뿌리며 저 멀리 처박힌 호위 무사는 그대로 혼절해 버렸다.
그때까지도 다른 세 놈은 움직이지도 못했다.
덥썩!
난 양옆에 서 있던 두 놈의 목을 움켜잡았다.
“서희야.”
놀라 굳어 있는 남궁진성, 그리고 서희까지.
난 조용히 서희를 향해 입을 열었다.
“눈 감아.”
서희가 본능적으로 눈을 꽉 힘주어 감았다.
우득!
동시에 섬뜩한 소리가 객잔을 울렸다.
그대로 내 손에 잡힌 두 호위 무사의 목을 꺾어 버린 것이다.
객잔 내부가 침묵에 잠겼다.
사람들은 겁에 질려 고개조차 들지 못한 채, 숨기 바빴고 그 흔한 소란조차 일어나지 않았다.
“너, 너 이 새끼…… 내, 내가 누군지…….”
“알아. 네 입으로 말했잖아.”
남궁진성이 겁에 질려 덜덜 떨기 시작했다.
목을 꺾어 버린 두 호위 무사가 스르륵 쓰러지고, 난 마지막 남은 호위 무사의 검집을 뺏어 들었다.
내가 검집을 채 감에도, 놈은 아무런 반응도 하지 못했다.
저벅, 저벅.
난 굳어 있는 남궁진성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가까이서 보니, 서희도 잘게 떨고 있었다.
난 가만히 서희의 어깨를 부드럽게 감싸 안아 주었다.
그제야 서희의 떨림이 조금 멎었다.
“꿇어.”
난 남궁진성의 눈도 마주치지 않고, 되뇌었다.
“꿇으라고.”
남궁진성은 상황 파악이 느렸다.
한참 뒤에야 정신 차린 그가 주춤 뒤로 물러섰다.
“본 세, 세가가 용서치 않을 것이다! 감히!”
“감히!”
난 남궁진성의 말을 가로채 더욱 언성을 높였다.
“내 앞에서 감히란 단어를 함부로 쓰지 말거라.”
콰직!
그대로 남궁진성의 아가리에 검집을 꽂아 넣었다.
놈의 이가 우수수 떨어져 나가고, 순식간에 사방에 피가 튀었다.
능글맞고 뻔뻔한 남궁진성의 얼굴이 고통에 잔뜩 일그러졌다.
“커헉! 사, 사여 주이요.”
그제야 남궁진성이 땅을 기기 시작했다.
놈의 면상이 짜낸 콧물과 눈물, 그리고 핏물로 버무려져 한층 더 불쌍하게 변모했다.
“제아, 사, 사여 주이요.”
입을 뭉개 놨기에 발음이 제대로 들리진 않았지만, 살려 달라는 것 같았다.
난 쭈그려 앉아, 가만히 땅을 기는 남궁진성의 머리채를 움켜잡았다.
그러고는 놈이 서희에게 했던 것처럼 똑같이 힘주어 고개를 강제로 쳐들게 했다.
“나한테 사과할 건 없어. 희롱을 들은 건 내 동생이잖아.”
“소, 소저! 사, 사여 주이요. 주, 주을죄을 지어으니다.”
“오, 오라비…….”
서희는 그때까지도 눈을 뜨지 않고 있었다.
난 가만히 서희의 한쪽 손을 꼭 잡아 주었다.
“어찌할까? 그만하라면 그만하마.”
“그, 그만해도 될 것 같아. 대, 대체…….”
서희의 말끝이 조금 떨려왔다.
아무래도 상황 파악이 힘든 모양이겠지.
“좋아. 내 동생이 그만하라니 그만하지.”
난 자리에서 일어섰다.
남궁진성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쩌적!
난 그대로 남궁진성의 한쪽 손을 검집으로 강하게 찍어 버렸다.
“끄, 끄아아아악!!!”
놈의 섬뜩한 비명이 객잔 내부를 가득 채웠다.
“근데 난 용서가 안 돼.”
“오, 오라비…….”
서희가 내 손을 강하게 움켜잡았다.
난 가만히 남궁진성의 귀에다 대고 나직이 속삭였다.
“내 이름 주서진이다. 복수하고 싶거든 어떻게든 해 봐. 청해의 혈공성 주서진. 그게 내 이름이다.”
“…….”
남궁진성이 재빨리 고개를 저었다.
절대 거론하지 않겠다는 뜻이었지만, 난 믿지 않았다.
저놈은 분명 복수할 것이다.
내가 그렇게 만들 거니까.
“너희 남궁세가가 이렇게 허접쓰레기들었나? 아니면 네가 허접한 건가? 이거…… 이름뿐인 세가였나.”
그래서 쐐기를 박았다.
자극을 주어, 자존심에 상처를 낸 것이다.
반드시.
날 찾아올 수 있도록.
“꺼져라.”
대답조차 하지 않는 남궁진성을 향해 차갑게 일갈한 뒤, 난 서희를 부축해 자리에서 일어섰다.
“차라도 한잔 마실까 했더니, 기분 잡쳤네. 미안하다.”
내 말에 서희가 고개를 저었다.
“눈 떠도 돼.”
서희가 조심스레 눈을 떴다.
서희는 주변을 쳐다도 보지 않고 오로지 날 향해 시선을 맞추었다.
들리는 소리만으로도 어느 정도 상황은 유추했을 테니, 구태여 보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가자.”
난 빠르게 객잔 밖으로 서희를 데리고 나왔다.
얼마나 걸었을까.
제법 객잔과 멀어져서야, 서희가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쩔려구?”
서희가 조심스레 물었다.
난 괜찮다며 씩 웃어 주었다.
“하던 대로 하면 돼. 걱정할 건 없어. 앞으로도 쭉.”
“대체 뭐가 뭔지…… 남궁세가면 설마 내가 아는 그 남궁세가야?”
“맞을걸. 남궁세가가 두 개 있는 것도 아니고.”
서희의 안색이 새하얗게 질렸다.
“그, 그럼 오라비가 남궁세가의 공자님을…….”
“공자라 하지 마. 널 어떻게 대했는데 좋은 말이 입에서 나오냐?”
“하, 하지만…….”
서희가 조심스레 주변을 살폈다.
아직도 무언가 불안한 듯 보였다.
“서희야, 잘 들어.”
아무래도 말해 주어야 할 듯했다.
물론 정확하게 말해 봐야 쉽사리 믿을 것 같진 않고 적당히 포장해서 설명해 줘야겠다.
“이 오라비는 남궁세가에서도 함부로 못 건드려.”
“왜?”
“정천맹이라고 알지?”
서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곳의 신기검단주는 알아?”
“아! 들어 봤어. 떠오르는 강…… 고수? 뭐라고 하는 것 같은데. 아무튼 엄청 강하다고…….”
“그 신기검단주랑 내가 연관이 좀 깊어.”
내 말에 서희의 안색이 조금은 밝아졌다.
“휴, 그런 분이랑 친구야? 신기검단주님이면 남궁세가도 함부로 못 하는 거지?”
함부로 못 한다 뿐인가.
멸문당하기 싫으면 알아서 살살 기어야 할 판인데.
물론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었다.
“그럼. 그러니까 아무 일 없을 거야. 잘못은 쟤들이 먼저 한 거니까.”
이렇게까지 말하고 나서야 서희는 그제야 안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믿어, 믿을게. 그런데 오라비.”
서희가 날 올려다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무공을 익혔어?”
“음, 말 안 했나?”
안 했다.
모르는 척 중이다.
“나 어린애 아니야. 혼인을 했으면 진즉에 애가…….”
“아이고, 알았어. 그래, 죽지 않을 만큼 익혔어. 그래서 정천맹에 들어갔고.”
어느새 말하다 보니 마차가 있는 곳까지 도착했다.
“출발하겠습니다.”
마부의 외침과 함께, 마차가 출발했고 우리는 말없이 마차에 앉았다.
“믿어.”
한참을 가던 중 서희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서희는 웃고 있었다.
“힘들었겠다. 우리 오라비.”
“뭘 또 그래. 이젠 괜찮다니까.”
“그래도.”
뭘 안다고.
서희가 그 작은 손으로 내 손을 가만히 쓰다듬어 주었다.
“아무 일 없이,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고 싶어. 오라비랑 그냥 그렇게.”
“…….”
그래.
나도 그렇다.
피곤했는지 가만히 눈을 감는 서희를 보며 난 가만히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 * *
으득!
남궁진성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부들부들 떨리는 다리는 여전했지만, 이 끓어오르는 화를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뭘, 꼬라 봐?”
괜히 주변에 숨어 있던 객잔의 손님들에게 화풀이를 한 남궁진성이 밖으로 나섰다.
그의 뒤를 살아남은 무사 하나가 따라나섰다.
“공자.”
무사는 잔뜩 질린 얼굴로 푹 고개를 떨구었다.
“이 병신만도 못한 새끼! 겁에 질려 아무것도 하지 못하다니, 어디 가서 남궁의 무사라고 꺼내지도 말거라!”
“그래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호위무사가 입술을 꾹 깨물고 번쩍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빛에는 단호한 의지가 깃들어 있었다.
“오늘부로 호위를 그만두고 싶습니다. 즉, 그만 귀향하려 합니다.”
“뭐?”
남궁진성의 눈빛이 스산하게 가라앉았다.
“죄송합니다, 공자.”
“그래.”
의외로 남궁진성이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무사는 감격한 표정으로 차고 있던 검을 남궁진성을 향해 내밀었다.
그 검은 처음 남궁세가에 들어왔을 때, 지급받은 무구 중 하나였다.
“제 호구와, 견갑 및 속대는 세가 내 수련장에 비치되어 있습니다.”
“…….”
남궁진성은 그의 말을 들으며 검을 잡았다.
일순 그의 표정이 싸늘하게 식었다.
“조심히 돌아가십시오, 같이 하지 못해 죄송스러울 따름입니다.”
말과 함께, 무사가 뒤돌아섰다.
그의 뒷모습을 보며 남궁진성이 조용히 검을 빼 들었다.
퍼걱!
“크억!!”
이내 남궁진성은 무사의 등에 검을 꽂아 넣었다.
심장을 노리고 정확히 찔러 넣었기에, 무사는 금세 허물어졌다.
“이 개 같은 연놈들. 내 반드시 찾아 죽여 버린다.”
남궁진성은 피투성이의 얼굴을 소매로 대충 닦으며 후다닥 몸을 날렸다.
그가 떠난 자리에, 죽임당한 무사의 시신만이 허망히 땅을 뒹굴고 있었다.